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화장 문화 확산]
2001년 시한부 매장제 도입 후 10명 중 8명 ‘매장’아닌 ‘화장’선택
대세로 자리매김한 ‘화장’ 문화 …‘묘지강산’ 우려 사라지다
[한경비즈니스=김정우 기자] 추석을 맞아 고향을 찾는 이들이라면 고속도로 옆 언덕배기 곳곳에 자리한 묘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간혹 어떻게 저런 곳에 묘가 들어섰을까 싶을 정도로 가파른 산 중턱 위에 자리한 묘지도 눈에 들어온다.

대한민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묘지 포화’ 상태다. 명당자리를 골라 조상을 모시는 것은 ‘효도’를 중요시하는 한국에서 자식이라면 반드시 해야 할 도리로 여겨졌다. 조상의 묏자리가 좋지 않아 하고자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고 믿는가 하면 묘를 정성껏 돌보지 않으면 불효자로 손가락질 받기도 했다.

이처럼 오랜 세월 동안 정성스럽게 돌아가신 조상들을 모셔온 한국에서 묘지가 차지하는 면적은 어마어마하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현재 주거 면적은 약 2646㎢로 전체 국토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약 2.7%다.

그런데 묘지가 차지하는 면적은 약 1000㎢로 전체 국토 면적의 약 1.0%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죽은 자가 차지하고 있는 땅의 넓이가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시한부 매장제 도입 후 화장 확산

다행인 것은 묘지가 차지하는 면적이 최근 들어 예전만큼 크게 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1990년대만 하더라도 매년 9㎢의 땅에 새롭게 비석이 세워졌고 이대로 가다간 한국이 ‘금수강산’이 아닌 ‘묘지강산’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일었다.

하지만 현재 정확한 통계 수치는 나와 있지 않지만 묘지 면적의 증가는 미미한 상황으로 알려졌다. 매장을 중심으로 하던 장례 문화가 급속히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1994년 20.5%로 20%를 겨우 넘었던 화장률은 2001년 38.5%를 기록한 뒤 매년 꾸준히 늘었다.
대세로 자리매김한 ‘화장’ 문화 …‘묘지강산’ 우려 사라지다
화장률은 2005년 52.6%로 매장 비율을 넘어선 이후 2015년에 선진국 수준인 80%대에 도달했다. 장례 문화의 패러다임이 매장에서 화장으로 완벽하게 전환된 셈이다. 지난해 화장률은 올해 10월 말 정도에 발표될 예정인데 대략 83%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이처럼 화장률이 증가한 것은 정부의 노력과 함께 국민의 인식 변화가 주된 요인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1990년대 후반부터 국토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화장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펼쳐 왔다.

화장 문화가 확산되기 시작한 것은 2001년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면서부터였다. 당시 ‘시한부 매장 제도(일정 기간이 지나면 분묘를 개장한 후 화장 또는 봉안하도록 한 것)’를 계기로, 매장 문화의 기반이 뿌리째 흔들리기 시작했다.

당시 정부는 묘지 대란을 막기 위해 시한부 매장 제도를 도입했다. 2001년 이후 들어서는 신규 묘지의 기본 설치 기간을 15년으로 못 박고 이 기간이 지나면 유골을 꺼내 화장하도록 한 것이다.

다만 기본 설치 기간이 끝나더라도 15년씩 3차례 ‘연장 신청’이 가능했다. 현재는 법이 개정돼 묘지의 기본 설치 기간은 30년이다. 설치 기간이 끝난 묘지는 1회에 한해 그 설치 기간을 30년 연장할 수 있고 이후엔 개정 전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화장해야 한다.

이 같은 제도가 시행되면서 매장 대신 화장을 선택하는 이들이 급격하게 늘기 시작했다. 어차피 추후에 유골을 꺼내 화장해야 하니 애초부터 비용과 발품을 들여 가며 묏자리를 찾고 비석을 세우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확산된 것이다.


◆1인 가구 증가로 매장·벌초 어려워져

가치관의 변화와 경제적인 요인도 화장 문화가 확산되는 데 일조했다는 분석이다. 우선 최근 들어 아름다운 삶의 마무리를 위한 의미 있는 죽음, 이른바 ‘웰다잉’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웰다잉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남겨진 이들에게 죄책감을 안겨주지 않고 편안하게 숨을 거두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만들어진 용어다. 웰다잉이 확산되면서 사람들이 ‘소유’에 대한 집착을 버리게 되고 죽은 후 묻혀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사라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물론 경제적인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한국에선 장례비용에만 큰 금액이 들어간다. 한국소비자원의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의 평균 장례비용은 약 1200만원이다. 여기에 묘지를 마련하고 묘비를 설치하면 유가족들에겐 더욱 부담이다.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략 2000만원의 비용이 들어간다고 보면 된다. 즉, 매장을 선택하면 장례식 한 번 치르는데 대략 3000만원 정도의 비용이 소요되는 셈이다.

화장을 하게 되면 화장 후 어떤 방식으로 유골을 안치하느냐에 따라 가격 차이는 있지만 보통 매장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에 장례를 마칠 수 있다.

또한 전문가들은 화장률의 증가가 가족의 유형 변화와도 연관이 있다고 말한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인구주택 총조사 전수 집계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일반 가구(1936만8000가구)에서 1인 가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27.9%에 달해 가장 보편적인 가구 유형으로 나타났다.
대세로 자리매김한 ‘화장’ 문화 …‘묘지강산’ 우려 사라지다
1995년만 하더라도 12.7%에 불과했던 1인 가구는 매년 급격히 늘며 30% 진입을 목전에 두게 됐다. 반면 1995년부터 2005년까지 가장 주된 유형이었던 4인 가구의 비율은 매년 하락해 18.3%로 떨어졌다.

묘지는 보통 가족이 함께 정기적으로 꾸준히 찾아가 벌초를 해야 하는 등 손이 많이 간다. 이런 맥락에서 1인 가구로의 가족 유형 변화는 화장률과도 충분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진단이다.

enyo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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