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편의점 천국

"유통 불황 뚫고 나홀로 질주"
대형마트 규제 틈타 5년 새 1만 개 늘어 '편의점 3만개 시대'
동네 슈퍼 이어 술집·음식점도 잠식

[커버스토리] CU·GS25·세븐일레븐…동네상권 잠식하는 주범 '편의점'
통계청의 ‘장래 가구 추계’에 따르면 1인 가구 비율은 2000년만 해도 전체 가구의 15.6%에 그쳤다.

1인 가구는 2010년 23.9%, 2015년 27.1%로 급증해 2021년에는 30%에 달할 전망이다. 세 집 중 한 집이 혼자 사는 시대가 다가오는 셈이다.

‘솔로족’의 증가로 편의점 산업은 꾸준한 성장세다. 반면 의무 휴업일 지정 등 영업시간 제한과 출점 규제로 대형마트의 성장률은 수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커버스토리] CU·GS25·세븐일레븐…동네상권 잠식하는 주범 '편의점'
국내에 프랜차이즈 형태의 편의점이 생긴 것은 1989년이다. 서울 송파구 방이동에 세븐일레븐 올림픽선수촌점이 오픈하면서부터다.

이듬해 훼미리마트(현 CU)와 LG유통(현 GS25), 미니스톱 등이 잇따라 문을 열며 본격적인 편의점 시대가 열렸다. 편의점은 24시간 문을 연다는 장점을 등에 업고 1993년 1000호점을 돌파했다.

◆지난해 편의점 매출 17조원 달해…상위 3사가 72% 차지

[커버스토리] CU·GS25·세븐일레븐…동네상권 잠식하는 주범 '편의점'
편의점 산업은 외환 위기 여파로 1998년 매출이 뒷걸음질한 것을 빼고는 매년 성장하며 2007년 1만 호점 시대를 열었다.

2011년 이후 편의점업계에서는 인수·합병(M&A)이 이뤄지면서 한때 10여 개에 달하던 편의점 브랜드는 CU·GS25·세븐일레븐 등 3대 체제로 재편됐다. 편의점 3사는 자체 상표(PB) 상품을 강화하고 1인 가구를 겨냥한 상품을 출시하기 시작했다.

솔로족을 겨냥한 편의점업계의 전략은 통했다. 집에서 혼자 밥 먹는 시간이 많을 수밖에 없는 솔로족들은 시간제한 없이 원하는 먹거리를 구할 수 있는 편의점을 더욱 선호하기 시작했다.

국내 편의점 점포 수는 올해 7월 말 기준 3만2946개다. 2만8994개이던 지난해 말보다 반년 새 3952개나 늘었다. 2013년부터 1년 사이 1161개 늘었던 것에 비하면 엄청난 증가세다. 2011년 2만 개를 돌파한 데 이어 5년 만에 1만 개가 늘어났다.

국내 편의점업계에서는 CU가 1만210개의 편의점을 보유하며 1위 자리를 지키고 있고 GS25가 1만126개를 운영 중이다. 세븐일레븐은 8295개로 뒤를 잇고 있다.

2010년 8조3981억원이던 편의점 매출은 2011년 10조1368억원으로 처음 10조원대를 넘어섰다. 이후 매년 약 1조원대 성장을 거듭하다가 지난해에는 17조원대 시장을 형성했다.

[커버스토리] CU·GS25·세븐일레븐…동네상권 잠식하는 주범 '편의점'
편의점 3사는 지난해 12조3001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지난해 이른바 ‘제약업계 1조 클럽’을 형성한 한미약품 등 제약 상위 3사 매출액의 약 4배를 거둬들인 셈이다.

편의점 3사는 올 상반기에만 6조742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CU가 2조3648억원, GS25 2조6042억원, 세븐일레븐은 1조773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늘어나는 편의점, 문 닫는 주점

몸집을 불린 편의점 산업은 동네 술집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세청의 사업자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편의점 사업자 수는 3만2096명으로, 1년 전보다 11.6% 늘었다. 반면 일반 주점 사업자 수는 5만8149명으로 5.1% 줄었다. 편의점 오픈이 늘면서 문 닫는 술집도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CU에 따르면 맥주·소주 등 주류는 밤 10시 이후 가장 잘 팔린다. 밤 10시부터 2시간 새 주류 매출 비율은 하루 전체 주류 매출의 30% 이상을 차지한다. 이 시간에는 술안주로 찾는 냉장·냉동식품 등 즉석식품 매출도 크게 올라간다.

편의점 도시락 시장도 급속도로 커지고 있다. CU에 따르면 편의점 도시락 시장 규모는 2014년 2000억원에서 올해 약 5000억원으로 2년 새 2배 이상 성장했다. 편의점이 동네 식당을 위협할 날도 머지않은 셈이다.

◆대형마트, 각종 규제로 발 묶여

[커버스토리] CU·GS25·세븐일레븐…동네상권 잠식하는 주범 '편의점'
승승장구하는 편의점과 달리 ‘전통 유통 강자’로 불리던 대형마트는 부진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대형마트 불황의 가장 큰 이유는 2010년 개정 시행된 ‘유통산업발전법’ 때문이다. 2010년 11월 이후 대형마트나 기업형 슈퍼마켓(SSM)은 전통시장 500m 이내에는 새로운 점포를 오픈할 수 없게 됐다.

이후 한 차례 개정을 거쳐 2011년 6월부터 출점 금지 범위가 전통시장 반경 1km 이내로 강화됐다. 같은 해 12월부터는 각 지방자치단체 조례에 따라 매일 밤 12시부터 오전 8시까지 영업을 할 수 없도록 했고 매달 이틀에 걸쳐 의무 휴업을 실시하도록 규제했다. 2013년 1월부터 영업 제한 시간을 밤 12시부터 오전 10시까지로 강화했다.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을 단속해 전통시장을 활성화한다는 게 법 개정의 이유다.

대형마트는 의무 휴업일 지정 등 영업시간 제한 이후 매출에 직격탄을 맞았다.

한국체인스토어협회에 따르면 대형마트의 매출액은 의무 휴업이 본격 시작된 2012년 38조7000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후 매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2014년 508개였던 3000㎡ 이상 대형마트는 지난해 507개로 줄었다.
[커버스토리] CU·GS25·세븐일레븐…동네상권 잠식하는 주범 '편의점'
영업시간 제한에다 신규 출점까지 막고 있는 대형마트와 달리 편의점에 대한 출점 규제는 사실상 없는 상황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012년 편의점 업종의 무분별한 신규 출점을 제한하기 위해 도보 거리 250m 이내에는 같은 브랜드의 편의점을 차릴 수 없도록 하는 ‘모범 거래 기준’을 제시했다. 이는 법적 효력이 없는 가이드라인이었다.

공정위는 2014년 이마저도 폐지했다. 가이드라인이 구체적 수치 기준 등을 포함하고 있어 기업 활동을 과도하게 제약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진입 장벽이 비교적 낮은 탓에 편의점 창업에 대한 예비 사장들의 관심은 뜨겁다. 편의점 3사의 가맹점 비율은 99%에 이른다. 직영점은 1% 미만이다.

과거 편의점 창업 지원자 대부분이 은퇴자였던 것과 달리 최근엔 20~30대 젊은층 희망자도 늘고 있다. CU 편의점의 신규 점주 중 20대 비율은 2014년 7%에서 지난해 9%로 높아졌다. 30대 비율은 24%에서 27%로 증가해 처음으로 50대 비율(23%)을 넘어섰다.

기성층은 물론 비교적 경험이 부족한 젊은 가맹점주가 늘면서 공급과잉에 따른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공정위는 모범 거래 기준을 폐지하는 대신 편의점 가맹점주와 본부 간 상생 협력 협약 체결을 유도하고 있다.

공정위의 압박에 편의점업계는 잇따라 관련 협약을 체결 중이다. 매출 하락으로 수익이 악화돼 폐점할 때 위약금을 감면하고 250m 영업 지역 보호를 자체적으로 준수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협약이다.

업계의 이러한 움직임에도 가맹점주들의 불만과 불안감은 여전하다.

한 편의점주는 “협약이 이뤄졌다고 하더라도 프랜차이즈 특성상 실제 분쟁이 발생하면 ‘을’인 점주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공정위가 본사를 상대로 협약 내용에 대한 이행을 강제할 수 없는 만큼 관련 법안을 마련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편의점주는 “편의점 간 출점 제한 거리를 늘리는 게 가장 시급하다”며 “특정 브랜드의 편의점이 있는 지역에 길 건너 혹은 한 건물 옆에 다른 브랜드의 편의점을 얼마든지 차릴 수 있는 구조는 분명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대형마트 규제 재검토” 주장도

박주영 숭실대 벤처중소기업학과 교수는 “신규 편의점 출점에 따른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비슷한 지역에 몰려 있는 같은 브랜드의 점주가 협동조합 형태로 편의점을 공동 운영하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공동 운영으로 부가 수익 등을 나누는 기업 형태의 영업을 통해 서로 윈-윈하는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조언이다.

출점 제한 등 유통업에 대한 전반적 족쇄보다는 자율 경쟁 체제로 시장을 이끌어 가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한종길 성결대 동아시아물류학부 교수는 “대형마트를 규제한다고 해서 소비자가 전통시장으로 몰리진 않는다”며 “대형마트 규제를 통한 골목상권 보호보다는 소비자의 권익과 기업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폭넓은 관점의 유통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대형마트와 편의점의 주 고객은 엄연히 다르다”며 “무조건적인 규제보다 영세 자영업자가 제대로 된 준비 없이 점포를 차려 피해를 보는 일이 없도록 사전 창업 교육 시행을 주도하는 등의 대안을 제시하는 게 정치권과 정부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체인스토어협회 관계자는 “영업 규제가 시행된 지 4년이 지났지만 소비자 불편 등의 부작용은 물론 소비 위축에 따른 경기 침체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며 “온라인·모바일 쇼핑, 편의점, 개인·중대형 슈퍼 등 다양한 쇼핑 채널이 공존하는 상황에서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에 한정한 영업 규제는 전통시장의 보호 수단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경비즈니스=최은석 기자 choies@hankyung.com
그래픽=윤석표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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