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포트2: 젠트리피케이션 해법을 찾아서-⑤ 뉴욕]
-도시 재생의 성공모델 뉴욕 ‘소호’...‘부자동네’ 됐지만 예술가 밀려나
-정부 주도 ‘할렘’개발 역효과…원주민들 먹거리 걱정 ‘푸드 젠트리피케이션’
‘빛의 도시’ 뉴욕에 드리운 젠트리피케이션 그림자
(사진)미국 뉴욕 맨해튼 도심 전경. /김정우 기자

[뉴욕(미국)=김정우 한경비즈니스 기자] 한국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은 낙후된 구도심이 번성하면서 임대료가 오르고 원주민들이 내쫓기는 부정적 의미로 주로 사용되고 있다. 반면 어떤 지역 혹은 국가에서는 버려진 것처럼 방치된 도시가 개발을 통해 새로운 활력을 찾아간다는 희망의 단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처럼 젠트리피케이션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의하기는 어렵다. 도시 개발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이 사실은 젠트리피케이션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자들 사이에서도 저마다 젠트리피케이션의 해석을 놓고 의견이 분분한 것이 사실이다.

다만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하는 원인에 대해선 이견이 없다. 바로 대규모 자본의 유입이다. 즉 특정 도시로 자본이 유입되지 않으면 젠트리피케이션은 결코 일어날 수 없다는 데 대부분의 학자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 뉴욕은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발생하는 명암을 가장 뚜렷하게 엿볼 수 있는 지역이다. 24시간 꺼지지 않는 타임스퀘어 전광판과 고층 빌딩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려한 불빛. 뉴욕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 이미지다.

세계 최대의 상업도시인 만큼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전 세계 투자자들의 대규모 자본이 뉴욕에 몰리고 있다. 이는 뉴욕이 세계경제 및 금융의 중심지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되면서도 빈부 격차가 가장 심한 지역으로 꼽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 고유의 특성을 잃어버린 소호

전문가들마다 다소 시점의 차이가 존재하지만 뉴욕은 대략 1970년대부터 본격적인 도시 재생 차원의 젠트리피케이션 조짐이 일었다. 당시만 해도 뉴욕의 이미지는 좋지 않았다. 영화 ‘배트맨’에 등장하는 고담시가 예전 범죄가 심했던 시절의 뉴욕을 모델로 만들어진 도시라는 것만 봐도 뉴욕의 이미지가 대략 어땠는지 가늠해 볼 수 있다.

실업률은 물론 범죄율이 높아 시민들이 안정적인 생활을 하기 어려웠고 뉴욕을 떠나는 이들이 연간 100만 명에 육박하기도 했다. 결국 뉴욕시는 이미지 재건을 위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아이 러브 뉴욕(I LOVE NEWYORK)’이라는 슬로건을 만들고 본격적인 도시 재건에 돌입하기 시작한다. 이후부터 관광객이 늘기 시작했고 일자리도 서서히 증가한 뉴욕은 1980년대 본격적인 도시 재건을 맞이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을 논할 때 빠짐없이 거론되는 소호(SOHO) 또한 젠트리피케이션의 명암을 고스란히 경험하게 된다. 가동이 멈춘 채 방치된 공장들이 많았던 소호는 1960년대부터 예술가들이 값싼 임대료를 찾아 서서히 모여들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문화·예술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했다.

1970년대에는 화랑이 곳곳에 생겨났고 이에 발맞춰 레스토랑이나 고급 식품점, 서점 등도 일대에 문을 열었다. 상권이 커지면서 문화·예술가의 거리로 거듭난 소호는 도시재생 측면에서 성공적인 젠트리피케이션의 대명사가 됐다. 하지만 이는 잠시였다.

예술가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문화·예술을 가까이 접할 수 있는 소호에 몰려들었고 부동산 가치 증가에 따른 임대료 상승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결국 소호가 번영하기까지 이바지했다고 볼 수 있는 많은 예술가들이나 소규모 자영업자들은 1980년대 초부터 높아진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소호를 떠나고 만다. 젠트리피케이션의 그림자가 마침내 소호를 덮치기 시작한 것이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소호는 완전히 과거의 모습을 잃어가게 된다.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의 거대 자본들이 뉴욕 부동산 투자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소호 역시 영향을 받았다. 집값이 더욱 오르면서 예전에 소호를 채웠던 예술가들이나 화랑의 흔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직접 찾아간 소호는 마치 대형 패션 브랜드 업체들의 격전지처럼 보였다. 자라와 유니클로 등 한국인에게 익숙한 저가 브랜드는 물론 명품 패션 브랜드 상점이 소호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화랑이 전해 주던 예술적 가치와 즐거움은 패션 브랜드 상점들의 디스플레이가 대신하는 모양새였다. 소호에 자리한 패션 브랜드들은 다른 지역에 자리한 일반 매장과 달리 마치 예술 작품을 전시하듯이 건물 외관이나 상품 디스플레이를 꾸며 놓았다.

이 밖에 덤보(Dumbo)·윌리엄스버그(Williamsburg) 등도 소호와 마찬가지로 과거 예술가들로 인한 젠트리피케이션의 명암이 발생한 지역이다. 이처럼 과거 뉴욕에서 발생한 주요 젠트리피케이션 지역의 특징은 예술가들의 동선과 궤를 같이한다는 점이다.

이런 과정을 목격한 뉴욕의 유명한 미술가인 알렉산드라 에스포지토는 뉴욕 예술가들을 ‘미생물’에 빗대 표현하기도 했다. 가장 지저분한 지역에 들어가 더러운 것들을 다 먹어치우고 깨끗하게 해놓으면 땅값이 올라 또다시 더러운 곳을 찾아 떠난다는 이유에서다.

◆ 원주민들이 해법 마련에 고심

뉴욕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은 최근 들어 더욱 가속도를 내고 있다. 뉴욕의 부동산 투자 열기가 꺼질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과거 빈민가로 분류됐던 지역들로까지 젠트리피케이션이 확대되는 추세다.

대표적인 곳은 크라운하이츠다. 크라운하이츠는 뉴욕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을 연구하는 전문가들에게 가장 흥미로운 지역으로 꼽힌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주로 흑인들이 거주해 왔던 크라운하이츠에서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곳은 프랭클린·노스트랜드·유티카 등 세 개의 거리다.

지하철역에서 가장 가까운 프랭클린은 도시 재생 차원의 젠트리피케이션이 거의 완료된 단계다. 노스트랜드는 최근 들어 새 건물들이 지어지며 젠트리피케이션이 서서히 일어나는 상황이다. 유티카만 아직까지 과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즉 세 개의 거리를 비교하면 젠트리피케이션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면서 완성되는지를 엿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재정비가 거의 완료된 프랭클린 거리를 찾았다. 새로 지은 주거용 건물들 사이 곳곳엔 아기자기한 카페나 음식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곳 역시 젠트리피케이션의 순기능과 역기능이 공존하는 모습이었다.
‘빛의 도시’ 뉴욕에 드리운 젠트리피케이션 그림자
(사진)새롭게 재정비가 완료된 프랭클린 거리의 모습. /김정우 기자

예쁘게 외관이 꾸며진 한 카페를 들어갔더니 자리를 꽉 채운 손님 중 흑인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카페에서 일하는 한 점원은 “이곳(프랭클린 거리)이 약 5년 전부터 급속하게 변화하기 시작했다”며 “지역이 개발되면서 주거 환경과 치안이 개선되는 등 점점 도시가 좋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면에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역기능이 거리 전체에 만연해 있다. 프랭클린 거리 한복판에서 부동산을 운영 중인 지미 델피셰 씨는 프랭클린 거리의 변화 과정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빛의 도시’ 뉴욕에 드리운 젠트리피케이션 그림자
(사진)프랭클린 거리 한복판에서 부동산을 운영 중인 지미 델피셰. /김정우 기자

그는 “뉴욕 중심가의 집값이 천정부지로 오르면서 서서히 도심 외곽지역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부자, 즉 자본가들이 프랭클린 거리의 집들을 하나둘씩 매입하기 시작했다”며 “이후 이들은 기존의 건물을 허물고 더욱 크게 새로 지으면서 임대료를 올리는 횡포를 부렸다”고 회상했다.

그 결과 임대료는 10년 사이 2배 가까이 올랐다.델피셰 씨에 따르면 2006년 프랭클린 거리에서 방 하나가 딸린 아파트의 월 임대료는 약 1100달러였지만 현재는 2000달러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그는 “결국 기존에 살던 많은 가난한 이들이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거리를 떠났고 새롭게 유입된 중산층들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바로 옆에 있는 노스트랜드 거리에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일어날 기미를 보이고 있다. 노스트랜드는 거리 곳곳에서 헌 건물을 허물고 새 건물을 짓기 위한 공사가 한창이다. 크라운하이츠에 거주하는 원주민들 가운데 개인 부동산을 소유한 일부 원주민들은 노스트랜드의 가난한 세입자들이 쫓겨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빛의 도시’ 뉴욕에 드리운 젠트리피케이션 그림자
(사진)노스트랜드 거리는 새 건물을 짓기 위한 공사가 한창이다. /김정우 기자

이들이 생각해 낸 방법은 공동으로 돈을 모아 건물을 구입해 상대적으로 낮은 임대료의 주거 공간을 기존 세입자들에게 공급하는 것이다. 델피셰 씨는 “개발을 중요시하는 정부는 항상 부자들 편”이라며 “그나마 돈이 있는 현지 주민들이 주축이 돼 협동조합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원주민이 내쫓기는 것을 막을 계획”이라고 전했다.

◆ 할렘 ‘푸드 젠트리피케이션’에 직면
‘빛의 도시’ 뉴욕에 드리운 젠트리피케이션 그림자

(사진)할렘 내에 들어선 미국의 유명 대형마트 '홀푸드'. /김정우 기자

뉴욕의 주요 젠트리피케이션 지역을 찾아다니며 또 하나 흥미로웠던 부분은 정부의 도시 개발 정책이 치밀하지 않으면 오히려 역효과를 몰고 올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대표적인 지역이 과거 우범지대에서 이제는 주요 관광지 중 하나로 탈바꿈한 할렘(Harlem)이다.

할렘은 미국 주 정부가 도시 재생을 목적으로 개입해 급속히 젠트리피케이션을 진행했다. 다른 젠트리피케이션 지역은 대규모 자본이 스스로 유입된 반면 할렘은 정부 차원에서 자본을 끌어와 젠트리피케이션을 일으킨 것이다.

미국 정부는 할렘을 활성화하기 위해 여러 업체들을 설득하며 지원을 약속했고 그 결과 유명 패션 브랜드 상점이나 대형마트가 할렘에 들어섰다. 현재 할렘은 흑인들만의 거주지가 아니라 다양한 인종이 더불어 살아가는 지역으로 변신 중이다.

하지만 할렘 역시 이 과정에서 임대료가 높아져 수많은 원주민들이 떠날 수밖에 없었고 정부의 미흡한 도시 개발 정책에 대한 비난이 일고 있다. 할렘 거리에서 만난 현지 주민은 “정부에서 할렘 개발을 시작할 때 원주민들이 쫓겨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공공임대주택을 늘리는 방안 등을 강구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할렘에 남아 공공임대주택에 거주하고 있는 원주민들 중 대부분은 먹거리 문제에 직면한 상태다. 이른바 ‘푸드 젠트리피케이션’의 발생이다.

네빈 코헨 뉴욕시립대 대학원 공중보건학과 부교수는 “할렘에 소득이 높은 새로운 거주자들을 타깃으로 한 음식점과 대형마트들이 줄줄이 들어서고 있다”며 “기존에 살던 가난한 원주민들은 과거보다 상대적으로 비싼 값에 외식을 해야 하거나 식료품을 구매할 수밖에 없는 ‘푸드 젠트리피케이션’이 심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빛의 도시’ 뉴욕에 드리운 젠트리피케이션 그림자
(사진)네빈 코헨 뉴욕시립대 부교수는 "원주민들이 이용하던 할렘 내 값싼 음식점은 대부분 사라져 버렸다"고 말했다. /김정우 기자

코헨 부교수에 따르면 기존 원주민들이 주로 이용하던 할렘 내 값싼 음식점이나 식료품 가게는 급등한 임대료를 이기지 못해 거의 대부분이 사라져 버렸다. 그 자리는 유명 대형마트나 새로운 음식점들로 채워졌다.

이들 마트나 음식점의 식품 가격은 기존 원주민들에겐 부담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설명이다. 코헨 부교수는 “향후 정부가 도시 개발을 진행할 때 직접 시장을 운영하거나 원주민들이 이용하던 방식의 식료품점 등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nyo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