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새 수출 첨병 무역상사의 도약 : 일본종합상사의 오늘]
- '자원 버블 붕괴' 후 5대상사 지각변동…신성장동력으로 '식량 사업' 주목

[한경비즈니스=정채희 기자] ‘무역 중개에서 자원 투자로, 자원 투자에서 식량 사업으로….’

일본 종합상사가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과거 국내 유통 또는 해외무역으로 수수료를 챙겼던 거대 상사들은 2000년대 중반 자원 투자에 뛰어들며 황금알을 낳았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거품 낀 자원 가격이 급락하면서 자원을 대체할 새로운 성장 사업으로 식량 사업에 주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본 종합상사의 변신이 “상사가 왜 필요한가요”란 물음에 답을 구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일본의 오늘에서 국내 종합상사의 부활의 길을 찾을 수 있을까.

◆비(比)자원부문에 강한 이토추상사, 돌풍의 핵으로

2016년 ‘철옹성’으로 여겨졌던 일본 5대 종합상사의 순위에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돌풍의 핵은 이토추상사다.

순이익 기준으로 오랜 기간 4위에 머물렀던 이 회사는 미쓰비시상사·미쓰이물산·스미토모상사 등 ‘톱 3’의 아성을 깨고 지난해 순이익 기준 1위 상사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업계에선 이토추상사의 이변을 자원 버블의 붕괴이자 신성장 엔진의 부상이라고 분석했다. 다른 상사에 비해 비(非)자원 부문이 상대적으로 강했던 이토추상사가 2011년부터 지속된 자원 가격 하락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일본 종합상사의 이유 있는 변신
실제 일본 5대 종합상사의 순익을 보면 1, 2위였던 미쓰비시상사와 미쓰이물산은 공동 투자한 칠레 구리 광산과 호주 액화천연가스(LNG) 프로젝트 등이 큰 손실을 기록하면서 2016년 각각 적자 전환됐다.

3위였던 스미토모상사는 보다 앞선 2015년 미국 타이트 오일 손실 등으로 적자 전환하며 이른바 ‘스미토모 쇼크’를 불러왔다.

이들 상사의 공통점은 2000년대 중반부터 자원 투자에 뛰어들며 ‘종합상사의 자원 신화’를 불러왔다는 점이다.

당시 미쓰비시상사는 세계 석탄 생산량의 25%를, 미쓰이물산은 세계 철광석 생산량의 4위를 차지하는 큰손이었다.

조항 포스코경영연구원 철강연구센터 수석연구원은 “상사의 주요 사업 영역인 무역 중개는 근본적으로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면서 “신규 수익 모델로 찾은 자원 투자가 가격 급등으로 엄청난 수익을 가져오면서 실상 이 회사들의 수익 중 최대 90%가 자원에서 나왔다”고 말했다.

반면 이토추상사는 달랐다. ‘비자원 분야 1위’를 목표로 섬유상사에서 출발해 생활 소비제품 관련 브랜드 사업에 강점을 뒀다.

이를 중심으로 제조와 유통 등으로 사업 분야를 확장하면서 신규 수익원 창출에 나섰다. 그 결과 3대 상사가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2015년과 2016년 이토추상사는 3006억 엔, 2403억 엔의 순이익 흑자를 기록했다.

자원에서 쓴맛을 본 상사들은 뒤늦게 비자원 부문 강화에 열심이다. 특히 인구 증가와 함께 다양한 용도 개발이 가능한 ‘식량 사업’이 레드오션으로 떠올랐다.

기후에 따른 작황의 변동성으로 일부 국가를 제외한 다수의 국가가 식량 자급률이 낮고 또 중국이 최대 수입국으로 떠오르면서 대규모의 식량 무역이 발생한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다.

특히 식량의 생산부터 가공, 도소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사업 영역이 부가가치 창출에 탁월하다는 점이 거대 상사의 눈에 띄었다.

이에 이토추상사를 비롯한 미쓰비시상사·미쓰이물산·스미토모상사 등은 현지 생산품의 수출 대행, 현지에서의 집하와 판매회사에 대한 인수·합병 등 투자, 편의점 등 소매업체와의 제휴 등의 직간접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조 연구원은 “가격 등 위험 요소가 많은 자원 사업과 달리 식량 사업은 생산부터 소비재까지 광범위하고 긴 밸류체인을 형성한다”며 “상사가 보유한 역량을 종합적으로 발휘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포트폴리오를 통한 위험 분산도 가능해 일본 상사들이 사업 투자를 강화하고 있는 영역”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일본 상사들의 변신이 곧 국내 상사들의 나침반이라고 설명한다. 양국 간 시장 상황이나 매출 규모 등이 다르기 때문에 동일하게 적용하기는 어렵지만 상사란 업종의 특성상 신규 수익원 창출을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조 연구원은 “국내 종합상사도 식량 사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사업 투자에 나섰지만 일본에 비하면 미약한 수준”이라며 “기존 B2B 중심 사업에서 벗어나 B2C 영역으로 수익 구조를 안정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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