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 = 스마트 워크 : ‘유연근무제’ 현장은 멀었다]
‘사무직 vs 생산직’ 박탈감…'잔업·특근 수당' 기댄 장시간 노동체제, 현행법부터 지켜야
“금요일 4시 퇴근이요? ‘빨간 날’도 못 쉽니다”
(사진) 공휴일인 지난 3월 1일, 경기도 시흥시에 자리한 시화국가산업단지 내 한 공장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한경비즈니스=정채희 기자] “오늘도 일하죠. 전원 출근이에요.”

지난 3월 1일, 어둠이 낮게 깔린 새벽 6시 20분. 서울지하철 4호선(하행)의 종착역인 오이도역에서 만난 고 모(57·여) 씨는 공휴일에도 회사 출근이 당연하다는 듯 이같이 말했다.

경기도 시흥시에 자리한 시화국가산업단지(시화공단) 섬유 염색 가공 업체에서 근무하는 고 씨는 “여기는 일이 있는 한 365일, 24시간 공장이 돌고 있다”며 “평소에도 주중 야근에 주말·공휴일 특근은 기본”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정부 주도의 스마트 워크 바람은 공무원과 일부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화이트칼라(사무직)에 기반을 두고 있다. 업무 특성상 ‘365일 24시간’ 공장을 가동해야 하는 생산직에선 노동시간을 줄이는 이러한 경영 혁신 바람이 사치처럼 여겨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잔업·특근수당 없이 기본급만으론 안돼”

시화공단도 그중 하나다. 고 씨는 “사무직·생산직 할 것 없이 100% 전원 출근했다”며 “이 근방 회사 모두 비슷한 처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을 입증하듯이 오전 7시가 되자 대형 출근 버스가 하나둘 모습을 보였다. 한 제약회사 앞엔 3대의 출근 버스에서 내린 수십여 명의 직원들이 출퇴근 카드를 찍고 서둘러 회사 안으로 자취를 감췄다.

최근 정부가 매달 마지막주 금요일에 조기 퇴근(오후 4시)하고, 이를 월~목 주중에 30분씩 연장근무하는 안인 이른바 '한국판 프리미엄 프라이데이'를 발표했을 때도 이곳의 반응은 냉담했다.

섬유제품 제조업체에 근무하는 이 모(49·남) 씨는 “여기완 다른 세계 얘기라고 생각한다”며 “(정부 정책에)박탈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 씨는 "이미 주중에도 30분 이상의 잔업을 하고 있고, 심지어 주말에도 근무를 하고 있다"며 "오후 4시 조기 퇴근은 허울에 그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 씨는 “막상 이곳(생산직)까지 노동시간을 줄인다고 하면 불만을 토로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라며 “한 푼이 아쉬운 사람들이 많은데 노동시간을 줄이고 거기에 잔업·특근까지 빠지면 기본급만으론 생활이 빠듯해진다”고 덧붙였다.

그는 “노동시간을 줄여 여가 시간을 갖고 자기 노동시간을 나눠 고용을 늘리는 일은 기본급이 적은 곳에선 유토피아 같은 환상일 뿐”이라고 힘줘 말했다.

반면 단축 근무제를 환영하는 이들도 일부 있었다. 30대 중반의 한 남성은 “하루 12시간씩 2교대로 일하면서 회사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됐다”며 “야근과 특근을 사실상 강요하는 회사 분위기가 먼저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행법대로 주5일(40시간) 근무 분위기가 자리 잡히면 그 후 단축 근무제를 강제해 사업장을 단속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재욱 경남노동연구소 소장(공인노무사)은 “현재의 장시간 노동이 축소되면 노동자의 임금수준이 줄어들고 사용자의 생산 활동도 위축될 가능성이 높은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소장은 “법 집행 당국이 법정 한도(법정노동시간 40시간에 연장 근로 12시간을 더한 52시간)를 초과하는 시간외근로를 용인하거나 방치하지 않는 강경 대처가 선행돼야 단축 근무를 통한 노동생산성 향상 등을 얘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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