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신탁시장 700조 전쟁 : 허물어진 '진입 장벽']
로펌·의료법인 등도 신탁업 가능해져…소규모 전문회사 등 다양화 유도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다양한 맞춤형 서비스를 위해 신탁시장에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필요하다.”

금융위원회가 ‘신탁업 활성화’를 추진하며 특히 강조하는 부분 중 하나다. 현재 자본시장법에 의해 규율되는 신탁업은 은행·보험·증권 등 금융사에만 겸영 형태로 인가를 내줄 수 있다.

부동산 자산을 전문으로 관리·운용하는 부동산 신탁회사만 1991년부터 예외적으로 신탁업 진출이 허용돼 있는 상태다. 그런데 오는 10월 신탁업법 개정이 추진된다면 이와 같은 신탁업 시장의 ‘진입 장벽’이 허물어지게 되는 것이다.

◆TF팀 가동해 사업성 적극 검토

로펌에서 설립한 ‘유언신탁 전문 회사’ 혹은 치매요양병원에서 설립한 ‘치매요양 전문 신탁회사’. 국내 신탁업 시장에 새롭게 등장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대표적인 ‘뉴 플레이어’들이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자산유동화 신탁을 전문으로 하는 유동화 전문 법인, 저작권 관리를 전문으로 하는 저작권신탁 법인, 부실채권 관리 신탁을 전문으로 하는 법인 등이다.

이 밖에 국내 대기업들도 신탁 상품을 취급하거나 전문 신탁업자를 계열사로 설립할 수 있다. 해외의 ‘패밀리오피스(가족운용사)’들처럼 보유 기업의 경영권과 사업권, 기업 부채 등 모든 재산을 신탁과 펀드로 분산해 운용하는 식이다. 신탁을 통해 경영권 등을 자산유동화하고 이를 자금 조달이나 투자에 사용할 수 있다.

일단 시장에서는 이와 같은 변화를 반기는 분위기다. 로펌과 의료법인 등에서도 신탁시장 진출에 관심이 크다.

법무법인 광장의 도산신탁팀 팀장을 맡고 있는 이은재 변호사는 “법제 개편 과정을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우리와 같은 법무법인은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법률 전문가들이 모인 로펌에서 유언 전문 신탁회사를 설립한다면 시장에서의 경쟁력 또한 충분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복잡한 법률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문이 가능한데다 최근 빠르게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상속·증여세와 같은 조세 분야에서 특히 강점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광장에서 신탁과 관련한 실무를 맡고 있는 김지훈 변호사는 “일찌감치 신탁팀을 전문팀으로 조직하고 유언·상속과 관련해 다양한 법률문제를 연구하고 자문해 왔다”며 “특히 이번 법제 개편을 통해 법무법인에서 신탁업을 영위할 수 있도록 태스크포스(TF)팀을 조직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존 신탁업법 하에서는 '금융업'의 카테고리에 묶여 있는 신탁회사가 고객에게 제대로 자문하고 신탁을 설정하는데에 한계가 있었다. 이와 같은 사각지대를 보완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기존 신탁회사와 새롭게 시장에 진입하는 로펌 등이 모두 '윈-윈(win-win)'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다.

하지만 이들이 당장 신탁시장에 변화를 가져오기에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의견도 제기된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다양한 특화 분야를 공략한 뉴 플레이어들의 등장으로 신탁시장에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하지만 이들이 신탁업 시장에서 자리를 잡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의견을 말했다.

신탁업의 특성상 네트워크나 노하우가 탄탄하게 뒷받침될 필요가 있다. 이제 막 신탁업 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는 신규 사업자들은 아직 이와 같은 기반이 약하다고 지적했다.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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