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폴 크루그먼의 경고 : 제주포럼 특별 강연]
"70년 걸려 완성한 국제무역 체제, 한순간 붕괴 위기"
[한경비즈니스=(제주)정채희 기자]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이제 모든 것이 불확실해졌다. 무역 전쟁이 가져올 혼란의 규모는 매우 클 것이고 전 세계는 많은 변화를 겪게 될 것이다.”

한국경제매거진과 제주평화연구원 공동 초청으로 방한한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는 제주국제컨벤션센터(ICC)에서 6월 27일 열린 ‘제13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의 특별 강연자로 나서 최근 전 세계가 주시하는 미국발 무역 전쟁의 가능성에 큰 우려를 나타내며 충격적인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그는 “지난 70년간 유지돼 온 무역 체제가 한순간 와해될 위기에 놓여 있다”며 “한국 같은 수출 의존형 국가들이 최대 피해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크루그먼 교수의 특별 강연 내용이다.

1930년대 미국 평균 관세율은 40%

우리는 정말 놀랍고 특이한 시대에 접어들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통합된 국제무역 체제를 파괴할 수 있는 힘이 작용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세계적으로, 역사적으로 무역 체제가 후퇴하는 모습을 보인 적은 있지만 늘 회복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이상 그런 기대를 하기 어려워 보인다. 무역 전쟁의 위험이 커지고 있다.

먼저 무역정책의 역사를 살펴보자. 일단 미국의 무역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가 직면한 문제의 중심에 미국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가 갖고 있는 무역 체제 자체도 미국에서 고안됐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왜 이런 지경(무역 전쟁 가능성)에까지 이르렀는지를 보려면 미국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미국의 관세정책은 오랜 시간에 걸쳐 발전해 왔다. 미국에서 관세율이 가장 높았던 때는 바로 관세 품목 대상이 그렇게 많지 않던 시기였다.

1860년대와 1930년대까지 오랜 기간 동안 미국의 평균 관세율은 40%에 달했다. 그 후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 등의 영향으로 등락을 경험했다. 만약 세계가 무역 전쟁으로 치닫게 되면 이것이 반복될 것이다. 평균 관세율이 40%까지 치솟을 것이다.

세계무역 환경은 1930년대 이후 몇 번의 변화를 겪었다. 1944년 미 의회가 무역협정법을 제정했다. 미국 대통령이 다른 국가들과 무역협정을 체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300여 개에 달하는 제품에 관세율이 적용됐다.

그 후 무역정책은 정치화되는 국면을 맞게 된다. 많은 이해관계인들이 관세 협상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면서 피해를 본 사람은 일반 대중이다. 정책이 있다는 것 자체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관세율은 특정 집단의 이해에 부합하도록 매겨진다. 경제력을 이용해 더 큰 혜택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무역을 활용한다. 때론 수입제한 등의 조치를 취하기도 한다.

문제는 다른 국가들도 무역을 그러한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1930년대 무역 협상을 시작했고 1940년대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국제무역 체제가 탄생했다.

무역 협상을 세계적으로 표준화(글로벌 스탠더드화)한 것이다. 여러 국가가 여기에 가입했다. 이후 세계무역기구(WTO)가 GATT를 대체하면서 더 효과적인 분쟁 해결 체제를 갖추게 됐다.

이렇게 만들어진 무역 협상 절차를 통해 큰 변화가 일어났다. 세계는 상호 무역 체제에 맞는 이해를 갖추게 됐고 관세는 계속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 체제는 70년 동안 지속됐다. 물론 어떤 무역 관세 협상도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그전에는 여러 국가들이 무역에 대해 협상하고 협력하는 체제 자체가 없었다. 항상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70년 걸려 완성한 국제무역 체제, 한순간 붕괴 위기"
◆‘국가 안보’ 앞세운 트럼프 정부

무역 전쟁은 무엇을 의미할까. 무역 전쟁은 모든 국가들이 자신의 국가이익을 위해 촉발하는 것이다. 즉, 지금까지 세계가 협정을 통해 만들어 온 ‘게임의 규칙’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동안 무역 전쟁을 피하기 위한 시도가 오래도록 계속됐지만 최근 들어 규칙을 어기는 사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무역 전쟁이란 말은 무시무시하게 들리지만 사실 전쟁이라고 해서 사람이 죽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자원을 쓸데없이 낭비하면서 점점 더 가난해지는 것을 무역 전쟁이라고 한다.

지금 무역 전쟁을 시도하는 주요 주자는 미국이다. 미국에는 그간 우리가 무역 체제로 거둔 성과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무역 체제가 얼마나 오랫동안 허술하게 작동해 왔는지를 지적하면서 반대한다. 이들은 무역 전쟁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법적으로 봤을 때도 무역 전쟁을 할 수 있는 권리들이 있다.

정부는 특정 기간에 정치적인 압박을 받아 무역 체제를 완화하는 행동을 취하는 경향이 있다. 보호무역주의적인 행동으로 시장을 와해시키고 일시적으로 관세를 부과한다. 불공정한 교역이 이뤄질 것 같은 움직임이 나타나면 관세를 부과하는 식이다.

미국 트럼프 정부는 ‘국가 안보’라는 이름으로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정상이 아니다. 캐나다에서 수입하는 철광에도 관세를 부과하는 데 미국의 교역 의존도로 봤을 때 그게 의미가 있을까. 이를 국가 안보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미국이 게임의 규칙을 따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다수일 것이다.

무역 전쟁이 벌어지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어떤 나라에 관세가 부과됐거나 될 예정이라면 그게 중국이든 유럽연합(EU)이든 한국이든 그 나라도 이미 보복관세를 부과했거나 부과할 것이다. 그러면 미국 역시 재보복성 조치를 취할 것이다. 이는 또 다른 보복으로 이어진다.

미국발 무역 전쟁은 우리가 70년이나 걸려 만든 시스템을 짧은 시간에 와해시킬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지만 이미 일어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무역 전쟁이 일어나면 세계는 어떻게 될까. 이는 관세가 얼마나 높게 치솟느냐에 따라 다르고 사람들이 교역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나는 역사적으로 봤을 때 관세가 다시 40%까지 치솟을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한다. 각 국가들이 수출 가격을 최대로 올리고 수입 가격을 낮췄을 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 대략 계산하면 세계 교역량의 3분의 2 정도가 줄어들 것이다.
"70년 걸려 완성한 국제무역 체제, 한순간 붕괴 위기"
◆‘초세계화’로 형성된 국제 가치 사슬

세계 교역량이 증가한 것은 1970년대다. 제1차 세계대전이후 세계경제 질서가 와해되면서 보호무역주의가 나타났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통합 움직임이 시작됐고 오랜 기간에 걸쳐 복구돼 1970년에 1910년대 수준을 회복했다. 그 후 1980년대까지 많은 무역 협상이 이뤄졌다. 1990년대 들면서 굉장히 빠른 변화와 새로운 현상들이 나타났다. 신기술이 생기면서 세계가 더 가까워졌다. 그 시점에 이르자 ‘초세계화’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초세계화를 통해 복잡한 국제 가치 사슬이 형성됐다. 1940년대에는 한 국가 안에서 가공돼 최종 제품이 만들어지는 시스템이었는데 지금은 어떤 상품을 제조할 때 중간재 생산국, 최종재 생산국 등 다양한 국가들이 개입된다. 아이폰 하나만 봐도 알 수 있다. 중국에서 대부분의 제조 과정이 이뤄지지만 한국·일본·미국의 부품과 기술이 들어가 있다. 가치 사슬이 매우 복잡하다.

또한 운송 시스템도 발달돼 상품을 컨테이너에 실어 트럭으로 운송하는 체제가 굉장히 중요하다. 우리는 바코드를 통해 컨테이너 안에 무엇이 적재돼 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신기술로 이제 우리 세계는 관세가 낮은 것이 정상이 됐다. 개방된 무역 질서를 반영한 것이다. 개방된 무역 체제가 폐쇄된다면 이것들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무역 전쟁이 발발하면 우리는 평균 관세율 40%대라는 아주 높은 관세율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세계 교역량 또한 3분의 2 정도 감소할 것이다. 1950년대 수준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증가해 온 교역량도 감소할 것이다. 이런 후퇴는 순식간에 이뤄질 수 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모든 일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이론은 말할 수 있다. 무역에는 ‘패자’가 있기 때문이다. 패자는 늘 있었다. 1960년대, 2010년에도 있었다.

일부 업계에서는 ‘차이나 쇼크’를 많이 얘기하는데 사실 차이나 쇼크는 아시아 수입품 모두를 대변하는 것이다. 중국 때문에 미국의 일자리가 다 사라졌다고 하는데 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중국은 다만 국제 가치 사슬의 한 역할을 한 것이다. 무역 체제는 늘 무역의 패자가 존재했다. 세계화가 진전되면서도 세계화의 패자들도 나타났다. 그에 따른 분노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현재 미국 정부가 강한 의지를 갖고 무역 체제를 와해시키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정말 엉뚱한 짓이다.

무역 전쟁이 벌어진다면 세계는 더 빈곤해질 것이다. 1950년대 수준의 교역량으로 돌아간다면 그 수치로 봤을 때 국내총생산(GDP)이 현재보다 2~3% 줄어들 것이다.

그 수치가 높지는 않지만 예의 주시해야 한다. 무역 전쟁이 벌어지면 세계는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현재의 무역 체계는 개방된 무역 체계를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앞으로도 개방된 상태로 유지될 것이란 기대감을 전제한다.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그렇다. 노동자와 임직원들은 이를 통해 자신이 어디에 살면서 생업에 종사할지 결정을 내린다. 그런데 무역 체계가 파괴되면 자신이 왜 그곳에 살아야 하는지 의심을 하게 될 수도 있다.

미 노동자 500만~700만 일자리 잃을 것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무역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쉽게 말하지만 아직 초기 단계인데도 불구하고 승리할 수 없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최근 미국의 모터사이클 제조업체인 할리데이비슨이 EU의 보복관세를 피해 미국 내 일부 생산 시설을 외국으로 이전하기로 한 것은 폭풍의 서막에 불과할 것이다. 500만~700만 명의 노동자들이 다른 곳에서 일자리를 찾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충분히 고통스러울 것이다.
나는 최근 관점을 바꿨다. 불과 수개월 전에 이러한 무역 교란에 대해 전망할 때 그렇게까지는 심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미국의 대기업들도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통로는 없다고 생각한다. 업계와 트럼프 간 상당히 긴장된 관계가 지속되고 있다. 개선될 것이란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국가 간에 서로 보복하고 맞보복하는 현상도 지속되고 있다. 정말 험한 그런 여정이 될 것이다. 세계무역 체계는 앞으로 5~10년 안에 상당히 다른 모습을 갖추게 될 것이다.

poof34@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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