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무역 갈등은 시작일 뿐” 트럼프의 ‘준비된 패권전쟁’]
-트럼프, 취임 첫해에는 경고성 발언만…감세 효과로 경제 탄력 받자 본격 ‘포문’

[한경비즈니스= 김현석 한국경제 뉴욕 특파원 ]“미국은 소련 붕괴 이후 자유로운 중국이 필연적이라고 생각했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지원하고 개방을 도왔다. 경제 자유화가 중국을 더 큰 동반자로 만들 것을 희망했다. 하지만 중국은 경제적 침략을 선택했고 그를 통해 군대를 키워 더욱 대담하게 행동하고 있다. 중국 공산당은 미국으로부터 훔친 기술로 쟁기를 거대한 칼로 바꾸고 있다. 이전 미국 행정부는 모두 이런 중국의 행동을 무시했지만 그런 시절은 끝났다.”

지난 10월 4일 워싱턴D.C.의 싱크탱크 허드슨연구소 연단에 선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중국을 대놓고 공격했다. 미국 기업 지식재산권의 탈취, 남중국해 등에서의 군사력 확대, 중국 내 종교와 인권탄압, 미국 정치에 대한 개입 시도 등을 조목조목 나열하면서 말이다.

중국과의 무역 전쟁은 경제적 이유만으로 시작된 게 아니다. 중국의 개혁·개방을 도와준 것부터가 잘못됐다는 현실 인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더글러스 딜런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는 10월 13일 파이낸셜타임스 기고에서 펜스 부통령의 연설은 사실상 중국과의 신냉전을 선언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중국이 미국산 물건을 더 사줘 무역적자를 줄이는 것만으로 쉽게 마무리될 일이 아니라는 얘기다.
우편 전쟁에서 스파이칩 전쟁까지…미국의 준비된 ‘정밀 타격’

◆경고→관세전쟁→기술전쟁으로 확전


2016년 대선 캠페인 때부터 중국을 비난해 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중 전략은 치밀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해 8월 통상법 301조에 의거해 미 무역대표부(USTR)에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 등에 대해 광범위하게 조사할 것을 지시한 게 시발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서둘지 않고 있다. 첫해인 지난해 구체적 조치보다 경고성 발언이 주를 이뤘고 정치력은 국내 감세에 집중했다. 지난해 12월 세제 개혁안이 미 의회를 통과하고 올 1월 감세가 시행되자 미 경제는 탄력을 받았다. 그런 뒤 트럼프 행정부는 포성을 울리기 시작했다. 호황 속에 미국인이 체감할 무역 전쟁의 고통이 한층 덜하게 만들어 놓은 뒤 전장에 뛰어든 것이다.

미국은 올 초 중국산 세탁기와 태양광 등에 연달아 관세를 매겼고 지난 3월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각각 25%, 10%의 관세를 부과했다. 중국의 대미 철강 수출은 많지 않다. 하지만 미국이 한국·캐나다·멕시코·브라질 등 동맹국들은 협상을 통해 하나둘씩 면제해 주면서 결국 이는 중국·러시아 등 적성국을 겨냥한 조치로 풀이됐다. 중국은 2000년대 들어 엄청난 철강 생산능력 증강을 통해 세계 철강 시장을 뒤흔들어 왔다. 각국의 미국 수출이 줄면 세계는 자국 시장을 닫을 수밖에 없고 미국 외 시장을 잠식해 온 중국산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4월 초엔 500억 달러 상당의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 25% 부과 방침 발표로 중국을 직접 타격했다. 미국과 중국은 5~6월 베이징과 워싱턴D.C.를 오가며 3차례 고위급 무역 협상을 가졌지만 합의는 막판 트럼프 대통령의 철회로 불발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정부가 미국산 대두 등에 보복관세를 발표하자 지난 6월 2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추가 보복관세 부과 조치를 경고했다.

지난 7월 6일 340억 달러 상당의 상품에 대한 관세 부과가 시행됐고 8월 23일엔 나머지 160억 달러에 대해서도 관세를 때렸다.

미국은 지난 9월 24일 2000억 달러 상당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10%도 매기기 시작했다. 관세율은 내년 1월 1일이면 25%로 올라간다. 지난 9월 말 예정됐던 고위급 무역 협상은 중국 측의 거부로 취소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제 마지막 카드를 들이밀고 있다. 오는 11월 말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리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기간 중 미·중 정상회담(11월 29일)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양보하지 않으면 12월 초 나머지 2670억 달러 상당의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추가 관세를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 조치는 60일간의 의견수렴을 거쳐 내년 2월 초 중국 춘제를 앞두고 발효될 것으로 관측된다.
우편 전쟁에서 스파이칩 전쟁까지…미국의 준비된 ‘정밀 타격’

◆우편 전쟁, 스파이칩 전쟁…깊어지는 갈등


미국의 압박은 관세뿐만이 아니다. 미 상무부는 지난 10월 29일 중국 푸젠진화반도체(JHICC)에 대해 미국의 장비·소프트웨어·소재 등의 수출을 제한한다고 발표했다. 반도체굴기에 대못을 박은 것이다. 푸젠진화는 중국 정부의 산업 혁신 계획 ‘중국 제조 2025’의 일환으로 푸젠성 등 지방정부와 국영기업들이 출자해 설립된 기업이다.

미 상무부는 미국 마이크론과 특허 분쟁을 빚고 있는 푸젠진화가 국가 안보를 침해할 중대한 위험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훔친 지식재산권으로 싼값에 반도체를 쏟아내면 미 국방부에 반도체를 공급하는 마이크론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지재권 침해를 이유로 해외 기업으로의 수출을 막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푸젠진화는 56억 달러를 투입해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다. 대만 UMC의 기술을 받아 현재 D램 시제품을 생산 중이고 내년부터 본격 양산에 돌입할 계획이다.

글로벌 반도체 장비 시장은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1위), 램리서치(2위), KLA-텐코(5위) 등 미국 기업이 장악하고 있다. 특허 정보 회사 린드리그룹의 린드리 그웨넵은 “미국에서 장비를 구입하지 않고 최첨단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대만 UMC도 불똥이 튈 것을 우려해 즉각 푸젠진화와의 기술협력을 일시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는 유엔의 만국우편연합(UPU) 탈퇴도 선언했다. 개발도상국을 도우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UPU의 국제우편 요금 할인 제도가 세계 2위 경제 대국인 중국에 적용돼 중국 기업들이 싼값에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탈퇴 위협에 UPU는 제도 변경을 검토하고 있다.

애플·아마존 등 미국 주요 기업과 정부 컴퓨터 서버에 중국 스파이칩이 심어져 있다는 블룸버그의 의혹 제기도 흥미로운 이슈다. 블룸버그는 지난 10월 대만계 미국인이 세운 미국 기업 슈퍼마이크로가 중국에서 조립해 납품한 서버의 주기판에 감시용 초소형 칩이 설치돼 스파이 활동에 쓰였다고 보도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 등이 “스파이칩에 대해 조사했지만 아무것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반박했지만 블룸버그는 보도를 고수하고 있다. 일부에선 미국 정보 기관 등에서 자료를 받은 것으로 추측한다. 진위 여부를 떠나 이번 소동은 중국산 서버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10월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달러당 7.0위안을 위협하는 위안화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환율 조작국에 지정되면 10~25%의 관세는 ‘애교’가 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슈퍼 301조’에 따라 100% 보복관세를 부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중 갈등이 ‘치킨게임’ 양상으로 흐르는 가운데 타결에 대한 전망은 엇갈린다.

지난 9월 마윈 중국 알리바바 회장은 “미·중 간 무역 갈등이 20년 이상 갈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 반면 쿡 애플 CEO는 “양국이 문제를 잘 해결할 것”이라고 낙관했다.

쿡 CEO는 “무역은 제로섬 게임이 아니기 때문에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며 “양국이 궁극적으로 무역의 차이를 잘 해결해 나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교역을 통해 윈-윈할 수 있기 때문에 양국이 갈등을 수습할 것이라는 낙관이다. 중국은 지난 3분기 경제성장률이 9년 반 만에 최저인 6.5%로 떨어지고 생산·소비·투자 등 실물경기도 둔화세가 뚜렷해지고 있다. 무역 전쟁이란 뇌관을 없애는 데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처지다.

미국 정부도 마지막 남은 2670억 달러 규모 중국산 상품에 대한 관세를 놓고 저울질을 계속하고 있다. 이들 제품은 대부분 소비재여서 관세를 올리면 즉각 미국 소비자에게 부담이 전가된다. 게다가 미국 경기도 올해 정점을 지날 것이란 분석이 강하다. 중국의 침체가 심화되면 세계 경기가 함께 무너지면서 미국을 끌어내릴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중국과 위대한 합의를 할 수 있다(could reach a great deal)”고 말한 게 이런 분위기를 대변한다.

하지만 양국 무역 전쟁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강하다. G2 간 패권전쟁이라는 것이다. 마윈 회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은퇴하더라도 새로운 대통령이 나올 것이고 (지금과 다른) 새로운 무역규칙이 없는 한 마찰은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온라인 매체 악시오스는 10월 21일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지도자들이 관세 문제로 더 고통을 느끼기를 원한다”며 “무역 전쟁은 이제 시작 중 시작”이라고 보도했다. 무역 전쟁은 중국에 훨씬 더 불리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중국의 대미 수출 의존도는 18.9%였고 중국의 무역 흑자 중 대미 흑자가 65%나 됐다. 반면 미국의 대중 수출 의존도는 8.4%에 그쳤고 대중 교역에서 3370억 달러의 적자를 봤다.

그리스의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정리하면서 기존 패권자와 신흥 도전자가 싸우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여기서 나온 말이 ‘투키디데스 함정(Thucydides Trap)’이다. 미·중 갈등도 이런 틀로 볼 수 있다. 실제 미국은 그동안 패권을 위협하는 국가에 대해 군비 경쟁과 무역 전쟁으로 타격을 가했다. 1980년대 소련의 해체, 1990년대부터 시작된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그 결과물이다.
우편 전쟁에서 스파이칩 전쟁까지…미국의 준비된 ‘정밀 타격’

◆한국, 단기 피해…중·장기 전화위복될 수도


한국 경제는 미·중 무역 전쟁으로 고래 사이에 낀 새우 신세다. 상당수 한국 기업들은 그동안 중국에 중간재를 보내면 중국이 이를 가공해 미국에 수출하는 구조였다. 그런데 관세로 이런 구조가 무너지고 있다. 한국은행은 최근 ‘미국의 대(對)중국 통상압력 강화 배경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중국의 가공무역 감소는 중국에 중간재 수출 비율이 높은 한국에 부정적”이라고 진단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전화위복이 될 것이란 분석도 강하다. 중국은 ‘중국 제조 2025’를 강력히 추진 중이다. 반도체·디스플레이·전기차·로봇·해양플랜트·바이오의약품 등에서 중국 기업들이 세계적 수준에 올라갈 때까지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이들 산업은 모두 삼성·현대자동차·SK·LG 등의 주력 사업이거나 신수종 사업과 겹친다. 독일 싱크탱크 메릭스는 보고서에서 “‘중국 제조 2025’ 전략이 성공하면 첨단 기술 산업 비율이 높은 국가가 타격을 받을 것”이라며 피해 국가 1순위로 한국을 꼽았다.

미국은 이런 ‘중국 제조 2025’를 직접 겨냥하고 있다. ZTE와 푸젠진화 등에 대한 수출 규제가 대표적이다. ‘중국 제조 2025’가 차질을 빚게 되면 중·장기적으로 반도체·전기차·배터리 등 한국 주력산업이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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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97호(2018.11.05 ~ 2018.11.1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