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 - 현대차 브랜드 경영 3.0]-조원홍 현대차 고객경험본부장…기술보다 고객 경험 앞세운다
“가장 혁신적인 브랜드로 ‘현대차’ 꼽게 만들 겁니다”
현대차의 브랜드 경영은 2011년 1월 정의선 부회장이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모던 프리미엄’을 새로운 브랜드 전략으로 선언하면서 본궤도에 올랐다.
당시 정 부회장을 도와 밑그림을 그린 주인공은 바로 조원홍(54) 현대차 고객경험본부장(부사장)이다. 정 부회장은 글로벌 컨설팅회사인 모니터그룹코리아 대표로 있던 조 부사장을 영입해 현대차의 최고마케팅책임자(CMO)를 맡겼다.
현대차 브랜드에서 고급 이미지를 더해준 ‘제네시스 프라다’가 그의 첫 작품이다. 조 부사장은 현재 마케팅사업부와 해외영업본부를 통합해 지난해 신설된 고객경험본부를 이끌고 있다.
양재동 현대차 사옥에서 5월 2일 만난 조 부사장은 “브랜드 이미지 구축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긴 여정’”이라며 “지난 7년간은 ‘기초’를 놓는 과정이었고 6월 러시아 월드컵 캠페인 때부터는 본격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2020년대 중반까지는 고객들이 가장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자동차 브랜드로 현대차를 꼽게 하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말했다.
-‘고객경험본부’라는 이름이 생소합니다.
“고객은 제품을 선택할 때 제품 자체만 보지 않아요. 제품을 공급하는 브랜드의 이미지도 큰 영향을 미치죠. 자동차는 브랜드가 자신의 인격과 사회적 지위를 얼마나 잘 표현하는지가 매우 중요해요.
통계적으로 브랜드 이미지의 45%는 제품 이외의 다양한 경험에 의해 형성됩니다. 이게 ‘고객 경험’이죠. 자동차업계에서는 ‘고객 경험 여정’이라는 말을 많이 써요. 여정의 전체 과정에서 다 잘해야 한다는 거죠. 모든 여정에서 일관성을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관성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한쪽에서는 ‘품질과 내구성이 좋은 브랜드’라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혁신적인 브랜드’라고 말하면 이미지 형성이 어려워요. 모두 좋은 말이긴 하지만 고객이 인지하는 것은 보통 한 개, 많아야 두 개 정도죠. 동일한 메시지와 동일한 이미지를 모든 고객 경험 여정에 담아야 해요.
그동안 마케팅은 커뮤니케이션만 강조해 온 게 사실이에요. 고객 경험이 일어나는 전체 과정을 통합해 보자는 취지에서 고객경험본부를 만들었습니다. 기존 마케팅 영역에 딜러·쇼룸·애프터서비스센터까지 더해졌죠. 많은 고객 경험이 일어나지만 관리가 안 되는 영역이에요.”
-이런 통합 부서를 만든 게 국내에서 처음 아닙니까.
“국내에서 처음이고 글로벌 자동차업계에서도 최초예요. 대부분의 업체들이 마케팅은 마케팅 부서가, 상품 개발은 상품 개발 부서가, 영업은 영업 부서가 맡는 식으로 나눠져 있거든요.”
-현대차의 브랜드 경영은 언제부터 시작됐습니까.
“효율성·품질·브랜드 중 어느 하나만 선택하고 나머지를 포기하는 회사는 없습니다. 시장 지위와 경쟁 상황, 회사의 전략적 방향에 따라 조금씩 자원 배분이 달라질 수는 있겠죠. 2010년 이전만 해도 현대차는 자동차 산업에서 패스트 팔로워였습니다.
리더가 만들어 놓은 게임의 규칙 속에서 선두를 빠르게 따라잡는 게 우리의 역할이었죠. 처음에는 비용을 줄이고 효율성을 높여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는 게 중요했어요. 수익을 내야 다른 부문에 투자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차는 특성상 ‘안전’이 필수예요. 안전을 보장하려면 품질이 담보돼야죠. 2000년대 들어 정몽구 회장님이 품질 경영을 선언하고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어요. 그 자신감으로 나온 게 ‘10년 10만 마일 보증’이었죠. JD파워의 신차 품질 조사(IQS)에서 1위 그룹에 들어가면서 품질이 눈에 띄게 안정화됐죠.”
-2010년을 전후로 어떤 게 달라졌습니까.
“현대차가 어느새 글로벌 리더 그룹이 된 거죠. 리더는 게임의 규칙을 만들어야 해요. 자동차 산업은 게임의 규칙이 미리 정해져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계속 바뀌죠. 자동차 산업 전체뿐만 아니라 신차가 나올 때마다 각 세그먼트별 게임의 규칙도 바뀝니다.
어떤 시기에는 연비가 굉장히 중요하다가 어떤 시기에는 스타일이 좌우하죠. 강력한 퍼포먼스가 세그먼트의 게임 규칙이 되기도 해요. 게임의 규칙은 소비자가 만드는 게 아닙니다. 업계 리딩 그룹들이 만들죠. 선두만 따라가던 현대차가 어느 날 게임의 규칙을 만들어야 하는 자리에 서게 된 거죠. 그걸 못 하는 순간 다시 밀려납니다. 뒤로 갈 수도 없는 상황이에요. 생산량이나 시장 지위로 볼 때 뒤로 간다는 것은 실패를 의미하죠.
여기서 고민이 시작됩니다. 게임의 규칙을 만들려면 브랜드에 대한 신뢰가 전제돼야 해요. ‘밸류포머니(가격이 적당한 차)’ 이미지로는 안 되죠. 2011년 정의선 부회장님이 브랜드 경영을 선포했어요. 긴 여정이 시작된 거죠. 100년이 넘는 자동차 역사를 통해 형성된 브랜드 이미지를 바꾸는 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요.”
-그동안 어떤 노력을 했습니까.
“지난 7~8년은 기초를 만드는 시기였어요. 자동차 회사는 효율과 품질을 위해 매우 타이트하게 관리됩니다. 여기선 파괴적 혁신을 생각하면 안 되죠. 주어진 틀 속에서 가장 효율적으로 제품을 만들어 내는 게 중요해요. 사고방식과 일하는 방식, 기업 문화가 거기에 딱 맞춰 짜여 있어요.
그런데 브랜드 경영은 ‘새로운 생각’을 해야 가능해요. 사람도 50세가 넘으면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게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역사가 50년 넘는 기업의 문화를 바꾸는 게 보통 일은 아니죠. 새로운 생각을 끊임없이 전파하고 ‘모던 프리미엄’이라는 브랜드 정체성을 제품과 메시지에 주입하며 계속 테스트했어요.
이제는 변화의 필요성과 가야 할 방향에 대한 내부의 공감대가 탄탄하게 자리 잡았고 시장에서도 ‘현대차가 과거와는 다르다’는 이야기를 조금씩 듣는 단계죠. 올해 하반기부터는 본격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줄 계획이에요. 6월 열리는 러시아 월드컵이 첫 계기가 될 겁니다.”
“가장 혁신적인 브랜드로 ‘현대차’ 꼽게 만들 겁니다”
-하반기 선보일 변화를 한마디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고 언컨벤셔널(go unconventional)’, ‘체인지 더 룰(change the rule)’이죠. 현재 모빌리티·전기화·커넥티비티·자율주행이라는 4가지 거대한 기술 변화가 밀려오고 있어요. 자동차업계에는 엄청난 위협이고 생존의 문제죠.
자동차 산업 100년 역사에서 게임의 규칙이 이렇게 통째로 바뀐 것은 처음이에요. 소위 파괴적 혁신이죠. 여기서 살아남고 지속 성장하려면 ‘고 언컨벤셔널’, ‘체인지 더 룰’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기술 변화가 자동차업계 질서를 어떻게 바꿔 놓을까요.
“현대차엔 기회가 될 수 있어요. 사실 이런 위협이 없으면 한 번 만들어진 질서를 깨기가 정말 어렵죠. 현대차가 연간 500만 대 정도 생산하는데 그 정도로는 고객들의 생각을 바꾸기가 쉽지 않아요.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대부분의 고객들은 현대차의 과거 이미지를 여전히 갖고 있죠. 현대차가 아무리 성능이 좋은 차를 만들어도 가장 성능이 좋은 브랜드가 무엇이냐고 고객들에게 물으면 대부분은 BMW를 꼽을 거예요. 그게 바로 브랜드 이미지죠.
그런데 모빌리티·전기화·커넥티비티·자율주행 등 4가지 새로운 기술에서는 리딩 그룹을 포함해 모든 브랜드가 같은 출발선에 있어요. ‘모빌리티 서비스의 1등이 누구지’, ‘전기차를 누가 더 잘 만들까’, ‘스마트 디바이스, 자율주행차량은’이라고 물으면 어느 한 브랜드를 꼽기가 어렵습니다. 기업별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지만 아직까지는 수준이 엇비슷하기 때문이죠.
여기서 새로운 경쟁 규칙이 만들어지고 새로운 리더가 나올 겁니다. 빨리 치고 나가 위협을 기회로 만들어야죠. ‘고 언컨벤셔널’과 ‘체인지 더 룰’이 바로 우리가 만들어 나갈 새로운 공식입니다.”
-2011년 현대차의 브랜드 방향성을 ‘프리미엄’이 아니라 ‘모던 프리미엄’으로 설정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브랜드를 점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빈 공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제네시스는 ‘모던 프리미엄’이 아니에요. 제네시스는 독립된 프리미엄 브랜드로 갈 겁니다. 현대차는 대중 브랜드죠. 도요타·혼다·GM·포드 같은 대중 브랜드들도 자신들을 프리미엄이라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동차는 그 자체가 프리미엄 상품이에요. 평균 차량 가격이 2000만원대 아닙니까. 젊은이들은 비싸 못 삽니다. 이미 프리미엄 상품인 거죠. 하지만 대중 브랜드들은 프리미엄 경험을 주지 않아요.
소비자들에게 ‘자동차 브랜드 경험 중 가장 좋지 않았던 경험이 무엇인지’ 물으면 많은 사람이 자동차 매장에서의 경험을 꼽습니다. 영업 사원과의 대화가 불편하거든요. 차를 보고 싶어도 그 앞을 기웃거립니다. 그냥 지나가다가 차를 보고 싶은 사람에게도, 차를 구매하는 사람에게도 프리미엄 경험을 주지 않는 거예요.
그렇다면 현대차가 이 빈 공간을 점유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프리미엄 경험이란 게 루이비통 매장처럼 샹들리에를 만들고 융단을 깔라는 게 아니에요. 고객이 원하는 프리미엄 경험은 자신을 편안하게 해주고 프리미엄 상품을 구매하는 만큼 VIP로 대접해 달라는 거죠. 그래서 고객이 편안하게 방문할 수 있는 매장을 만들고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게 바로 우리가 지향하는 모던 프리미엄이고 그 사고로 만들어진 것이 ‘현대 모터 스튜디오’죠. 거기에선 ‘구루’로 불리는 직원들이 우리가 만든 서비스 응대 모델에 따라 움직여요. 일종의 파일럿 테스트죠. 이를 좀 더 업그레이드해 향후 전 세계 매장에 적용할 계획입니다.”
-최근 ‘모던 프리미엄’이 ‘모던 프리미엄 익스피리언스’로 바뀌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모빌리티·전기화·커넥티비티·자율주행 등 최근의 기술 변화와 연결됩니다. 그동안 자동차 회사들은 ‘우리가 이런 기술을 넣었다’는 것을 홍보해 왔어요. 매우 어려운 기술 용어들이 영어로 사용돼 왔죠.
이를테면 ‘차량용 OTA(Over The Ai : 무선통신 시스템에서 시스템 등록에 관한 정보를 송수신하기 위한 표준)’란 선진 기술을 대대적으로 알렸는데 사실 일반 고객은 그게 중요하지 않잖아요. 차량용 OTA를 통해 본인이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또 무엇이 바뀌는지가 중요한 것이죠.
이제 우리는 단순 기술 이야기보다 ‘고객이 우리 차 안에서 이런 경험을 할 것’이라고 전달하는 데 집중할 계획입니다. 모빌리티 시대를 맞아 고객들은 앞으로 운전 외에 차 안에서 무엇을 할지 고민하게 되겠죠. 그 귀중한 시간(퀄리티 타임)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우리의 계획입니다.
조만간 2020년 중반까지의 전체적인 로드맵을 그리고 MVP(최소 기능 제품 : 고객이 가장 필요로 하는 기능만 구현한 정식 출시 이전 버전의 제품)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신차가 나올 때마다 계속 집어넣을 거예요. 2020년대 중반에는 현대차가 더 이상 ‘밸류포머니’가 아닌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브랜드로 완전히 자리 잡는 게 목표죠.”
-명품 업체와 협업, 미술관 후원 등 그동안 해온 작업 중에서 가장 의미 있고 성과가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그동안의 모든 작업이 현대차 브랜딩 작업의 기초를 닦는 데 기여했기 때문에 하나를 꼽기 어려울 만큼 모두가 의미 있는 작업이었죠.
그럼에도 현대차에 중요한 변곡점을 가져온 사건 하나를 꼽자면 2013년 공개한 플래그십 모델인 ‘에쿠스 바이 에르메스’입니다. 단순 이벤트를 넘어 명품 브랜드로부터 ‘장인정신’을 배웠기 때문이죠.
현대차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들은 에르메스와 협업하며 소위 한 땀 한 땀 작업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배웠어요. 에르메스는 ‘장인정신을 통한 감성적 완벽함’을 달성하기 위한 최적의 협업 파트너였죠.
그때 우리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들의 사고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어요. 지금의 제네시스 브랜드가 가진 마감재의 선택이나 인테리어와 같은 프리미엄적인 요소들 역시 그때의 생각의 변화가 많은 역할을 했습니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선보인 자동차 전시관 ‘파빌리온’도 인상적이었는데요.
“수소전기차의 원리를 기술적으로 설명하면 매우 간단해요. 그러나 파빌리온은 이를 예술적으로 해석해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했어요. 내부적으로는 과학적 관점에서만 기술에 접근하던 내부 엔지니어들에게 생각의 변화를 주고 밖으로는 현대차가 이렇게 표현할 줄 아는 회사라는 메시지를 각인시켰죠.”
-기업 문화를 바꾸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는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습니까.
“초반에 임원들에게 장인정신과 브랜드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아주 극단적인 럭셔리 제품을 보여주는 해외 투어를 다녀왔습니다.
프랑스의 수제화 공방을 찾아 가죽 구두가 브랜드화하는 과정을 지켜봤는데 신발 한 켤레가 1000만원이에요. 1억원짜리도 있죠. 가죽을 달빛에 말린다는 게 그들의 스토리예요. 충성 고객들만 참석하는 정찬 모임도 인상적이죠. 중간에 고가의 프리미엄 스파클링 와인으로 신발을 닦는 의식을 합니다.
처음에 갈 때는 임원들이 1000만원이라는 가격에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이었죠. 공방을 보고 브랜드 스토리를 듣고 나서는 구두만 보더군요. 그 브랜드의 구두를 신는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보죠. 브랜드의 가치를 이해하는 계기가 됐죠.”
약력 : 1964년생.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MBA. 부즈앨런해밀턴. 모니터그룹코리아 대표. 현대차 마케팅사업부장. 현대차 고객경험본부장(부사장)(현).
대담=장승규 편집장정리=정채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