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 = '한국판 러스트 벨트' 회생 프로젝트]
- 자동차·기계·조선 등 주력 제조 산업 침체…고용↓·실업↑에 지역경제도 휘청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한국의 산업과 경제를 이끌어 왔던 자동차·기계·조선 등 전통 주력 제조 산업이 무너지고 있다. 범위와 속도가 심상치 않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조선·해양 산업의 본거지인 동남권(경남 거제·통영, 울산 등)이 문제가 됐지만 최근에는 철강과 기계 산업의 역할을 해오던 포항과 창원도 어려움을 겪고 있고 지금은 자동차 산업을 포함하는 전북 군산을 포함해 서남권(전남 목포·영암·해남)까지 범위가 넓어졌다.

이들 지역은 구조조정의 바람이 불며 생산·소비가 금융 위기 이후 최악의 상태에 빠졌고 인구 ‘엑소더스(대탈출)’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급기야 정부가 나서 이들 지역을 ‘산업위기대응특별지역’으로 지정하고 추경과 목적예비비 1조1730억원 규모를 투입했지만 추락한 이들 지역의 산업과 경제는 반등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우려되던 ‘한국판 러스트 벨트’가 현실화된 셈이다.
현실이 된 ‘한국판 러스트 벨트’…“동·서남권이 흔들린다”
◆ 불과 1~2년 새 벌어진 ‘러스트 벨트’ 현상

러스트 벨트는 ‘녹슬다(rust)’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경제가 한때 번영했지만 추락한 지역을 뜻한다. 미국을 세계 최대 경제 대국으로 이끌던 제조 산업 벨트인 미시간 주의 디트로이트와 펜실베이니아·오하이오·인디애나 주 등이 대표적 러스트 벨트 사례로 꼽히고 있다.

이들 지역은 1970년대까지 미국의 번영을 이끌었다. 포드·제너럴모터스(GM)·크라이슬러 등 3개 자동차 회사와 US·베들레헴·내셔널 등 3대 철강사와 타이어 기업은 자유무역의 빗장이 열리기 전까지 거대한 미국 내수 시장을 독점했다.

하지만 이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체결되고 세계무역기구(WTO) 등이 출범하면서 전 세계의 값싸고 품질 좋은 제품이 밀려들자 경쟁력을 급속히 상실했다.

기업은 저임금 지역을 찾아 미국 남동부와 멕시코 등으로 공장을 옮겼고 영세한 하청·협력업체들 중 상당수는 문을 닫았다. 이에 따라 이들 지역 경제는 직격탄을 맞았고 인구는 이탈했으며 범죄율도 치솟았다.

이러한 제조업 밀집 지역이 경쟁력을 잃고 폐허의 도시로 전락하는 러스트 벨트 현상을 한국은 지난 50년 동안 마치 남의 나라 일인 듯 생각하며 지냈다. 특히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철강·조선·기계·자동차 산업은 그동안 이렇다 할 어려움 없이 성공 가도를 달려 왔다.

1960년대 정부의 주도로 시작된 이들 산업군의 육성 전략은 전폭적인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성장했고 한국 제조 산업의 떠받치는 기간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이들 산업의 성장으로 수도권에서는 인천·반월·시화 지역에서 수많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었고 군산·구미·창원 등의 산업 단지도 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 조선·해양·자동차 산업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러스트 벨트는 산업의 거점인 울산·거제·통영·군산을 초토화시키고 있다.

성동조선과 STX조선해양 부실화, 대우조선 및 현대중공업의 구조조정, 한국GM 군산 공장 폐쇄 등과 같은 충격으로 그 지역에서 대규모 실업이 발생하고 배후 지역에서까지 심각한 경기 침체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급기야 정부가 나서 이들 지역을 산업위기대응특별지역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울산·거제·통영·군산을 중심으로 번지고 있는 러스트 벨트는 각종 통계 지표에서 확인할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6월 제조업 생산능력지수는 102.5로 2016년 6월(102.3) 이후 가장 낮았다.

생산능력지수는 사업체가 정상적인 조업 환경에서 생산 활동을 할 때 가능한 최대 생산량을 뜻한다. 지난해 10월 104.5까지 상승했지만 이후 줄곧 내리막이다. 특히 지난해 12월(104.1) 이후 올 1월(103.2)로 넘어오면서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다. 기업들의 체감경기지수도 18개월 만에 최저를 기록하며 급격히 얼어붙고 있다.
현실이 된 ‘한국판 러스트 벨트’…“동·서남권이 흔들린다”
◆ 얼어붙은 제조 경기, 지역 경제 침체로

제조 산업의 고용 현황도 심각하다. 특히 조선·자동차 등 고용 유발 효과가 큰 업종을 중심으로 구조조정 여파가 가속되면서 제조업 취업자가 크게 줄었다.

제조업 취업자는 전년 동월 대비 10만5000명 감소했다. 제조업 취업자는 올해 4월부터 5개월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 가고 있지만 업황 증대에 따른 취업자 증가는 요원한 상태다.

취업자는 없는데 실업자는 늘어나고 있다. 특히 조선업 부진이 요인이다. 조선업 생산지수는 2015년 4월부터 40개월 연속 줄어들 정도로 심각하다.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조선·중공업 분야 7개 사의 인력은 지난해 6월 말 5만3703명에서 올해 6월 말 5만549명으로 3154명 줄어들었다.

삼성중공업과 현대중공업이 각각 1133명, 1075명 등 1000명 이상씩 감소했고 대우조선해양(382명)·현대미포조선(111명)·현대삼호중공업(106명) 등도 인력을 감축했다.

문제는 조선업 불황이 지역 경제에도 큰 타격을 줬다는 것이다. 울산 지역은 최근 3년 새 국가산업단지 고용자 수가 10% 가까이 줄었다.

한국산업단지공단 전국산단 현황 통계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울산 지역 2개 국가산단(미포·온산) 고용자 수는 11만277명으로 지난해 동기 11만6002명보다 5%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최근 3년을 집계하면 감소 폭은 1만 명을 훌쩍 넘는다.

조선업이 경제의 큰 비율을 차지하는 거제시도 마찬가지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상반기 지역별 고용 조사’에 따르면 거제시는 7.0%로 올해 상반기 시군별 실업률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조사됐다.

구미·창원·울산 등 ‘산업 1세대’ 도시들도 쇠락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전자산업의 메카였던 구미는 2011년 61조7934억원의 생산 실적을 올리다가 2015년 30조4318억원으로 4년 새 거의 반 토막이 났다.

기계 산업 중심의 창원도 주변 지역인 거제의 조선업 몰락과 맞물려 불황을 맞고 있고 이 지역 중소기업 가동률은 2015년 76.6%에서 최근 69.7%로 하락했다.

구미의 상가 공실률은 전국 평균의 4배, 창원 지역의 제조업 일자리는 4년 새 7000개가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지역 경제의 축을 이루던 제조업의 철수로 ‘공동화(空洞化)’가 가속화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로이터는 최근 보도에서 “한국 울산의 현재가 1970~1980년대 급격한 산업 발전 이후 쇠락한 미국 중서부 일대의 러스트 벨트와 많은 부분에서 비슷한 도전에 직면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지역 경제를 지탱하던 이들 지역의 러스트 벨트는 지역 근간인 부동산 시장마저 무너뜨리고 있다. 포항·울산·거제·통영·군산 등이 심각하다. 이들 지역 아파트 값은 벌써 4년째 지방 집값 하락을 선도하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남동임해공업지역 주요 도시 아파트 값이 4년째 하락세다. 가장 먼저 침체기에 들어간 곳은 조선업 침체의 직격탄을 맞은 거제시다. 월간 기준으로 2015년 3월부터 지난 9월까지 단 한 번도 반등하지 못하고 하락세를 이어 가고 있다.

그동안 아파트 값은 23.34% 하락했다. 하락세는 올 들어 더 가팔라지고 있다. 1~4월 6.16% 떨어졌다. 이런 추세라면 상반기 중 작년 한 해 하락률(8.57%)에 도달할 전망이다. 2016년 1월부터 창원·통영·포항 등이 하락 대열에 합류했다. 창원은 2016년부터 지난 9월까지 12.87%나 떨어졌다.

특히 기계 산업 중심의 창원국가산업단지가 자리 잡은 성산구(15.23%)의 하락이 심했다. 한국GM 창원 공장의 앞날도 장담할 수 없어 창원 시민들의 주름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철강 업체가 밀집된 포항은 같은 기간 11.07%의 하락률을 보이고 있다. 이 기간 성동조선 몰락의 직격탄을 맞은 통영은 8.80%의 하락률을 나타냈다. 울산은 2016년 12월부터 하락 대열에 동참했다.

지난 9월까지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등이 자리 잡은 울산 동구의 하락률은 6.43%를 나타냈다. 같은 기간 상대적으로 외곽인 북구의 하락률도 8.47%에 달했다.


cw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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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95호(2018.10.22 ~ 2018.10.28)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