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특허 내고 매출까지 척척, 공기업 사내 벤처 전성시대
공기업도 혁신한다…사내 벤처 밀어주니 아이디어 ‘반짝’
[한경비즈니스=안옥희 기자] 사내 벤처 성공 신화인 ‘제2의 네이버’가 공기업에서도 탄생할 수 있을까. 최근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성공 신화를 꿈꾸며 창업에 도전하는 공기업 사내 벤처가 늘어나고 있다. 2017년 사내 벤처 제도가 전체 공공 기관에서 활성화한 이후 나타난 변화다. 사내 벤처는 공기업 혁신의 견인차 역할을 한다. 또한 일자리 창출, 동반 성장 등 사회적 가치 창출을 실현하는 첨병이다. 새로운 혁신 바람의 주역, 공기업 사내 벤처를 만나봤다.
취재ㅣ안옥희 기자·사진ㅣ김기남 기자
공기업도 혁신한다…사내 벤처 밀어주니 아이디어 ‘반짝’

기업 사내 벤처 붐이 일고 있다. 최근 주요 공기업들이 혁신 문화 확산, 일자리 창출, 신성장 동력 발굴 등을 목적으로 잇달아 사내 벤처를 내놓고 있다. 단순히 신사업 가늠자로서의 혁신 인큐베이터에 그치기보다 특허를 내고 매출까지 올리며 시장에서 비즈니스 모델로 인정받는 사례도 나온다.
공기업 사내 벤처가 활성화하고 있는 데는 파격적인 지원이 한몫했다. 공기업들은 직원들이 사내 벤처에 전념할 수 있도록 현업에서 배제하고 별도 사무 공간을 마련해 준다.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2억~3억원에 이르는 창업 자금도 지원한다. 실패에 대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각종 안전망도 마련해 놓았다. 회사 특허에 대한 무상 실시권, 지분 투자 등을 통해 지원하고 분사 창업 시에는 최대 3년간 창업 휴직을 보장해 준다. 연구·개발(R&D)에 성공하고도 자금 부족 등으로 사업화에 어려움을 겪는 기간인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무사히 극복하도록 지원해 준다.
◆ 공기업, 혁신 성장 동력 사내 벤처 육성
한국수자원공사는 2018년 ‘제1기 한국수자원공사 사내 벤처’를 출범하며 직원들의 창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1기 사내 벤처는 세종강우(혼합형 강수량 측정 시스템), 워터아이즈(센서와 사물인터넷을 활용한 수질 관리), 워터프렌드(초음파·플라스마 텀블러 세척기), 워터테크(관로 수압 완화 모의 진단 설비), 커리어체인(무전원 원격 관망 감시 설비), 펌프케어(대형 펌프 에너지 저감 장치), 서지텍(고정확도 피뢰 설비 진단 장비 개발) 등 7개 팀이다.
공기업도 혁신한다…사내 벤처 밀어주니 아이디어 ‘반짝’

수자원공사는 중소벤처기업부의 사내 벤처 지원 사업과 연계해 팀당 1년간 창업 준비 자금 2억원(정부 1억원+운영 기업 1억원 매칭)을 지원하고 있다. 창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1년간 인사 발령(물산업플랫폼센터)을 통해 현업에서 배제하고 대전에 있는 수자원공사 연구원 내 스타트업 허브(창업 보육 공간)에 별도의 사무실을 지원해 준다. 분사 창업(스핀오프) 시 창업 휴직(최장 3년, 경력 인정)도 가능하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종합 에너지 기업으로 재도약하기 위해 사업 포트폴리오 다각화를 통한 변화와 성장을 꾀하고 있다. 변화와 성장을 위해서는 한수원 고유의 창의적인 혁신 문화 구축이 절실한 상황에서 신성장 동력 확보와 혁신적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창업 지원형 사내 벤처를 도입했다. 사내 사업화 위주이거나 육성 단계가 없는 타 공공 기관의 제도와 달리 공기업 최초로 ‘발굴-육성-사업화-창업’ 단계별 실질적인 활동 여건을 보장하고 있다. 2018년 공모를 통해 ‘3D 프린팅을 활용한 증기 발생기 고형 슬러지 제거 장비 개발’과 ‘드림(방호·방진) 마스크 개발’ 등 2개를 사내 벤처 과제로 최종 선정하고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대전 중앙연구원에 노동환경을 조성해 주고 연구원 소속으로 발령한 후 사내 벤처에 전념할 수 있도록 2년간 R&D와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과제별로 3억원의 연구·개발비를 지원해 사업화를 돕고 창업 시에는 3년의 창업 휴직, 회사 보유 특허에 대한 무상 실시권을 부여한다. 또 개발 단계 특허와 연계된 창업 이후 취득한 지식재산권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한다.
공기업도 혁신한다…사내 벤처 밀어주니 아이디어 ‘반짝’
한국중부발전은 최근 탈석탄·안전사고 등 발전 공기업의 잇단 악재로 새로운 신사업 개척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사내 벤처 육성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기존 조직에서 대규모 투자 방식이 아닌 유망한 분야에 독립된 조직을 만들고 결정권을 부여하면서 소규모 자본 투자로도 사업 가능성을 타진해 볼 수 있는 혁신적 조직(사내 벤처)을 구축한 것이다. 그 결과 2018년 1기 사내 벤처로 발전설비 안전 분야에 특화된 사내 벤처 ‘코미티아’가 나왔다.
코미티아는 특허를 기반으로 하는 벤처기업으로 기술보증기금의 예비벤처기업확인서를 발급받고 이를 통해 자체적으로 사업 자금 확보 기반을 마련했다. 2018년 12월 특허 기술을 사업화한 ‘사다리 미끄럼 방지 안전장치’를 발전 공기업 최초로 한전KPS에 납품하면서 첫 매출 500만원을 올리기도 했다. 코미티아는 안전사고 예방이라는 사회적 가치 실현과 수익 창출(발전설비 안전사고 모니터링 핵심 기술 개발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공기업에 특화된 로드맵을 구축해 나갈 계획이다.
한국도로공사는 2001년 처음 사내벤처제도를 도입한 후 지금까지 총 12개의 사내 벤처팀이 출범했다. 초기 사내 벤처는 완벽한 분사 독립 목적보다 경영 혁신의 일환으로 직원들의 다양한 창업 아이템을 시험하고 사업화 가능성을 타진해 보는 과정으로 활용됐다. 도로공사는 사내벤처제도 초기 공사와 분리된 회계제도(독립채산제)를 도입해 매출과 비용을 따져보고 사업 전략을 수정하는 등 창업에 필요한 역량을 축적하는 과정을 거쳤다. 2018년부터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는 제2기 사내벤처제도가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정부 지원 제도를 병행해 사업화를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2기 사내 벤처로 한국배리어(차량 충돌 시험 전후 처리 서비스), 이노로드(나노기술을 접목한 차세대 융설 포장 시스템)가 현재 창업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배리어는 국민 생명을 책임지는 가드레일 등 안전 시설의 기능을 강화해 치명적 사고를 줄이는 제품 생산에 주력하면서 교통안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노로드는 도로 위 눈을 녹이는 융설 포장 시스템 개발로 더욱 안전한 도로를 만들기 위한 비전을 가지고 있다.
도로공사는 전문성 강화와 사업 고도화를 통한 성공적 창업을 위해 사내 벤처에 창업 교육과 전문적인 컨설팅을 적극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창업 아이템이 선정되면 창업 준비에 매진할 수 있도록 보다 자율적인 독립된 조직으로 인사 조치를 내린 후 동탄 도로교통연구원 내 별도의 창업 준비 공간을 제공해 공사의 인프라(시험실 등)를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공기업도 혁신한다…사내 벤처 밀어주니 아이디어 ‘반짝’

◆ 과도기 데스밸리 극복해야
한국수자원공사·한국수력원자력·한국중부발전·한국도로공사는 사내 벤처 육성·지원에 팔을 걷어붙이고 공기업 사내 벤처 활성화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은 사내벤처제도를 성공적으로 운영, 일부 매출 발생 등 구체적인 성과를 달성하며 혁신은 더 이상 대기업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하지만 사내 벤처가 혁신 성장의 동력이 되기 위해 제도적으로 보완·개선할 점도 눈에 띈다.
현장에서 만난 창업가들은 분사 창업 이후의 지원과 모기업과의 연계 프로그램이 확충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사내 벤처 기간에는 법인체가 아니므로 연구 과제 참여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고 제품도 인증받지 못한다. 아직 제도적으로 충분히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정책 기조에 따라 창업을 독려하면서 현장에선 밀어붙이기식 벤처 육성 제도가 오히려 창업 기업들이 초기 3~7년 사이에 경험하는 ‘데스밸리’ 기간을 앞당긴다는 지적이 많았다. 인큐베이팅 기간 1년 뒤 바로 분사 창업한다고 할 때 바로 수익 창출이 거의 불가능하므로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하기까지 중소벤처기업부와 운영 기업에서 추가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창업 과도기 자생력을 키우기 위해 현재 3년인 창업 휴직 기간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창업휴직제도가 딱 데스밸리 기간에 맞물려 있으므로 수익이 창출되지 않는 힘든 시기에 도달하면 모기업으로 복귀를 결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한 사내 벤처 기간과 창업휴직 기간에 현업 배제는 직원들에게 양날의 검과 같다는 의견도 많았다. 퇴직 분사하기도 전에 이미 외부 업체가 된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벤처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하면서 모기업과 떨어져 소외감을 느끼는 이가 많으므로 내부와 단절되지 않도록 다양한 연계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공기업 사내 벤처가 궁극적으로 일자리 확대 등 사회적 가치 창출로 이어지기까지 장기적인 관점에서 제도적인 지원과 시간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윤병섭 서울벤처대학원대 융합산업학과 교수는 “공기업은 정부의 정책 목적성을 가지고 움직이는 공공 기관이고 일자리 창출의 중요한 모멘텀 중 하나가 사내 벤처다. 하지만 정책 붐업 속에서 사내 벤처가 유행이나 패션이 되면 곤란하다. 과도하게 밀어붙이기보다 자연스러운 창업 분위기 조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벤처기업이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속성을 가진 만큼 공기업 사내 벤처도 기술 선진화를 선도하는 모델이 되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공기업에는 기본적으로 신뢰 자본이 들어가는 데 사내 벤처가 실패해 신뢰를 잃게 되면 이는 곧 정부 정책 신뢰도와 직결된다. 공기업 사내 벤처가 일자리 창출 등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성공 모델이 돼야 정부의 신뢰도도 올라가는 만큼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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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16호(2019.03.18 ~ 2019.03.24)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