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제 1183호 (2018년 08월 01일)

[페미니즘 경제학] “고정된 성역할은 남성에게도 힘든 굴레죠”

[커버스토리=페미니즘 경제학]
-신지예 녹색당 서울당위원장…지방선거에서 ‘페미니스트 서울시장’ 내걸고 돌풍



약력: 1990년생. 2004년 한국청소년 모임 위원장. 2013년 오늘공작소 대표(현). 2015년 서울특별시 청년정책위원회 주거분과위원장. 2016년 녹색당 정책대변인. 2016년 녹색당 서울특별시당 공동운영위원장(현).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그는 등장과 함께 늘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다. 지난 6·23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 후보로 나와 파란을 일으켰던 신지예 녹색당 서울시당위원장의 얘기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어린 여자애’ -신 위원장은 올해로 28세다-가 내민 문구는 당돌하게도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이었다. 국민을 향해 최대한 공손한 포즈를 선택한 여느 후보자들과 달리 그는 몸을 살짝 옆으로 튼 채 그저 카메라를 담담하게 응시했다. 국민들로부터 표를 받아야 하는 정치인들로선 굳이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고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표를 부탁한다는 느낌조차 주지 않는 그의 태도(?)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세간에 화제를 불러 모으기에 충분했다.

그 덕분에 그는 정치인으로서 꽤 성공적인 첫발을 내디뎠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1.7%의 득표율로 정의당 후보를 제치고 4위를 차지했다. 쟁쟁한 거물들이 뛰어든 큰 선거판에서 이름 없는 군소 정당 후보로서는 꽤 의미 있는 결과다. 적어도 대중에게 그의 이름 석 자를 기억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선거가 끝난 이후 그는 요즘 더 바빠졌다.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이라는 도발적인 구호 덕분에 어느샌가 ‘페미니즘의 대표 얼굴’이 된 신 위원장의 발언 한마디 한마디에 누군가는 날 선 반응을 보이고 누군가는 통쾌함을 표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 ‘페미니즘’이라는 용어가 얼마나 뜨거운 이슈인지 고스란히 보여주는 사례다. 마포구 망원동의 조그마한 사무실에서 7월 25일 신 위원장을 만났다. 그가 말하는 ‘페미니즘’이란 무엇일까. 그가 이를 통해 만들고자 하는 ‘더 살기 좋은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편 가르기?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1990년생인 신 위원장은 ‘백말띠’ 해에 태어났다. ‘백말띠 해에 태어난 여자는 팔자가 사납다’는 속설 때문에 역대 최악의 성비(여아 100명, 남아 116.5명)를 기록한 바로 그해다.

“‘백말띠 여자는 팔자가 세다’는 식의 얘기는 자라면서 수도 없이 들어온 거예요. 저는 이게 단지 백말띠 여성들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에 ‘기 센 여자’에 대한 인식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제 포스터에 대한 반응 역시 크게 다르지 않겠죠. 여자가 기가 세 보이는 것에 대한 반감 같은 거죠.”

‘1920년대 계몽주의 모더니즘 여성 필(feel)이 나는 아주 더러운 사진.’ 누군가는 그의 포스터를 이렇게 표현했다. 한마디로 말해 ‘시건방지다’는 것이었다.

“저도 그 글을 읽었습니다. ‘1920년대 계몽주의 모더니즘 여성 필’이 무엇인지 궁금해 찾아봤어요. 당시 대표적인 페미니스트이자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였던 나혜석에 대해 이것저것 공부하다가 그의 작품인 ‘자화상’을 봤어요. 그런데 전혀 미소 없는 무표정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여성의 그림이더군요. 그때처럼 지금도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가부장적인 시선이 이어져 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인지 그의 선거 벽보는 유난히 많이 찢겨나갔다. 서울 전역에서 30장 가까이가 훼손됐는데, 대부분은 중년 남성이었다.

“처음 ‘페미니스트 서울시장’이라는 구호를 정했을 때 일부 당원들 중에는 우려를 나타내는 목소리도 있었어요. 저는 ‘페미니즘’이 여성만을 위한 사상이나 운동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페미니즘은 기본적으로 ‘다양성’을 얼마나 인정하느냐와 연결된 가치예요. 남성이든 여성이든, 성소수자든 상관없이 모두가 평등하게 잘 살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하는 거죠.”

신 위원장은 ‘지금 한국 사회는 여성들이 살기 힘들지만 그만큼 남성들도 살기 힘든 사회’라는 것을 지적한다. 한국 사회는 여성에게 요구하는 ‘여성성’도 있지만 그만큼 남성들에게 요구하는 ‘남성성’도 강하다. 가장의 무게를 짊어지고 직장인의 애환을 견뎌내야 하며 돈을 벌어 행복한 가정을 일구기를 요구 받는다. 아이들의 대학 등록금 걱정부터 부모님의 노후 걱정까지 이 모든 것이 다 ‘남성의 어깨’를 짓누르는 것들이다.

“이런 고정된 성역할로 인해 여성들뿐만 아니라 남성들도 상당히 많은 차별을 받고 있고 그로 인해 고통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남성들도 이런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페미니즘을 선택할 수 있다고 봐요. 여성이 고정된 성 역할을 벗어던지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어야 남성 또한 이와 같은 굴레들을 벗어던질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페미니즘이란 여성만의 힘으로는 이루기 어렵습니다. 결국엔 남성들이 같이 동참해야 완성될 수 있는 가치인 거죠.” 

신 위원장은 중학생 시절 두발 자유화 운동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 학교에서 학생들의 복장을 규율로 정하고 여학생들의 속옷 색깔까지 정하는 게 인권을 침해한다고 느꼈다.

“몇 번의 집회를 거쳐 많은 청소년들의 지지를 받았죠. 물론 성과를 얻기도 했어요. 당시 정부가 취한 조치는 ‘학생과 학부모와 선생이 모여 두발 등과 관련한 규율을 논의하라’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이건 새로운 규율을 정하는 것이지 진정한 의미의 ‘두발 자유’는 아니잖아요. 학교가 이런 곳이라면 제가 배울 수 있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길로 학교를 그만뒀어요.”
신 위원장은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하자 작업장’이라는 대안학교에 다녔다. 그 이후 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사회적 기업에서 4년간 일했다. 현재는 3D 프린터를 제작하는 ‘오늘 공작소’의 대표로 재직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남들이 가지 않은 길만 골라 걸어온 셈이다.

“세상이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 절실하게 경험하고 느꼈죠. 그럼에도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늘 있었고 결국 세상을 바꾸는 것은 정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중에서도 여성 문제를 정치인으로서 제가 해결하고자 하는 우선적인 의제로 정한 것은 제가 여자이기도 하지만 제 어머니를 옆에서 늘 지켜봐 왔기 때문이에요. 워킹맘이었는데 늘 ‘내가 남자였으면 좋겠다’는 말을 달고 살았거든요.”

◆“‘워킹맘’이 일하기 좋은 세상 만들 것”

이 때문에 신 위원장이 특히 주목하는 것 역시 기업들의 ‘성평등한 고용’과 ‘조직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이번 서울시장 후보로 나서면서도 몇 가지 정책을 내놓았다. 대표적인 것이 ‘성별 임금 격차 공시 및 해소’와 ‘서울시 동수 대표제 도입’ 등이다. 성별 임금 격차 공시 및 해소는 서울시와 산하 기관의 성별 고용 형태와 임금 현황을 공개하는 것이고 서울시 동수 대표제는 서울시와 산하 기관의 4급 이상 개방형 직위부터 50% 이상을 여성으로 채용하겠다는 것이다.

“서울시만 해도 전체 직원 성비는 남성과 여성이 비슷해요. 그런데 일반직 5급 이상은 여성의 비율이 18.32%로 매우 낮죠. 고위직으로 갈수록 여성이 줄어든다는 거예요. 물론 남성에 대한 역차별 논란이 나올 수 있지만 지금의 상황에서는 우선 ‘여성에게 기회의 문을 넓혀 주는 게’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이와 함께 출산휴가·육아휴직 정책도 필요하죠. 남성에게도 육아휴직을 의무화한다든지 남성도 가정의 일원을 돌보는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인정받게 하는 정책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습니다.”

그 역시도 변화의 물꼬가 트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특히 ‘여혐’ 대 ‘남혐’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지금 같은 분위기에서는 페미니즘을 통해 남성들의 공감을 이끌어 낸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그의 벽보를 찢었던 한 30대 남성은 ‘여성의 권리가 신장되면 자신과 같은 남성의 취업이 힘들어질까봐’라는 이유를 대기도 했다.

“한국 사회는 기본적으로 ‘각자도생’하는 사회잖아요. 경제적인 영역에서 그 누구도 책임져 주지 않죠. 개인이 직장에 고용되지 않는다면 생존에 위협을 받는 상황이니까요. 그러다 보니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이 ‘약자들끼리의 다툼’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그런데 약자들끼리의 싸움으로는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아요. 이 문제는 ‘일자리’가 늘어나야 하는 것이지 여성과 남성의 갈등은 본질과 관련이 없는 것이죠.” 

신 위원장은 미국에서 한때 ‘여성을 집으로 돌려보내자’는 구호가 유행한 적이 있었던 것을 사례로 들었다. 페미니즘은 여성을 구원하지 못한다. 페미니즘을 바탕으로 직장에 진출한 여성들은 오히려 예전보다 더 버거운 삶을 살아내야 하고 그로 인해 우울해졌다. 예전보다 더 많은 여성이 불임과 난임에 고통 받고 있다. 그러니 여성은 집에서 일해야 행복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이 논리가 퍼진 결과는 참담했다. 오히려 직장에서 여성들에 대한 유리 천장이 공고해졌고 더 많은 여성들이 불안정한 일자리로 내몰리게 된 것이다.

“지금의 한국 여성들이 조금 과격한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은 그만큼 오랫동안 묵혀 왔던 상처에 대한 분노가 불거지는 단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과격한 언어나 행동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왜 이렇게까지 ‘절규’하는지 한 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거죠.”

지금과 같은 남녀 갈등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 위원장은 조금 더 다양한 페미니즘의 목소리들이 쏟아져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페미니스트들이 지금 싸우고자 하는 것은 남성들이 아닌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구조’다. 남성을 끌어안지 못하고 적으로 돌린다면 세상은 변하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다.

“성소수자 운동에서도 ‘사랑이 혐오를 이긴다’는 구호가 많은 대중의 가슴을 울렸잖아요. 페미니즘에서도 남녀 모두에게 공감을 받을 수 있는 이런 구호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의 여성 문제는 사실 사회구조가 뿌리 깊게 얽힌 복합적인 문제예요. 바꾸기 쉽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바꾸려는 노력을 멈출 수는 없잖아요. 계속 시도해야 ‘아주 느리게라도’ 세상이 조금씩 변할 수 있는 거니까요.”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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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83호(2018.07.30 ~ 2018.08.05)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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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8-08-03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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