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2017 글로벌 기업 지배구조 : 커지는 변화 압력]
국민연금, 주요 상장사 1~2대 주주로…엘리엇 등도 한국 기업 눈독
연기금·행동주의 펀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한목소리
(사진) 기업 지배구조의 핵심 변수로 자리 잡은 국민연금의 기금운용 본부. /연합뉴스

[한경비즈니스 = 이홍표 기자] 지배 구조(Corporate Governanace)는 기업집단을 이해하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다. 그 이유는 지배구조가 곧 기업의 의사결정 구조이기 때문이다.

삼성·현대자동차 등 한국을 대표하는 주요 기업집단의 역사도 60년이 넘었다. 한 세대가 30년씩 경영한다고 하면 3대 경영으로 접어든다. 60년 전 자본이 없던 한국은 부채의 레버리지를 통해 기업을 성장시켰다. 쉽게 말해 기업인은 은행에서 돈을 빌려 기업을 세웠고 기업은 정부에서 돈을 빌려 기업을 키웠다.

하지만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기업이 가진 부채의 레버리지는 상당 수준 개선됐다. 하지만 대주주의 기업에 대한 레버리지는 순환 출자 등을 통해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그렇다고 이를 억지로 해소할 수는 없다. 자칫하면 한국 경제가 지금까지 이뤄 놓은 성장의 공든 탑이 모두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의사결정 구조인 지배구조가 흔들리면 기업의 미래 역시 위태로울 수 있다.

또 대주주 중심의 소유 경영과 전문 경영인 시스템 중 무엇이 더 낫다고 할 수 없다. 둘 다 분명한 장단점이 있다. 중요한 것은 소유 경영이든 전문 경영이든 기업의 장기적 발전을 위해서는 ‘견제와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대주주 중심 소유 경영의 단점은 일감 몰아 주기, 부당 계열사 지원, 낮은 배당 등이다. 한국의 대기업들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이런 단점은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자리 잡았다. 최근 들어 소유 경영의 단점을 ‘견제’하고 일반 투자자를 위해 ‘균형’을 잡아 줄 수 있는 ‘힘’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세력이 있다. 바로 연기금과 행동주의 펀드(activist fund)다.
연기금·행동주의 펀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한목소리
◆10년 새 3배 넘게 커진 국민연금

한국의 국민연금은 세계에서도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연기금 중 하다다. 국민연금의 기금 운용 규모는 2005년 164조원에서 2016년 4월 기준 527조원으로 3.2배 늘어났다. 2025년이 되면 1290조원으로 다시 2.5배 커질 전망이다.

2012년 이후만 해도 국내 주식 투자 규모는 55.1%, 대체 투자는 108.1% 늘어났다. 이제 주요 대기업은 국민연금과 몇 개 펀드가 지분을 합치면 지분율이 대주주와 맞먹거나 능가한다. 국민연금의 지분율은 시가총액 1위 삼성전자 8.87%, 4위 네이버 11.17%로 단일 주주로는 최대 규모이며 3위 현대차 7.74%, 6위 현대모비스 8.01%로 2대 주주다.

국민연금의 운용 규모가 커지면서 감시의 눈도 많아지고 있다. 연금 운용 수익률이 곧 국민들의 복지 수준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민연금과 외국인 투자자들은 주요 기업집단에 배당을 늘릴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연금의 운용 수익률을 높이기 위한 방법이다.

만약 지금처럼 ‘식물 대주주’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더 커지면 국민연금도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 아직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둘씩 그 사례가 생겨나고 있다.

일례로 2014년 12월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 무산 과정에서도 국민연금의 반대가 큰 역할을 했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서도 외국계 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가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합병이 가능했던 핵심은 국민연금의 찬성에 있었다.

강성부 LK투자파트너스 대표는 “기업에 친화적인 현 정부에서도 이런 일이 발생하는데 향후 보다 진보적 정권이 들어선다면 불투명한 지배구조, 대주주 중심의 이사회 구성, 불합리한 경영 의사결정 등에 대한 제제의 강도와 횟수는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대주주의 전횡이 심해지면 경영진 교체를 요구하는 수준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기금의 성장과 함께 행동주의 펀드도 주목해야 한다. 행동주의 펀드는 기업의 지분을 확보한 뒤 기업의 경영전략이나 지배구조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펀드다. 최근 세계적으로 행동주의 펀드의 성장세는 거세다. 10년 전만 해도 운용 자산이 120억 달러에 불과했지만 2015년 말을 기준으로 1400억 달러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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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제안’ 시작한 행동주의 펀드

성장의 이유는 단순하다. 수익률 때문이다. 박진혁 심슨 대처&바틀릿 파트너 변호사의 분석에 따르면 2013~2014년 사이 글로벌 행동주의 펀드의 수익률은 30~40%에 달한다. 돈이 몰리면서 투자 대상과 전략도 바뀌었다. 과거에는 실적이 좋지 않은 작은 회사에 투자해 단기 차익을 노렸다.

하지만 최근에는 애플·마이크로소프트·펩시·페덱스·모토로라 등 대기업이 중심이다. 또 지배구조가 불투명하거나 취약한 기업, 방만한 경영 등 개선이 가능한 이유로 실적이 악화되고 주가가 저평가된 기업, 낮은 배당 등 주주 이익에 소홀한 기업, 매각 가능한 자산이 많은 기업이 주된 타깃이다.

특히 행동주의 펀드는 최근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기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다.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아시아 기업 중에서 미국 및 유럽 기업에 비해 지배구조가 불투명하거나 주주 이익에 소홀한 기업이 많기 때문이다.

행동주의 펀드에 대한 평가는 긍정론과 부정론이 팽팽히 맞선다. 부정론은 과도한 인력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없애고 장기 성과를 위한 투자보다 단기 성과를 노린 구조조정에만 힘쓸 수도 있다는 시각이다. 또 공시제도의 허점을 노려 단기 시세 차익을 노리는 경우도 아직 많다.

하지만 행동주의 펀드의 규모가 커지고 기업과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더 늘어나면서 행동주의 펀드의 ‘질’도 향상되는 추세다. 대주주의 독단적이고 방만한 경영과 전문 경영인의 보신주의 경영을 견제하고 잘못된 판단을 바로잡으며 구조조정과 주주 이익 환원 정책을 통해 주가를 올릴 수도 있다.

특히 최근의 행동주의 펀드들은 철저한 기업 조사를 통해 합리적인 제안을 함으로써 주주들의 지지를 얻는 추세다. 일례로 과거엔 경영 참여 시 펀드 인사를 이사로 추천하는 게 주류였지만 최근에는 헤드헌터에게 의뢰해 산업 전문가를 영입, 이사진에 넣는 등 경영의 질적 상승을 돕는다.

강 대표는 “글로벌 경제가 성장에서 침체에 빠져들고 있고 다양한 구경제 산업에서 초과 설비로 시름하고 있는 지금과 같은 시기에는 행동주의 펀드의 긍정적 효과가 더 많이 부각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행동주의 펀드의 아시아 진출과 연기금의 성장은 대주주 중심의 독단적 경영의 폐해를 견제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며 “이들의 성장은 한국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awll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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