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인공지능(AI) 시대, 인간은 어떻게 일해야 하는가?]
완전 대체 불가능, '인간' 강점 살린 협업 모델 중요
무인매장 '아마존고'에도 쇼핑 돕는 직원은 있다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오드리 헵번을 닮았다는 인공지능(AI) ‘소피아’가 1월 30일 한국을 방문했다. 이날 소피아의 활약은 대단했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대담을 가진 소피아는 가벼운 농담을 무리 없이 주고받았다.

“지난번 미국 토크쇼에서 했던 ‘인류를 지배하겠다’는 말은 농담이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2년 전인 2016년 3월 알파고와 이세돌 기사의 바둑 대결 이후 소피아는 다시 한 번 ‘AI 시대’가 얼마나 가까이 왔는지 보여준 것이다.

AI가 점점 사람을 닮아갈수록 그에 대한 공포감 역시 커져 가고 있다. 이번에 방문한 ‘소피아’에 대해서도 “무섭다”는 반응을 보인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 공포의 이면에는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깔려 있다. ‘AI가 사람의 일을 대신한다면 사람은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더 이상 미뤄둘 수 없는 이유다.

◆ '변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

“2020년까지 미국의 706개 일자리 중 47%가 자동화로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한 영국 옥스퍼드대의 ‘고용의 미래’ 보고서는 AI 일자리와 관련해 가장 유명한 보고서 중 하나다.

칼 프레이 옥스퍼드대 교수는 보고서에서 “다양한 산업 분야에 AI 기술이 노동력을 대체하겠지만 특히 숙련 직업이 감소할 것”이라며 “고숙련과 저숙련 노동자의 고용률 변화는 크게 없지만 단순 반복적이고 자동화되기 쉬운 중 숙련 직업은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2016년 다보스포럼에서 발표된 ‘직업의 미래’ 보고서에서도 향후 2020년까지 7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200만 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겨 결과적으로 500만 개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단순 반복 과업 중심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은 반면 중요한 의사결정과 감성에 기초한 직무는 인간이 맡게 될 전망이다.

물론 앞으로 다가올 ‘AI 시대’에 대해 이처럼 비관론만 넘치는 것은 아니다. 글로벌 시장조사 기관인 가트너는 지난해 10월 ‘가트너 심포지엄·IT엑스포 2017’에서 2018년 이후 주목해야 할 10대 주요 전망을 발표했다.

가트너는 “AI의 영향으로 2020년까지 18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230만 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겨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AI는 인간의 직업 생산성을 높이고 창의성을 강화하는 데 유용한 도구다. 결과적으로 이는 직업 다양화, 작업의 재구상, 신산업 창출로 연결이 될 것이라는 기대다.

미국의 스탠퍼드대는 2014년 AI와 관련한 장기 프로젝트를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전 세계 AI 과학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AI 기술의 미래 방향에 대해 예측하고 연구하기 위한 ‘인공지능 100년 연구 프로젝트(AI100)’다. 스탠퍼드대는 2016년 그간의 연구 실적을 모아 ‘2030년 인공지능과 삶’이라는 장문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2030년 무렵 교통$헬스케어$교육$엔터테인먼트 등 AI가 일상생활 전반에 적용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와 같은 일상의 변화에 따라 여러 산업군에서 AI가 현재 인간의 업무를 대체하는 등 고용의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날 가능성 또한 높다고 전망했다.

AI100위원회 의장 바버라 그로츠 하버드대 교수는 “AI 기술은 믿을 만하고 대체로 유익하다”면서 “AI를 적절히 설계하고 배치하면 현재 ‘AI 일자리 대체 논란’에 대한 과장된 공포를 신뢰로 바꿔놓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사람과 로봇이 함께 피자 굽는 시대

‘AI 시대’에 대한 비관론이든 낙관론이든 ‘분명한 공통점’이 있다. AI가 인간의 업무를 상당 부분 대체하게 될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이에 따라 인간의 일하는 방식 또한 상당히 많은 변화를 겪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최근 들어 AI 일자리와 관련한 논쟁은 ‘AI와 인간의 협업 모델을 어떻게 구축해 나갈 것인가’로 관심사가 빠르게 옮겨 가는 중이다.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는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그 안에서 패턴을 찾아내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다”며 “하지만 AI 또한 오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인간과 AI가 서로를 보완하는 협업 체제가 갈수록 중요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AI의 능력을 결정짓는 것은 결국 ‘데이터’다. 방대하고 질 좋은 데이터로 학습한 AI일수록 결과에 대한 신뢰도 또한 높다. 이는 다시 말해 데이터의 오류에 따라 AI가 만들어 낸 결과 또한 오류가 나타날 수 있다는 얘기다.

김 교수는 “AI 또한 외부로부터 피드백을 받기 때문에 ‘편향성’을 띨 수 있다”며 “예를 들어 금융투자 분야에 적용된 AI가 시장을 예측하는 데 특정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면 다른 AI들 또한 이에 영향을 받아 같은 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여 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AI의 움직임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데 있다. 매우 짧은 시간에 이와 같은 ‘쏠림 현상’이 심해진다면 이에 대처하는 것 또한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김 교수는 “AI가 아무리 발달하더라도 상황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융통성 있게 판단하는 ‘인간의 역할’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AI와 인간이 모두 오류가 있을 수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AI와 인간의 협업 모델을 통해 서로를 보완하고 ‘균형’을 잡아 나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무인매장 '아마존고'에도 쇼핑 돕는 직원은 있다
그렇다면 AI와 인간이 ‘함께 일하는’ 미래의 일터는 어떤 모습일까. 이에 대해 힌트가 될 수 있는 것이 최근 미국에서 공개된 무인 식료품점 ‘아마존고’와 미국의 스타트업 피자 가게인 ‘줌피자’다.

아마존의 본사인 시애틀에 처음으로 문을 연 ‘아마존고’는 지난 1년간 아마존 직원들에게만 시범 서비스로 운영하다 최근 대중에게 공개됐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식료품과 다를 바 없지만 쇼핑하는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식료품점에 걸어 들어간 뒤 물건을 주워 담고 ‘그냥’ 나오면 된다. 매장 내에 설치된 카메라와 센서 등이 쇼핑객의 움직임을 감지해 자동으로 온라인 결제까지 이어지도록 했다. 이 때문에 이곳에서는 계산대가 없고 당연히 그 앞에 길게 늘어선 줄도 없다. AI가 계산원의 역할을 대신한다.

그러면 아마존고에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것일까. 아마존고에도 여전히 ‘사람 직원’이 상주한다. 다만 그 역할이 달라졌을 뿐이다. 먼저 매장 입구에서 고객들을 반겨주는 업무를 맡은 직원들이 있다.

판매할 물건을 진열대에 쌓아 올리고 배치하는 역할이 필요하다. 이 밖에 매장 곳곳에 배치된 직원들은 손님들의 질문이나 불편사항에 응대하고 더 즐거운 쇼핑을 위해 조언해 주는 등의 업무를 맡는다.

술과 같은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손님들의 ID를 확인해야 하는데, 이 또한 사람이 맡고 있다. 또 하나, 아마존고 내에는 손님들에게 간단한 아침 식사 등을 제공하기 위한 식당이 자리를 잡고 있다. 바로 이 식당에만 사람 직원이 5~6명 정도 필요하다.

각자 맡은 업무는 다르지만 이들의 역할은 하나다. 아마존고를 찾은 손님들과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아마존고의 변화는 오히려 사람과 사람이 직접 부딪치며 나누는 ‘온기’는 절대로 기계가 대처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무인매장 '아마존고'에도 쇼핑 돕는 직원은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핫’한 피자 가게인 줌피자에서는 사람과 AI 로봇이 함께 일하고 있다. 매일 아침 출근 시간이면 이곳에서는 AI가 오늘의 날씨, 스포츠 경기 일정 등 각종 데이터를 분석해 그날 고객들이 선호할 만한 피자를 미리 예측하고 그에 따라 재료의 주문량을 판단한다.

사람과 AI의 협업은 피자 배달 주문이 들어 온 뒤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사람이 피자 도우를 반죽해 한 판 분량으로 쪼갠 뒤 도우 프레스에 넣고 누른다. 이 피자 도우를 조립 라인에 올리면 AI 로봇이 주문에 맞춰 도우에 소스를 얹는다.

그다음 AI 로봇이 소스를 피자 도우 전체에 펴 바른다. 이후 사람이 한 번 더 이 도우를 살펴보고 소스가 덜 발라진 곳이나 뭉친 곳 등을 손으로 펴서 깔끔하게 정돈한다. 그리고 그 위에 치즈와 토핑을 올린다. 소스까지 바른 도우는 그다음 로봇이 전달 받아 베이크 오븐에 넣는다.

화씨 800도까지 가열 조리된 피자는 곧 배송용 트럭으로 옮겨진다. 이 피자는 비송용 트럭에서 마저 구워지는데, 정확하게 목적지에 맞춰 피자를 굽기 때문에 고객에게 배달되는 순간 ‘신선하면서도 가장 맛있는 피자’가 완성된다.

뜨거운 피자를 조리하는 과정에서 로봇이 이를 대신하기 때문에 사람 직원이 화상을 입을 염려 또한 없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힌트 또한 분명하다. ‘고객(사람)’이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 피자를 만들겠다는 ‘분명한 목표’ 아래 사람의 역할과 AI의 역할이 나뉘는 것이다.

◆ ‘직업’말고 ‘업무’를 재구성하라

박가열 한국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은 “AI가 그동안 인간이 해왔던 업무를 상당 부분 대체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변화가 생각보다 빠르게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적어도 45세 이상의 직장인들이라면 앞으로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AI가 일자리를 위협할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직업이 변화하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사회적 합의’가 전제돼야 하고 이를 고려한다면 향후 15년 이내에 고용 시장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기는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20~30대 젊은 직장인들은 그저 손 놓고 있을 수 없는 상황이다. 향후 20~30년 뒤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될 어린 자녀를 둔 부모 세대 또한 마찬가지다. 지금과 같은 변화의 속도가 점점 더 빨라지는 과도기일수록 앞으로 고용 시장에 찾아올 변화를 미리 예측하고 준비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마존고와 줌피자의 사례에서 드러나듯이 ‘AI 시대, 인간은 어떤 일을 해야 할지’에 대한 답은 분명하게 하나로 모아진다. ‘사람’이다. AI가 하지 못하는 ‘사람의 능력’을 개발해 경쟁력을 높이거나 혹은 ‘사람’을 위한 서비스나 상품을 설계하고 개발하는 데 참여하는 것이다.

박 연구위원은 “직업의 본질에 조금 더 집중해 자신의 업무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예를 들어,선생님을 떠올려 보자. 지금의 선생님은 ‘지식을 전달하는 데’ 업무의 무게중심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향후 이는 AI가 대신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선생님은 AI와 함께 그 지식이 학생들에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코치’해 주는 역할이 더욱 커질 가능성이 높다.

아이들의 상황이나 심리 상태를 세심하게 보살핀다든지, 아이들의 학습에 대해 동기부여하는 것이 중요한 능력이 될 것이다. 직업의 본질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그 의미를 확장해 나가는 작업이 중요한 시기에 돌입했다는 것이다.

‘로봇 시대, 인간의 일’의 저자인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은 “지금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는 어떤 직업도 안정적이고 유망하다고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며 “과거의 잣대가 아니라 미래 사회를 지배하는 기술의 속성과 그 변화 추이에 대한 학습과 관심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미래는 평생직장이란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다. 미래 예측은 불가능한 영역이지만 ‘어떠한 윤곽’으로 다가올지 파악할 필요가 있다.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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