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제 1111호 (2017년 03월 15일)

‘메이드 인 코리아’를 알린 국내 기업들

[커버 스토리 = 경제 살리기로 국민 대통합을 : 한국의 힘·기업의 힘]
해외원조·차관으로 시작된 ‘구멍가게’…이제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일제강점기의 수탈을 거치자마자 6·25전쟁이라는 아픔을 겪은 대한민국. 1953년 남북 분단이라는 아픔을 남긴 채 전쟁은 종식됐지만 또 다른 전쟁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망가진 경제로 인한 배고픔과의 전쟁이다. 당시 한국의 경제지표는 1인당 국민소득 67달러, 세계 109위의 최빈국이었으니 국민 대부분에게 온전한 한 끼의 식사는 사치였다.

6·25전쟁의 영웅 유엔군 총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한국을 떠나며 “이 나라가 전쟁 전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100년이 넘게 걸릴 것”이라고까지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의 예언은 틀렸다. 한국 국민의 성실함과 부지런함을 간과한 때문이다. 국가 주도의 경제개발 정책을 발판으로 기업과 산업 역군들이 부지런히 뛰어다니며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끌어 냈다.

2016년, 당시로부터 꼬박 64년이 흐른 지금 한국은 세계 13위 경제 대국(GDP 기준)이자 세계 8위의 무역 대국으로 성장했다.


(사진) 1986년 이병철(왼쪽) 삼성그룹 창업자의 희수연(77세 생일)에 참석한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가 이 창업자와 만나 반갑게 악수하고 있는 모습. /건국 60주년 자료


◆ 기업가 정신이 만들어 낸 한강의 기적

한국 경제는 1960~1970년 산업화와 수출 확대로 고도성장하며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다. 두 차례의 오일 쇼크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등 숱한 위기를 겪고 크고 작은 부침도 겪었지만 우리 경제는 성장을 거듭했다.

기적 같은 경제성장의 주역은 우리 기업들이다. 기업의 창업자와 최고경영자(CEO)들은 투철한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하고 사업보국(事業報國)의 마음가짐과 애국심을 바탕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 냈다. 이 과정에서 이병철과 정주영 창업자 같은 수많은 기업인들이 탄생했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는 반도체 사업 시작을 확정하며 “어디까지나 국가적 견지에서 우선 삼성이 먼저 한다. 이익 확보와 국가적 견지에서 하는 것을 병행해 추진하기로 선언한다”고 강조했다.

창업자의 뒤를 이은 이건희 회장은 1993년 “마누라와 자식 빼고 모든 것을 다 바꾸라”며 신경영을 선언했고 삼성그룹은 이후 혁신을 주도하며 글로벌 기업으로 부상했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는 “우리가 잘되는 것이 나라가 잘되는 일이며 나라가 잘되는 것이 우리가 잘될 수 있는 일”이라고 역설했다.

현대그룹이 모태가 된 현대자동차그룹은 정몽구 회장의 주도 아래 글로벌 톱5 완성차 제조업체로 도요타·제너럴모터스(GM)·폭스바겐과 같은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1976년 한국 최초의 자동차 모델인 포니가 첫 탄생한 지 불과 40년 만에 일어난 놀라운 기적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중화학공업 입국’이라는 슬로건 아래 조선·철강·화학 분야에서 현대중공업·포스코·LG화학 같은 분야별 선두를 다투는 세계적인 기업들이 탄생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중화학공업의 강자 지위를 정보기술(IT) 분야가 이어받았다.

SK그룹은 정보통신 분야를 신성장 사업으로 선정해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등 글로벌 기술을 선도해 왔고 네이버·다음카카오 같은 신생 IT 기반 기업들이 쑥쑥 성장하며 IT 강국 코리아를 선도하고 있다.

기업인들의 리더십 아래 임직원과 노동자들 역시 열악한 환경에서도 근면과 성실, 희생정신과 도전정신으로 힘을 더했다. 열악한 자본으로, 때로는 원조나 차관의 도움으로 시작된 ‘구멍가게’들은 이 같은 눈물겨운 도전과 노력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눈부시게 성장했다.

스마트폰·반도체·전자제품·자동차·조선·철강 등에서 활약하는 한국 기업 삼성·현대차·기아차·SK·LG·포스코 등은 글로벌 수위를 다투는 일류 기업들이다.

이 같은 한국 기업들의 맹활약을 지켜본 ‘경영학의 대가’ 피터 드러커는 1996년 그의 저서에서 한국을 ‘세계에서 기업가 정신이 가장 높은 국가’라고 꼽기도 했다.


(사진) 1964년 조성된 구로산업단지는 섬유업체와 전자업체 등이 대거 입주해 초창기 수출 한국의 견인차 역할을 했다. 여성 노동자들이 전자 부품을 조립하고 있다. /건국 60주년 자료


◆ 2차산업 시작 7년 만에 ‘10억 달러’ 달성


그런가 하면 지금의 한국 경제가 만들어진 데에는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중소기업과 우수한 인력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1962년 시행된 제1차 경제개발 계획으로 1차산업 중심이었던 한국의 산업구조가 2차산업 중심으로 바뀌면서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세워졌고 수출의 역군으로 산업화를 이끌었다.

가장 먼저 공장 굴뚝에서 연기가 올라온 구로산업단지(현 서울디지털산업단지)가 수출 중소기업들을 위한 산업단지로 개발돼 1964년 처음으로 조성됐다.

트랜지스터 라디오와 TV를 생산하는 동남전기공업이 가장 먼저 입주해 시운전과 동시에 공장을 가동했다. 10개의 국내 기업과 써니전자를 비롯한 20여 개의 재일교포 기업이 자리 잡았고 미국 기업도 1곳이 들어왔다.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 제품이 유명해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구로산업단지에서 생산된 스웨터를 비롯해 의류·가발·신발·인형 등 봉제품·합판·전기제품 등이 세계시장으로 팔려나갔다.

대부분이 해외 기업체의 주문에 의한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EM) 방식으로 주문회사의 상표가 붙었지만 제품의 한 귀퉁이에 ‘메이드 인 코리아’ 태그가 붙었다.

초기 수출 기업들의 성장에는 ‘여공’들의 희생이 필수적이었다. 여공들은 수출 물량을 맞추기 위해 밤샘 작업을 하며 수출 역군으로서 경제개발의 최전방을 맡았고 경제개발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펼쳤던 저축 증대에도 앞장섰다.

이 같은 희생을 바탕으로 1964년 1억 달러 수출을 달성한 데 이어 1971년 10억 달러의 수출을 달성하며 우리 산업이 10배나 성장할 수 있었다.

cwy@hankyung.com

[경제 살리기 커버스토리 기사 인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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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7-03-14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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