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개혁 플랜]
-내부 개혁부터 조직 방향 설정까지…‘용두사미’ 안 되도록 해야

[한경비즈니스=이명지 기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개혁 공약을 이행할 ‘적임자’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김 위원장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엇갈린다.

한경비즈니스는 취임 9개월을 맞은 김 위원장의 잘한 점과 부족한 점을 학계와 시민단체 전문가들에게 들어봤다.
전문가 6인이 본 ‘김상조 공정위’ 9개월 평가
◆‘갑질’ 경각심 불러일으킨 것은 성과

권오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팀장은 “지난해 국민들은 촛불을 통해 ‘재벌 개혁’을 강력히 요구했다”며 “공정위는 이를 제쳐두고 내부 개혁과 프랜차이즈 ‘갑질’ 문제에 치중했다”고 말했다. 공정위 내부의 개혁이 부족했다고 보는 전문가도 있었다.

이동우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실행위원은 “주요 권력 기관이 과거 잘못된 사건 처리 등에 대한 반성과 재조사를 위한 자체 태스크포스(TF)를 운영 중인데 공정위만 이를 운영하지 않았다”며 “적극적 개혁을 위한 내부 의지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김호균 명지대 교수는 “공정위 직원들에게 OB(공정위 퇴직자)와의 접촉을 제한한 것은 전관예우·정경유착의 고리를 차단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고 말했다.

김영훈 바른사회시민회의 경제실장은 공정위 직원이 로펌이나 대기업 인사와 접촉할 때 보고를 의무화했다는 점에 높은 점수를 줬다. 김 실장은 “공정위는 업무 특성상 엄격한 직업윤리와 이를 뒷받침할 내부 통제가 필요한데 이를 정확하게 인식했다”고 말했다. 김정호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는 ‘성역 없는 대기업 총수 고발’을 성과로 들었다.

아쉬운 점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권오인 팀장은 ‘재벌 개혁’을 꼽았다. 재벌 개혁은 공정위 권한으로 가능한 것과 국회 입법이 필요한 것으로 나눌 수 있다. 권 팀장은 전자는 일감 몰아주기 강화, 후자는 지주회사의 규제 강화라고 설명하며 “국회 입법 통과가 필요한 지주회사 규제 강화는 공정위와 여당이 야당을 설득하는 작업을 적극적으로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호균 교수는 “한국 시장경제의 고질병인 대기업의 중소기업을 향한 ‘갑질’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기 위해선 피해자가 직접 구제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영훈 실장은 정책 목표가 잘못 설정돼 있다고 지적했다. 김 실장은 “골목 상권의 진입 장벽을 높여 영세 상인을 보호한다는 것은 소비자의 선택권을 방해한다”며 “경쟁을 제한하는 것도 공정위의 설립 취지에 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기업의 소유 및 지배구조는 시장에서 결정할 문제이지 공정위가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고 말했다.

공정위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건에 대해 방침을 바꾼 것도 ‘오점’으로 지적됐다. 2015년 삼성그룹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해 공정위가 내놓은 가이드라인에 따라 일부 주식을 매각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가이드라인 변경으로 2월 26일 6개월 내 삼성물산 주식 404만 주를 추가 매각해야 한다는 지침을 전달했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는 “공정위는 이런 정책의 변화가 기업 성장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설명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 6인이 본 ‘김상조 공정위’ 9개월 평가
◆“본연의 업무에 집중해야 할 시기”

가장 시급한 공정위의 ‘과제’는 무엇일까. 권오인 팀장은 “재벌과 관련한 정책에 대해 재벌 스스로 변화를 기대한다는 방침을 고수하며 손을 놓고 있다”고 말했다. 재벌 개혁은 과거 사례를 비춰봤을 때 정권 지지율이 높은 초반에 하지 않으면 후반부에는 추진하기가 어렵다는 지적이다.

김호균 교수도 “김 위원장이 취임과 동시에 재벌들을 지켜보겠다고 했지만 지금에 와서 보니 (김 위원장의) 개혁 의지가 부족한 것 같다”며 “공정위가 스스로 개혁에 관한 지침을 제시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이동우 위원은 공정위라는 조직의 전면 개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위원은 “공정위는 독점과 담합을 해소하는 ‘경쟁 당국’의 역할과 불공정 거래로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한 ‘권리구제와 보호’라는 이질적 역할을 동시에 요구 받는다”며 “상이한 기능을 분리해 국민의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개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영훈 실장은 ‘공정위의 전문성 확보’를 꼽았다. 공정위가 대기업과의 소송에서 패소율이 높은 것은 업무 전문성이 약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지나치게 높은 과징금도 합리적 수준으로 낮추는 것이 좋다고 지적했다.

김호균 교수는 “물가 안정은 공정위의 소관 업무가 아니라는 위원장의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대기업의 담합은 생활 물가 상승에 큰 역할을 하고 이러한 담합을 해소해야 하는 정부 기관이 바로 ‘공정위’”라고 말했다.

김정호 교수는 경쟁 촉진에 집중할 것을 주문했다. 김 교수는 “지금 공정위는 대기업과 공급자만 압박하고 있는데 이는 공급을 위축시켜 소비자에게 또 다른 피해를 양산할 것”이라며 “경쟁 촉진이라는 본업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조동근 교수는 “공정위가 추진하는 ‘부권 소송’ 도입에 반대한다”며 “공정위가 모든 소기업 과 소비자의 경제활동을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m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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