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AI·로봇 시대의 새 화두 ‘기본소득’이 뭐길래]
- ‘같은 듯 다른’ 기본소득 실험, 유럽은 ‘노동 의욕’ 미국은 ‘불평등 해소’에 초점
‘노동 없는 미래’…새로운 ‘사회계약’을 찾아라
(사진)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가 2018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사람처럼 전화를 걸 수 있는 인공지능 서비스 듀플렉스를 선보였다.

[한경비즈니스= 이원재 LAB2050 대표 ] 구글은 5월 ‘2018 구글 개발자 회의’에서 새로운 인공지능(AI) 서비스인 ‘듀플렉스’를 선보였다. 듀플렉스는 이용자 대신 병원·식당·미용실에 전화를 걸어 일정을 대신 잡아주는 기능까지 갖췄다. 그런데 구글의 듀플렉스 공개 이후 ‘사람을 쏙 빼닮은 목소리’가 화제가 됐다.

이를 보고 많은 사람들은 듀플렉스가 콜센터 직원이나 비서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것은 아닐지 걱정했을 수 있다. 실제로 문제가 될 법한 일이다. 현재 한국에서 콜센터에 종사하는 사람은 40만 명이다. 미국에서 비서·행정보조를 하는 사람은 400만 명에 달한다. 구글의 듀플렉스가 우리를 유토피아로 이끌지 디스토피아로 이끌지는 누구도 모르는 일이다. 편리함과 불안이 공존하는 시대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기술혁신에 따라 ‘변화의 기회’가 생겼다는 것이다. 과거에 없던 변화가 오고 있고 이는 기회가 될 수 있다.

◆20세기의 사회계약으로는 한계

20세기의 사회계약은 간단했다. 지금까지 기업은 자유롭게 활동하며 생산하고 이윤을 얻되 사람을 고용해 임금을 분배하라는 계약 조건이 주어졌다. 개인에게는 먹고사는 것이 개인의 책임이므로 생계는 일자리를 구해 일하며 해결하라는 계약 조건이, 국가에는 먹고사는 것은 개인이 생산은 기업이 알아서 하니까 고용될 수 없는 고용 무능력자만 국가가 먹여 살리라는 계약 조건이 주어졌다. 이 관계 속에서 사람들은 수동적인 노동을 했고 가난과 무능을 입증해야 복지를 보장받았다. 이 상황에서 기술이 발전하며 더 많은 사람들이 쓸모없어지는 사회로 나아가고 있다. 새로운 사회계약이 필요한 때다. 생계와 노동이 반드시 일치해야 한다는 생각은 ‘20세기적 사고’다.

다음세대 정책실험실 LAB2050에서는 5월 15일 ‘새로운 상상 2018’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국가적 차원에서 기본소득을 실험 중인 핀란드의 올리 캉가스 핀란드 사회복지국 국장, 미국 스톡턴에서 기본소득 혹은 부의 소득세를 연구·실험하고 있는 테일러 조 아이젠버그 미국 이코노믹시큐리티프로젝트 상임이사, 미국 캘리포니아 오클랜드 주에서 5년 동안의 대규모 기본소득 실험에 참여하고 있는 엘리자베스 로즈 와이콤비네이터 리서치 책임연구자가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에게 쏟아진 질문은 하나로 모아졌다. “기본소득은 실현 가능한가.” 기본소득의 개념 자체에 의문이나 이견이 아닌 ‘기본소득을 현실로 만드는 방법’에 대한 고민이었다.

“핀란드는 후한 복지 혜택, 특히 실업부조 때문에 취업할 동기가 작다. 특히 디지털화와 플랫폼 경제 확대로 취업 동기가 더 낮아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기본소득 실험을 통해 이들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살펴보는 중이다.” 올리 캉가스 핀란드 사회복지국 국장이 발표한 기본소득 실험의 이유다.

“미국인의 50% 이상이 400달러가 급하게 필요할 때 이를 얻을 방법이 없다. 아이가 아파 조금 큰돈이 필요해지면 현금이 부족해 갑자기 빈곤층이 될 수 있다. 만들어지는 일자리 대부분은 파트타임이나 계약직이고 연금이나 의료보험을 보장받을 수 있는 일자리는 너무나 부족하다.” 테일러 조 이코노믹시큐리티프로젝트 상임이사가 콘퍼런스에서 이야기 한 내용이다.

“일과 노동시장이 근본적으로 변하며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기존의 노동시장이 충분한 임금과 안정성을 제공 하지 못한다는 것에 동기부여를 받았다. 새로운 기술이 굉장한 부를 창출하지만 ‘왜 이 기술이 미국의 빈곤을 해결하는 데 사용되지 않을까’라는 윤리적 고민에서도 출발했다.” 엘리자베스 로즈 와이콤비네이터 리서치 책임연구자는 기본소득 실험의 동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똑같은 기본소득제 실험을 하고 있지만 미국과 핀란드 두 나라 사람들의출발점은 전혀 다르다. 복지 천국 핀란드는 취업 동기를 북돋우기 위해 기본소득을 시도하고 있다. 이미 의료도 교육도 무상이고 실업부조도 연금도 두둑하다. 그래서 취업 여부에 상관없이 무조건 지급하는 기본소득이 노동 의욕을 키울 것이라고 믿고 있다.

불평등한 미국은 빈곤층에게 여유를 주고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기본소득을 연구 중이다. 또 기술 변화가 가져올 일자리 불안정성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기본소득과 현금 분배 정책을 제안한다.

출발점이 다르니 목적지도 다를 것이다. 핀란드 정부는 좀 더 자유롭고 역동적인 복지국가를 꿈꾸고 있다. 미국의 실험가들은 빈곤층이 재기할 기회를 찾는, 좀 더 평등한 시장경제를 꿈꾸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출발점과 목적지는 어디일까. 미국도 핀란드도 아닌 한국만의 분배 모델을 새롭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대담한 정책 실험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우리는 세 가지를 질문해야 한다. 첫째, 디지털 전환 시대에 모두의 경제적 안정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 국가가 모두의 경제적 안정을 보장해 줄 수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혁신가가 될 수도 있다.

둘째, 경제적 안정만 되면 사람의 가치를 다시 찾을 수 있을까. 개인은 국가로부터 경제적 안정을 보장받는 한편 돈벌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위해 자발적으로 일할 수 있어야 한다. 기업은 자유롭게 혁신할 자유를 보장받되 얻은 부가가치가 사회에 충분히 분배되도록 되돌려 줘야 한다. 사회문제 해결에도 눈을 돌려 뛰어들어야 한다.

셋째,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이런 정책을 어떻게 구상하고 실행해 나갈 수 있을까. 지금 우리에게는 깃발도 없고 등대도 없다. 전 세계 여러 군데에서 벌어지는 기본소득 실험은 그래서 주목할 만하다.

핀란드는 사실 가장 앞선 복지국가다. 하지만 디지털 전환 등 기술 변화가 고용 시스템을 흔들면서 기존 복지국가 체제의 유효성이 의심받는다고 판단했다. 오랜 기간 구축해 온 복지국가의 전통을 단번에 뒤집을 수는 없었다. 핀란드가 실험을 통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검증하면서 큰 정책 변화를 만들기로 한 이유다.

최근 만난 마쿠스 카네바 핀란드 총리실 시니어 스페셜리스트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정책 실험은 결과에 상관없이 큰 가치를 지닌다. 성공이든 실패든 정부는 비용을 절감하면서도 신뢰성을 더 높일 수 있다.”

한국에도 실험이 필요하다. 고용은 불안해지고 고령화 속도는 빨라진다. 제조업 중심 경제는 전환기를 맞았다. 하지만 비전은 부족하다. 외국을 둘러봐도 우리에게 꼭 맞는 모델을 찾기 어렵다. 지금이야말로 다양한 정책 실험이 여기저기에서 펼쳐지고 그 결과로 ‘대담한 정책’이 보편적으로 도입돼야 하는 시기다.

[커버스토리=AI·로봇 시대의 새 화두 ‘기본소득’이 뭐길래]
-‘공상에서 현실로’ 지구촌에 확산되는 기본소득 논의
-'복지천국' 핀란드가 기본소득에 관심 갖는 이유
-'기본소득' 주창자 된 실리콘밸리 기업가들
-‘노동 없는 미래’…새로운 ‘사회계약’을 찾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