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반도체 코리아’ 업그레이드 전략]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이끄는 한국, 15년째 글로벌 메모리 점유율 1위
일본의 조롱거리에서 ‘반도체 불패 신화’ 주역으로
(사진) 삼성전자 반도체 핵심 두뇌가 집결한 경기도 화성 세쌍둥이빌딩 부품연구동(DSR). /삼성전자 제공

[한경비즈니스=최은석 기자] 한국의 반도체 산업이 역대 최고의 실적을 기록했다. 삼성전자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53조6000억원에 달한다. 그 결과 영원한 반도체 1등 기업 인텔을 뛰어넘어 세계 반도체 산업의 맹주가 됐다.

하지만 반도체 산업을 주름잡는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은 연이은 초대형 인수·합병(M&A)을 통해 합종연횡을 숨 가쁘게 이어 가고 있다. 약한 부분은 보완하고 강한 부분은 더 키운다는 전략이다.

특히 중국은 ‘반도체 굴기’를 외치며 판을 흔들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앞두고 반도체 시장의 성장은 더욱 가팔라질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도 기존 질서를 아예 바꿔 버릴 기세로 달려가고 있다.

새로운 기회와 두려운 위협이 공존하는 반도체 산업을 분석했다.

◆삼성전자, 영업이익 ‘50조원 시대’ 열다

반도체 후공정 업체인 바른전자를 창업한 김태섭 회장은 ‘정보기술(IT)업계의 오뚜기’로 불린다. 그는 현대사회를 철기시대에 이은 ‘규석기시대’라고 부른다. 규석으로 만들어진 반도체를 도구로 사용하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김 회장은 “초연결과 융합으로 대표되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의 씨앗은 결국 반도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철기시대에는 철을 잘 다루는 국가가 세계사를 주도했지만 ‘규석기시대’에는 반도체를 잘 다루는 국가가 전 세계를 호령한다. 30여 년 전 반도체 강국 일본의 조롱거리였던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2013년 일본을 꺾고 세계시장 점유율 2위에 올랐고 메모리에서는 2003년 정상에 오른 뒤 단 한 번의 추월도 용납하지 않은 전대미문의 기록을 갖고 있다.

한국의 반도체 파워는 지난해 또 한 번 빛을 발했다. 2017년 한국의 연간 수출액은 5739억 달러였다. 이 중 반도체 수출액이 979억4000만 달러(17%)였다. 이는 1994년 한국의 전체 수출액(960억1000만 달러)보다 많은 금액이다. ‘한국 경제의 꺼지지 않는 성장 엔진’이 된 반도체 산업의 중심에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있다.
일본의 조롱거리에서 ‘반도체 불패 신화’ 주역으로
(그래픽) 윤석표 팀장

삼성전자는 지난해 매출 239조6000억원, 영업이익 53조6000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전년 대비 18.7%, 영업이익은 83.3% 증가했다. 지난해 4분기 실적은 매출 66조원, 영업이익 15조1000억원으로 분기 기준 사상 최대였다.

지난해 삼성전자가 벌어들인 영업이익은 애플은 물론 미국 실리콘밸리 혁신 기업의 상징인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39조3500억원), 세계 최대 정유회사인 엑슨모빌(26조7400억원)의 추정 실적을 훌쩍 넘어섰다.

반도체 사업은 삼성전자가 사상 최대 실적을 낸 ‘일등 공신’이다. 삼성전자는 사업부별 실적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시장에서는 반도체·부품(DS) 부문에서만 35조원 안팎의 영업이익을 거둔 것으로 추정했다. 전체 수익의 65%를 차지한다. 메모리 시황 호조가 지속되면서 수익 상승을 이끌었다. 삼성전자는 올해 말까지 호황이 유지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진출 10년 만에 오른 반도체 정상

‘성공 신화’의 출발점은 4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성전자는 1974년 세계 오일 파동으로 경영난을 겪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이를 계기로 부가가치가 높은 첨단 하이테크 산업에 진출해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게 됐다.

이 회장은 전자부문을 살릴 수 있는 길은 핵심 부품인 ‘반도체의 자급’이라는 판단 아래 1974년 12월 파산 직전이던 ‘한국반도체’를 인수했다.

한국반도체는 같은 해 1월 통신 장비 수입사였던 켐코(KEMCO)와 미국 ICII(Integrated Circuit International Inc.)가 합작해 만든 국내 최초 반도체 웨이퍼 가공 생산 업체였지만 공장 설립 과정에서 파산 위기에 처한 상태였다.

이 회장은 반도체 사업에 대한 내부의 반대 의견에도 “반도체야말로 미래의 씨앗이 될 것”이라며 과감한 투자를 감행했다. 이미 반도체 산업의 성장 궤도에 올랐던 미국과 일본에 비해 27년이나 뒤처진 출발이었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은 고전을 면하지 못했다. 자체 기술이 부족했던 게 원인이었다.

삼성전자는 1983년 5월 반도체 사업 정식 진출 선언과 함께 당시 세계 D램 시장의 주력 제품이던 64K D램 개발에 착수했다. 이에 대해 “3년 안에 실패할 것”이라는 업계의 냉소가 이어졌다.

당시 국내 반도체 사업은 반제품을 들여다 가공·조립하는 수준이었던 데다 삼성전자 역시 가전제품용 고밀도집적회로(LSI)를 간신히 생산하는 단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기적을 이뤄냈다. 제품 개발 착수 6개월 만인 1983년 12월 1일 국내 최초로 64K D램 개발에 성공하며 미국·일본에 비해 10년 이상 격차가 났던 반도체 기술을 4년으로 단축했다.

이건희 회장은 이에 대해 “반도체 사업 초기는 기술 확보가 최우선이었다”며 “거의 매주 일본에 가 반도체 기술자들을 만나 도움이 될 만한 것을 배우려고 노력했다”고 회상한 바 있다.

삼성전자는 이후 사업 진출 10년 만에 메모리 반도체 세계 정상에 오르는 등 성공 가도를 달렸다. 삼성전자는 1992년 64M 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메모리 반도체 강국인 일본의 개발 속도를 처음으로 추월했다. 1994년 256M D램, 1996년 1Gb D램을 세계 최초로 연이어 개발하면서 차세대 반도체 시장도 주도하기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2002년 D램에 이어 낸드플래시 부문에서도 세계 정상에 올랐다. 2001년 낸드플래시업계 1위인 일본 업체로부터 사업 제휴를 제안 받았지만 D램 분야에서 쌓아 온 경험을 활용해 독자 연구·개발을 추진하고 거래처를 개척한 노력의 결과였다.

당시 MP3와 디지털카메라, USB메모리 등 활용 범위가 넓고 확장성이 큰 낸드플래시 메모리가 모바일 시대의 핵심 제품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예측했던 것이 맞아떨어졌다. 삼성전자는 낸드플래시 기반 차세대 저장 장치인 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SSD) 시장에서도 업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2013년 기술의 패러다임을 바꾼 신개념 3차원 수직 구조 낸드플래시(3D Vertical NAND, 3D V낸드)를 선보이기도 했다. V낸드는 평면 낸드보다 성능·수명·생산성 등을 모두 향상시킨 제품으로, 삼성전자는 업계 최고의 성능을 갖춘 4세대(64단) 제품을 양산 중이다.
일본의 조롱거리에서 ‘반도체 불패 신화’ 주역으로
(사진) 김기남 삼성전자 사장. /삼성전자 제공

현재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을 이끄는 김기남 디바이스솔루션부문장 사장은 1981년 삼성전자 입사 후 20년 이상 메모리 반도체 고집적화의 핵심 역할을 담당하며 삼성의 메모리 반도체 1위 달성을 이끌었다.

김 사장은 모바일 중심 융·복합화와 상호 연결성 증대 등 다가올 미래 산업 변화에 대비해 반도체의 새로운 가치 창출을 위한 차세대 신기술 개발을 주도하며 1위 입지 수성의 토대를 마련하고 있다.

김 사장은 2014년 시스템 LSI사업부장을 역임하면서 세계 최초로 14나노 핀펫 공정을 적용해 모바일 시스템온칩(SoC)을 양산했다. 2016년에는 시스템 반도체업계 최초로 10나노 로직 공정을 양산하는 등 세계 일류 수준의 공정 기술 리더십을 확보하기도 했다.

◆SK하이닉스, 대규모 투자로 기술 혁신

SK하이닉스 역시 지난해 사상 최대의 영업이익을 거둬들인 것으로 추정된다.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D램 가격이 시장의 예상보다 많이 오른 덕분이다.
일본의 조롱거리에서 ‘반도체 불패 신화’ 주역으로
SK하이닉스의 2017년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사 추정치 평균)는 13조5469억원이다. 전년 대비 313.43% 늘어난 것으로 추산된다. 매출은 30조639억원으로 추정된다.

SK하이닉스는 끊임없는 기술혁신으로 세계 2위 메모리 반도체 회사로서의 위상을 지켜 나가고 있다. 2013년 사상 최초로 연구·개발에만 1조원 이상을 투입했고 2016년에는 두 배 증가한 2조억여원을 연구·개발비로 써 사상 최대 기록을 경신했다.

SK하이닉스는 이와 같은 투자를 바탕으로 시장의 흐름에 발맞춘 기술력과 제품 포트폴리오를 갖춰 나가고 있다. 모바일 시장의 주도권을 강화하기 위한 모바일 D램이 대표적이다. 2007년 전체 D램 매출에서 약 3%에 불과했던 모바일 D램 비율은 2012년 이후 30% 이상으로 확대 유지 중이다.

SK하이닉스는 빅데이터와 클라우드 확대로 급증하는 서버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고용량 DDR4 중심 서버용 제품의 경쟁력도 강화하고 있다. 다양한 응용 복합 제품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낸드플래시 솔루션 경쟁력도 강화하는 중이다.

SK하이닉스는 낸드플래시의 성능을 좌우하는 컨트롤러 개발 역량을 확보하기 위해 2013년 대만의 이노스터 컨트롤러사업부, 2014년 벨라루스의 소프텍 등을 인수했다.

◆‘치킨게임의 승자’로 거듭나다

1983년 2월 설립된 SK하이닉스(당시 현대전자)는 이듬해 12월 국내 최초로 16Kb S램 시험 생산에 성공하며 반도체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1985년 첫 반도체 조립 공장을 준공했고 1989년 창립 6년 만에 세계 반도체 시장점유율 20위권 안에 진입했다. 짧은 기간에 반도체 산업의 불모지에서 이뤄낸 가치 있는 성과였다.

현대전자의 성장세는 1990년대 중반까지 이어지면서 1995년 세계 최초로 256Mb SD램 개발에 성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발생한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로 회사는 변화를 겪게 된다. 1999년 당시 LG반도체를 흡수 합병하면서 회사의 규모를 키운 게 화근이었다. 덩치는 커졌지만 업황 악화로 유동성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당시 종합 전자회사였던 현대전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메모리 반도체 전문 기업’으로의 전환을 결정했다. 운영 중이던 메모리 반도체 이외의 사업부를 모두 매각하고 현대그룹으로부터 분리된 후 2001년 3월 하이닉스반도체로 사명을 바꿨다. 하지만 하이닉스반도체는 이 같은 조치에도 불구하고 같은 해 10월 채권단의 공동 관리하에 들어갔다.

하이닉스반도체는 이후 여러 자구책을 마련했다. 노사 협력 아래 임직원의 임금을 동결하고 순환 휴직을 실시하는 등 경영 정상화를 위한 비용 절감 활동을 전개했다. 부족한 투자 여력을 보충하기 위해 구형 장비를 개조, 신형 장비 수준의 제품을 생산하는 ‘블루칩 프로젝트’를 성공해 내기도 했다.

2003년 4월에는 ST마이크로와 플래시 메모리 분야에 대해 전략적 제휴를 하고 이듬해 2월 낸드플래시 메모리 개발에도 성공했다. D램에 한정돼 있던 사업 구조를 낸드플래시까지 확장한 것이다.

하이닉스반도체는 각고의 노력 끝에 2005년 7월 예상된 일정보다 1년 반을 앞당겨 채권단 공동 관리를 조기 졸업했다.

하지만 2008년 9월 반도체 업계에 또 한 차례의 위기가 닥쳤다. 세계금융 위기에 따른 사상 최악의 불황이 원인이었다. 불황 속에 메모리 반도체 업체 간 치킨게임이 계속됐고 키몬다와 엘피다 등 일본 업체들이 줄도산했다.

한 차례 위기를 극복한 경험이 있는 하이닉스는 둘째 위기도 무난히 이겨냈다. 임직원의 자발적 노력과 기술 경쟁력 덕이었다. 하이닉스는 오히려 치킨게임의 승자가 되면서 업계에서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는 기회로 만들었다.

이후 2012년 2월 14일 SK텔레콤이 하이닉스의 주식 인수대금 납입을 완료하면서 하이닉스는 SK그룹의 일원이 됐다. SK는 그룹의 신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었고 하이닉스는 안정적 투자와 일관성 있는 오너 중심의 책임 경영을 추진할 수 있게 된 계기였다.

국내 최대 이동통신사인 SK텔레콤과 메모리 반도체 세계 2위 기업인 하이닉스의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는 이상적 결합이었다.

‘행복날개’를 단 SK하이닉스는 곧바로 비상을 준비했다. 2012년 투자액을 3조85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0% 증액했다. SK그룹 편입 전에는 추진하기 힘들었던 공격적 투자였다.

SK하이닉스는 이를 기반으로 같은 해 6월 이탈리아의 아이디어플래시(현 SK하이닉스 유럽 기술센터)와 미국의 컨트롤러 업체인 LAMD(현 SK하이닉스 메모리솔루션센터)를 인수, 낸드플래시 개발 역량을 대폭 강화했다.

성과는 생각보다 빨리 나타났다. 2012년 2분기에 4분기 만에 영업이익이 흑자로 전환했고 이후 2013년부터 2015년까지 3년 연속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SK하이닉스의 선전을 바탕으로 SK그룹 또한 사상 최대의 수출 실적을 기록하는 등 글로벌 그룹으로서의 입지를 더욱 탄탄히 할 수 있었다.

시장을 선도하는 새로운 제품의 출시도 줄을 이었다. SK하이닉스는 2015년 4월 세계 최초로 최대 용량인 128GB DDR4 모듈을 개발해 차세대 서버 시장에서의 기술 경쟁력을 증명했다. 2017년 세계 최대 용량의 초저전력 모바일 D램인 LPDDR4X(Low Power DDR4X 모바일 D램)와 4세대 제품인 72단으로 적층한 3D 낸드 플래시를 출시하기도 했다.
일본의 조롱거리에서 ‘반도체 불패 신화’ 주역으로
(사진) 박성욱 SK하이닉스 부회장. /SK하이닉스 제공

현재 SK하이닉스를 이끄는 박성욱 부회장은 1984년 현대전자 반도체연구소 엔지니어로 입사한 이후 32년간 SK하이닉스에 근무해 왔다.

박 부회장은 회사가 위기에 처했을 때 메모리 반도체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향상시켜 동종 업체들과의 기술·생산성 격차를 크게 확대했다. 2013년 사장에 취임한 후 2015년까지 3년 연속 사상 최대 이익을 달성하는 등 SK하이닉스를 세계 2위의 메모리 반도체 회사로 이끈 주역이다. 그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1월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박 부회장은 지난해 6월 전 임직원에게 기업 문화의 근본적 혁신을 통한 딥 체인지 변화 방향을 제시했다. 그는 “반도체 슈퍼사이클과 같은 시황에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도록 전략·역량·문화 측면의 딥 체인지가 필요하다”며 기업 문화의 근본적 혁신을 강조했다.
일본의 조롱거리에서 ‘반도체 불패 신화’ 주역으로
choies@hankyung.com

[‘반도체 코리아’ 업그레이드 전략 커버 스토리 기사 인덱스]
-일본의 조롱거리에서 ‘반도체 불패 신화’ 주역으로
-인텔, 이스라엘 모빌아이 인수…퀄컴도 50조원 M&A 베팅
-공급부족 ‘축제’는 끝났다?…고개 드는 경기정점론
-차세대 칩 전쟁 “AI 반도체를 잡아라”
-‘2030년 위기설’…‘반도체 코리아’ 업그레이드 전략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