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달라진 장례문화]
입관에서 하관까지 장례절차 ‘표준화’…문상객 음식도 토털 서비스
화투판·밤샘은 옛말…자정 이후 문상은 ‘결례’
(사진) 1940년대의 장례식 모습./ 영덕 백년사 화보집.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한국 장례 문화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1990년대 지방에서 종종 볼 수 있었던, 고인의 집에서 치르던 장례식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지금은 병원이나 대형 장례식장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장례 절차도 집안 어른이 아닌 상조 회사에서 주도한다. 상주는 입관부터 하관까지의 사이에 치러야 하는 절차 중 원하는 과정을 선택하거나 생략한다는 의사만 알려주면 된다. 그러면 장례사들이 알아서 능숙하게 절차를 진행한다.

가풍을 따져 이건 해야 하고 저건 하지 않아야 한다는 설왕설래는 불필요하다. 집안 어른끼리 언성을 높이는 불상사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 덕분에 상을 당한 가족들은 번거로운 절차에 발목이 잡히지 않고 오로지 조의에 답하고 슬픔을 나누는 일에만 전념할 수 있다.

◆ 상조회사가 상주를 대신

장례 문화의 변화는 산업화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특히 2000년대 들어 출범한 토털 장례 대행 서비스를 기반으로 한 대형 상조 회사의 출범은 그동안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장례업계를 하나의 산업군으로 끌어올렸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장례 관련 산업 규모만 3조3000억원에 달할 정도로 성장했다. 차별화된 장례 서비스에 대한 욕구를 반영하듯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상조 업체 총 가입자 수는 438만 명에 이른다. 한국 총인구 5170여만 명 중 8.5%가 가입했다.

많은 이들이 상조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현재 한국의 물리적 공간과 생활·문화 패턴이 전통 장례를 치르기에 역부족인 상태이기 때문이다.

고밀도의 주거 환경과 핵가족 구성으로는 옛 농촌사회로부터 내려온 공동체적 장례를 치를 수 없다. 대형 병원이나 전문 상조 회사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이 때문에 요즘 장례 절차는 정교한 시스템에 의해 진행된다. 고인의 오랜 벗 중 누군가가 호상을 맡는 일도 없어지고 이것은 이렇게 하고 저것은 저렇게 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집안 어른도 거의 없다.

여기에 번거롭고 궂은일도 대신해 준다. 가장 손이 많이 가는 일 중 하나인 문상객 접대용 음식과 안주 등을 준비해 주고 상차림과 청소 등의 서비스도 제공한다. 과거처럼 온 가족이 달려들고 상주의 친구들까지 손을 빌려 주던 풍경은 사라진 지 오래다.

이런 서비스는 장례 문화의 표준화를 만들고 있다. 어느 상갓집을 가나 거의 비슷한 장례 절차가 진행되고 비슷한 음식이 제공된다.

◆ 장례식장 술 냉장고 줄지 않아

상을 치르는 사람만 변해가는 것은 아니다. 문상객들도 변했다. 특히 옷차림이 그렇다. 검은색 양복과 치마를 굳이 챙겨 입지 않아도 문상을 간다.

회사도 캐주얼 복장으로 출근하는 시대인 만큼 허례허식보다 시간을 내 문상을 간다는 데 의의를 둔다. 상주도 문상 형식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분위기다.

상갓집에서 밤을 지새우는 문화도 거의 사라졌다. 친척이 아니면 문상객 누구도 밤을 지새우려고 하지 않는다. 과거 장례식장 풍경 중 하나는 화투판을 벌이는 장면이다. 아주 가까운 친구나 회사 동료들은 상갓집에서 밤새도록 놀아주는 게 예의였다. 유족들도 이를 고마워했다.

하지만 지금은 큰 결례다. 유족은 유족대로 불편하고 문상객은 문상객대로 피곤한 일이다. 요즘은 가급적 밤 12시 이후에는 문상을 가지 않는다.

그 덕분에 장례식장의 술 냉장고는 꽉 차 줄지 않는다. “차를 몰고 왔다”고 사양하고 “내일 출근해야 한다”고 양해를 구하는 등 술잔조차 채우지 않고 밥만 한술 급하게 뜨고 일어서는 게 보통이다.

시신을 모시는 방법도 매장에서 화장으로 변하고 있다. 매장이 당연시됐던 국내 장례 문화가 점차 화장으로 옮겨가 이제는 10명 중 8명은 화장을 선택하고 있다.

그나마도 추모공원 시설이 수요에 미치지 못해 자리 경쟁이 치열하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수목장과 같은 자연장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한국장례문화진흥원에 따르면 2015년 사망자 총 27만5700여 명 중 화장자는 22만1886명으로 집계됐다. 화장률이 무려 80.5%다. 묘지로 쓸 만한 땅이 점차 사라지며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특히 2001년 ‘장사 등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시한부 매장제(일정 기간이 지나면 분묘를 개장한 후 화장하도록 한 것)’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

장례 문화가 매장에서 화장으로 바뀌며 성묘 문화도 점차 변하고 있다. 명절이나 한식 같은 절기에 조상의 묘를 찾아가 벌초하거나 살피는 일이 더 이상 필요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 대신 편할 때 찾아가 인사하고 명절과 같은 연휴에는 휴식을 취하거나 여행을 떠나는 등 여가 활동에 시간을 할애하는 사람들이 증가 추세다. 실제로 열흘간 이어지는 이번 추석 연휴 기간에 해외여행을 떠나는 내국인이 최대 130만 명에 육박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관광업계에 따르면 추석 연휴에 떠나는 해외여행 상품의 예약 건수는 지난해 추석 연휴의 두 배 수준이다. 항공사 주요 노선 예약률 대부분이 90%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cwy@hankyung.com


[일본에서 넘어온 상조 서비스]
횡령·파산 등 문제 상조 기업 출현까지 빼닮아

국내에 기업형 상조회(상조기업)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82년이다. 1970년대 일본에서 성행했던 기업형 상조회 시스템이 일본과 가까운 부산에 상륙했다. 이들은 동네 장의사를 빠르게 대체하며 경남 지역을 중심으로 규모를 키웠다.

1989년까지 6개에 불과했지만 1994년 16개, 1999년 20개, 2003년 31개로 서서히 늘어났다. 특히 2004년에는 기업형 상조회 시장이 급성장해 전국을 네트워크화한 대형 상조 기업을 비롯해 전국에 100여 개의 상조 회사가 설립됐다.

호황기는 2013년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영세하거나 부실이 심각한 상조 회사들이 폐업하면서 가입했던 소비자들의 피해 사례가 속출했고 이후에는 상조 기업의 통폐합 등이 이뤄져 176개(올해 6월 기준)의 회사가 영업 중이다.

이런 국내 기업형 상조회의 변화 과정은 1940년대 말 최초의 상조회가 만들어 진 이후 1970년대 기업형 상조회가 성행했던 일본의 역사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다.

당초 일본에서의 상조회는 지역 구성원을 중심으로 장례 용품을 돌려쓰는 목적으로 설립됐지만 점차 상업화·기업화되면서 이익을 목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는 보험업계와 다단계 기업들까지 상조 사업에 뛰어들면서 절정을 맞았지만 한국과 비슷한 부실·불법 상조 회사들이 잠적하거나 파산해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1973년 상조회를 ‘선불식 특정 거래업’으로 규정하고 쿨링 오프 제도(일정 기간 이내 소비자가 계약을 취소하면 계약금을 다시 받을 수 있도록 한 제도) 도입, 초과 비용 징수에 대한 규정, 납입금 보존 조치 등 할부 판매법에 의한 규제를 강력히 시행함으로써 투명한 상조회 만들기에 나섰다.

지금은 일본 국민의 약 80%가 기업형 상조 회사의 장례 대행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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