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 = 경제 살리기로 국민 대통합을 : 다시 불붙은 혁신]
경계 허물어진 4차 산업혁명 돌입…‘새롭게’, ‘진화하고’, ‘합치자’
혁신 나선 재계…점점 뜨거워지는 ‘열기’
(사진)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오른쪽 둘째) 한화큐셀 전무가 지난 1월 열린 다보스 포럼에 참석해 미국 방위산업 기업인 하니웰의 데이브 코티(왼쪽) 회장과 만나 인수·합병(M&A) 전략과 항공 분야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한화그룹 제공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요즘 한국의 주요 대기업 총수를 비롯한 경영진이 입에 달고 다니는 단어가 있다. ‘변화와 혁신’이다. 이들은 비장한 용어까지 구사하며 연일 강도 높은 변화와 혁신을 주문한다.

단연 돋보이는 총수는 최태원 SK 회장이다. 그는 “지금이 전쟁 상태라면 용납이 안 되는 상황이다. 변하지 않으면 서든 데스(sudden death : 돌연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혁신의 통절함이 배어 있다. 그는 “조직의 노화를 부추기는 관료주의·적당주의·무사안일주의를 배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 왜 경영진은 변화와 혁신을 계속 강조하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순식간에 몰락하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전 세계에서 스마트폰을 포함한 휴대전화 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했던 노키아가 스마트폰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서 몰락하는 모습을 봤고 130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코닥이 디지털화에 집중한 캐논·소니·니콘에 밀리며 역사 속으로 사라진 사실도 알고 있다.

최근에는 1939년 설립된 일본 산업의 역사인 도시바까지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와 잘못된 판단에 따른 기업의 몰락을 지켜보기까지 했다. 이쯤 되니 경영진으로서는 당연히 긴장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대기업 총수를 비롯한 경영진은 하나같이 변화와 혁신을 외치고 있다.

◆ 산업 경계 허물고 ‘융·복합 혁명’ 시작

한국 기업들이 추진하고 있는 변화와 혁신의 핵심은 과감한 연구·개발(R&D)과 신시장 개척으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것이다.

특히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기업들은 제조업과 정보통신기술(ICT)을 융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보기술(IT)·전자 주력 그룹뿐만 아니라 화학·유통 등 전 업종을 망라한다.

실제로 ICT 업종을 주력으로 삼지 않는 그룹도 4차 산업혁명에 관심을 쏟고 있다. 한화그룹이 대표적이다. 한화그룹은 에너지·화학 분야와 4차산업을 융합해 나갈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한화가 3세를 비롯한 한화 사장단이 스위스에서 열리는 다보스 포럼에 참석해 4차 산업혁명과 신성장 사업에 대해 학습하기도 했다.

김승연 회장은 “전 세계에 불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도래는 큰 위기이자 기회”라며 “산업 간의 경계를 허무는 초융합·초연결·초지능의 기술혁명은 이미 우리를 새로운 미래로 이끌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화는 브랜드 마케팅과 경영전략을 바탕으로 향후 4차 산업혁명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유통업계 대표 그룹인 롯데도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고 있다. 롯데는 이미 유통·화학·식품·호텔·서비스 등 그룹 산업군별로 4차 산업혁명 준비를 전담할 혁신 조직을 신설 중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인공지능(AI)·가상현실(VR) 등 ICT에 기반 한 4차 산업혁명 등 새로운 영역 개척을 통한 미래 성장을 준비해야 한다”며 “3년 동안 4차 산업혁명과 소비 계층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는지 여부가 그룹의 30년을 좌우하게 될 것”이라고 지목했다.

롯데는 4차 산업혁명에 발 빠르게 대비하고 있다. 최근 한국IBM과 업무 협약을 체결해 IBM의 클라우드 기반 인지 컴퓨팅 기술 ‘왓슨’ 솔루션을 도입하기로 했다.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쇼핑 도우미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해서다.

금호아시아나그룹도 경영 방침을 ‘4차 산업사회 선도’로 정하고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미래 사업 발굴에 역량을 집중하면서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사업과 접목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4차 산업사회는 정말 빠른 속도로 우리 사회를 휩쓸고 지나갈 것”이라며 “AI, 사물인터넷(IoT), 스마트 공장 자동화, VR 등 구체적인 기술을 현업에 적용하고 활용해 4차 산업사회에 뒤떨어지지 않는 영속적인 기업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최근 아시아나항공·금호타이어·금호산업·아시아나IDT·에어부산 등 주요 계열사들은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하기 위한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포스코 등 철강업계도 4차 산업혁명의 성장 동력 확보에 분주하다. 대내외 불확실성 극복과 수익성 강화를 4차 산업혁명을 통해 이뤄내겠다는 목표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마부정제(馬不停蹄 : 달리는 말은 말굽을 멈추지 않는다)의 마음으로 다음 50년을 준비하자”며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포스코만의 고유 역량을 기반으로 차별화된 경쟁 우위 확보가 가능한 분야를 미래 성장 사업으로 개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포스코는 계열사 포스코ICT를 통한 4차 산업혁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그런가 하면 자신들의 역량을 진화시킨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기업들도 있다. 현대차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게 AI 기반의 자율주행차·커넥티드카 등에 대한 R&D에 공을 들이고 있다.

현대차는 전략기술연구소를 신설, 자율주행차와 관련한 개발 조직과 인력을 하나로 묶는 등 2030년까지 완전 자율주행을 구현해 미래차 선도 기업으로 탈바꿈한다는 전략을 짰다.

지능형안전기술센터를 신설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내외 불확실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내실 강화를 기반으로 한 R&D 투자를 확대한다는 데 역점을 둔 것이다.
혁신 나선 재계…점점 뜨거워지는 ‘열기’
(사진) 지난 1월 열린 '국제 전자제품 박람회(CES) 2017'에서 마이크 오브라이언 현대차 미국법인 상품담당 부사장이 현대차가 개발하고 있는 자율주행 및 웨어러블 로봇 등 첨단기술을 소개했다. /연합뉴스

◆ 핵심 역량 강화로 4차 산업혁명 준비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올 초 신년사에서 “자율주행 등 핵심 기술 경쟁력을 강화하고 미래 변화를 선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미래 이동성(모빌리티) 기술을 선점하기 위해 국내 및 글로벌 연구소뿐만 아니라 스타트업 등과 개방적 혁신 방식의 협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또 자율주행을 포함해 차세대 스마트카를 개발하기 위해 2015년부터 내년까지 약 2조원을 투자한다는 구상이다.

ICT와 에너지 등 분야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는 SK그룹도 4차 산업혁명에 굶주려 있다. 최근 최태원 회장은 승진 임원들에게 4차 산업혁명에 적극 대응할 것을 주문했다. 그룹의 강점만 융합한 새로운 사업 모델을 창출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최 회장은 “(SK그룹은) IT와 에너지를 동시에 갖고 있다”며 “변화를 받아들이고 장점을 살리면서 사업 포트폴리오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SK그룹은 SK텔레콤을 통해 이동통신 시장 1위, SK이노베이션과 SK E&S, SK가스 등을 통해 정유화학·에너지 시장에서 선두권을 달리고 있다.

기존엔 IT와 에너지 및 제조 사업이 별개 분야로 여겨졌지만 최근 글로벌 흐름은 에너지와 제조 시설에 IoT·빅데이터·5세대(5G) 등의 ICT를 접목해 생산성을 대폭 높이고 있다.

LG 역시 4차산업 시대의 사업 기반을 구축해 가고 있다. LG전자는 홈 IoT와 로봇을 중심으로 미래 사업을 육성 중이다.

AI 및 자율주행 기술을 활용해 로봇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는 LG전자는 올해 가정용 허브(Hub) 로봇과 함께 공항 안내 로봇, 청소 로봇 등 상업용 로봇 시장으로 사업 포트폴리오 폭을 키웠다.

LG유플러스는 홈 IoT 사업 분야에서 다양한 사물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상용화를 앞둔 협대역 사물인터넷(NB-IoT)을 기반으로 산업용 IoT 사업으로도 확대할 계획이다.

LG CNS는 제품 생산 효율을 높이고 에너지·안전·보안 등 제조 현장을 통합해 관리하고 빅데이터 분석 역량과 IoT 기술을 활용해 최적화된 통합 스마트 팩토리 솔루션을 개발한다는 구상이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연초에 사업구조 고도화의 속도를 높이고 제조와 R&D를 근본적으로 혁신하겠다고 다짐했다”며 “이를 위해서는 명확하게 세워진 지향 목표에 따라 올해 반드시 해내야 할 것과 중·장기적으로 해야 할 과제들을 시기별로 구체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오픈 이노베이션 통해 혁신 역량 강화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을 통해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기업들도 있다. 삼성전자·LG전자·한화·카카오가 대표적으로 혁신 역량을 외부에서 끌어오기 위해 문을 열고 있다.

이들 기업들은 경쟁력을 키우는 데 필요한 기술과 아이디어를 바깥에서 가져오고 내부 자원도 외부와 공유하기도 하고 스타트업을 인수·합병(M&A)하거나 적극 투자하며 기업 혁신의 기틀을 마련하고 있다.

우선 삼성전자는 2014년부터 미국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M&A를 시작했다. IT 시장 선두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혁신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삼성전자는 루프페이를 인수해 모바일 간편결제 서비스 ‘삼성페이’를 만들었다. 또 스마트 홈 플랫폼 업체 스마트싱스를 인수해 가전제품에 적용했다. 비브랩스와 하만 인수를 통해 성장 동력도 확보했다.

사외벤처 지원도 활발하다. C랩은 삼성전자가 창의형 조직 문화를 확산하기 위한 제도다. 지난해 8월 C랩 우수 아이디어 3건에 대한 스타트업 창업을 지원했다.

카카오는 스타트업 M&A에 적극적인 회사 중 하나다. 대표 사례가 내비게이션 애플리케이션 ‘김기사’의 인수다. 2015년 5월 카카오는 록앤올 지분 100%를 642억원에 매입했다.

이후 김기사는 카카오내비로 재탄생했다. 인수 후 주간 길안내 건수가 2배 이상, 월간 이용자는 2배 증가하는 성과가 나왔다.

오픈 이노베이션의 한 방법인 스타트업 투자도 활발하다. 한화그룹은 자체 액셀러레이터 드림플러스를 만들었다.

한화S&C 드림플러스는 2014년 만들어진 대기업 산하 벤처투자회사(CVC)다. 한화생명 핀테크센터 드림플러스63, 일본의 도쿄센터, 중국의 상하이센터 등 해외 연결망까지 보유하고 있다.

cw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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