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
독일 2사의 수입차 시장점유율 55%
푸조·피아트 등 일부 브랜드는 ‘주춤’

아우디·폭스바겐 ‘빈자리’ 벤츠·BMW·도요타가 채웠다
‘75억5707만6000달러.’ 올해 1~9월까지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가 집계한 국내 수입차(완성차) 수입액이다.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약 8조4450억원이다. 월평균 수입액(9383억원)을 감안하면 올해 10조원 돌파는 무난한 상황이다. 2015년 국내 수입차 시장 사상 처음으로 10조원이 넘은 이후 3년 연속이다.

‘디젤게이트’가 국내 수입차 시장을 강타하면서 지난해 성장률이 주춤했지만 올해는 2015년을 뛰어넘는 실적을 보이고 있다. 물론 실적만 놓고 보면 2015·2016년과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올해는 수입차 시장 ‘빅4’였던 아우디·폭스바겐의 실적이 거의 전무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최대 실적을 올린 셈이다. 아우디·폭스바겐은 지난해 8월 소음·배출가스 인증 서류 조작 혐의로 판매 금지 처분을 받아 올해 실적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이 같은 실적을 올린 것은 수입차 1·2위인 메르세데스-벤츠와 BMW의 판매량이 전년 대비 크게 치솟은 데다 영국·미국·일본에서의 수입량이 늘어나며 전체 감소 폭을 크게 줄였기 때문이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1~10월 메르세데스-벤츠의 판매 대수는 5만8606대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4만4994대)에 비해 30% 증가했다.

이에 따라 메르세데스-벤츠는 한국 수입차 역사상 단일 브랜드 최다 판매 기록을 수립했던 지난해 연간 판매량(5만6343대)을 불과 10개월 만에 또 넘어섰다.

지금 추세대로라면 메르세데스-벤츠는 올해 연간 판매 실적이 7만 대를 돌파하는 것도 가능해 보인다. 30여 년 한국 수입차 역사에서 연 판매 대수 7만 대 고지를 돌파한 업체는 전무했다.

수입차업계 2위 BMW도 마찬가지다. 1~10월 BMW의 판매 대수(4만5990대)가 전년 대비 23.3% 증가하면서 지난해 연간 판매 기록(4만8459대)에 거의 근접했다. 이대로라면 BMW는 연말까지 5만5200여 대를 판매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자사 역대 최대 판매 기록을 세웠던 BMW도 기록 경신이 가능한 셈이다. 내수 시장에서 복수의 수입차 제조사가 같은 해 동시에 5만 대 이상 판매한 적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다.

10월 말 현재 메르세데스-벤츠(30.8%)와 BMW(20.1%)는 한국 수입차 시장의 과반을 점유하고 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양 사의 점유율 합계는 44.3%(벤츠 24.2%, BMW 20.1%)였다. 미니·롤스로이스까지 포함하면 양 사의 한국 수입차 시장점유율은 55%까지 상승한다.
아우디·폭스바겐 ‘빈자리’ 벤츠·BMW·도요타가 채웠다
◆ 하이브리드 앞세운 도요타의 3위 등극

아우디·폭스바겐의 빈자리를 채우는 데에는 가성비와 실용성을 갖춘 일본차도 한몫했다.

도요타·렉서스·혼다·닛산·인피니티 등 일본차 점유율은 18.9%(1~10월 누적 판매 기준)로 전년 동기보다 3.5%포인트 상승했다. 이미 지난해 판매량 3만5429대를 넘어선 3만5977대를 팔아 치웠다.

일본차 브랜드들의 약진은 하이브리드가 끌어올렸다. 올해 꾸준히 수입차 베스트셀링에 이름을 올린 렉서스의 ES300h를 대표로 프리우스·캠리·NX300h 등 하이브리드 모델의 활약이 눈에 띄었다.

그간 일본차들은 다른 수입차 모델 대비 디자인이나 성능면에서 차별화된 매력이 없다는 국내 소비자들의 평가를 받아 왔다.

하지만 환경 이슈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친환경성·실용성·가성비 등이 재평가되고 있다. 여기에 일본차 브랜드들의 적극적인 신차 투입과 마케팅도 판매량 확대에 힘을 보탰다.

올해는 지난해 처음 국내시장에서 1만 대 판매를 넘어선 렉서스를 비롯해 도요타·혼다 등 주요 브랜드들이 1만 대 이상의 판매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수입차 시장이 20만 대 규모로 성장하며 다양한 국가, 브랜드의 모델들이 성장하고 있고 그 가운데서도 독일차 브랜드가 유독 국내 소비자들의 높은 지지를 바탕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본차는 그간 글로벌 시장에서의 선전에 비해 국내 판매량이 이에 못 미쳤지만 올해 하이브리드 시장의 성장과 함께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았다”고 덧붙였다.
아우디·폭스바겐 ‘빈자리’ 벤츠·BMW·도요타가 채웠다
◆ 고급차 영국-실용차 미국의 성장

독일과 일본의 수입차 외에 국내 수입되는 다른 국가의 차들도 선전이 펼쳐지고 있다. 우선 영국의 약진이 눈에 띈다.

재규어·랜드로버, 미니, 벤틀리, 롤스로이스 등의 영국 수입차들은 올해 10월까지 1만9492대를 팔아 국가별 판매량에서 독일과 일본의 뒤를 이은 3위를 차지했다.

특히 고가의 브랜드들을 다수 보유한 영국 수입차의 성장은 수입차가 대중화되면서 더 고급스럽고 차별화된 모델을 원하는 국내 소비자들이 많아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남들에게 보이는 것을 중시해 물건의 가격이 비싸질수록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현상인 ‘베블런 효과(Veblen effect)’가 수입차 시장에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3대 명차로 꼽히는 롤스로이스는 올해 10월까지 72대를 판매해 지난해 연간 판매량(53대)을 넘어섰다. 평균 4억원이 넘는 차량 가격에도 불구하고 월평균 7대가 팔려 나간 셈이다.
영국의 고가 차량 브랜드인 벤틀리 역시 10월까지 186대를 판매해 지난해 총판매량 170대를 이미 넘어섰다.

하지만 영국 수입차의 인기를 이끈 것은 역시 재규어·랜드로버였다. 고급 수입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대명사인 랜드로버는 올해 1만 대 이상 판매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수입차 중 1만 대 이상 판매된 브랜드는 메르세데스-벤츠·BMW·렉서스밖에 없다. 랜드로버는 올해 10월까지 판매 대수가 8865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판매량이 75.5% 늘었다. 재규어 역시 10월 현재 3442대를 판매해 지난해 총판매량 3797대를 가뿐히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포드·크라이슬러·캐딜락의 브랜드를 보유한 미국 수입차의 성장도 계속되고 있다. 올해 10월까지 1만6368대를 판매해 최대 판매량을 기록했던 지난해 1만8281대를 넘어설 전망이다. 미국 수입차의 판매는 포드가 견인했다. 10월까지 9045대를 판매해 연말까지 지난해 총판매량 1만1220대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일부 브랜드 중에서는 기대에 못 미치는 실적을 보이는 곳도 있다. ‘2008’로 인기를 끌었던 푸조는 올해 10월까지 3139대를 판매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판매량이 47.1% 줄어들었다. 수입차 다변화 시대의 첨병 역할을 해줄 것으로 주목받았던 시트로엥·캐딜락·피아트 등 브랜드는 시장점유율이 1%를 넘지 못하고 있다.
아우디·폭스바겐 ‘빈자리’ 벤츠·BMW·도요타가 채웠다
◆ 디젤차 넘어선 가솔린차의 질주

가솔린차의 질주도 무섭다. 디젤게이트 파문으로 최근 몇 년 동안 수입차 시장의 성장을 이끌었던 디젤차의 시장점유율이 내리막으로 돌아선 가운데 올 들어 가솔린 자동차의 판매량이 확대되면서 입지가 점차 단단해지고 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올해 10월 수입차 신규 등록 차량 가운데 가솔린차의 비율은 49.7%로 전체 수입차 판매에 절반 수준에 근접했다.

반면 디젤차는 39.7%의 점유율로 떨어지면서 가솔린차에 전세를 역전 당했다. 그간 효율적인 연비를 내세워 수입차 시장을 주도했던 디젤차는 최근 급격히 점유율이 하락하고 있다.

2006년 10.6%에 불과했던 디젤차 점유율은 독일차를 중심으로 주요 디젤 모델들의 판매가 급격히 늘면서 수입차 시장 성장의 정점을 찍은 2015년 시장점유율 68.8%를 차지했다. 새로 판매된 수입차 10대 중 7대가 디젤차였던 셈이다.

하지만 이후 폭스바겐 배출 가스 조작 사태로 인한 디젤게이트가 시장을 강타하면서 디젤차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으로 바뀌고 환경 규제 강화 추세에 따라 점차 디젤차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디젤차의 점유율은 디젤게이트 직후인 지난해 58.7%로 떨어진데 이어 올 상반기에는 50.1%로 감소했고 급기야 10월 한 달 동안 신규 등록 차량 가운데는 40% 이하로 떨어졌다.

올해 10월까지 디젤차 누적 판매량은 9만1659대로, 전년 동기 11만1716대보다 18% 감소했고 누적 점유율 역시 48.1%로 전년 동기 60.1%보다 무려 12%포인트 하락하는 등 가파른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반대로 올 10월까지 가솔린 차량의 판매량은 전년 동기보다 30.3% 증가한 8만306대를 기록했다. 가솔린 시장에서는 중형 세단 모델을 중심으로 볼륨 확대가 눈에 띈다.

업계 관계자는 “가솔린차는 뛰어난 정숙성과 경제성 때문에 소비자들의 선호가 높다”며 “특히 디젤차의 인기가 한풀 꺾인 데다 정부의 디젤 규제 등 악재가 더해지면서 당분간 가솔린차의 판매 성장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경비즈니스 차완용 기자 cw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