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면세점 현 주소]
과다출점에 中 사드보복 겹치고 운용비용 증가 ‘삼중고’
'황금알'에서 '미운오리'로 전락한 면세점
(사진)중국의 사드 보복 조치로 유커가 급감한 서울 시내 한 면세점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한국경제신문)

(편집자 주/) 한국 면세점의 경쟁력은 단연 독보적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면세 시장을 갖고 있고 다양한 글로벌 브랜드의 상품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매년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글로벌 면세 시장에서 10년 가까이 점유율 1위를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보복에 따른 실적 감소와 경쟁 심화, 정부의 규제 강화 움직임까지…. 잇단 악재가 면세점업계를 덮치면서 견고하게만 보였던 ‘면세 강국’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

불합리한 규제를 철폐하고 면세 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장기적 계획 마련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 ‘명약관화(明若觀火)’인 듯했다. 면세점이 황금 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것이라는 전망은 서울 시내 면세점 입찰 경쟁이 치열할 때만 해도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였다. 이때만 해도 신규 사업권을 차지하기 위한 기업들의 경쟁은 그야말로 ‘혈투’를 방불케 했다.

온통 장밋빛으로 보였던 면세점업계에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부터다. 사업권을 남발한 탓일까. 서울 시내 면세점이 포화 상태에 이르며 예상보다 매출의 성장세가 더뎠다.

여기에 중국이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보복의 일환으로 한국 단체 관광 규제에 나서자 면세점업계는 생각지도 않았던 장애물까지 만나게 됐다.

◆3분기 실적 회복됐지만 고민은 여전

다행히 시간은 면세점업계에서도 ‘약’이 되는 모양이다. 올 초만 해도 급감했던 중국인 여행객들이 다시 한국을 찾으며 면세점업계의 3분기 실적이 다시 기지개를 켤 수 있게 됐다.

9월 국내 면세점 매출액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9월 면세점업계의 총매출액은 12억3226만 달러(약 1조4000억원)로 8월 11억7904만 달러(약 1조3500억원)에서 4.5% 증가했다. 이는 최대 기록을 경신한 수치다.

협회는 이에 대해 중국의 사드 보복 직후 급감한 외국인 관광객 수가 꾸준한 회복세를 보였고 10월 초 ‘황금연휴’의 영향도 있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분위기를 타고 면세점 업체들은 모처럼 실적 호조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성준원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3분기 국내 면세점 매출액은 전년 동기보다 20.5% 증가한 33억9000만 달러로 기존 추정치를 웃돌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4분기에도 국내 면세점 매출액이 17% 이상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숨을 고를 수 있게 됐지만 면세점들은 단순한 실적 개선보다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안고 있다. 우선 수익성 악화가 발목을 잡는다. 표면적 실적은 향상됐지만 마케팅 비용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서울 시내 A면세점에 근무하는 한 직원은 “사드 보복 이후 급감했던 중국인 관광객들의 방문이 다소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면서도 “하지만 단체 관광객이나 개인 관광객이 늘었다기보다 ‘다이거우(보따리상)’들이 국내 면세점을 다시 찾기 시작했다는 게 눈에 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여행사를 통해 면세점을 방문하는 중국 보따리상들은 국내 면세점을 먹여 살리는 ‘큰손’이다. 면세점은 이러한 보따리상을 끌어오기 위해 여행사에 거액의 송객 수수료를 지불하며 영업비용을 지출하고 있다.

면세점들은 국내 고객을 위한 마케팅도 활발히 실시했다. 하지만 시내 면세점은 국내 고객들에게 여전히 외면 받고 있다. 한국면세점협회에 따르면 9월 기준 내국인 고객의 면세점 매출액은 전체 매출액의 4분의 1 정도로 많지 않다.

이마저도 시내 면세점을 향한 발길이 아니다. 또 다른 서울 시내 면세점에 근무하는 직원은 “국내 고객은 사드 보복 이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방문 손님이 매우 적다. 국내 고객들은 인터넷 면세점을 주로 이용한다”고 설명했다.

올해 면세점을 더욱 울상 짓게 한 것은 최대 20배까지 오른 ‘특허 수수료’다. 관세법 개정으로 면세점 업체가 내야 할 특허 수수료가 매출 대비 0.05%에서 1%로 인상된 것이다.

면세점업계는 이에 대해 큰 부담감을 나타냈고 기획재정부는 업황이 어려워진 점을 고려해 인상된 특허 수수료의 반영을 미뤄 주기로 했다.

면세점을 운영하는 유통 기업 관계자는 “최근에 특허 수수료를 포함해 면세점을 둘러싼 규제가 더욱 심해졌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 관계자는 “골목상권 보호를 위한 법들이 계속 발의되는데 정부가 무조건적으로 면세점에 규제를 적용하기보다 국제 경쟁력을 키우는 데 힘을 실어줬으면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황금알'에서 '미운오리'로 전락한 면세점
(사진)현대백화점 면세점은 연말로 예정됐던 개장 시점을 2019년 1월까지 미룰 수 있게 됐다. 신규 면세점이 들어설 현대백화점 무역센터점. (/한국경제신문)

◆차일피일 미뤄지는 신규 면세점 개장

국내 면세점업계를 둘러싼 ‘이상 징후’는 곳곳에서 관측된다. 우선 면세점의 ‘꽃’이라고 불리는 공항 면세점의 인기가 시들하다. 국내 면세점업계 ‘1위’인 롯데면세점은 인천공항 면세점 철수를 검토하고 있다. 롯데면세점은 인천공항공사 측에 임차료 대폭 삭감을 요구하고 있는 상태다.

신세계 또한 지난해 김해공항 면세점 사업권을 반납했다. 영업 기간은 총 5년이었지만 2년여 만에 ‘백기’를 들었다. 현재 입찰이 이뤄지고 있는 제주국제공항의 공석은 한화갤러리아가 사업 포기를 결정하며 생겼다. 한화갤러리아는 지난해 7월 중국인 관광객 감소로 연 250억원의 임차료를 감당할 수 없다며 철수를 선언했다.

신규 면세점의 개장도 미뤄지고 있다. 계획대로라면 올해 연말 문을 열 예정이었던 신세계면세점 센트럴시티점과 현대백화점면세점 무역센터점의 개장이 연기됐다.

관세청 특허심사위원회는 9월 신세계면세점과 탑시티면세점은 2018년 12월 26일까지, 현대백화점 면세점은 2019년 1월 26일까지 개장 시점을 미루는 것을 허가했다.

반면 같은 시기에 신규 면세점 사업권을 따낸 롯데는 잠시 운영을 중단했던 월드타워점의 영업을 1월부터 시작한 상태다.

신규 업체들이 면세점 개장 시기를 늦춰 달라고 요청한 배경에는 중국의 사드 보복과 면세점업계의 영업 환경 악화가 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면서 사드 보복에 따른 후폭풍이 잦아들기를 기다린다는 속내다.

이에 따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9월 19일 인천국제공항 면세점을 방문해 “신규 면세점의 개장 시한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서울 시내에는 또 다른 면세점의 추가 사업권 신청 공고가 나왔다. 롯데면세점 코엑스점의 사업권 만료 기한이 올 12월 말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관세청은 11월 20일까지 사업권 신청을 받는다고 밝혔다. 하지만 열기는 예전처럼 뜨겁지 않다. 당장 연말로 예정됐던 신규 면세점들의 입점도 미뤄진 판국에 또 한 번 입찰 경쟁에 뛰어드는 게 과연 옳은지 회의적 의견이 나오고 있다.

◆사드로 난관 겪었지만 여전한 ‘유커 파워’

중국의 사드 보복에 따른 중국인 관광객의 감소는 상반기 면세점 업계를 더욱 우울하게 했다. 롯데면세점의 상반기 매출은 2조5530억원으로 전년 동기 6.6% 감소했다. 영업이익은 더 큰 폭으로 뒷걸음질쳤다. 롯데면세점의 올 상반기 영업이익은 74억원으로 전년 동기 2326억원에서 무려 96.8% 감소했다.

신세계면세점을 운영하고 있는 신세계디에프는 상반기 60억원의 적자를 봤고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가 운영하는 한화갤러리아면세점 또한 270억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했다.

큰 파도를 만난 면세점 업계는 유커(중국인 관광객) 대신 새로운 고객층을 찾으려고 분주했다. 면세점업계가 찾은 해답은 ‘고객의 국적 다변화’다.

첫째 타깃 층은 한류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는 동남아 고객이다. 롯데면세점은 6월 태국 방콕에 시내 면세점의 문을 열었다. 또 이보다 앞선 5월에는 베트남 다낭공항점을 오픈했다. 롯데면세점은 올해 새로 동남아 지역에 문을 연 매장들을 통해 베트남·인도네시아·태국 등 동남아 고객들과의 스킨십을 더 늘려갈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인 관광객들을 향한 러브콜도 이어졌다. 신라면세점은 한국을 방문하는 일본인 고객들을 위한 ‘신라인터넷면세점 일본몰’ 웹사이트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오픈했다.

신세계면세점은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아이돌그룹 ‘아이콘’의 팬미팅을 개최하며 다양한 행사를 열었다. 또 5월 초 일본의 황금연휴를 겨냥해 일본 카드 업체와 제휴, 경품 제공 프로모션을 실시했다.

면세점업계는 유커 못지않은 구매력을 갖췄다고 평가받는 중동 관광객들을 그러모으는 데도 전력을 다하고 있다. 한화갤러리아면세점은 중동 현지 에이전트와의 계약과 함께 무슬림 여행사 2곳과 송객 계약을 체결했다. 또 면세점을 찾는 중동 관광객들을 위해 63스퀘어 내 고급 레스토랑 4곳에 할랄 레스토랑 인증을 받기도 했다.

업계가 중국인 관광객이 아닌 다른 국가의 고객들을 유치하려고 애쓰고 있지만 ‘유커’에 기대는 구조는 여전하다.

10월 25일 오후 기자는 서울 시내 한 면세점을 찾았다. 여전히 중국인 관광객이 고객층의 다수를 이루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구매 규모도 남달랐다. 중국인 관광객들은 한 손에는 캐리어, 한 손에는 큰 쇼핑백을 들고 삼삼오오 면세점 곳곳을 누볐다.

특히 이들은 ‘케이 뷰티’에 관심이 많아 보였는데 한국산 화장품 매장에는 유독 손님이 붐비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 화장품 업체가 생산한 팩을 한 박스 포장해 가는 ‘큰손’들도 눈에 띄었다.

면세점 매장 직원은 “올 초만 해도 한산했었지만 중국인 관광객들이 국경절 연휴를 즈음해 많이 찾고 있어 어느 정도 회복된 것 같다. 우리의 주된 고객층은 항상 중국인이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통계 또한 이를 증명한다. 국내 면세점의 방문 고객 중 중국인의 비율은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다. 박광온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경기 수원시정)의 자료에 따르면 9월까지 중국인 고객이 올린 매출액은 6조8564억원으로 전체 면세점 매출액의 65.2%를 차지했다.

중국인의 매출 비율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2015년 56.6%에서 지난해 63.8%로 늘어난 뒤 올해 또 성장했다.

과열된 ‘유커 모시기’로 면세점 업체 스스로가 제 살 깎아먹기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단체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송객 수수료’는 면세점 운영비에서 큰 몫을 차지한다. 관세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면세점업계가 지출한 송객 수수료는 5204억원으로 나타났다.

이 중 대기업 면세점이 4906억원, 중소기업 면세점이 298억원의 수수료를 지불했다. 지난해 상반기 송객 수수료 4790억원에서 8.64% 증가한 것이다. 3분기 면세점업계가 다소 매출액의 ‘외형적’ 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송객 수수료의 지불을 늘리며 단체 관광객을 많이 끌어왔기 때문이다.

과도한 송객 수수료는 곧 수익성의 악화를 야기하고 업계의 성장을 막는다. 내부적으로도 위기를 느낀 일부 면세점은 송객 수수료율을 10% 정도 낮추기도 했다.

(돋보기) 중소면세점의 현실
◆대기업과 경쟁하랴, 관광객 모으랴…울상 짓는 중소 면세점

국내 최초로 설립된 시내 면세점은 어디일까. 정답은 광화문에 있는 ‘동화면세점’이다. 1973년 서울 종로구 광화문빌딩에 문을 연 동화면세점은 이른바 3대 명품이라고 불리는 샤넬·루이비통·에르메스를 입점시키며 중견 면세점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 이 동화면세점이 호텔신라와 때 아닌 갈등에 휩싸였다. 동화면세점의 담보 주식을 둘러싸고 동화면세점 최대 주주인 김기병 롯데관광개발 회장과 호텔신라가 소송전에 돌입한 것이다.

호텔신라 측은 김 회장을 상대로 주식 매매 대금 청구 소송을 냈다. 김 회장은 이를 동화면세점 주식으로 갚겠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곧 동화면세점 경영권을 둘러싸고 양측이 서로 ‘네가 가지라’며 미루는 형국이다.

최초의 면세점인 동화면세점이 직면한 상황은 현재 어려움에 처한 중견·중소 면세점의 상황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현재 한국의 사전면세점(duty free : 관세·부가세 등이 부과되기 전의 보세 가격으로 판매하는 면세점)은 50곳이다. 이 중 대기업, 중소·중견업체, 공기업이 운영하는 면세점은 각각 19곳, 28곳, 3곳이다.

관세청은 중소·중견기업에도 면세점 운영권을 주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SM면세점·탑시티면세점이 중소·중견기업 몫으로 사업권을 얻을 수 있었다. 2012년 발의된 관세법 개정안 또한 특정 대기업에 면세 사업권이 영구적으로 가는 것을 막고 중견·중소기업에 기회를 주기 위해 마련됐다.

하지만 중견·중소 면세점은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우선 서울 시내에만 13곳의 면세점이 문을 열며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

또 입점 품목이 중요한 면세점업에서 명품 브랜드를 유치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인사동에 입점한 SM면세점은 지난해 영업 적자만 279억원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송객 수수료에서도 중소 면세점의 부담은 더 크기만 하다. 대기업 면세점의 송객 수수료율이 평균 20.1%인 반면 중소·중견 면세점의 수수료율은 26.1%로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위 말하는 ‘브랜드 파워’에서 대기업 면세점들에 뒤처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고가의 송객 수수료로 관광객을 모을 수밖에 없다는 속내다.

m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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