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홍진채 라쿤자산운용 대표…서울대 스믹 출신 ‘이채원 키즈’
“유연함으로 승부… 5년내 주식 운용 최후의 승자 될 것”
[사진=김기남 기자]

[한경비즈니스=이현주 기자] 한국 헤지펀드 시장에서 라이징 스타로 떠오르는 곳들이 있다. 홍진채(38) 대표가 이끄는 라쿤자산운용은 두 가지 키워드만으로 기대감을 모은다. ‘이채원 키즈’ 그리고 서울대 주식 연구 동아리 ‘스믹(SMIC)’이다.

이채원 키즈는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공채 출신을 일컫는다.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에게 도제식 교육을 받은 가치 투자의 고수들을 말한다. ‘스믹’은 이곳 출신 펀드매니저들이 두드러진 성과를 내면서 주목 받았다.

서울 여의도 라쿤자산운용 사무실에서 2월 12일 홍 대표를 만나 헤지펀드에 도전장을 내민 이유와 투자 스타일 등에 대해 물었다. 그는 “2016년 회사를 설립한 이후 이제 2년 넘게 살아남았고 아직 외부에서 보기에 규모나 수익률 측면에서 눈에 띄는 성과는 없지만 자산운용업은 ‘장기 레이스’인 만큼 시간이 흐르면서 신뢰를 바탕으로 좋은 성과로 승부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케팅 없이 알음알음 소문으로만
홍 대표는 공모펀드 시장에서 선 굵은 행보를 보이던 업계 스타였다. 2007년 공채 1기로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에 입사해 9년 넘게 맹활약하면서 다양한 스타일의 공모· 사모펀드를 운용했다. 퇴사 직전 책임 운용하던 ‘한국밸류10년투자장기주택마련펀드’는 2011~2014년 공모펀드 상위 1%에 드는 수익률 일등 공신이었다. 몸값이 치솟던 바로 그때, 잘나가던 그는 회사를 박차고 나와 회사를 설립했다.

“한국 사회는 조직 문화 측면에서 많은 것이 바뀌어야 한다고 봤습니다. 그래야 더 나은 상품을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고요. 사람들이 금융시장에 대한 불신이 있는데, 이 또한 조직 문화와 연결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에 여러 사람의 지지를 얻어 회사를 차렸습니다. 이쯤이면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붙었을 때 사표를 내고 나왔습니다.”

자본금 22억원으로 헤지펀드 운용사를 설립하기 위해 6명의 직원이 의기투합했다. 동양자산운용과 하이자산운용 출신의 매니저도 합류했다. 이어 2017년 사모펀드 운용사 등록을 마치고 본격적인 헤지펀드 설정과 운용에 팔을 걷어붙였다.

독특한 점은 창업 이후 현재까지 마케팅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케팅 없이 내실을 다지는 데 주력했다”고 한다. 오래전부터 홍 대표를 가까이서 보고 교류해 온 몇몇 사람들을 주축으로 알음알음 입소문을 통해 고객층이 형성됐다. 현재 약 200억원 규모로 헤지펀드를 운용하고 있다.

“지난해 잘 버틴 회사 중에서 올해 수익률이 좋은 회사는 손에 꼽을 정돕니다. 올해 수익률이 좋은 회사 중 작년에 수익률이 안 무너진 회사 또한 거의 없습니다. 작년에 안 무너지고 올해 잘하는 회사는 극소수인데 라쿤도 규모는 작지만 그에 속합니다. 고객들도 그것을 인정하고 있고 새로운 자산군에 대한 딜 제안도 들어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정도를 걷다 보면 성과는 저절로 따라옵니다. 이제 그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해 매년 전혀 다른 모습의 회사가 돼 있을 겁니다.”

홍 대표에게 따라붙는 또 하나의 수식어, ‘스믹’은 그에게 단순한 동아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금융 투자업계에 따르면 약 40~50명의 스믹 출신 펀드매니저들이 자산운용업계에 몸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스믹 창립 멤버인 강성부 LK투자파트너스 대표를 비롯해 한국형 헤지펀드 시장에 돌풍을 일으킨 타임폴리오자산운용의 황성환 대표, VIP투자자문을 업계 2위 회사로 올려놓은 최준철·김민국 공동대표 등이 유명하다.

“주식 투자를 학생 시절부터 시작했고 이 시장에 발을 들인 지 15년이 넘었습니다. 개인 투자자로 시작해 기관투자가로 꾸준히 좋은 수익률을 내기까지 8할은 동아리 덕분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동아리 활동을 바탕으로 공대생이지만 당시로서는 드물게 자산운용사에 취업도 할 수 있었습니다.”

주식을 책으로 배우기 시작한 홍 대표는 투자 동아리에 합류하면서 이론적 배경에 더해 실전 주식 투자에 뛰어들 수 있었다고 한다. 기업을 분석하고 보고서로 발표하고 팀으로 토론하는 방식에서 그는 논리적 분석 능력과 프레젠테이션 역량 등을 키울 수 있었다. 특히 발표 자리에는 실제 현장에서 뛰는 선배들이 참석해 ‘고견’을 들려주는데 스믹 회장 출신인 홍 대표 또한 틈나는 대로 동아리 후배들을 만나고 있다.

이와 같은 경험을 통해 홍 대표는 어떠한 투자 철학과 스타일을 확립할 수 있었을까. 여기에 대한 홍 대표의 대답은 명확했다. “투자 철학이나 스타일이 없다.” 한 가지 스타일을 고집하기보다 ‘유연함’을 중시한다. 펀드 이름도 그래서 애자일(agile)이다. 시장 변화에 따라 민첩하게 대응하고 전략을 수정하는 애자일 전략을 헤지펀드 운용에 접목한 것이다.

“초과 수익인 ‘알파’를 내기 위해서는 남과 다른 생각을 해야 합니다. 남들의 생각이 내 생각과 어떻게 다른지 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의 생각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괴리를 어떻게 줄일 수 있을지, 즉 가격이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에 대한 시나리오를 쓸 수 있습니다. 시나리오가 있어야 결과에 대한 피드백이 가능하고 성공이든 실패든 다음 시행에서 더 나은 확률분포로 추론할 수 있습니다.”

가치 투자는 수익을 가져올 주식에 투자하는 것
홍 대표는 특정 스타일에 얽매이는 게 오히려 독이 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그는 “아무 생각이 없는 펀드매니저가 최악이라면 자기 스타일이 뚜렷한 매니저는 시장과 흐름이 일치할 때 잠깐 주목받지만 시장이 좋지 않은 때는 결국 고객까지 힘들어지는 것을 많이 봤다”며 “잠깐 수익률이 좋을 때 열심히 마케팅에 힘을 쏟아 고객을 그러모으고 시간이 지나 반성문을 쓰는 과정을 반복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한 가치 투자라는 말이 동어반복의 오류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가치 투자는 1930년 벤저민 그레이엄이 증권 분석 책에 언급하면서 쓰이기 시작했다. 주식의 뒷면에는 기업의 가치가 존재하며 가치 분석을 하면 주가 변화를 추론할 수 있다는 논리다. 홍 대표는 “그레이엄의 가치 투자 방식이 시장에서 주목받으면서 전 세계적으로 유의미한 전략이 됐지만 성장주를 배제했던 것은 아니다”며 “원전에 따르면 기업의 가치를 봐가면서 좋은 주식을 고르라는 게 진짜 가치 투자의 정의”라고 말했다.

헤지펀드 전략이 다변화되면서 주식·채권·기업공개(IPO) 등 여러 선택지가 있는 가운데 홍 대표의 선택은 그래도 ‘에쿼티(주식)’다. 홍 대표는 “채권이나 메자닌 등 여러 자산도 포함하고 포트폴리오는 다변화돼 있지만 핵심은 에쿼티와 상장 주식”이라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전통적인 공모펀드 시장에서 주식 비율이 낮아지는 등 향후 에쿼티 시장이 하향세를 탈 것으로 예상되지만 홍 대표는 “향후 5년 내 에쿼티 운용 하우스 중 최후의 승자가 될 것”이라는 자신감을 내비쳤다. 또한 라쿤자산운용의 차별화 포인트는 “진짜 중요한 것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바로 ‘책임’과 ‘권한’을 운용역에서 전적으로 위임하고 ‘보상’을 일치시키는 방식으로 수익률을 높일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운용역은 자신의 인사이트를 포트폴리오에 충분히 반영할 수 있습니다. 모든 직원이 어떤 형태로 일을 수행할 것인지는 철저히 각 부서의 자율에 맡깁니다. 해야 할 일에 집중하고 하지 않아도 될 일을 과감하게 제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경쟁력이 됩니다.”

그는 ‘지속 가능 자기자본이익률(ROE)’도 눈여겨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1년 이내의 단기 싸움은 제로섬이다. 스스로를 객관화 해 보는 게 중요하다. 홍 대표는 “타임 프레임을 길게 가져가는 것은 새로운 영역의 싸움”이라며 “보통 수준의 분석력과 인내심을 가지면 플러스섬이 될 수 있는 게임이다. 필립 피셔의 책을 숙독한다면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charis@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12호(2019.02.18 ~ 2019.02.24)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