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세상을 바꾸는 그녀들, 스타트업 여성CEO 전성시대]
-김슬아 더파머스 대표, 까다로운 소비자의 눈으로 식품 산업 도전
“아침 7시전 배달하는 ‘샛별배송’에  워킹맘들 열광해요”
약력 : 미 웰슬리칼리지 정치학과 졸업. 2007년 골드만삭스 홍콩. 2009년 맥킨지 홍콩 컨설팅. 2015년 더파머스 대표(현).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17세에 홀로 미국 유학을 떠났다.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이 나온 학교로 유명한 웰슬리칼리지에서 공부하며 대학 3학년 시절엔 글로벌 컨설팅 그룹인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서 인턴 생활을 하기도 했다. 졸업 후 글로벌 투자은행(IB)인 골드만삭스와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에서 경력을 쌓았다.

온라인 식품 배송 서비스 ‘마켓컬리’를 운영하는 김슬아(35) 더파머스 대표는 누가 보더라도 ‘탄탄대로’를 뒤로하고 험난한 ‘스타트업 최고경영자(CEO)’의 길에 뛰어들었다. 어쩌면 17세에 홀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던 것만큼이나 무모한 도전이었다. 2015년, 그가 서른셋 되던 해의 일이다.

◆‘내 가족 잘 챙겨 먹이고 싶은 마음’

그는 평소에도 자신을 ‘먹을 것을 좋아하고 그만큼 먹을 것에 까다로운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결혼 후 ‘워킹 와이프’가 돼서도 마찬가지였다. 직장 생활을 하느라 늘 시간에 쫓기는 와중에도 먹는 것만큼은 ‘잘 챙겨먹고’ 싶었다.

“저도 주부고 동시에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이었잖아요. 바쁜데 잘 먹고 싶긴 하고, 그런데 소비자의 눈으로 봤을 때 저를 만족시키는 온라인 식품 배송 서비스가 없더라고요. 결국 전 직장에서 같이 일했던 공동 창업자와 의기투합했죠. 둘이 같이 정말 믿을 수 있는 먹거리 서비스를 만들어 보자고요.”

더파머스의 식품 배송 서비스 ‘마켓컬리’는 올해 론칭 3년 만에 회원 55만 명을 넘어섰다. 지난해 연 매출만 530억원을 기록했다. 현재는 월 매출만 100억원 수준에 이른다. 사용자들은 30대 여성이 가장 많다. 마켓컬리가 제공하는 서비스 중 워킹맘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서비스는 ‘샛별배송’이다. 오늘 밤 11시까지 먹거리를 주문하면 내일 새벽 7시 전에 문 앞에 택배 상자를 놓아준다.

“직장 생활을 하니까 먹거리를 포함해 우리 집으로 택배가 정말 많이 왔어요. 그런데 음식은 직장에서 일하는 동안 배달이 오면 품질이 상하는 것도 걱정되고 여러 가지로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잖아요. 조금만 관점을 바꿔 오전 7시 전에만 배달되더라도 출근 전에 음식을 냉장고에 미리 챙겨 놓고 나갈 수 있으니까 너무 좋겠더라고요.”

마켓컬리에는 ‘데이터 농장’이라는 이름의 팀이 있다. ‘샛별배송’의 일등 공신이다. 이 팀은 공동 창업자 박길남 전략이사가 이끌고 있다. 주요 업무는 인공지능(AI)의 일환인 머신러닝(기계 학습) 기술과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쇼핑몰 하루 주문량을 예측하는 일이다. 날씨에 따라 어떤 음식의 주문량이 늘어날지 혹은 스포츠 이벤트가 있는 날이면 또 어떤 음식의 주문량이 늘어날지 등과 관련해 고객들의 구매 패턴을 파악한다. 이는 고객들에게 ‘신선한 음식’을 배송하는 데도 중요하지만 생산자들이 안심하고 먹거리 생산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고객들에게 좋은 먹거리를 배송하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좋은 먹거리’를 생산할 수 있는 공급자를 찾는 것이에요. 이분들이 걱정 없이 농산물 생산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고객들에게 주문이 들어오면 우리가 이분들에게 다시 주문을 넣는 구조가 아니라 우리가 이분들에게 먼저 먹거리를 구매한 뒤 이를 고객들에게 재판매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어요. 생산자들의 위험을 우리가 떠안는 거죠. 이와 같은 시스템이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주문량을 정확하게 예측할 필요가 있었죠.”
“아침 7시전 배달하는 ‘샛별배송’에  워킹맘들 열광해요”
◆경쟁력은 ‘데이터 농장’과 ‘상품위원회’

‘데이터 농장’만큼이나 마켓컬리의 핵심 축을 담당하는 또 하나의 조직이 있다. 김 대표가 이끌고 있는 ‘상품위원회’다. 소비자의 관점에서 아무리 프리미엄 식품을 온라인으로 구매했다고 하더라도 ‘퀄리티를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늘 궁금했다. 기존에 운영하던 대부분의 식품 유통업체는 상품기획자(MD)가 직접 먹거리를 선정하긴 하지만 그 과정이나 기준을 소비자에게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켓컬리에서 판매하는 프리미엄 식자재들은 MD들이 직접 현장에 나가 꼼꼼하게 따져본 뒤 선별한다. 이후 상품위원회의 검증을 한 번 더 통과해야 소비자들과 만날 수 있다. 상품위원회 팀원들은 모두 70가지 기준을 근거로 상품의 안전성을 판단한다.

“상품위원회를 통과한 식품들은 ‘어떤 부분을 중요하게 봤고 어떤 근거로 판단을 내렸는지’ 등이 같이 공개돼요. 고객들이 직접 상품의 안전성을 검증할 수 없으니까 우리가 대신 검증하고 그 결과를 알려주는 거죠. 재밌는 것은 상품위원회에서는 상품의 가격이나 마진율 등을 전혀 논의하지 않아요. 철저하게 상품의 품질과 안전성만 따져 봐요. 그런 점 때문에 고객들이 마켓컬리를 믿고 찾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철저한 상품 검증 시스템의 위력은 지난해 ‘살충제 계란 파동’ 당시 여실히 드러났다. 전반적으로 계란 소비가 뚝 떨어지던 당시 ‘믿을 수 있는 계란’을 구매하기 위해 마켓컬리를 찾는 고객들이 급증한 것이다.

“불과 한 달여 사이에 고객 증가율이 몇 백 % 뛰었을 만큼 파급력이 컸죠. 그렇다고 마냥 콧노래를 부를 수 없었어요. 왜냐하면 우리와 직접 거래하지 않더라도 계란 파동 때문에 고생하신 생산자들이 적지 않아요. 제가 이 사업을 하면서 좋은 먹거리를 구하느라 정말 많은 생산자들을 만났어요. 그런데 그중에는 정말 좋은 먹거리를 많은 사람들에게 공급하고 싶어 하는 이들이 너무도 많았어요. 다만 어떻게 상품을 마케팅하고 유통해야 하는지 모르는 거죠. 마켓컬리가 그 부분을 채워 가고 싶어요.”

사실 김 대표는 처음부터 거창한 꿈을 갖고 시작한 사업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다만 ‘내 사람들이 잘 먹고 잘살 수 있는 아기자기한 예쁜 서비스’를 만들어 가고 싶었다. 하지만 이 소박한 꿈은 오히려 사업을 운영하며 점점 더 커져 가는 중이다.

“스타트업은 결국 ‘어떤 문제’를 발견하고 그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 것이냐’에 대한 고민의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저와 공동 창업자에게는 꿈이 있어요. ‘마켓컬리를 우리의 삶보다 더 오래가는 브랜드로 키우는 거예요. 더 많은 사람들의 식탁에 좋은 음식이 올라갈 수 있도록 만들 겁니다.”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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