커버스토리 제 1060호 (2016년 03월 23일)

한솔제지·무림그룹, 특수지와 수출에 ‘사활’

유럽 감열지 라벨 업체 인수…지난해 ‘빅3’ 모두 영업이익 증가


(사진)한 제지업체 관계자가 완성된 인쇄용 종이를 검수하고 있다.(연합뉴스)

◆유럽 감열지 라벨 업체 인수…지난해 ‘빅3’ 모두 영업이익 증가

[한경비즈니스=김태헌 기자] 한국은 2014년 기준 지류(종이류) 생산량이 1166만 톤에 이르는 글로벌 5위 국가다. 또 1인당 종이 소비량은 189kg으로 11위에 올라 있을 만큼 ‘제지 강국’의 입지를 굳히고 있다. 이런 수치는 국내 인구와 산업 규모에 비해 결코 낮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수십 년간 큰 변화가 없던 국내 제지 산업에 최근 위기설이 몰려오고 있다. 정보기술(IT)의 발달로 제지 산업이 성장 동력을 잃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속에서도 업체 간 희비가 엇갈린다. 일부 제지 업체는 도산 위기에 직면해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반면 과감한 투자와 글로벌 진출로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 가는 곳도 적지 않다.

또한 일반 인쇄용이 아닌 특수지 등을 포함한 전체 제지 수요가 늘고 해외 수출 실적이 개선되고 있다는 점은 희망적이다.  제지 업계는 내수 시장이 아닌 글로벌 시장 진출에 주력하고 일반 종이보다 고부가가치를 지닌 기능성 신제품 개발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빅3가 인쇄용지 시장 70% 차지

국내 제지 산업은 신문용지·인쇄용지·위생용지 등의 비중이 특히 높다. 이 때문에 해당 종이를 생산하는 기업은 개별 연관 산업의 영향에 크게 좌우된다. 최근 디지털과 모바일 시대에 접어들며 신문과 출판 시장이 위축됐고 이 여파는 고스란히 제지 기업들의 리스크로 돌아왔다.

국내 제지 산업을 이끌고 있는 3대 기업으로는 한솔제지·무림·한국제지를 꼽을 수 있다. 이들 ‘빅3’ 기업이 국내 인쇄용지의 70% 이상을 생산해 낸다. ‘빅3’는 종이 수요의 감소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모두 영업이익이 증가하거나 흑자로 돌아섰다.

제지 산업은 막대한 시설 투자가 필요해 독과점 구조가 형성돼 있다. ‘빅3’가 이런 혜택을 누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은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특수지 등 새로운 성장 동력을 꾸준히 찾으며 위기를 돌파해 왔다.

한솔제지는 2015년 연결기준 매출액 1조5116억5300만원, 영업이익 754억4300만원, 당기순이익 235억9900만원을 기록했다. 2020년까지 매출 2조원, 영업이익 1600억원을 달성하겠다는 성장 목표를 세우고 ▷기술 집약형 하이테크 종이 소재 사업 추진 ▷글로벌 시장 확대 ▷기존 사업 수익성 강화 등에 주력하고 있다.

한솔제지는 기존 인쇄용지와 산업용지 생산에서 벗어나 ‘후가공’을 통해 여러 기능이 첨가된 특수지 분야로 사업 중심축을 옮기고 있다. 2015년 4분기 한솔제지의 용지별 판매 비율을 살펴보면 특수지(38%)·산업지(33%)·인쇄지(28%)순으로 특수지의 약진이 눈에 띈다.

한솔제지는 특수지 매출을 작년 3000억원 수준에서 2020년 1조원까지 높이고 동남아·중국·남미 등 글로벌 시장에도 적극적으로 진출할 계획이다. 

한솔제지는 변압기·배터리 등에 사용되는 전기 절연용지를 비롯해 잉크젯 열전사지, 특수 감열지, 부직포 벽지 등에도 전략적인 투자를 강화할 방침이다. 이 중 특수 감열지는 세계시장 규모가 연간 3조3000억원, 전기 절연용지는 1조원으로 매년 20% 이상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한솔제지가 ‘특수 감열지’를 신성장 산업으로 선택한 것은 내수 시장이 아닌 글로벌 시장 진출을 노린 전략이다. 특히 한솔제지는 유럽 시장 진출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를 위해 한솔제지는 2013년 유럽 최대 감열지 가공·유통업체인 샤데스(Schades)를 429억원에 인수했고 2014년 네덜란드 라벨 가공·유통업체 텔롤(Telrol)을 400억원에 사들였다.

또 2015년 8월에는 감열지 업체 R+S그룹도 220억원에 인수했다. 한솔제지 관계자는 “글로벌 시장과 특수지 시장에 대한 준비를 착실히 진행 중”이라며 “예정했던 계획대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한솔제지와 국내 인쇄용지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무림그룹(무림P&P·무림SP·무림페이퍼)의 3사는 지난해 모두 흑자 전환했다. 펄프·제지 제조업체 무림P&P는 지난해 매출 6285억1361만원, 영업이익 365억8921만원, 당기순이익 116억1484만원을 기록했다.

특수지 제조업체 무림SP도 지난해 매출 2113억8233만원, 영업이익 95억8927만원, 당기순이익 18억4492만원을 달성했다. 인쇄용지와 산업용지를 만드는 무림페이퍼 역시 지난해 매출 5573억원, 영업이익 290억2900만원, 당기순이익 47억7500만원의 실적을 거뒀다.



한국제지, 원가절감 허리띠

무림의 이 같은 성과는 지속적인 연구·개발(R&D)과 생산 공정 개선 등을 통해 이뤄낸 것이다. 무림페이퍼는 2007년 국내 제지 업계 최초로 산림관리협의회(FSC)의 국제산림인증을 받았고 2011년에는 국내 아트지 최초로 탄소성적표지 인증도 획득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산업용 인쇄용지 생산을 확대하기 위해 진주 공장에 330억원을 투자해 일반 인쇄용지는 물론 산업용지와 특수지를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갖췄다.

국내 인쇄용지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무림그룹이지만 종이 외의 신성장 산업에도 많은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무림그룹은 충북 진천 공장에서 올해부터 펄프 파우더를 활용한 바이오플라스틱 원료와 발포 제품 생산에 들어갈 예정이다.

바이오플라스틱 사업은 일본의 친환경 소재 기업 ERI와 150억원을 공동 투자한 ‘무림-ERI-바이오머티리얼스’가 담당하고 여기서 생산된 소재는 식품 포장 용기 등으로 유럽 시장에 판매할 예정이다.

무림의 바이오플라스틱 시장 진출 역시 종이 산업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었다. 바이오플라스틱은 인쇄용지와 달리 북미와 유럽에서 친환경 원료로 인식되며 수요가 증가해 2018년에는 51억 달러 규모로 시장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무림그룹 관계자는 “ERI는 제품 생산은 물론 설비 제조, 판매와 컨설팅 능력까지 갖춘 회사”라며 “소재와 관련된 많은 노하우를 배울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해 파트너로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국내 복사지 1위 업체 한국제지는 지난해 매출 6540억원과 161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매출은 전년 대비 0.9% 감소했지만 영업이익은 110% 증가했다. 당기순이익도 127억원으로 136% 늘어났다.

한솔제지와 무림이 신사업을 통해 제지 산업의 위기를 극복하고 있는 데 비해 한국제지는 제조원가 절감으로 기업 체질을 바꾼다는 전략이다. 한국제지는 온산 공장 인근에 있는 고려아연으로부터 폐열(잉여 스팀)을 받아 국내 최초로 ‘굴뚝 없는 제지 공장’을 실현했다.

이를 통해 온실가스 저감 효과는 물론 연간 약 200억원의 제조원가를 절감한다. 또 2013년 국일제지의 중국 장자강 공장을 인수해 스테인리스 스틸용 간지, 박리지 대지, 고급 라벨지 등의 생산능력을 갖추기도 했다.

주요 제지 업체들은 종이가 사양산업이라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유가 및 펄프 가격 하락 등에 힘입어 실적 개선에 성공했다. 제지 업체들의 수익성은 원재료 가격과 원·달러 환율 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는 제지 업체의 제조원가에서 펄프 등 원재료가 차지하는 비율이 50% 내외로 높기 때문이다. 물론 종이별 원재료 투입 비율에는 차이가 있다. 또 펄프는 85%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환율 변동에 특히 민감하다.

김동한 한화금융연구소 연구원은 ‘국내 제지 산업의 전망 및 업체 실적 분석’ 자료를 통해 “통상 원재료인 펄프 수요의 85%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국내 제지업은 생산량 대비 수출 비율이 20% 초반에 불과해 환율 상승이 수익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에너지 저감 등 기후변화 대응 ‘발등의 불’

‘빅3’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전반적인 제지 시장의 상황은 여전히 녹록하지 않다. 특히 신문용지를 주력 생산하는 기업들은 글로벌 경제의 위축과 신문 생산량 감소로 직격탄을 맞았다. 신문용지 시장은 내수와 수출 감소에 따라 2014년 생산량이 전년보다 4.8% 줄어든 142만 톤에 그쳤다. 이 중 내수는 68만 톤, 수출 74만 톤이다.

이 때문에 국내 1위 신문용지 제조 기업 전주페이퍼는 매출이 급감해 지난해 8월에 11일 동안 공장 가동을 전면 중단하기도 했다. 전주페이퍼는 과거에도 시장 수급에 따라 일시적으로 조업을 중단한 적이 있지만 1주일이 넘는 기간 동안 공장을 멈춘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전주페이퍼는 2013년 매출 7392억원, 당기순이익 126억원을 기록했다. 하지만 1년 만인 2014년에는 매출이 6543억원으로 급감하고 167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하며 적자로 돌아섰다.
 
이 때문에 전체 700여 명의 직원 중 200명에 대한 희망퇴직을 실시하는 등 경영상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국내 신문용지 시장은 1조원 규모로 전주페이퍼는 이 중 52%를 점유하는 선두 기업이다.

특히 최근 인쇄용 종이 사용이 줄어든 데다 1990년대 증설한 설비 때문에 재고 물량이 늘면서 업계 간 가격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재고 물량은 2014년 기준 크라프트지(39.2%)가 가장 높았고 인쇄용지(28.8%)와 위생용지(11.8%)가 뒤를 이었다.

재고가 쌓이면서 국내 제지 기업들은 해외 판로 모색에 나서고 있다. 2010년 전체의 33.3%였지만 이후 2011년(36.5%), 2012년(38.5%), 2013년(39.5%), 2014년(41.2%) 등으로 차츰 높아지는 추세다.

또 제지 산업의 위기는 제지연합회장이 공석 상태라는 데서도 느낄 수 있다. 지난 2월 26일 제지연합회 정기총회에서 제31대 최병민 회장(깨끗한나라 회장)이 퇴임했지만 뒤를 이을 후임 회장은 임명되지 못했다. 최 회장 퇴임 후 지금까지 20여 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제지연합회 회장은 공석이다.

해당 산업 분야의 대표성을 가지는 협회장이 한 달 가까이 공석으로 있지만 누구도 회장직을 흔쾌히 맡겠다는 이가 없다. 업계 관계자는 “전체적으로 제지 산업이 어려운데 임기가 3년이라는 점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며 “대부분의 제지 기업이 대외 활동보다 생존 모색에 여념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제지연합회 관계자는 “회장을 맡을 적임자를 찾고 있는 중이지만 아직 결정된 내용이 없다”면서 “임기가 길다는 의견이 있어 회원사들과 이에 대해서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회장직을 수락하는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지 이사회와 임시 총회를 개최해 임명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국내 제지 산업은 원재료인 펄프를 자체 생산할 수 없다는 약점도 안고 있다. 펄프는 대부분이 수입에 의존하기 때문에 제지 업체의 실적이 국제 수급 상황과 환율 변동에 큰 영향을 받고, 이는 고스란히 기업 리스크로 남는 구조적 한계점도 있다.

최근에는 제지 업종이 산림을 파괴하는 산업으로 눈총을 받으며 시민단체는 물론 정부의 규제까지 받고 있어 공격적 투자가 어렵다는 점도 국내 제지 업계가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한편 원종명 강원대 제지공학과 교수는 ‘제지 산업의 현황과 전망’을 통해 “제지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대체 원료의 확보가 중요하다”며 “생산성과 품질, 에너지 효율을 향상시킬 수 있는 혁신적 기술과 설비, 공정의 도입이 필수”라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특히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에너지 소비 저감, 폐에너지의 회수 및 활용, 폐기물의 재활용, 배기가스 중 이산화탄소의 자원화, 재생에너지 및 바이오에너지 사용, 탄소배출권 확보 등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kt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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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6-03-25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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