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제 1136호 (2017년 09월 06일)

중국과는 다른 마힌드라 쌍용차를 다시 뛰게 했다

[커버 스토리 I 쌍용차의 부활]
‘20년 설움’, 마힌드라 지원 속 개발한 티볼리로 날렸다



(사진) 마힌드라그룹의 아난드 마힌드라(왼쪽) 회장과 최종식 쌍용자동차 대표가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에서 3월 열린 2017 서울모터쇼에서 G4 렉스턴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고생 끝에 낙이 왔다. 한때 이리저리 팔려 나가다가 ‘먹튀’까지 당하고 수천 명의 임직원을 내보내는 아픔을 겪었던 쌍용자동차가 2007년 이후 처음으로 연간 흑자로 전환하면서 재기에 성공했다.

쌍용차는 지난해 연간 매출이 전년 대비 7% 증가하면서 창사 이후 최대 규모인 3조6285억원을 기록했다. 2015년 개별재무제표 기준으로 각각 332억원, 587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던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도 각각 305억원, 568억원 흑자로 돌아섰다.

이런 실적을 바탕으로 쌍용자동차는 올해 7월 한경비즈니스·NICE평가정보가 공동 선정하는 ‘2017 대한민국 100대 기업’ 순위 조사에서 442계단 상승하며 90위에 이름을 올렸다.

실적을 이끈 것은 신차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티볼리’의 대박이다. 티볼리는 창사 이후 최단기간(23개월)에 10만 대 판매를 돌파했고 판매 실적이 상승 곡선을 그렸다.



◆ 마힌드라 인수에 힘 받은 쌍용차

티볼리의 대박과 지난해의 실적 흑자 전환이 쌍용차에 가져다준 의미는 남다르다.

쌍용차는 한때 법정 관리까지 가는 등 위기를 맞았지만 인도 마힌드라그룹에 인수된 2011년부터 재무구조의 안정화와 노사 화합 그리고 신차 개발을 토대로 정상화의 기반을 다져 왔고 그 결과물이 6년이 지난 지금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쌍용차는 2010년부터 티볼리 개발을 시작했다. 하지만 당시 만성 적자에 시달리며 부채비율이 500%를 넘어서는 부실기업이 단독으로 추진하기엔 버거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2011년 마힌드라가 쌍용차를 인수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2010년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된 마힌드라는 2011년 3월 지분 70% 확보를 위한 신주 4271억원과 회사채 954억원 등 총 5225억원을 투자해 인수했다. 이후에도 지금까지 약 6000억원에 이르는 투자금이 투입됐다.

이는 아난드 마힌드라 마힌드라그룹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기에 가능했다. 그만큼 마힌드라 회장은 쌍용차가 가지고 있는 경쟁력과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

마힌드라 회장은 쌍용차를 인수한 이유에 대해 “마힌드라와 비슷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주로 다뤘는데 망하게 두기엔 너무 아까운 회사였다. 조금만 투자하면 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쌍용차의 부활이 단순히 마힌드라의 자금 투입으로만 이뤄진 것은 아니다. 마힌드라의 한국 경영진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와 노조를 포용하는 전략 그리고 이에 부응한 노사의 ‘한번 해보자’는 의지가 한데 어우러진 결과물이기도 하다.

마힌드라의 쌍용차 경영 원칙은 ‘지배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다. 마힌드라 회장은 “한국 기업은 한국인이 가장 잘 안다”며 “당연히 경영도 한국인이 가장 잘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쌍용차 경영은 최종식 대표가 도맡고 대규모 투자 같은 주요 사항만 이사회를 통해 결정하는 식이다. 이 때문에 마힌드라는 본사 ‘코디네이터’ 6명만 한국에 파견했다. 마힌드라 본사와 쌍용차가 소통하기 위한 가교 역할이었다.



◆ 마힌드라의 전폭적 신뢰에 ‘신바람’

마힌드라는 노조와의 스킨십에도 적극 나섰다. 인수 직후 노조를 본사에 초청하며 신뢰를 다졌고 마힌드라 회장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쌍용차 직원들과의 소통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자신의 트위터 계정 팔로워가 440만 명이 넘는 마힌드라 회장은 과거 평택공장에서 농성 사태가 있었을 때 굴뚝 농성자와 트위터로 직접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2015년 1월 티볼리 출시 당시에는 처음으로 한국을 찾아 쌍용차 해고자들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인수 이후 무급 휴직자 500명을 복직시켰다.

쌍용차 인수 후 첫 연간 흑자 발표가 난 올해 2월에는 자신의 트위터에 “쌍용차 축하한다. 그리고 모든 직장 동료에게 감사하다”며 “여러분의 노력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고 밝혔다.

이러한 마힌드라 회장의 진심에 노사는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움직였다. 직원들은 ‘다시는 망하지 말자’는 비장한 각오로 파업을 자제하고 인력 충원도 마다한 채 밤낮을 아껴가며 생산 현장에 매달렸다.

쌍용차가 7년 연속 무분규로 임단협(임금·단체협약)을 타결하고 노사 공동으로 생산성 향상에 나서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사측도 경영 정상화를 위해 최선을 다해 움직였다. 대표적인 것이 지금 쌍용차를 이끌고 있는 최종식 사장의 영입이다. 2010년 중국 상하이자동차 철수 이후 회사의 존폐가 걸린 중대 위기에서 쌍용차는 최 사장을 글로벌마케팅본부장(부사장)으로 영입했다.

최 사장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77년 현대자동차에 입사해 수출기획과 승용마케팅팀을 거쳐 미주법인에서 캐나다 담당 임원을 지낸 인물로, 업계에서는 ‘마케팅통’이자 ‘영업통’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쌍용차는 최 사장의 합류와 함께 본격적으로 판매에 돌입했다. 최 사장의 진두지휘 아래 내수를 늘리면서 북미와 중국 시장을 공략했다. 그 결과 최 사장 영입 첫해인 2010년 쌍용차는 국내시장에서 전년 대비 46.3%의 판매 신장을 기록했다.

특히 최 사장은 쌍용차를 위기에서 구해낸 티볼리 개발에도 직접 참여했다. 적자에 허덕이는 상황에서도 최 사장은 신차만이 궁극적인 경영 정상화를 이룰 토대가 될 것이라고 보고 신차 개발의 의지를 보였고 마힌드라의 지원 속에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기획 단계부터 철저한 시장 분석을 통해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고 안전과 성능, 편의성의 3박자를 모두 고심했다. 쌍용차 고유의 SUV 철학을 계승하면서도 소형 SUV 시장을 정확히 파고든 것도 주효했다.

최 사장은 올해 신차 'G4 렉스턴'을 성공적으로 출시했으며 해외시장의 수출 확대를 통해 수익 구조를 탄탄히 할 계획이다.

최 사장은 “올해 대형 프리미엄 SUV G4 렉스턴의 성공적인 출시 등 제품 라인업 확대를 통한 최대 판매 실적으로 흑자 기조를 이어 나갈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해외시장 확대에도 드라이브를 건다. 최 사장은 2015년 취임 이후 쉴 새 없이 해외 출장길에 오르며 티볼리의 해외 진출에 힘을 쏟았다.

티볼리는 2015년 출시 이후 벨기에·영국·스페인·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들과 칠레·페루 등 중남미 국가들에 먼저 수출됐고 이후 이란 등 중동 시장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올해 쌍용차는 티볼리·뉴코란도C·G4 렉스턴 등의 모델을 해외시장에 선보여 판매 증대에 박차를 가하고 러시아·필리핀·아프리카 등 신시장 개척과 재진출에도 속도를 낼 방침이다.


(사진) 8월 8일 경기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을 방문한 영국 자동차 전문기자들이 유럽 시장 수출을 앞둔 G4 렉스턴의 생산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 20년간의 아픔에 “웃을 수 없어”

이처럼 마힌드라의 지원 아래 노사가 힘을 합쳐 움직이고 있는 쌍용차 임직원들은 그야말로 전투 모드다. 현장에서 직원들을 마주하면 ‘악에 받쳤다’는 표현이 절로 나온다.

과거 쌍용그룹을 모기업으로 뒀던 쌍용차는 벤츠와 기술제휴하며 과감한 투자를 이어 나가 1990년대까지 한국을 대표하는 프리미엄 SUV 명가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1997년 발생한 외환위기 사태 이후 단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던 그들이다.

1998년 모기업인 쌍용그룹이 해체되며 대우그룹을 새 주인으로 맞았지만 무리한 확장을 추진하던 대우그룹이 경영난으로 해체되면서 2년 만인 2000년 대우그룹에서 분리돼 법정 관리에 들어갔다.

이후 2004년 중국 상하이차에 인수됐지만 상하이차는 경영 정상화에 실패한 채 약 5년 만인 2009년 1월 경영권을 포기하고 법정 관리를 신청했다.

당시 상하이차는 인수 시 약속했던 1조2000억원의 투자도 이행하지 않았고 제대로 된 경영 활동도 하지 않았다.

이 여파로 쌍용차는 만성 적자에 시달렸고 부채비율이 500%가 넘는 부실기업으로 전락했다. 상하이차의 쌍용차 인수를 놓고 기술만 훔쳐간 최악의 ‘먹튀 M&A’였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이후 쌍용차는 2009년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과 기업회생절차(법정 관리)를 거치면서 전체 직원의 37%인 2646명의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노동조합과의 관계도 틀어졌다.

당시 정리 해고된 직원들이 자살하는 아픔도 겪어야 했다. 이 때문에 쌍용차는 지난해 대박 실적으로 웃음 지을 만도 하지만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

쌍용차의 한 직원은 “20년간 힘들었던 쌍용차”라며 “반짝 실적이 나왔다고 들뜨면 먼저 떠난 직원들에게도 미안하고 회사와 국민 그리고 정부에도 염치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cw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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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7-09-05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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