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제 1060호 (2016년 03월 23일)

온라인 쇼핑 붐 타고 포장재 수요 ‘고공행진’

인쇄용지에서 산업용지로 중심 이동… ‘제지는 사양산업’ 옛말

인쇄용지에서 산업용지로 중심 이동… ‘제지는 사양산업’ 옛말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많은 미래학자들이 ‘종이 없는 사회’의 도래를 예측했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달로 종이는 사라질 운명이라는 것이다.

2000년대 초·중반만 해도 이들의 예측은 적중하는 듯 보였다. e메일의 등장으로 편지지 사용이 급감했고 노트나 수첩 대신 스마트폰과 태블릿PC를 꺼내 드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어느새 종이는 ‘아날로그’를 대변하는 낡은 유물로 취급되기 시작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정부·기업·은행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종이 문서가 전자 파일에 밀려나고 있다. 지난 2월부터는 부동산 거래에 사용되던 서류가 부동산 전자 계약 시스템으로 대체되기 시작됐다.

하지만 종이 소비량 통계는 의외의 결과를 보여준다. 2009년 844만 톤이었던 국내 종이 소비량은 오히려 2014년 949만 톤으로 5년 사이 12.4% 늘었다. 2013년 927만 톤보다 2.4% 증가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제지 업계는 종이 소비가 앞으로도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귀한 몸 된 상자용 골판지

일반의 예상과 달리 종이 소비가 늘어나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제지 산업의 지형도가 바뀐 것이다. 전통적으로 종이는 ‘주로 섬유류를 재료로 만들어 글을 쓰거나 인쇄하는 등 다양한 용도에 이용되는 얇은 물품(민족문화대백과사전)’으로 정의돼 왔다.

하지만 이런 정의는 이제 ‘다양한 용도에 이용되는 얇은 물품으로, 주로 포장지로 많이 사용되며 글을 쓰거나 인쇄하는 용지로도 사용된다’로 바뀌어야 한다. 종이의 쓰임새가 달라진 것이다.

인쇄용지 시장은 매년 줄어들고 있지만 산업 용지 시장은 오히려 성장세다. 백판지와 골판지가 주요 품목인 산업용지는 각종 제품의 포장재·박스·내장재로 사용된다. 산업구조가 고도화될수록 다양한 산업과 영역에서 신제품이 등장하고 있어 이 제품들을 포장하고 보관하기 위해 산업용지 수요도 자연스럽게 증가하는 상황이다.

또 정보기술(IT) 기기 발달로 온라인 쇼핑이 늘어나며 택배 서비스를 위한 포장 박스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경제성장과 맞물리며 수출도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백판지와 골판지 등 판지류 생산량은 2003년 494만9100톤에서 2014년 628만7149톤으로 27.0%(133만8049톤)나 늘었다. 반면 지난 10년간 종이·판지 합계 생산량은 2003년 1014만7620톤에서 2014년 1166만2279톤으로 14.9%(151만4659톤)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에 따라 산업용지가 제지 업계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계속 높아지는 추세다. 업계 1위인 한솔제지는 2007년 29%이던 산업용지 매출 비율이 2014년 34.8%까지 늘어나며 수익성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처럼 종이는 기록 매체로서의 중요성은 약해지고 있지만 산업용 포장지와 라벨지·의료용지·미술용지·위생용지·팬시용지·벽지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그 존재감을 새롭게 나타내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종이 소비량 가운데 인쇄·필기용이 의외로 적다는 점이다. 국내 종이 수요를 보면 골판지를 비롯한 각종 포장용 산업용지가 60%, 책을 만드는 데 쓰이는 종이가 24%, 신문용지가 12%, 나머지 4%는 화장지 등이 차지한다. 인터넷 쇼핑과 택배의 확산에 따라 종이의 쓰임새가 정보를 담는 매체보다 물건을 담는 포장용으로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제지 업체의 안정적 수익 창출력 ‘부각’

이러한 점을 미뤄볼 때 한국의 제지 산업, 그중에서도 포장용 산업용지의 성장세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포장용 박스로 사용되는 백판지와 골판지의 성장이 주목되고 있다.
 
백판지는 펄프 또는 고지(폐지) 등을 배합해 여러 층으로 겹뜨기한 두꺼운 종이다. 주로 화장품과 의약품 등 다양한 상품을 포장하는 데 쓰인다. 골판지는 주로 폐지로 만드는 두꺼운 종이로 라면 상자와 같이 대형 상품 포장에 쓰인다.

산업용지는 상품 판매와 직결돼 경기가 좋을 땐 수요가 더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 지난 10여 년 사이에 국내 인터넷 쇼핑과 홈쇼핑, 모바일 쇼핑 시장이 급속도로 커지면서 택배 물량이 증가한 것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2005년 119만 톤이었던 국내 백판지 생산량은 2014년150만 톤으로 26% 증가했다. 같은 기간 골판지 생산량도 358만 톤에서 454만 톤으로 26% 늘었다.

이런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미국의 시장조사 기관 프리도니아그룹은 미국 온라인 마켓의 성장에 따라 보호 포장재 수요 증가가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고 미국 보호 포장재 시장이 연평균 4.9% 성장해 2019년에는 68억 달러(약 7조9560억원) 규모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했다.

온라인 마켓의 지속적인 성장에 따라 배송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 있는 충격·진동·마찰 등으로부터 물품을 보호하는 보호 포장재 수요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런 현상을 두고 미국의 경제 분석가 마이크 리처드는 “전자 상거래 활성화로 상품의 포장이 전 세계적으로 점차 증가하고 있다”며 “포장은 선진국에서부터 시작돼 점차 확산되고 있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그동안 국내 제지 산업은 성장을 이끌어 왔던 인쇄용지 산업의 규모 축소로 ‘사양산업’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이에 따라 골판지를 비롯한 제지회사들은 주식시장과 인수·합병(M&A) 시장에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저성장 국면에 들어서면 안정적인 이익 창출이 가능하고 ‘밸류에이션 매력(적정 가치보다 저평가된 정도)’이 높은 골판지 업체들이 새롭게 주목받는다.

과거 국내 골판지 포장재 시장은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이뤄져 있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자체 수요를 해소하기 위한 신규 진입과 수직 계열화에 따라 일부 대기업들이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면서 공급과잉이 나타났다. 원재료인 고지 가격이 급등한 1999~2000년과 2003~2004년엔 수익성 악화로 고전하기도 했다.


(사진제공=한국골판지포장공업협동조합)

종이의 진화…종이 휴대전화도 등장

골판지 업체들의 경영 악화로 원지 업계 1위 조일제지(아세아페이퍼텍의 전신)는 2004년 금호아시아나그룹을 거쳐 2006년 아세아제지 계열사로 편입됐다. 이어 2010년 태림포장공업의 동원제지 인수와 2011년 아세아제지의 경산제지 인수 등 대형 업체를 중심으로 업계가 재편됐다.

이를 통해 골판지 업계의 가격 결정력이 강화됐고 ‘원재료 가격 상승→제품 가격 인상’의 구조가 마련됐다. 2008년 고지 가격이 47%나 급등했을 때에도 4~5% 수준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성장성이 커지면서 업계의 지각변동에도 가속도가 붙었다. 2006년 전후의 활발한 M&A를 거쳐 태림(동일제지·월산제지·동원제지), 대양(신대양제지·대양제지), 아세아(아세아제지·아세아페이퍼텍·경산제지), 삼보판지(대림제지·고려제지), 수출포장 등 현재의 ‘빅 5’ 체제가 형성됐다.

이들 업체들은 하위 생산 업체가 박스를 구성하는 라이너지·골심지·이면지를 만들면 이를 납품받아 조립, 가공을 거쳐 최종 제품을 생산한다. 이들은 모두 원지 제조사를 계열사로 두고 있다.

즉 수직 계열화를 통해 제조원가를 통제할 수 있고 수급 조절도 가능해 경영 효율성의 극대화가 가능해졌다. 안정적인 사업 구조를 갖춘 셈이다. 여기에 온라인 쇼핑의 급성장으로 박스 수요가 꾸준히 늘면서 호기를 맞았다.

증권사 한 애널리스트는 “골판지 생산 업체들은 과점 체제로 경쟁 강도가 크지 않고 사업이 안정적”이라며 “앞으로 박스 수요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성장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분석했다.

‘종이의 반격’은 골판지·백판지 등 포장용지 분야에 그치지 않는다. 종이가 오히려 다른 소재를 대체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종이팩이 소주병을 대체하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미국의 장난감 제조업체는 종이로 만든 1회용 휴대전화도 개발했다. 두꺼운 종이 위에 전자회로를 인쇄한 종이 휴대전화다. 미세먼지도 허락하지 않는 반도체 공장에서는 찢어도 종이 가루가 날리지 않는 무진지가 쓰이고 있다.

앞으로는 종이의 개념을 뒤엎을 만한 신기술이 적용된 첨단 종이까지 등장할 전망이다. 스웨덴 빌레루드는 늘어나는 종이를 개발하기도 했다. 이 회사가 2010년 선보인 파이버폼(Fibreform)은 원래 길이보다 15.6% 정도까지 늘어난다.

1m 길이의 종이라면 15cm 이상 늘어난다는 말이다. 일반 종이는 평균 2.6% 늘어날 수 있으니 신축률이 6배로 커진 것이다. 이러한 종이가 상용화되면 종이의 적용 범위가 훨씬 넓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플라스틱의 영역을 침범하는 종이도 있다. 이른바 ‘가장 깨끗한 종이’다. 액정표시장치(LCD) 패널 생산 공장에서 쓴다. 기존에는 패널을 옮기는 중 먼지가 붙거나 흠집이 나는 것을 막기 위해 패널 유리 사이에 플라스틱 필름을 붙였다.

종이는 표면이 거칠어 사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새로 개발된 ‘LCD 유리 간지’는 5㎡ 넓이에 머리카락 두께의 티끌 2개 미만이 합격 기준일 만큼 깨끗하기 때문에 플라스틱을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

종이는 전혀 연관이 없을 것 같은 분야에서도 활용되고 있다. 현재 비행기나 헬리콥터의 내장재가 ‘메타 아라미드 페이퍼’로 만들어지고 있다. 메타 아라미드 페이퍼는 화학섬유인 ‘아라미드’에서 나온 신소재다. 아라미드는 1965년 듀퐁이 처음 개발했고 절연 능력이 뛰어나고 열에도 강하다.

IT와 종이의 융·복합 ‘주목’

또한 종이와 첨단 IT의 ‘융·복합’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구글이 종이책에 증강현실(VR)을 적용한 상품을 개발하고 조만간 출시를 앞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스토리텔링 기기’ 로 출원된 이 특허는 증강현실을 적용한 아동용 도서 관련 기술이다. 책장을 넘기면 그림이 팝업(Pop-up)으로 튀어나오는 어린이 입체 종이책의 디지털 버전으로 해석된다.

이 기술은 종이책에 소형 기기를 결합한 것으로, 전자책은 아니다. 그 대신 광원, 비디오 프로젝터 또는 디스플레이 부품 등이 책에 내장된다. 내부에 동작·압력 센서가 있어 책장을 넘길 때마다 시각적 이미지가 튀어나온다는 설명이다.

IT 업계에서 주목하고 있는 또 하나의 종이 제품은 배터리다. 종이 배터리가 현실화한다면 수많은 휴대용 전자 기기는 자연스럽게 ‘다이어트’에 돌입하게 된다. 미국 렌셀러 폴리테크닉대 연구진은 2007년 검은색 탄소 나노튜브를 입힌 종이 배터리를 만들었다. 두루마리처럼 말아 가지고 다닐 수 있고 꼬거나 접을 수도 있다. 심지어 일부를 잘라내도 기능을 유지한다.

2009년에는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팀이 코팅 방법을 단순화해 생산 단가를 낮춤으로써 상용화에 한발 더 다가섰다. 과학계는 궁극적으로 종이 배터리를 인공장기 동력으로 쓴다는 계획까지 세워 놓았다. 우리 몸의 혈액·땀·소변이 자연스럽게 배터리의 전기 발생을 위한 전해질로 이용되기 때문에 한 번 몸에 넣은 종이 배터리는 다시 충전할 필요도 없다.

생물학과 의학 분야에서는 ‘바이오액티브 종이’의 개발을 고대하고 있다. 생물학적 센서를 가진 종이다. 맥주병에 붙은 종이가 온도에 따라 색깔이 변하는 것처럼 세균이나 독성 물질 등이 감지되면 내장된 잉크가 반응해 색깔을 나타내는 식이다.

이 종이를 포장지로 쓰면 제품이 유통되는 동안 손쉽게 품질관리를 할 수 있게 된다. 바이러스나 신경전달물질을 이용한 생물학적 테러를 예방하는 데도 이용될 수 있다.

이처럼 종이는 산업의 발달과 함께 계속 진화하고 있다. 현재는 가볍고 내구성이 보장되며 가격 경쟁력을 지닌 제품이 포장 산업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향후 5년 또는 10년 후에는 어떤 분야에서 종이의 쓰임새가 달라질지 궁금해진다.

cwy@hankyung.com

[골판지를 알아봅시다]


골판지란?
종이에 물결 모양으로 골을 형상한 구조체다. 비교적 가벼운 무게의 재료를 사용하면서도 높은 압축 강도를 지닌다. 용도에 따라 외장용과 내장용으로 나뉜다.

역사
시초의 골판지는 1856년 영국 에드워드 찰스 헐리와 에드워드 엘리스 알렌이 종이에 골을 쳐서 모자의 땀받이로 사용했다. 골판지가 포장용지로 처음 사용된 것은 1871년 미국인 알버트 L 제인스가 물약병의 완충제로 포장하면서다.

골판지의 구조
골판지의 기본적 구조는 골을 성형한 골심지와 라이너의 결합으로 이뤄져 있다. 골은 형태에 따라 U자형, V자형, UV자형 등이 있다.

골판지의 원리
트러스 구조 : 삼각형 그물 모양으로 짜서 하중을 지탱하는 구조. 삼각형 구조의 모서리에 힘이 가해지면 다른 모서리쪽으로 분산돼 단위 면적당 받는 하중이 줄어들게 된다. 골판지의 골이 충격 흡수성과 강한 압축성을 가지고 있어 내용물 파손이 적다.

골판지 종류와 용도
편면 골판지 : 골심지의 한쪽에 라이너지 1장을 맞붙인 골판지(완충제)
양면 골판지 : 단면 골판지의 접착이 돼 있지 않은 다른 한면에 라이너 원지를 붙인 것(의류 상자, 소 택배용)
이중 양면 골판지 : 양면 골판지에 단면 골판지를 붙인 것(중량물·농산물·육가공 업체에 납품)
삼중 양면 골판지 : 이중 양면 골판지에 단면 골판지를 덧붙인 골판지(중량물 포장상자)


[기사 인덱스]
- 골판지 시장이 뜬다
- 온라인 쇼핑 붐 타고 포장재 수요 '고공행진'
-'원지에서 상자 재가공까지' 수직 계열화 완성
- 한솔·무림, 특수지와 수출에 '사활'
- 미국 종이책 매출 반등… 전자책은 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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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6-03-25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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