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국회 공약 분석}
{“무조건 고용 안정?” “고교 무상교육?” “지역 일자리 5만 개 창출?”}
총선 당선자 공약, 걱정되는 게 너무 많다
(사진) 제20대 국회의원 당선인에게 지급되는 금배지.

[한경비즈니스=최은석 기자] 선거 때면 유권자의 표심을 잡기 위한 후보자들의 포퓰리즘(대중인기영합주의) 발언 또는 선심성 공약이 쏟아진다.

선심성 공약은 구체적 실천 방안이 빠져 있거나 천문학적 예산이 투입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어땠을까. 이번 선거에서도 후보자들은 수년째 답보 상태인 지역 현안 해결을 약속하는 등 퍼주기식 공약을 무리하게 포함했다.

이번 선거에서는 특히 후보자 및 각 정당의 막연한 일자리 관련 공약을 두고 말들이 많았다. 4·13 총선 주요 당선자들의 화제 발언 및 복지·경제·지역 발전 관련 공약을 살펴봤다.
총선 당선자 공약, 걱정되는 게 너무 많다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부산 중구영도구)는 이번 4·13 총선에서 김비오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6선에 성공했다. 김 전 대표는 당선에 성공했지만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은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하며 16년 만에 ‘여소야대 국회’가 재연됐다. 김 전 대표는 이번 선거에서 상향식 공천을 고집하면서 이른바 ‘옥새 파문’을 일으키는 등 이슈를 몰고 다녔다.

◆현대중공업 수주 절벽에도 “구조조정 막을 것”

지난 4월 11일 울산 동구 현대중공업 본사 정문 앞에서는 출근길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유세 과정에서 포퓰리즘 발언을 쏟아내 도마 위에 올랐다.

이날 안효대 새누리 울산 동구 후보의 지원 유세에 나선 김 전 대표는 “쉬운 해고가 절대 없도록 하겠다”며 “조선해양산업발전특별법을 만들어 한계 기업에 지원되는 자금을 현대중공업에 투입하고 특별 고용 지원 업종 및 특별 고용 지역 지정을 통해 고용을 안정시키겠다”고 말했다.

김 전 대표의 이 같은 발언은 정부 정책과 새누리당의 당론에 배치된다. 여당의 수장이 정부의 노동 개혁 방침에 엇갈리는 실언을 한 셈이다. 박근혜 정부는 노동 개혁을 핵심 국정 과제 중 하나로 추진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지난해 9월 근로기준법·파견근로자법·기간제근로자법·고용보험법·산재보험법 등 5개 법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노동 개혁 5법은 야당의 반대에 막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1분기 수주가 3척에 그치는 등 사상 최악의 수주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누적 적자는 4조9000억원에 달한다.

새누리당 지상욱 당선인(서울 중구성동구을)은 정호준 국민의당 후보를 꺾고 국회에 입성하게 됐다. 지 당선인은 “중구 3만 개, 성동구 2만6000개 등 4년간 민간·공공 부문에서 총 5만6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 청년과 여성·노인 등을 우선 채용하겠다”고 공약했다. 일자리 5만 개는 삼성·현대차·SK·LG 등 4대 그룹의 대졸 및 고졸 등 연간 전체 채용 규모에 달하는 숫자다.

정운천 농림축산식품부 전 장관도 야권 텃밭인 전북 전주 을에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해 최형재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초선에 성공했다. 정 당선인은 “삼성 등 대기업 회장단을 반드시 만나 전주에 기업을 유치, 5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정 당선인은 또 “국민연금·전북은행·전북과 협력해 1조원 규모의 전북 펀드를 조성, 농식품 산업 등의 분야에 10억원짜리 스타트업 1000개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서울 강서구을을 지켜낸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3선)은 마곡 워터프런트 개발 재추진을 공약했다. 마곡 워터프런트 조성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재임 기간 추진한 한강 권역별 특화 사업 중 하나다. 약 9000억원을 투입, 강서구 마곡지구에 인공호수 및 요트 선착장 등을 조성하는 사업이었지만 높은 사업비 등에 따른 반대 여론으로 백지화됐다.

나경원 새누리당 의원은 서울 동작구을에서 지역구 수성 및 4선에 성공했다. 나 의원은 대표적 포퓰리즘으로 꼽히는 ‘고교 무상교육’을 단계적으로 실시하겠다고 강조했다. ‘고교 무상교육 단계적 실시’ 는 새누리당의 정책 공약이기도 하다.

영남에서는 동남권 국제 신공항 후보지를 놓고 벌어지던 지방자치단체별 기싸움이 선거 표심 도구로 활용됐다. 이번 선거에서 첫 국회의원 배지를 달게 된 엄용수 전 밀양시장(경남 밀양의령군함안군창녕군) 등은 ‘밀양신공항’ 유치를, 더불어민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당적을 바꿔 4선에 성공한 조경태 의원(부산 사하구을) 등은 ‘가덕도신공항’ 유치를 각각 약속했다.

◆야권에서도 막연한 일자리 공약으로 여론 악화
총선 당선자 공약, 걱정되는 게 너무 많다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비례대표 5선)는 지난 4월 6일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삼성의 미래차 산업을 광주에 유치해 5년간 2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공약했다. 광주 서구을에 출마한 양향자 더민주 후보가 지역에서 제시한 ‘3조원 투자 유치, 2만 명 고용’이라는 공약을 당 차원에서 약속한 셈이다.

김 대표의 이날 발언은 불리하게 돌아가는 광주 지역 선거 판세를 돌리기 위한 무리한 공약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기업이 사업의 내용조차 구체화하지 않은 시점에 정치권이 공장 유치 등을 운운한 것 자체가 무리였다는 지적이다.
총선 당선자 공약, 걱정되는 게 너무 많다
광주 서구을에서 지역구 수성 및 6선에 성공한 천정배 국민의당 공동대표는 더민주의 ‘광주 2만 명 고용’을 정면 겨냥한 선심성 공약으로 쓴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천 대표는 지난 4월 6일 광주시의회 기자회견장에서 “2020년까지 유망 중소기업 500개 이상을 유치해 3만여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말했다. 천 대표는 별도의 실현 방안을 내놓지 못했다.

이인영 더민주 의원(서울 구로갑·3선)은 “온수산업단지에 2000여 개의 신규 일자리를 비롯해 상업·관광·교육 등에서 총 1만 개 정도의 추가 일자리를 만들겠다”며 지역 민심을 공략했다.

추미애 더민주 의원(서울 광진구을·5선)은 ‘지하철 2호선 한양대역~잠실역 구간 지하화’를 약속했다. 하지만 지하철 2호선 지하화는 구간당 조 단위의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등 경제성을 이유로 반대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경기 수원정에서 재선에 성공한 박광온 더민주 의원은 ‘고교 무상교육 실현’과 ‘동네산부인과 산모 입원비 건강보험 적용(최대 7일)’ 등의 선심성 공약을 내세웠다. 김태년 더민주 의원(경기 성남수정구·3선)은 당 복지정책 공약 중 하나인 ‘청년 구직수당 60만원 지급’을 강조했다.

전북 남원임실군순창군에서 첫 국회의원 배지를 달게 된 국민의당 이용호 당선인은 새만금·정읍·임실·남원 간 동부 통합 내륙국도 건설을 공약했다. 이 사업에는 총 89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경기 고양갑·3선)는 이번 선거에서 “2020년까지 국민 평균 월급 300만원을 달성하겠다”고 공약했다. 아래 소득을 끌어올리고 위 소득을 경제 전반으로 환류해 붕괴된 중산층을 복원한다는 계산이다. 심 대표는 또 “정원 대비 3%인 청년 의무 고용률을 5%로 올려 매년 25만 개의 청년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

한편 이번 선거에서도 여야 주요 정당이 내세운 복지 공약은 차이를 보였다. 새누리당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선별적 복지를 주장했다. 반면 더민주는 ‘기초연금 월 30만원으로 인상’, ‘미취업 청년에게 6개월간 월 50만원씩 지급’ 등 일부 보편적 복지를 내걸었다.

국민의당은 ‘만 65세 이상 노인에게 차등 없이 월 20만원 기초연금 지급’,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예산 확보를 위한 지방교육재정교부율 인상’ 등 재정 효율성을 고려한 보편적 복지를 내세웠다.

이영범 건국대 행정학과 교수는 “선거 때마다 내세우는 후보자들의 공약이 해당 시점에서 과연 각 지역이나 우리 사회에 얼마만큼 필요한 공약인지, 재원 마련 등 실현 가능성이 있는 공약인지 등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두고 판단하는 유권자들의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choie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