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오픈 이노베이션의 시대' 스타트업 키우는 대기업들]-만남과 교류 통해 예상치 못한 비즈니스 창출…10월 ‘제로원 데이’에 첫 성과 공개
예술가와 스타트업이 한자리에...'창의 놀이터' 현대차 제로원
지금 실리콘밸리를 주름잡는 세계적인 기업들의 탄생지는 창업자의 ‘차고’였다. 세상을 바꾼 많은 혁신적인 기업들이 월세 걱정이 없고 자유가 보장되는 장소에서 탄생한 셈이다.
지난 3월 문을 연 현대차의 개방형혁신센터 ‘제로원’도 그런 창의적인 공간을 연상시켰다. 내부에 마련된 공간들은 네모반듯한 사무실과 거리가 멀었다. 스타트업들과 크리에이터들이 입주한 방들의 크기와 넓이도 제각각이었다. 불규칙적으로 설계된 내부의 디자인은 오피스라기보다 작은 마을을 옮겨 놓은 듯했다.
◆기수 대신 ‘멤버’로 결속력 강화하다
2000년대부터 오픈 이노베이션에 관심을 기울여 온 현대차는 이를 좀 더 강화하기 위해 2017년 ‘전략기술본부’라는 전담 조직을 신설했다. 생산이나 연구·개발, 판매에 이어 오픈 이노베이션이 현대차에서 커다란 축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이와 함께 현대차는 오픈 이노베이션 기지를 미국·중국·유럽·이스라엘 등 전 세계로 넓히고 있다. ‘현대 크래들 실리콘밸리(미국)’, ‘현대 크래들 텔아비브(TLV)’, 한국의 ‘제로원’이 대표적이다.
전략기술본부는 오로지 아이디어만 갖고 있는 초기 창업자에서부터 사업 성과를 내고 있는 스타트업에 이르기까지 성장 단계별로 나눠 지원한다. 하나의 본부 내에 모든 스타트업 관련 업무를 총망라했다는 점이 전략기술본부가 가진 큰 장점이다.
개방형혁신센터 ‘제로원’을 운영하는 조직은 스타트업 육성팀이다. 지난 3월 문을 연 제로원에는 7곳의 스타트업이 입주했다. 제로원은 선정과 동시에 1차 투자를 집행했고 사업성에 따라 추가 투자도 가능하다. 현대차는 민간투자 주도형 기술창업 지원 사업 팁스(TIPS) 프로그램을 통한 자금 매칭도 지원하고 있다.
제로원만의 두드러지는 특징은 무엇일까. 우선 제로원은 입주 스타트업들을 기수로 구분하지 않았다. 제로원이 이들을 ‘1기’나 ‘2기’ 등으로 묶지 않는 것은 수시로 뛰어난 스타트업을 발굴하기 위해서다.
최항집 전략기술본부 스타트업육성팀 부장은 “빠르게 변화하는 산업군 속에서 정해진 시기에만 스타트업을 모집하기보다 시시각각으로 유연하게 협력의 문을 열어놓았다”고 설명했다. 기수 대신 ‘멤버’라는 명칭으로 결속력은 더하되 형식은 규정짓지 않았다.
최 부장이 설명하는 제로원의 콘셉트는 ‘놀이터’다. 스타트업들은 기존 시스템에 속하는 걸 원하지도 않고 길들일 수도 없다. 최 부장은 “놀이터에서 노는 아이들이 정해진 방법으로 놀이기구를 타는 것은 아니다. 미끄럼틀을 거꾸로 올라가거나 시소에 매달리는 새로운 방법을 찾는다”고 말했다. 마치 놀이터에서 자신들만의 놀이법을 찾는 아이들처럼 현대차는 제로원 내부에서 스타트업들이 자유롭게 ‘노는 것’을 장려한다.
무엇보다 제로원의 가장 특이한 점은 ‘크리에이터’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스타트업과 함께 제로원에는 20명의 크리에이터들이 입주했다. 이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작업 공간에는 3D프린터, 레이저 커팅기와 같은 기기를 비롯해 작업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여러 도구들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은 테크놀로지를 기반으로 예술을 시행하는 미디어 아티스트들로, 제로원의 작업 공간을 이용하고 월별로 활동비를 지급받고 있다.
예술가와 스타트업이 한자리에...'창의 놀이터' 현대차 제로원
◆크리에이터와 스타트업이 창출하는 비즈니스
크리에이터와 스타트업의 만남은 예상하지 못한 비즈니스를 창출한다. 마치 작은 마을처럼 설계된 제로원의 내부 공간처럼 스타트업과 크리에이터들은 수시로 만나 교류하고 있다. 제로원도 활발한 협업 기회를 열어줬다.
제로원이 주최하는 ‘테크페어’는 일종의 데모데이로, 시제품이나 신기술을 갖고 있는 스타트업을 초청한다. 신제품을 만든 스타트업들에 아티스트들이 활용처를 발굴해 줄 수 있고 또 자신들의 작품 도구로 시제품을 활용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그동안 제로원이 진행한 스타트업 비즈니스를 한자리에 모아 일반에 공개하기도 했다. 지난 10월 19일부터 22일까지 원효로에서 열린 ‘제로원 데이’는 예술가 20명과 스타트업 50여 곳이 각자의 작품과 기술을 선보였다. 제로원의 6개월간의 성과를 공개하는 행사였지만 KT·한화·신세계I&C 등 다른 대기업들이 지원하는 스타트업들도 참여해 신기술을 선보여 진정한 ‘오픈’의 의미를 더했다.
산업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제조 기업에도 소비자와의 소통이 중요해졌다. 기업들은 USP(Unique Selling Proposition)를 찾는 데 분주하다. 이를 위해서는 사용자와 관련된 데이터와 이를 철저하게 분석할 수 있는 ‘촉각’을 길러야 한다. 하지만 거대한 기업이 시시각각으로 유저의 동향을 살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현대차는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소비자와 소통한다. 스타트업은 신규 비즈니스를 위해 늘 소비자의 니즈에 더 밀착해 주목하기 때문이다. ‘사람’에 대해 고민하는 크리에이터들은 소비자를 통해 영감을 얻는다. 이들과 함께 소비자에 대한 의미 있는 통찰을 얻고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이 현대차가 제로원을 통해 그리는 큰 그림이다.

◆인터뷰-최항집 현대차 전략기술본부 스타트업 육성팀 부장
“변화가 빠른 시대, 외부와 협력의 문 열어 둬야죠”
예술가와 스타트업이 한자리에...'창의 놀이터' 현대차 제로원
올해 3월 개관한 ‘제로원’에는 2년간의 ‘실험 기간’이 주어졌다. 이는 스타트업 지원이야말로 정형화된 계획보다 시시각각 유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의도 때문이다.
지난 11월 13일 만난 최항집 현대차 전략기술본부 스타트업 육성팀 부장은 제로원만의 특징에 대해 “아트를 디자인이 아닌 테크놀로지와 비즈니스와 연결함으로써 타 스타트업 육성 기관과 차별화하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기존 육성센터와 달리 크리에이터들을 참여시킨 점이 특이하다.
“많은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결과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들의 결과물을 비즈니스와 연계한다면 새로운 보상 체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 우리는 테크놀로지와 비즈니스에 아트를 결합함으로써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고자 한다.”
-주로 어떤 분야의 크리에이터들을 선정했나.
“우선 테크놀로지를 기반으로 예술을 그려내는 ‘미디어 아티스트’들로 구성했다. 이들은 정해진 출퇴근 시간 없이 자유롭게 제로원을 들락날락하며 활동한다. 제로원은 이들이 제안하는 프로젝트를 심사 과정을 거쳐 지원하기도 하고 이들에게 프로젝트를 제안하기도 한다. 동시에 스타트업들과의 협업도 장려 중이다.”
-스타트업·크리에이터들과의 협업은 현대차 내부에는 어떤 효과를 가져오나.
“구글이 유튜브를 1조원에 인수할 때만 해도 전문가들의 의견은 엇갈렸다. 하지만 영상 콘텐츠의 급성장으로 당시 구글의 결정이 탁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업은 테크놀로지와 비즈니스가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서 사업성이 확실한 것에만 진출할 수 없게 됐다.
확실한 사업성을 기반으로 움직이기보다 외부 기관과의 협력의 문을 먼저 열어두는 게 맞다. 이처럼 대기업의 스타트업 지원은 사회적인 책임에서 출발하기도 하지만 부가가치를 만들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고 본다.”
-향후 제로원은 어떤 방향으로 운영되나.
“지금 제로원은 2년간의 파일럿 운영 기간을 거치고 있다. 철저한 계획을 먼저 세우고 실행했던 과거와 전혀 다른 사업 운영 방식이다. 아트·테크·비즈가 어떤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지 실험을 거치고 있다. 893㎡(270평)의 이 공간을 스타트업과 크리에이터들이 재미있게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로 만들어갈 것이다.”
mj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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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198호(2018.11.12 ~ 2018.11.18)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