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베트남 라이징 : ‘노란별’ 베트남 경제의 매력]
20년 만에 10조 적자국에서 3조 흑자국으로…‘세계 공장’으로 재탄생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경제 엔진이 멈추지 않는 나라 ‘베트남’. 세계 최대 경제 블록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불발도 이들의 엔진을 멈추지 못했다.

세계를 장기 불황으로 몰아넣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돌파한 것처럼 낮은 인건비와 정부의 강력한 투자 유치 정책을 앞세워 돌파하고 있다.

오히려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던 중국의 투자 환경 변화의 반사이익과 여타 다른 동남아시아들의 부진을 발판 삼아 무섭게 질주 중이다. 그 위세가 얼마나 대단한지 “자고 나면 길이 뚫려 있고 새로운 공장이 들어서 있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들려온다.
‘무서운 잠재력’…베트남 성장률 6%는 기본
◆ 경제지표 탄탄…TPP 폐기에도 타격 적어

하지만 괜한 농만은 아니다. 베트남의 성장세는 놀랍다. 이는 각종 거시경제 지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베트남의 최근 10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6~7%에 이른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에도 연간 경제성장률은 6.2%였다. 이후 2011년부터 2013년까지 5%대의 경제성장률을 보였지만 2015년부터는 다시 6%대 성장률을 기록했다.

지난해 전년에 비해 다소 떨어지긴 했지만 베트남 중남부 지역의 극심한 가뭄, 국제 유가 약세에 따른 석유 수출 부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TPP 탈퇴 공약 등이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점을 고려하면 놀라운 경제성장률을 보인 셈이다.

사실 베트남은 1990년대만 하더라도 연 10조원 정도의 적자를 기록하는 만성 무역 적자국이었다. 하지만 베트남은 해외 각국으로부터 투자 유치된 기업들의 수출 공헌에 힘입어 지난해 연 3조원 정도의 무역수지 흑자국으로 전환했다.

베트남 경제를 이끄는 대표 기업들의 실적 개선 흐름 역시 대단하다. 베트남 최대 철강회사인 호아팟철강은 지난해 순이익이 전년 대비 89% 상승했고 1등 건설사 코텍건설은 같은 기간 순이익이 113% 늘어났다.

더욱이 최근 몇 년 사이 베트남은 국내총생산(GDP)의 25% 정도를 차지하는 농업과 광업의 사업 구조에서 외국인 투자를 기반으로 한 건설업·제조업·서비스업 등으로 변화하고 있어 당분간 성장세는 계속될 전망이다.

물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TPP가 폐기된 것에 대해 우려하는 시각이 많지만 증시는 트럼프 당선 이후 오히려 상승 기조에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TPP 폐기 자체는 악재인 것은 분명하지만 TPP 효과에 대한 시장의 기대도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투자신탁운용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에는 베트남으로 유입되는 외국인 직접투자(FDI)가 줄어들면서 TPP 폐기 이후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지만 올 들어 지난 1월 FDI 등록액이 전년 대비 6.6% 늘어나면서 이전의 견조한 흐름으로 복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여기에 베트남의 적극적인 경제 개방정책은 성장 기대치를 더욱 높이고 있다.

현재 베트남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동남아국가연합(ASEAN)·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등 3대 자유무역협정(FTA)에 모두 가입한 상태이며 2015년에는 유럽연합(EU) 및 한국과 FTA를 체결했다.

이를 발판으로 베트남의 FDI 유치액은 지난해 205억 달러(승인액 기준)를 기록해 4년 연속 200억 달러를 넘기는 기염을 토했다.

실제로 개방경제를 내세운 베트남은 국제 교역을 통해 성장하고 있다. 2016년 기준 베트남의 국제 통상 규모는 GDP의 150%를 차지하는데, 비슷한 소득수준 국가에 비해 훨씬 높다. 외국 기업의 설비투자 규모는 베트남 연간 설비투자의 4분의 1을 차지한다.

외국 기업이 총수출의 3분의 2를 담당하고 있다. 베트남 정부는 1990년대부터 국제 통상 관련 법규를 쉽고 간단하게 만들고 외국과의 교역을 장려했다.

인도네시아는 자국에서 생산되는 제품의 재료나 노동력을 자국에서 공급해야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는 반면 베트남은 이러한 규제를 철폐했다.

또한 베트남은 1986년 ‘도이모이 정책’을 채택해 적극적으로 대외 개방을 추진, 외투 기업 주도의 투자 환경을 만들었다.

사회주의국가인 베트남은 중국처럼 모든 토지가 국가 소유라는 점은 비슷하지만 현지 기업과 50 대 50 합작이 아닌 100% 투자하는 단독 법인을 설립할 수 있도록 했다. 방송 서비스 같은 분야를 제외하면 제조업은 물론이고 금융업도 단독 법인을 설립할 수 있다.

베트남 정부는 또한 자국 내 63개 주가 외국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경쟁하도록 장려했다. 호찌민시는 제조업을 위한 산업단지를 구축했고 다낭은 첨단 기술 산업을 중심으로, 중국과 가까운 북부는 제조업에 기반을 두고 투자 유치에 나섰다.

이는 각각의 지역이 다른 산업에 집중해 산업의 다양화를 구축하게 되는 결과를 낳기도 했다. 또한 베트남 정부는 장기적인 경제 5개년 개발 계획을 수립해 안정성을 선호하는 투자자들을 유혹했다.
‘무서운 잠재력’…베트남 성장률 6%는 기본
◆ 노동·지리 등 우수한 투자 환경

이를 바탕으로 베트남은 10여 년 전 중국이 그랬던 것처럼 무서운 속도로 유수의 글로벌 기업들을 빨아들이고 있다. 이제는 중국을 대신해 제조업 생산 기지로 자리를 굳히는 분위기다.

이렇게 되기까지 베트남의 적극적인 경제 개방정책이 바탕이 됐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중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의 투자 환경을 뛰어넘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첫손에 꼽는 것은 우수한 노동력이다. 베트남 인구는 9300만여 명으로 세계 14위다. 아세안 지역에서 인도네시아·필리핀 다음으로 인구가 많고 게다가 젊은 층의 비율이 높다. 2014년 기준 10~24세 인구가 40%에 달한다. 당시 집계한 평균연령이 28세 정도니 정말 젊다.

여기에 임금까지 싸다. 베트남 시장의 최대 장점이다. 섬유 등 제조업체 노동자의 한 달 평균임금은 우리 돈으로 15만~30만원이다. 중국 노동자 평균임금(69만~90만원)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또한 베트남 인구 10명중 7명이 지방에 거주하고 있다. 지방 노동인구는 임금에 대한 압력이 높지 않아 노동집약적 산업을 육성하기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베트남의 값싸고 젊은 노동력은 특히 숙련된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기업들의 선호를 받고 있다. 베트남의 인력은 태국·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보다 수준 높다고 평가받는다.

이는 베트남의 교육정책이 뒷받침한 결과다. 인적자원 육성에 힘을 쏟는 베트남의 공교육은 GDP의 6.3% 규모에 달한다. 다른 중간소득 국가의 평균 교육비보다 2%나 높은 수준이다.

15세 학생의 지적 능력을 평가하는 세계 순위에서도 베트남 학생의 수학과 과학 실력은 미국과 영국 학생보다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트남 정부의 이러한 노력은 양질의 인력을 원하는 외국 기업과의 교역을 증진시켰다. 기술혁신으로 공장이 자동화되더라도 기계를 조작하는 직원은 언제나 필요하다. 직원이 갖춰야 할 능력은 단순한 노동력보다 언어적·수학적으로 복잡한 기계 조작과 지시 사항을 따를 수 있는 능력으로 바뀌고 있다.

예를 들어 서방국가에서 인기 많은 구제 청바지를 생산, 수출하는 사이텍스에서는 직원들이 레이저나 나노버블 워셔 등과 같은 복잡한 기계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사이공·하노이·다낭하이테크파크)·LG전자(하이퐁) 등이 이곳으로 생산 거점을 옮기고 있다. 국내 중소 협력 업체의 수출이 늘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무서운 잠재력’…베트남 성장률 6%는 기본
(사진) /한국경제신문

◆ ‘국제 분업’의 한 축 될 것

지리적인 여건도 베트남의 장점이다. 베트남 면적은 한반도의 약 1.5배인데, 영토가 남북으로 가늘고 길다. 어디서든 동쪽으로 두어 시간만 달리면 바다가 나온다. 또한 도로·항만·공항 등 기반 시설이 다른 동남아 국가들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잘 갖춰져 있다.

이 때문에 많은 기업들이 베트남으로 생산 기지를 이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KOTRA가 지난해 발간한 ‘국제 통상 환경 변화와 글로벌 생산 기지 변화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도요타 등 주요 기업의 글로벌 생산 기지 이전 추진 사례를 분석한 결과 15개 기업이 베트남으로의 진출을 희망한 것으로 조사됐다. 베트남에서 다른 지역으로 빠져나가려는 기업은 1개에 불과했다.

cw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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