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산업 바꾸는 3D 프린팅

아산병원, 세계 최초 ‘3D 유방 수술 가이드’ 개발…수술 시간 단축·부작용 감소

맞춤 인공뼈 ‘출력’ 피부조직 프린터도 개발 중
[한경비즈니스=최은석 기자] 3D 프린터는 의료 혁명을 현실화하고 있다. 3D 프린터로 제작한 보청기 등의 의료 기기는 이미 보편화돼 있다. 치아 보철물 등도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

최근에는 인공뼈 등의 보형물을 인체에 삽입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10여 년 후엔 심장 등 복잡한 인공장기를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인공 두개골에서 인공 턱까지

A 씨는 갑작스레 나타난 극심한 두통으로 지난해 9월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검사 결과 뇌출혈의 일종인 ‘뇌지주막하 출혈’로 진단됐다.

의료진은 A 씨의 출혈을 멈추기 위해 혈류를 차단하는 수술을 실시했다. 뇌부종으로 상승한 뇌압을 낮추기 위해 일부 두개골을 제거하기도 했다. 이후 A 씨의 뇌부종은 감소했지만 뇌가 두개골을 제거한 부위 아래로 함몰되고 말았다. 두개골 이식수술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의료진은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했다. 3D 프린터를 통해 제작한 두개골은 지난 4월 5일 A 씨에게 성공적으로 이식됐다. 두개골은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한국생산기술연구원 강원지역본부가 재현해 냈다. 권정택 중앙대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개인 특성에 맞게 제작한 타이타늄 소재 두개골을 통해 수술 후 합병증 등의 부작용을 최소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병원은 ‘3D 프린팅 인공 턱 재건술’에 성공하기도 했다. 카자흐스탄 여성 B 씨는 어릴 때 왼쪽 아래턱에 발생한 종양을 제거한 후 치과에서 사용하는 고정판을 이용해 턱관절 재건술을 받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피부 밖으로 고정판이 노출되는 부작용이 발생, 10년 넘게 한쪽 턱이 없이 살아왔다.

중앙대병원 구강악안면외과 이의룡·최영준 교수팀은 지난해 상반기 B 씨에게 타이타늄으로 된 인공 턱을 이식했다. 인공 턱은 중앙대병원과 ‘메디쎄이’가 공동 개발, 제작했다. 이의룡 교수는 “턱뼈를 잃은 환자에게 외형적 아름다움은 물론 씹는 기능까지 되살리는 맞춤형 인공뼈를 이식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3D 프린터로 제작된 맞춤형 보형물은 수술 후 회복 기간도 현저히 줄인다.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신경외과 신동아 교수팀은 지난해 상반기 3D 프린터로 제작한 골반을 이식하는 수술에 성공했다.

C(16) 양은 2014년 7월 체육 활동을 하다가 심한 허리 통증을 느꼈지만 진통제 등으로 버텼다. 4개월 후 극심한 통증으로 세브란스병원을 찾은 C 양은 왼쪽 골반에 악성종양인 골육종이 생겼다는 진단을 받았다.

의료진은 왼쪽 골반의 절반인 1, 2, 3번 신경을 자르기로 하고 3D 프린트 업체와 골반 제작에 들어갔다. 골반은 세 번에 걸친 재작업 끝에 제작된 후 지난해 3월 C 양에게 이식됐다.

수술 소요 시간은 6시간 정도로 8~9시간이 걸렸던 기존 골반 절제술보다 짧았다. 기존 수술법은 환자의 골반 대체물이 정확하게 맞지 않으면 수술 중 다시 재단해 맞춰야 하는 단점이 있었다. C 양은 특히 기존 수술법으로는 최소 한 달이 지나야 보행이 가능했던 것과 달리 1주일 만에 걷기 시작했다.

신동아 교수는 “환자의 척추 모양에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맞춤 정장 개념의 골반을 통해 척추가 가지고 있던 안정성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고부가가치 3D 의료 시장 잡아라
맞춤 인공뼈 ‘출력’ 피부조직 프린터도 개발 중
3D 프린터는 수술의 정확도 등을 높이는 데에도 활용된다. 서울아산병원 유방내분비외과 안세현·고범석 교수, 융합의학과 김남국 교수팀은 지난해 말 유방암 제거 수술 환자를 위한 ‘맞춤형 수술 가이드’를 3D 프린터로 제작하는 데 성공했다.

고범석 교수는 “‘3D 유방 가이드’를 환자의 유방에 씌운 뒤 수술하면 절제할 부분을 정확하게 확보할 수 있어 유방을 최대한 보존하고 암 재발률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의료 분야에 3D 프린터를 접목하는 사례가 확산하면서 인체 장기나 조직을 찍어내는 시대도 성큼 다가올 전망이다. 질병관리본부 장기이식관리센터에 따르면 지난 5월 12일 오전을 기준으로 2만6616명의 환자가 장기 기증을 기다리고 있다.

이정찬 서울대의대 의공학과 교수는 “인공장기보다 비교적 기능이 단순한 피부·혈관·심장판막 등은 수년 안에 상용화될 전망”이라며 “충분한 연구가 바탕이 된다면 신장이나 심장 등 개인 맞춤형 인공장기를 인체에 이식할 수 있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현 한국바이오협회 신사업발굴팀장은 “미국 ‘오가노보’는 수만 개의 세포로 구성된 ‘바이오 잉크’로 피부 조직 등을 프린팅할 수 있는 3D 바이오 프린터를 개발했고 현재 상용화를 준비 중”이라고 설명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 등에 따르면 의료 분야에서의 3D 프린팅 활용 점유율은 15.1%로 소비재·자동차에 이어 셋째로 높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3D 프린터 관련 업체는 100여 곳이다.

한성웅 포항공대 나노융합기술원 선임연구원은 “3D 프린터를 이용해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이상적인 분야 중 하나가 바이오·의료 부문”이라며 “국내 거의 모든 3D 프린터 관련 업체가 이 분야 진출을 최종 목표로 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경비즈니스=최은석 기자 choie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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