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2018 요트산업 보고서]
-"요트 안 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타본 사람은 없죠"
이철웅 현대요트 대표 "5년 내 중산층 여가 문화로 자리 잡을 것"
[부산=이정흔 한경비즈니스 기자] 부산 해운대구에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마리나항만 시설인 ‘수영만 마리나’. 화려한 외관의 고층 빌딩들이 둘러싼 한가로운 바다 위에 300여 척의 요트가 빽빽하게 늘어선 모습이 꽤 장관이다.

그 이국적인 풍경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자니 어느 순간 날렵한 곡선을 지닌 요트 한 대가 미끄러져 들어온다. 이 요트의 운전자는 국내 최대 요트 업체인 현대요트의 이철웅 대표. 경기도 화성의 전곡항에서부터 출발해 목포와 매물도 등을 거쳐 최종 목적지인 이곳에 들어오는 길이라고 했다. 지난 8월 20일 ‘장거리 요트 여행’을 마친 이 대표를 수영만 마리나에서 만났다. 국내 해양 레저 문화를 선도하고 있는 요트 업체의 대표가 말하는 ‘요트 산업의 매력’은 무엇일까.

◆배 위에서 누리는 나만의 공간

인터뷰를 하기 위해 그를 따라 요트 위로 올라섰다. 요트 내부로 연결된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마치 ‘거실’과 같은 아늑한 공간이 나타난다. 겉에서 보기에는 공간이 그리 커 보이지 않았는데 오히려 안에 들어서니 그 크기가 꽤나 넉넉하다. 한쪽엔 간단히 음식을 해먹을 수 있는 싱크대가 비치돼 있고 거실 중앙엔 편안하게 둘러앉아 수다를 떨 수 있는 의자와 테이블이 자리 잡고 있다. 이 거실을 둘러싸고 세 개의 방이 자리 잡고 있는데, 각각의 방마다 침대와 화장실이 따로 구비돼 있다.

“흔히 요트를 타는 걸 크루즈와 비슷하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요트 내부에 들어오면 매우 사적인 공간이에요. 낚시·독서 등 누구 눈치 볼 필요 없이 그저 하고 싶은 걸 하면 되죠. 그래서 요트를 한 번도 타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이라도 요트를 타 본 사람이라면 모두 다 이 매력에 빠질 수밖에 없죠.”

이 대표는 2015년 11월부터 현대요트를 이끌고 있다. 세계 2위 구명정 제조업체인 에이치엘비의 자회사인 현대요트의 역사는 197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1975년 ‘경일요트’를 설립했지만 1982년 현대정공의 사업부로 합병되면서 사세가 위축됐고 결국 요트 사업을 접었다. 그러던 중 2000년 현대그룹이 ‘현대라이프보트(현 에이치엘비)’라는 구명정 제조 전문 회사를 만들었고 2008년 현대라이프보트가 자회사로 현대요트를 설립했다. 지난 40년간 국내 요트 산업을 꿋꿋하게 지켜 온 선도 업체다. 2010년 처음 현대요트와 연을 맺은 이 대표는 능력을 인정받아 5년 만에 대표 자리에 올랐다.

“현대요트 입사 전부터 선박 제조업체에서 일하며 자연스럽게 ‘요트’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당시 터키에 출장을 갈 일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터키 가족에게 초대받아 처음 요트 문화를 접하게 됐어요. 흔히 요트라고 하면 ‘슈퍼리치’들이 즐기는 화려한 취미 생활 정도로 여기잖아요. 그런데 터키에서 제가 접한 요트는 가족·친구들과 함께 일상 속에서 편하고 여유롭게 누리는 여가 문화의 하나였어요. 해외의 요트 문화를 볼 때 우리도 그런 시대가 올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의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이 대표가 요트 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던 2010년 무렵만 해도 요트 산업은 ‘국내 레저 산업의 황금알’로 기대를 모으며 주목받았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요트 산업은 10년 가까이 제자리걸음이다. 현대요트는 당시 야심차게 국내 요트 제작에 나섰지만 번번이 어려움에 부딪쳤다. 국내에서 아무리 좋은 부품을 활용해 고급 요트를 제작해도 해외 중고 요트를 찾는 고객이 더 많은 게 현실이었다. 현대요트는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수입 요트 판매, 마리나 사업 및 컨설팅, 최근에는 요트 클럽 및 멤버십 운영까지 사업 범위를 넓혀 나갔다.

◆“적어도 5년 안에 폭발적 성장”

그렇다면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앞두고 다시 한 번 요트 사업이 주목받고 있는 지금은 어떨까. 이번엔 과거와 다를 수 있을까.

“물론 몇 십억원이 넘는 비싼 요트도 있는 반면 1억원만 투자해도 괜찮은 요트를 구매하는 게 얼마든지 가능하죠. 쉽게 말해 국내에서 수입차를 구매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력이 있다면 요트를 즐길 수 있다는 얘기예요. 2014년부터 고객들의 문의 횟수라든지 서비스 이용 추이를 분석해 보면 큰 흐름에서 고객들의 숫자가 증가 추세예요. 어느 한순간 변곡점이 생기면 폭발적인 성장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이런 관점에서 이 대표는 최근 전국적으로 마리나항만이 늘고 있는 것을 아주 긍정적인 신호로 보고 있다. 그동안 국내에서 요트 산업의 성장이 정체돼 있었던 데는 기본적으로 국내에서 요트를 타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난 몇 년 동안 세월호 사고 등 해양 레저는 위험하다는 인식이 강화된 것 또한 큰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요트 산업이 활성화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일상생활에서 ‘요트 문화’를 접해 볼 기회가 늘어나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마리나가 늘어나면 그동안 요트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요트를 구매하기 시작할 거예요. 그렇게 요트가 늘어나다 보면 한강 등지에서 요트를 즐기는 사람들이 점점 더 자주 눈에 띄기 시작할 테고요. 그게 변화의 출발점이 될 겁니다.”

실제로 최근 들어 요트를 사용하는 용도 또한 다양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비즈니스 용도’로 요트를 이용하는 이도 늘고 있다.

“국내에서는 특히 요트를 ‘비즈니스 접대의 끝판왕’으로 생각하는 이가 많아요. 요트가 굉장히 프라이빗한 장소다 보니 조금 더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사업 얘기를 하는 데도 나쁘지 않고요.”

실제로 현대요트의 고객들만 봐도 30대부터 60대까지 연령이 다양한데다 직업도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 외에도 자기 사업을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기업들이 요트를 직접 구매해 활용하는 곳도 늘고 있다.

“요트 산업이라고 하면 단순히 요트만 생각하는데 이와 관련해 부수적으로 연계된 산업이 굉장히 많아요. 예를 들어 요트를 수리하는 업체나 부품 업체도 필요하고요. 해외에서는 마리나 하나가 조성되면 관광객들이 유입되면서 이들이 돈을 쓸 수 있는 쇼핑센터나 숙박 시설이 들어서 큰 관광 단지가 되는 곳도 적지 않고요. 적어도 5년 내 요트 산업의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질 겁니다.”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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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87호(2018.08.27 ~ 2018.09.0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