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생각하는 능력 갖춘 창의적 인재 키울 때”

[한경비즈니스 = 이선정 SRT매거진 편집장] 홍성국 미래에셋대우 전 사장은 합병 전인 KDB대우증권 시절, 증권가의 애널리스트 사관학교라고 불리는 리서치센터의 센터장을 맡았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 하면 혼자 열심히 노력하는 것 못지않게 어떤 사수에게 배우는지도 중요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다. 아직 큰 꿈이 남았다면 그의 조언에서 길을 모색해 볼 수도 있다.sjlgh@hankyung.com
홍성국 전 미래에셋대우 사장 “미래형 인재를 위한 조건은 관·철·격·류”
2001년, 외환위기 여파로 KDB대우증권이 탁구단을 해체하면서 선수들이 지점으로 발령받아 뿔뿔이 흩어졌다. 그중 한 선수를 우연히 만났다. 지금은 유명한 투자가로 활동하는 사람이다. 탁구만 했으면 투자 지식이 전혀 없었을 텐데 어떻게 성공한 투자가로 변신할 수 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당시 홍성국 지점장님 덕분이었습니다”고 말했다.
“출근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인데 지점장님께서 형광등이 고장 난 것을 보고 저더러 갈라고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앞으로 지점에 무슨 일이 생기면 사람들이 무조건 저를 제일 먼저 찾게 만들라고 하셨어요. 금융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던 때 정말 섬광 같은 교훈이 됐던 말입니다. 허드렛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시키는 일은 정말 열심히 했죠.”
그 당시 일이 기억났는지 잠시 말을 멈추고 회상에 잠겼던 그는 말을 이어 갔다. “그러다 언제부턴가 읽어보라고 책을 주시더군요. 꼬박꼬박 다 읽었어요. 기업 탐방 나가는 것, 분석하는 것도 무조건 따라서 직접 해보고 공부도 하고…. 성공의 의미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원하는 것을 얻는 데는 태도가 80%입니다.”

“4차혁명, 거창할 것 없다”
홍성국 미래에셋대우 전 사장이 책을 냈다는 소식을 듣고 만날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지금은 유명해진 전직 탁구 선수였던 한 투자 전문가의 사례가 무척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책 제목은 ‘인재 vs 인재’다. 앞의 인재는 인재(人災), 뒤의 인재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재(人材)다. 잘못 배우면 인재(人材)가 아니라 인재(人災)가 된다는 일침을 담은 제목이다.

홍 전 사장은 2016년 자신이 30년간 몸담았던 대우증권을 떠났다. KDB대우증권을 인수한 박현주 회장은 ‘함께 가자’고 했지만 그는 ‘새로운 미래’를 보고 싶어 세상에 나왔다.

그 후 6개월 동안 홍 전 사장은 재충전하는 데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조그만 사무실을 마련해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신문을 보며 세상을 다시 봤다. 대학원을 다녔고 최고경영자(CEO)들을 대상으로 틈틈이 강의도 했다. 그는 “회사를 잊는 방법은 다른 일에 몰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일 중독자는 일로 재충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사람과 만나는 시간을 줄이고 혼자만의 일에 몰두했다.

그 노력의 결실이 최근 출간한 책이다. 이 책은 ‘세상과 미래’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인구 감소와 성장 실종 등 세계적인 복합 위기를 예견한 책을 5권이나 내놓았다. ‘여의도의 미래학자’로 불리는 이유다.

과거의 책이 현상과 관련된 것이었다면 이번 책은 사람을 향하고 있다. 급변하는 미래를 돌파하기 위한 고민을 담았다. 30년간 인재들이 모여 있는 리서치센터와 기관영업본부 등에서 일한 경험을 담아냈다.

사실 그가 ‘인재’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꽤 오래된 일이다. 홍 전 사장은 대우증권 시절부터 10여 년간 인재 실험을 했다. 최고경영자(CEO) 때는 될성부른 신입 사원을 뽑아 8개월간 합숙 훈련을 통해 인재로 키워 냈다. 대기업도 최장 2~3개월 합숙 훈련이 전부인데 8개월간 신입 사원 훈련이라니…. 미래에셋대우가 인재 사관학교로 불린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8개월 합숙 훈련 동안 직무 교육은 기본이고 회식하는 법, 인사하는 법, 팀워크까지 다 가르쳤다”며 “그렇게 만들어진 인재들은 1년이 지나면 조직 내에서 웬만한 대리급보다 일을 더 잘했다”고 말했다.

“산업구조가 얼마나 빠르게 변화하는지 모두 눈으로 보고 있잖아요. 혁신·구조조정 같은 게 가장 중요한 경영전략이 될지도 몰라요. 조직 구성원의 고령화, 직원들의 개인주의, 국가 간 갈등과 글로벌 보호주의…. 이런 일들이 복합적으로 얽히면서 이전에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수준으로 벌어질 거예요. 이런 전환, 변화보다 근본적이고 훨씬 규모가 큰 패러다임의 바뀜 속에서 어떻게 해야 문제를 해결하는 인재가 될지 고민하지 않으면 안 돼요.”

그의 말처럼 요즘 세계의 경제·산업계에서 가장 큰 화두는 ‘4차 산업혁명’이다. 그는 앞으로 세상이 크게 바뀌겠지만 그렇다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 하지만 너무 거창하게 볼 필요는 없습니다. 4차 산업혁명은 어떻게 수용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제조업의 일자리는 줄어들겠지만 정보기술(IT)과 서비스가 접목돼 인력이 필요 없는 세상이 아니라 또 다른 분야에서 인력이 더 많이 필요해질 수 있는 세상일 겁니다. 그래서 세상의 덕목을 깨닫고 사회에 필요한 인재가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 더 큰 기회가 올 것입니다.”

결국 ‘내공’을 키워야 오래간다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 모두가 첨단 산업의 변화를 주목하지만 결국 그는 인간의 창의력이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꿀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창의력이 뛰어난 인재만이 미래 사회를 이끌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그가 말하는 인재의 조건은 뭘까. 요약하면 ‘관철격류’로 정리된다.

관(觀)은 미래의 변화를 살피는 통찰을 가진 인재, 자신의 관점을 가지라는 말이다. 물론 이게 그저 될 리 없으니 자꾸 부딪치고 고민하고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노력이 필요하다.

철(哲)은 능력을 토대로 삶의 철학이 있어야 진짜 인재라는 말이다.

격(格)은 미래의 리더가 되려면 격을 갖춰야 하고 그래야 조직원들이 자발적 충성심을 갖게 된다는 의미다.

류(流)는 자신만의 특성이나 경향을 갖추라는 조언인데, 단순한 개성을 능가하는 하나의 계파 같은 의미다. 남을 따라 하는 아류(亞流)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이해하기가 쉽다. 즉 원류가 되라는 뜻인데 이를 위해 매사를 큰 그림으로 판단하고 자기 주도적인 삶을 가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실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 가르침은 의외로 단순하다. 기다림이 첫째다. 인재(人災)는 기본기를 어느 정도 익혔다 싶으면 바로 고급 업무를 수행하고 선배들처럼 큰 프로젝트에 투입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진짜 인재(人材)는 긴 호흡으로 생각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요점이 아닌 맥락을 배우고 기술이 아닌 철학과 관점을 쌓게 되는 것이다. 흔히 내공이라 하는데, 내공은 얕게 배워서는 얻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미래형 인재는 우직한 성품에 더 가까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는 그릇을 키우는 데 시간을 할애하라고 말했다.

“세상이 한 치 앞을 알 수 없으니 자꾸 창조 창조 하는데, 그러려면 기술보다 그릇을 키워야 돼요. 지식이 아니라 지혜죠. 그런데 지혜는 상식이 엮여야만 나오는 결과물이고 이런 것들이 많아야 창조적 결과물도 나와요.”

그는 재미있는 예 하나를 들었다. “지난해 한국의 연소득 9억원 이상인 사람들이 3403명이었어요. 이 가운데 장수막걸리를 만드는 서울탁주제조협회 소속 임직원이 26명이나 포함돼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라고 해서 전자공학과 생명공학만을 공부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방증 아닐까요. 창의력을 키워야 하고 지식을 얻기 위해 공부하되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그릇을 키우고 창조적 결과물을 내는 능력을 기르는 방법은 공부다. 책 읽고 생각하기. 단 생각의 방법은 달라야 한다. 그는 10단 논법을 연습하라는 실천적인 조언을 해줬다.

“‘힘쎈여자 도봉순’이라는 드라마 봤어요? 인기가 있다기에 봤는데 그 드라마는 요즘 사회현상을 모두 담아 놓았어요. 능력 있는 여성에 초식남, 약자의 반란 등등 지금 사회가 바라는 기대치가 다 있더라고요. 사람들이 보고 싶은 것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자꾸 관찰하라는 말이에요. ‘왜 인기 있을까, 왜 저런 식으로 이야기를 풀었을까.’ 나는 이걸 10단 논법이라고 하는데, 눈앞에 보이는 현상에서 미래의 결과를 그리는 연습을 하는 거예요.”

그는 간단하고도 복잡한 예를 하나 더 들었다.

중동에서 테러가 발생했다. →중동의 불안은 유가를 올릴 수 있다. →유가가 오르면 경기가 침체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원유를 사재기하기 위해 유조선 수요가 늘어난다. →한국에서 거대 조선소가 있는 울산·거제도의 경기가 회복된다. →배를 추가로 만드는 데 필요한 후판의 수요가 늘어난다. →거제도와 울산의 경기가 좋아지게 된다. →그런데 철광석은 대부분 호주에서 수입한다. →당연히 호주는 철광석 등 원자재 수출이 늘어난다. →그러면 호주는 무역수지 흑자가 발생하고 글로벌 투기자금은 호주 달러에 투자한다. →호주 달러가 강세가 된다. →그런데 한국은 호주산 수입 쇠고기를 많이 소비한다. 당연히 수입 가격 상승으로 호주산 쇠고기 가격이 오르게 된다. →만일 오늘 회식을 수입 쇠고기 집에서 한다고 하면 굳이 예약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가격이 올라 손님이 줄었을 테니까 말이다.
홍성국 전 미래에셋대우 사장 “미래형 인재를 위한 조건은 관·철·격·류”
뚜렷한 목표가 있어야 인재 된다

읽고 생각하는 것이 창조적 능력을 키우는 방법이라면 삶의 태도로는 ‘여지’가 있어야 한다.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려면 100%가 아니라 120% 이상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심리적인 부담은 80% 정도만 몰입하라는 말이다. 일에 대한 몰입이 과도한 집착으로 발전하는 것을 경계하라는 뜻이다.

“계영배(戒盈杯)라는 것이 있어요. 최인호의 소설 ‘상도’에서 거상 임상옥이 가지고 있었다는 술잔인데 술잔 옆에 구멍이 있어 70% 이상을 채우면 모두 밑으로 흘러내려요. 넘침을 경계하는 잔이지요.”

그는 절제할 줄 알고 겸손하며 남의 말을 경청하는 태도로 융통성까지 겸비하면 좋은 리더로 성장할 자질을 두루 갖추게 된다고 말했다.

물론 이렇게 구구절절 이야기해도 스스로 그릇을 키우려는 사람, 좋은 리더가 되고 싶은 사람, 위기 앞에 도망치지 않겠다는 결의가 있는 사람 등만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목표가 있는 사람이 행동하고 고민하는 법이에요. 그래야 잔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힘들어도 버텨 내면서 내공도 키우지요. 그러니 인재가 되려면 무엇보다 목표를 가져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30년간 미래에셋대우에서 근무하면서 가장 보람된 일은 무엇이었냐고 물었다. 그의 답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미래에셋대우에 새 주인을 찾아준 것’이었다.

“대우증권은 지금의 나를 있게 해준 너무도 소중한 곳입니다. 그래서 누구보다 대우증권이 글로벌 금융회사로 커가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대우증권이 지속 가능한 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이를 꾸준히 이끌고 갈 누군가가 필요했죠. 대우증권의 주인이었던 KDB산업은행은 기본적으로 국민의 세금이 기반인 곳입니다. 그래서 사기업인 대우증권이 계속 KDB산업은행과 함께하기 어려웠어요. 사실 대우그룹 해체 당시 대우증권을 살리기 위해 막대한 공적자금이 들어갔습니다. 쉽게 말해 국민의 돈이죠. 다사다난했지만 결국 제 재임 기간에 대우증권이 미래에셋이라는 새 주인을 찾았고 새 주인이 좋은 가격에 대우증권을 사들이면서 KDB산업은행은 높은 투자 수익을 냈습니다. 바꿔 말하면 대우증권이 국민들에게 큰돈을 벌어준 격입니다. 특히 여기서 생긴 자금으로 KDB산업은행은 다시 대우조선해양 등 어려움에 빠진 조선 산업에 투자하게 됩니다. 언젠가는 한국의 조선 산업도 화려하게 다시 살아나겠죠. 이런 큰 그림에서 제가 한 역할을 했다는 게 자랑스럽습니다.”

두루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 담소를 나눈 뒤 책에서 읽은 한 구절이 생각났다. “사람에게 투자한다는 것은 배울 만한 사람에게 관심과 비용을 투자하는 것이다. 굳이 전문 지식이 있는 사람에게만 투자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삶의 지혜를 얻는 사람에게도 투자해야 한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만큼 큰 배움도 없다.


홍성국 미래에셋대우 전 사장은 1986년 KDB대우증권(현 미래에셋대우)에 신입 사원으로 입사해 공채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2014년 미래에셋대우 최고경영자(CEO)에 올랐다. 30년 대우증권 재직 기간 동안 주로 근무한 곳은 인재가 모여 있는 리서치센터와 경쟁이 가장 치열한 기관영업 부서였다. 특히 리서치센터장을 역임한 기간 동안 홍 사장은 리서치센터를 업계 최고로 끌어올렸다,

비결은 ‘특유의 인사이트’를 통해서였다. 10여 년 전부터 그의 관심은 ‘세상의 미래’였다. 2004년 ‘디플레이션 속으로’라는 저서를 시작으로 다양한 시각에서 세상의 미래를 예측하는 저술 활동을 해왔다. ‘글로벌 위기 이후’, ‘세계 경제의 그림자, 미국’, ‘미래설계의 정석’, ‘세계가 일본된다’ 등이 대표작이다. 그의 예상은 상당 부분 현실이 됐다. 이에 따라 그는 자칭 타칭 ‘여의도의 미래학자’로 불린다.

2016년 말, 제2의 인생을 위해 회사를 자진 사퇴한 후 지금은 학업과 강의·저술에 몰두하고 있다. 그는 이번 책을 통해 그의 CEO·애널리스트·세일즈맨 경험을 함께 묶어 제시하는 미래형 인재론을 담았다. 즉 미래학과 인재론을 결합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