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증권업계 신성장전략 : ‘새 시대’ 맞은 증권업]
미래에셋대우 자기자본 8조로 ‘선두’…KB증권·한국투자증권 등 맹추격
새판 짜인 증권업계, ‘新 5강 체제’ 확립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국내 최대 증권사로 거듭난 미래에셋대우의 박현주 회장은 지난 1월 2일 신년사를 통해 “2017년 가슴이 뛰는 ‘주식의 시대’가 오고 있다”고 공언했다.

안전 자산인 채권의 전성시대가 저물면서 투자 야성(수익률)이 본격적으로 살아나는 ‘그레이트 로테이션(대전환)’이 올 것이라는 논리가 그 핵심이다.

미래에셋뿐만이 아니다. 지난해까지 국내 증권업계는 그야말로 대변혁기를 거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형 증권사들의 합병으로 규모는 전에 없이 커졌다. 이제 막 외형적인 구조를 재편하고 새로운 출발선에 선 이들은 긍정적인 투지가 넘친다.

국내 빅5 증권사들 모두 신년사를 통해 ‘1등 증권사’가 되겠다는 출사표를 던졌다. 이들이 바라보는 곳은 모두 한 방향이다. ‘글로벌 투자은행(IB) 도약’을 위한 진검 승부가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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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B가 먹여 살린다”

증권사들의 ‘몸집 불리기’는 최근 깊어지고 있는 위기의식과도 맞물려 있다.

2016년 2월 자본시장연구원에서 발표한 ‘국내 증권업 경쟁도와 구조 변화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국내 증권업의 규모를 나타내는 증권사 자기자본 총계는 2002 회계연도 기준 11조2000억원에서 2015년 6월 43조1000억원 규모로 거의 4배 정도 증가했다.

하지만 이에 비해 순영업수익은 2002년 5조원에서 2014 회계연도 기준 9조8000억원으로 그 성장세가 매우 더디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당기순이익 총계를 자기자본 총계로 나눈 자기자본이익률(ROE)이다. ROE는 통상 기업이 가진 돈으로 1년간 얼마를 벌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에 ‘수익성’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로 활용된다.

국내 증권사들의 ROE는 2013년 이후 하락세가 두드러진다. 금융감독원 공시 정보에 따르면 미래에셋대우와 NH투자증권 등 상위 5개사들의 ROE는 현재 5~7%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2000년대 초반 높은 성장을 구가했던 국내 증권사들의 ROE가 20% 안팎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진 셈이다. 글로벌 투자은행들의 평균 ROE는 대략 10% 수준이다.

이와 같은 증권사들의 위기는 천수답 수익 구조, 즉 수익의 대부분을 브로커리지(위탁매매 수수료)에 의존했던 것에서 비롯됐다. 최근 증권사의 브로커리지 수익은 나날이 줄어들고 있다.

이는 최근 몇 년간 국내 주식시장이 박스피(박스+코스피 : 일정한 폭 안에서만 지속적으로 주가가 오르내리는 코스피)를 벗어나지 못하며 주식 투자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온라인이나 모바일 주식 매매 거래가 강화되면서 위탁매매 수수료가 점점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2002년 국내 증권사의 순영업이익에서 브로커리지 수익은 72%를 차지했지만 2015년에는 39%까지 줄어들었다. 브로커리지 수익의 감소가 ‘시대의 변화’에 따른 현상인 만큼 증권사들의 새로운 먹거리 찾기가 절실해지는 것이다.

증권사들이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IB 강화’에 유독 방점을 찍는 데는 이유가 있다. 한마디로 ‘돈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 증권사들의 수익을 살펴보면 가장 빠른 증가세를 보이는 분야는 다름 아닌 IB 사업이다.

IB는 기업공개(IPO), 증자, 회사채 발행, 구조화금융(Structured Finance), 인수·합병(M&A) 등을 주관하고 자문하는 업무를 말한다.

IBK투자증권이 2001년부터 2016년 3분기까지 국내 증권사들의 수수료 수익 비율을 살펴본 결과 IB 부문의 수수료 수익은 2001년 증권사가 벌어들이는 전체 수수료의 10% 미만에서 2016년 40% 가까이까지 대폭 증가했다.

실제로 국내 한 대형 증권사의 관계자는 “IB 부문 수익이 증권사 전체 매출의 절반을 차지했다”며 “200여 명의 IB 인력이 2000~3000명의 전체 직원을 먹여 살리는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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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치 싸움, 미래에셋대우 단숨에 1위

국내 증권사들의 ‘초대형 IB 경쟁’에 불씨를 댕긴 것은 지난해 8월 금융위원회에서 발표한 ‘초대형 IB 육성 방안’이다. 본격적인 수익 창출에 앞서 ‘몸집 불리기’로 1차전을 치른 셈이다.

초대형 IB 육성 방안은 자기자본 규모가 4조원, 8조원을 충족시키는 증권사에 신규 업무를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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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자기자본 규모 4조원대 허들 넘기’라는 첫째 미션을 충족시킨 증권사는 5곳이다. 미래에셋증권과 대우증권의 통합 증권사인 미래에셋대우는 지난해 12월 30일 합병 등기를 마치고 올해 초 공식 출범했다.

자기자본 규모 6조7000억원으로 국내에서는 유례없던 ‘공룡 증권사’의 탄생이다. 미래에셋대우가 단숨에 1위로 뛰어오르며 NH투자증권은 자기자본 규모 4조6000억원대로 2위가 됐다.

KB투자증권은 지난 1월 2일 현대증권과 합병을 완료하며 KB증권으로 재탄생했다. 이 과정에서 현대증권의 1800억원 유상증자를 단행하며 통합 KB증권은 자기자본 규모 4조원대를 맞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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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투자증권은 지난해 11월 1조7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삼성증권은 지난해 12월 3544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통해 자기자본 4조원대에 진입했다. 이에 따라 ‘1강(强) 4중(中) 체제’가 확립됐다. 그렇다고 ‘대형화 추세’가 빅5에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다.

신한금융투자는 지난해 9월 5000억원의 유상증자를 통해 자기자본을 3조410억원 규모로 늘렸고 메리츠종금증권은 지난해 11월 메리츠캐피탈을 완전 자회사로 편입해 자기자본 규모를 2조2000억원대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발표했다.

자기자본 3조원대를 넘겨 ‘종합 금융 증권사’의 자격을 얻기 위한 포석이다. 뒤를 이어 하나금융투자가 자기자본 1조9000억원대로 규모로 따지면 여덟째다. 금융 당국은 자기자본 규모 10조원대 초대형 IB 육성을 목표로 지속적인 증권사 대형화를 유도할 방침이다.

원재웅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올해 4월부터 금융 당국의 초대형 IB 육성 방안이 도입되면 새롭게 재편된 ‘신(新) 5강 체제’가 더욱 확고해질 것”고 전망했다.

◆ IB ‘4조원·8조원’에 목매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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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최현만 미래에셋대우 수석부회장(왼쪽)과 유상호 한국투자증권 사장. /한국경제신문


빅5 증권사들이 4조원대 진입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는 이유는 ‘신규 업무 허용’ 때문이다. 증권사들로서는 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진 만큼 수익을 다변화하는 데 유리한 자리를 점할 수 있다.

초대형 IB 육성 방안에 따르면 자기자본 규모가 4조원이 넘어서는 증권사는 발행어음(레버리지 배제, 기업금융 50% 이상, 자본 200% 한도), 비상장 주식 중개, 일반 외국환 업무를 할 수 있다. 자기자본 규모 8조원이 넘어서는 증권사는 종합금융투자계좌(IMA : 레버리지 배제, 기업금융 70% 이상)와 부동산 담보 신탁 업무를 할 수 있다.

발행어음은 영업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증권사가 자체 신용으로 융통어음을 발행하는 것을 말한다. 쉽게 말해 증권사들이 만기 1년 이하 어음을 자기자본의 최대 2배까지 발행해 영업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얻게 되는 효과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이자 수익 창출이다. 4조원 증권사가 최대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규모는 8조다.

증권업계에서는 이를 통해 증권사들이 얻을 수 있는 이자 수익이 최대 16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자기자본 6조7000억원의 미래에셋대우는 최대 2680억원의 이자 수익을 확보할 수 있다.

IB 업무를 진행하는 데에도 장점이 많다. 예를 들어 어느 증권사가 벤처회사의 기업공개(IPO)를 추진할 때 자금이 부족하다고 하자. 기존에는 증권사들이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벤처회사에 은행 대출을 연계해 줬다.

이에 따라 실제로도 은행 계열의 증권사들이 유리한 측면이 많았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증권사가 직접 어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김지영 애널리스트는 “향후 1~2년을 내다봤을 때 충분히 성장성이 높은 벤처기업에 어음을 발행하고 자연스럽게 IPO로 연계할 수 있다”며 “증권사로서는 일석이조의 수혜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8조원대 자산 규모에 허용되는 IMA도 마찬가지다. IMA는 고객으로부터 예탁 받은 자금을 통합해 운용하고 그 수익을 지급하는 상품이다.

더욱이 여기에 부동산신탁업까지 새롭게 허용된다면 국내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와 맞물려 새로운 수익 창출에 상당히 기여할 것으로 판단된다. 현재로선 ‘8조원대 문턱’을 넘어서기에는 자산 규모 7조원대의 미래에셋대우가 가장 앞서고 있다.

외형적 몸집 불리기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시점에서 앞으로는 증권사들의 ‘내실 경쟁’이 보다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를 좌우할 핵심이 다름 아닌 ‘전문성 강화’다. 특히 IB와 자산 관리(WM) 부문에서의 전문성 경쟁이 치열해지는 분위기다. IB 부문에서 쌓은 투자 노하우를 기관뿐만 아니라 개인 투자자들의 WM까지 연계해 ‘시장의 파이’를 키우겠다는 복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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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금리·저성장·고령화가 ‘기회다’

이를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증권업계 전체의 인력 구조 변화다. 리테일과 법인영업 같은 위탁판매 중심에서 IB와 WM 같은 전문 인력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는 중이다.

금융투자협회가 1월 9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들의 임직원은 작년 9월 말 기준 3만5920명이었다. 3년 전인 2013년 9월의 4만1222명보다 13%, 5302명이나 줄어든 규모다.

증권사 홍보팀장 출신의 한 업계 관계자는 “리테일 등 지점 영업 직원들의 불안감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며 “리테일과 IB는 업무 영역이 상당히 달라 직종을 전환하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증권업계 전반적으로 인력 축소가 심화되는 분위기 속에서도 유독 인력이 증가한 분야는 바로 IB와 WM 사업 부문이다. 그중 IB 부문은 3년 전에 비해 인력 규모가 어림잡아 2배 정도 증가했다는 것이 증권업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전문 인력’의 수요가 증가할수록 스카우트 전쟁이 치열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최근에는 이와 같은 IB 인력의 유출을 막기 위해 최근 증권사들도 나름의 대책을 마련하는 분위기다.

IB 인력은 보수의 상당 부분이 개인의 업무 성과에 대한 ‘성과 보수’인데, 이를 한 번에 다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2~3년에 걸쳐 지급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증권사는 스카우트 조건으로 ‘전 회사의 인센티브까지 일부 보장해 주겠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 정도다. 증권업계의 ‘전문 인력 확보 경쟁’이 얼마나 뜨거운지를 보여준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IB 인력은 계약직이 많아 인력 운용이 상대적으로 유연한 대신 업무 성과에 대해 ‘확실한 보수’를 지급하는 체계가 일반적”이라며 “아무리 성과 보수가 높다고 하더라도 경영진으로서는 ‘인건비 대비 매출 효과’를 따져봤을 때 훨씬 효율적이라는 판단이 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증권사들로서는 새로운 투자 수요 창출에 대한 자신감이 뒷받침돼 있기 때문에 이토록 과감한 투자가 가능한 것이다. 흔히 ‘3중고’라고 일컫는 저금리·저성장·고령화가 바로 이 시장의 새로운 투자 수요를 창출할 가장 큰 동력으로 꼽힌다.

가까운 일본만 봐도 단카이 세대(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가 본격화되는 시점과 맞물려 자산 관리에 대한 필요성이 급증하며 자본시장의 성장을 이끌었다.

당시 일본의 금리가 4~5%였는데 우리는 현재 1%대로 더 낮은 수준이다. 그만큼 ‘돈 둘 곳 없는’ 투자자들로서는 새로운 투자처에 대한 욕구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도 최근 금융시장의 흐름을 보면 국내 주식과 부동산 등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투자자들이 사모투자(PE)와 벤처투자(VC) 등 대체 투자 영역까지 눈을 돌리고 있는 분위기가 확연하다.

연기금 등 주요 기관투자가들이 눈에 띄게 대체 투자 비율을 높이고 있고 최근에는 개인 투자자들의 참여가 높아지는 추세다. 특히 지난해에는 한국투자증권에서 판매해 ‘1시간 만에 완판’을 기록한 ‘명동 티마크 그랜드호텔’ 부동산 펀드를 비롯해 다양한 대체 투자 상품이 쏟아져 나오며 대박 가능성을 입증하기도 했다.

김지영 IBK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이미 국내 증권사들도 경험을 통해 IB 사업에 대한 노하우가 쌓여 있는 만큼 빠르게 ‘글로벌 IB’의 경쟁력을 갖춰 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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