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혁신성장의 조건 ④기업가 정신]
기업가정신지수 30년 새 ‘반 토막’…대기업·중소기업 이중적 기업 정책 바꿔야
청년의 꿈이 공무원인 나라엔 미래 없다
(사진)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빌딩숲. /한국경제신문

[한경비즈니스=최은석 기자] 6·25전쟁 당시 유엔군 사령관이던 맥아더 장군은 “한국이 전쟁에서 회복되려면 최소 100년이 걸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기적을 일궈 냈다. 그로부터 50여 년이 지난 현재 대한민국은 저개발 농업국가에서 근대적 산업국가로 기적처럼 변신했다.

일례로 경제개발 계획이 추진되기 직전인 1961년만 해도 필리핀은 우리보다 잘사는 선진국이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당시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91.6달러, 필리핀은 260.2달러였다.

올해 한국의 1인당 GDP는 2만9115달러 규모로 성장했다. 필리핀은 3102달러에 그친 상태다.

◆기업 활동에 대한 과한 규제가 원인

한국 경제의 기적은 우리 국민의 높은 근면성과 교육열 덕분이었다. 창업 1세대의 기업가 정신도 한국 경제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기업가 정신은 경제 발전과 사회 발전에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산업화에 필요한 기술·자본·자원 등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한국이 선진국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진취적 기업가 정신이 왕성하게 발현됐기 때문이다.

한국이 향후 10대 경제 대국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기업가 정신의 지속적 확산이 필수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황인학 한국기업법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이 한국경제연구원 재임 중이던 올해 3월 펴낸 ‘2016년 한국의 기업가정신 지수 추정’ 보고서에 따르면 1987년 219.9였던 한국의 기업가정신 종합지수는 2014년 86.1로 ‘반 토막’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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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 윤석표 팀장

지수가 가장 낮았던 때는 글로벌 금융 위기가 터진 2009년(83.8)이었다. 2014년은 역대 둘째로 낮은 수준이다.

한국의 기업가정신지수는 △경제활동참가율 △수출 증감률 △인구 10만 명당 사업체 수 △300명 이상 대규모 사업체 비율 △GDP 대비 설비·연구개발 투자 비율 △법안 가결률 △공무원 경쟁률(9급) 등 총 12개 지표를 기준으로 산정한 결과다.

황 수석연구위원은 “기업가정신지수가 50% 이상 하락한 데에는 반기업 정서 확산 등 기업·기업가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규제 부담 등 제도 부문 경쟁력의 저하, 공공 부문의 기업가 정신 미흡 등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기업가 정신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인은 공공 부문의 부진에 있다. 기업 활동에 대한 규제는 민간의 창의적이고 융·복합적인 기업가 정신을 해치는 원인으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5대 국회(1996년 5월 30일~2000년 5월 29일)에서 1951건에 그쳤던 법안 발의 건수는 17대 국회에서 7489건으로 늘었고 19대 국회(2012년 5월 30일~2016년 5월 29일) 들어선 1만7757건으로 10여 년 만에 10배 가까이 급증했다.

법안 가결률은 15대 국회 57.4%에서 17대 국회 25.5%, 19대 국회 때 15%로 급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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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수석연구위원은 “정치인이 입법 과정에서 정치적 소득을 위해 경제적 자유를 제한하는 규제 법령을 과다하게 생산하고 있다”며 “법치의 진정한 의미는 법률 제정 및 집행을 통해 국가를 비롯한 제삼자로부터 국민의 재산과 경제적 자유를 보호하는 것이지만 최근의 입법 경향은 법률에 의한 통치로 오·남용되는 추세”라고 지적했다.

기업가 정신 쇠퇴의 단편을 볼 수 있는 지표 중 하나는 공무원 경쟁률이다. 공무원 경쟁률(9급 기준)은 2013년 72 대 1로 1989년 14 대 1에 비해 크게 상승했다. 기업가 정신을 통한 창업보다 안정적 직업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해진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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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한국의 상황은 이미 해외에서도 눈여겨보고 있는 변화다.

세계적 투자가인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은 올해 8월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한국 청년은 대부분이 공무원을 꿈꾸는데 이런 사례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며 “내가 걱정하는 것은 앞으로 한국의 인구가 줄고 빚이 점점 느는데 모든 사람이 공무원이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경제는 정체돼 있고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며 “현재로선 투자할 의사가 없다”고 강조했다.

◆생계형 창업 비율 지나치게 높아

쇠퇴해 가는 기업가 정신과 관련한 또 다른 문제는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이나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사례가 갈수록 줄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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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종업원 10인 이상 사업체 수는 1960년대 1만500여 곳에서 1980년대 3만5000여 곳, 2000년대 5만7000여 곳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하지만 전체 사업체(종업원 10인 이상) 중 종업원 300인 이상의 대규모 사업체의 비율은 1970년대 5%까지 상승했지만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해 2000년대에는 1%로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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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수석연구위원은 “중소기업은 정부 등의 지원과 보호, 동정을 받지만 대기업이 되면 지원이 끊기는 것은 물론 사회적 질시와 비판, 규제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라며 “기업들에 나타나는 이른바 ‘피터팬 신드롬’의 원인도 대기업은 규제하고 중소기업은 지원하는 이중적 기업 정책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국제적으로 봤을 때도 한국의 기업가 정신은 경쟁국 대비 저조한 수준이다.

세계기업가정신발전기구(GEDI)가 발표한 2017년 글로벌 기업가정신지수(GEI)에 따르면 한국의 GEI 순위는 137개국 중 27위이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23위로 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반면 일본은 지난해 30위에서 올해 25위로 상승하며 한국을 추월했다. GEI 순위는 미국·스위스·캐나다·스웨덴·덴마크·아이슬란드·호주·영국·아일랜드·네덜란드 등의 순이다. 한국의 순위는 일본은 물론 대만(16위)보다도 낮다.

한국의 초기 창업 활동(TEA)을 살펴봤을 때 기회 추구 창업보다 생계형 창업의 비율이 높은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한국의 TEA에서 생계형 창업(NDEA)이 차지하는 비율은 36.2%로, 세계 주요국에 비해 가장 높은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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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 창업의 비율이 90% 이상 높은 나라는 노르웨이(95.2%)·룩셈부르크(94.2%)·스위스(92.7%)·네덜란드(92.5%)·싱가포르(91.6%)·스웨덴(90.2%) 등 주로 강소국으로 분류되는 국가들이다.

황 수석연구위원은 “생계형 창업은 마땅한 대안이 없어 도소매·음식업 등을 시작하거나 소득세를 회피하기 위해 법인 설립을 할 수도 있는 만큼 모든 창업이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며 “생계형 창업 비율이 높은 나라일수록 국민소득은 낮다”고 말했다

choie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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