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Part3 미리보는 '블록체인 경제']
전하진 한국블록체인협회 자율규제위원장 “거래소도 분산 신뢰 기능 갖춰야”

[한경비즈니스=정채희 기자] 한국블록체인협회가 1월 26일 공식 출범했다. 협회는 비트코인 투기 논란으로 촉발된 정부의 과도한 규제 움직임이 자칫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블록체인 경쟁에서 한국이 뒤처지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협회에서 이용자 보호를 위한 자율규제 업무를 담당하는 전하진 한국블록체인협회 자율규제위원장은 “정부의 암호화폐 공개(ICO) 금지로 ‘제2의 이해진·김정주’에 투자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전 위원장은 한글과컴퓨터 대표 출신으로 2000년대 초반 인터넷 혁명을 이끈 인물이다.
“ICO 금지, ‘제2의 이해진’에 투자기회 막는 것”
-어떻게 블록체인협회에 참여하게 됐나요.

“지난해 12월 블록체인협회장인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장관(현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회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어요.

‘당신이 적임자 같은데 자율규제위원장을 맡아 줬으면 좋겠다’는 의견이었죠. 이후 진 협회장과의 면담, 김진화 한국블록체인협회 이사와의 면담 등을 거쳐 위원장직을 수락했습니다.

암호화폐 투자 행태와 산업이 현재 혼란스러운 상황인데 한글과컴퓨터 대표 출신으로 2000년대 정보기술(IT) 버블을 직접 경험한 부분 등을 높이 산 것 같아요.”

-자율규제위원회는 어떤 일을 하게 됩니까.

“아직 자율규제위원회 구성이 끝나지 않아 자율규제위원장의 책무를 규정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닙니다.

다만, 지금 단계에서 제가 해야 할 일은 아무런 생각 없이 암호화폐에 투자하는 ‘묻지 마 투자’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이 급선무라고 봅니다. 또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자율 점검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 시장을 안정적으로 이끌어야겠죠.”

-지금 투기 규제와 블록체인 산업 진흥이라는 두 가지 쟁점이 상충합니다.

“흔히 블록체인의 육성이란 측면에서 암호화폐를 하나의 촉매제로 보는데요, ‘촉매제는 나쁜 것이고 이를 통해 육성되는 산업은 좋은 것’이라는 말은 난센스라고 봅니다.

암호화폐 종류는 이미 1400여 개가 넘었어요. 신규 암호화폐의 등장은 새로운 블록체인 기술의 등장을 의미합니다. 블록체인 산업은 다양한 참여자들이 만드는 신뢰의 생태계를 필요로 하죠.

ICO를 통해 투자 자금을 모으고 새로운 블록체인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과 원장을 만들고 보관하는 데 도움을 주는 채굴자, 암호화폐 투자자와 거래소 모두가 암호화폐라는 매개체를 활용해 블록체인 생태계를 만들어 나가는 참여자입니다.

암호화폐는 퍼블릭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 신뢰를 형성하고 네트워크 참여를 독려하는 기반이자 컨센서스 알고리즘 그 자체로 기능하는 거예요.”

-프라이빗 블록체인에서는 암호화폐를 분리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는데요.

“프라이빗 블록체인 안에서도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인센티브 시스템은 필요합니다. 블록체인 생태계가 원활하게 돌아가고 있는지 평가하는 잣대도 암호화폐의 가치라고 생각해요.

암호화폐가 없다면 블록체인을 운영하는 회사의 실적과 지표로 해당 기술을 평가할 텐데 단순 실적만으로 블록체인 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평가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정부 규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요.

“한국의 블록체인 기업가들은 대개 30대 중반입니다. 글로벌 감각을 갖고 있는 뛰어난 친구들이죠. 지금의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나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김정주 넥슨 회장 등 지금 IT 거물들이 20년 전 그때 30대 초·중반이었어요.

그런데 금융 당국이 지난해 9월 ICO를 전면 금지하면서 훌륭한 젊은이들이 국내에서 ICO를 못하게 됐습니다. 결국 캐나다·싱가포르·미국 등에서 ICO를 해 수백~수천억원씩 펀딩 자금을 모집해 오는 중입니다.

한쪽을 누르니 한쪽이 부풀어 오르는 풍선효과가 확실하게 나오고 있는 거죠. 그렇게 해서 누군가 지금의 이해진 창업자나 김택진 대표처럼 대박이 난다면 이게 무슨 일입니까. 결국 한국 투자자들이 기회를 박탈당하고 마는 거죠.”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생태계에서 정부는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할까요.

“문제가 있으면 문제를 보완하는 쪽으로 가야 해요. (ICO 전면 금지 등의 규제는) 차도에 중앙선이 그어져 있지 않으니까 차를 못 다니게 하는 조치와 같아요.

자유경제에서 투자는 전적으로 개인의 책임이에요. 골동품에 대한 가치 판단이 사람마다 다르듯이 암호화폐에 대한 투자 역시 전적으로 개인의 의사일 뿐 국가가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죠.”

-하지만 암호화폐를 활용한 자금 세탁·다단계 등의 각종 범죄가 생기는 것도 사실인데요.

“사람을 그러모을 수 있는 아이템이면 어떠한 산업에서도 생겨나는 게 다단계 문제예요. 암호화폐 시장에서 벌어지는 다단계 논란은 ‘자금을 맡기면 불려주겠다’는 식으로 거래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코인을 상호간의 합의하에 사고파는 거래소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이를 전체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생태계의 문제로 보는 것은 매우 곤란합니다. 다만, 지금의 블록체인 기술과 암호화폐가 다단계 사업자들이 자금을 유도하는 데 그럴싸한 구조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피해가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에요.

정보와 분석에 의존하지 않는 묻지 마 투자를 유의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암호화폐 규제의 올바른 방향은 무엇입니까.

“일본은 지난해 4월 자본결제법을 개정해 가상화폐를 주식처럼 거래하고 있어요. 우리도 암호화폐를 주식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면 주식에 준하는 형태의 세금 구조가 필요하겠죠.”

-암호화폐 거래소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블록체인 기술이 추구하는 분산 신뢰 기능을 거래소 스스로도 채택해 신뢰 인터넷 세상을 여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근 일본에서 발생한 거래소 해킹 사건을 보면 거래소가 코인을 보관해 문제가 됐죠. 자기 지갑에 코인을 보유하고 거래소는 거래 시 수수료를 받아 코인을 이동하는 역할만 하면 돼요. 보관은 거래소의 몫이 아니죠.

첨단의 블록체인을 다루면서 시스템은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봅니다. 정부에 암호화폐 거래소의 존립을 강력하게 주장하기 위해서는 분산 신뢰 기능을 거래소가 스스로 채택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블록체인 기술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앞으로 나오는 신규 거래소들은 그러한 시스템을 가질 수도 있겠죠. 투자자들은 어떤 거래소를 선택하게 될까요.”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어떠한 산업도 초기에는 에너지가 과하게 들어갑니다. 그 후 시장이 안정되고 장기적인 발전이 일어났습니다.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생태계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곧 적절한 입법 과정을 거쳐 블록체인 전반과 암호화폐 거래소의 합리적 규제를 담은 법률안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그때까지 금융 당국의 권고로 협회와 은행연합회가 합의해 마련한 자율 규제안을 통해 국민에게 신뢰받는 거래소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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