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면세점업계 살릴 방안은]
‘5년 허가제’ 재검토… 수수료 부담 낮춰야
전문가 4人 제시한 면세점업계 인공호흡법
(사진)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9월 19일 오전 대통령 방미 수행을 위해 출국하기에 앞서 인천공항 출국장 면세점을 방문, 업계 현황을 청취하고 있다.(/한국경제신문)

(편집자 주/) 한국 면세점의 경쟁력은 단연 독보적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면세 시장을 갖고 있고 다양한 글로벌 브랜드의 상품을 저렴하게 판매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매년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글로벌 면세 시장에서 10년 가까이 점유율 1위를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보복에 따른 실적 감소와 경쟁 심화, 정부의 규제 강화 움직임까지…. 잇단 악재가 면세점업계를 덮치면서 견고하게만 보였던 ‘면세 강국’의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

불합리한 규제를 철폐하고 면세 산업을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장기적 계획 마련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 1979년 한국 땅에 ‘면세업’이 싹을 틔운 후 약 40년이 지났다. 이제 한국은 세계 면세점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명실상부한 ‘면세 선진국’으로 성장했다.

2015년 기준 한국의 세계 면세점 시장점유율은 14.4%로 2위인 중국(7.3%)을 두 배 차이로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부침도 있지만 면세점업은 신성장 동력으로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현시점에서 국내 면세점업계가 가진 문제점을 분석하고 고쳐 나가야만 한국 경제의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다.
전문가 4人 제시한 면세점업계 인공호흡법
◆‘면세점법’, 근본적 고민 필요해

현재 전국에 있는 면세점(사전면세점 기준)은 총 50곳이다. 2015년 초만 해도 6곳이던 서울 시내 면세점은 13곳으로 불어났다.

과연 면세점 숫자는 적절한 것일까. 전문가들은 면세점 업장 수에 문제가 있다는 공통적인 의견을 내놓았다.

성준원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특정 지역, 즉 서울에 업체들이 몰려 있는 것이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성 애널리스트는 “현시점에서 본다면 포화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지난 정부에서 서울 지역 면세점 라이선스를 남발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앞으로 개장을 앞두고 있는 현대백화점 코엑스점과 신세계 반포점이 문을 연 후 추가 상황을 예의 주시한 다음 5곳 정도는 없애도 된다는 의견을 덧붙이기도 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전 한국유통학회장) 또한 “면세점 업장 수는 ‘포화 상태’”라고 단언했다.

면세점 수를 정부가 제한하는 제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전문가도 있다. 안승호 숭실대 교수(전 한국유통학회장)는 “면세점은 자율 경쟁을 통해 수요에 따라 탄력적으로 업장 개수가 정해져야 한다. 현재 50곳이 적정한지 아닌지는 향후 시장 상황에 따라 판가름 날 것”이라고 말했다.

정재완 한남대 교수(전 한국관세학회장)는 “특허 제도는 유지하되 면세점 수를 정부가 제한할 것이 아니라 기업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즉 면세점 사업에 대한 진입 장벽 자체를 제거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문재인 정부 인선의 ‘마지막 조각’인 중소기업벤처부 장관에 홍종학 가천대 명예교수가 10월 23일 지명됐다. 홍종학 장관 후보자는 면세점업계에서도 유명한 인물이다. 국회의원 시절 5년마다 면세점 사업권 갱신을 받도록 한 관세법 개정안을 발의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당시 홍 후보자는 “기존 체제에서는 롯데·신라 등 대기업에 영구적으로 면세점 사업 특혜가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개정안의 취지를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면세점 운영의 토대가 된 이 법안은 많은 부작용을 안고 있다. 기업이 5년마다 재심사를 준비하며 시간 및 비용을 많이 소요하며 전문성을 기르는 데도 방해가 된다는 것. 또한 면세점 임직원들은 5년마다 고용 불안을 겪어야 한다는 점 또한 약점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현행 제도에 손 볼 부분은 분명히 존재한다고 말했다. 안승호 교수는 “면세점 사업권과 관련해 이 업장이 위기에 얼마만큼 대처할 수 있는지, 재고 처리나 해외 영업장이 잘 갖춰져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용구 교수는 영업 기한을 손봐야 한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사업 기간을 보장해 줘야 업장도 안정감을 가질 수 있다. 이른바 ‘5+5’ 법안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성준원 애널리스트는 허가제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성 애널리스트는 “라이선스를 없애고 하고 싶은 회사들을 모두 무한 경쟁 체제로 돌리는 것이 오히려 낫다. 현재는 라이선스 발급이 일종의 보호막으로 작동하고 있어 문제를 낳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 4人 제시한 면세점업계 인공호흡법
(사진)24년의 역사를 지녔던 SK네트웍스의 워커힐 면세점은 특허 심사에서 탈락해 지난해 결국 문을 닫았다.(/연합뉴스)

◆정부·업계, 양쪽의 노력 동반돼야

그동안 면세점 허가 제도는 ‘밀실 행정’, ‘깜깜이 심사’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정부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제도 개선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그 첫째 결과물로 면세점 제도 개선안을 9월 27일 발표했다. 우선 특허 심사의 투명성 및 공정성을 제고하기 위해 특허 심사 거버넌스 전면 개편, 심사 절차 투명성 강화책을 내놓았다.

특허심사위원회를 전원 민간위원 체제로 전환해 객관성과 독립성을 제고한다. ‘불투명 심사’라고 비판받았던 점을 고려해 위원 명단, 평가 결과를 전면적으로 공개하고 전문 분야별 평가를 도입해 제도를 개선한다. 시민사회 등 외부 통제 방안을 강화하기 위해 ‘청렴옴부즈만 도입’ 등 외부 감시와 자체 감사 등 내부 감시도 양면으로 실시한다.

현행 면세점 제도는 사업권 발급 시기와 업장의 수를 정부가 자의적으로 해석해 발급을 결정해 왔다. 또 특허제가 부정 및 비리의 근본 원인이라는 비판도 피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기재부는 사업권 발급 요건이나 수를 법령으로 준칙화하고 특허심사위원회의 역할을 강화하는 방안을 추가 검토한다.

또 부정 발급 사업권에 대한 제재 강화와 사업권 기간 갱신 및 송객 수수료 문제 또한 향후 태스크포스(TF)를 통해 계속 논의한다. 사업자 선정 방식 또한 등록제나 경매제 등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논의해야 할 부분은 여전히 남아 있다. 면세점들은 관세법 개정으로 올해부터 매출액 2000억원 이하의 업체 0.1%, 2000억원에서 1조원 이하의 업체 0.5%, 1조원 초과 업체는 1%의 특허 수수료율을 부과 받게 됐다.

그 결과 44억원이었던 면세점업계의 전체 특허 수수료는 553억원까지 치솟게 됐다. 성 애널리스트는 현재 면세점업계에 닥친 가장 시급한 문제는 ‘특허 수수료’라고 지적했다. 한국처럼 특허 수수료를 많이 부과하는 나라는 없고 업체에 큰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서용구 교수는 면세점업을 바라보는 시선이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면세점 관련법의 중점이 ‘허가’라면 이제는 ‘육성’ 기조를 앞세워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업계 스스로도 반성해야 한다. 정재완 교수는 단체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면세점이 여행사 등에 지불하는 송객 수수료가 시급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송객 수수료에 대한 적절한 기준을 마련하고 만약 이를 어기는 업체에는 불이익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업체 스스로가 송객 수수료에 발목이 잡힐 수 있다는 것이다.

분명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보복은 면세점업계가 예측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하지만 한 번 경험한 것은 더 이상 변수로 분류할 수 없다. 앞으로는 면세점업계가 이러한 ‘돌발 상황’에도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체력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조언이었다.

안승호 교수는 “중국의 사드 보복처럼 외부적으로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도 버틸 수 있는 탄탄한 재무구조를 가진 업체가 면세점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변수 대처할 수 있는 능력 키워라

성준원 애널리스트는 “중국 사드 보복과 같은 사태가 발생했을 때 사실 국내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 사전면세점들은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면세점들은 해외 진출에 속도를 내 매출 발생 지역을 다변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용구 교수는 “면세점을 찾는 고객들의 국적을 다변화해야 하고 업계 스스로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시나리오를 미리 그려 놓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중소 면세점들은 업계의 불황과 동시에 대기업 면세점들과 경쟁을 벌여야 하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전체 면세점 수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중소·중견 면세점들은 어떠한 전략을 취해야 할지도 들어봤다.

안승호 교수는 중소·중견 면세점에 ‘차별화’를 주문했다. 명품·화장품·패션잡화·주류 등 기존 면세점들이 취급하는 항목을 두고 대기업 면세점들과 경쟁하는 것은 힘이 부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안 교수는 “중소 면세점은 한 가지 품목에 집중하든가 혹은 특정 고객층에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안 등 여러 가지 차별화를 줄 수 있는 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준원 애널리스트는 서울 시내에서 중소 면세점이 경쟁력을 갖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차라리 중소 면세점은 관광객의 수가 다소 적은 곳에 출점해 그곳의 고객을 그러모으는 방안이 낫다고 추천했다.

정재완 교수는 중소기업이 면세점업에 진출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현재 서울 시내 면세점 사업권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나눠 갖고 있다.

정 교수는 “면세점 제도를 통해 중소기업에 힘을 실어 주고 싶다면 직접 면세점을 운영하는 방안이 아닌 다른 방법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용구 교수는 사전면세점을 네 가지 종류로 나눠 지원법이나 육성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네 가지 종류는 대기업 시내 면세점, 대기업의 공항 면세점, 중소·중견기업의 시내 면세점, 중소·중견기업의 공항 및 항만 면세점이다. 운영 기업의 규모와 입점 위치에 따라 각각 다른 운영 정책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m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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