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유통업계 '원톱' 주인공은?]
-매출 65% 고성장에도 여전히 적자 늪…“추가 투자 없이는 수익성 개선 난망”
쿠팡은 유통 대기업 따돌리고 ‘원톱’이 될 수 있을까
[한경비즈니스=김영은 기자]“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쿠팡 위기론은 몇 년째 이어져 왔다. 쿠팡이 실적을 발표할 때마다 전문가들은 1~2년 안에 쿠팡이 위기에 봉착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누적되는 적자에도 과감한 투자를 감행하는 쿠팡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우려가 있는 반면 ‘미래 이커머스 시장의 승자는 쿠팡이 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도 나온다. 그럴 때마다 쿠팡은 미래를 위한 ‘계획된 적자’라는 주장을 고수했다.

◆비전펀드 추가 투자로 분위기 반전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비관론에 더 힘이 실렸다. 쿠팡은 2017년 1조8700억원에 달하는 누적 적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곧 분위기가 반전됐다. 작년 11월 소프트뱅크 비전펀드가 쿠팡에 20억 달러(약 2조2800억원)에 달하는 추가 투자를 단행했다. 쿠팡의 기업 가치는 단숨에 10조원으로 뛰어올랐다.

쿠팡이 구축한 물류 인프라의 경쟁력과 이커머스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 부각되면서 신세계·롯데 등 기존 유통 업체들도 본격적인 힘겨루기에 들어갔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쿠팡의 가능성에 통 큰 베팅을 했다.

쿠팡 투자를 주도한 비전펀드는 “세상을 바꿀 테크 회사들을 대거 양성하겠다”며 손 회장이 만든 기술투자 펀드로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 등이 참가하고 있다. 펀드 규모는 약 1000억 달러로, 유망한 미래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을 투자 대상으로 삼고 있다.

쿠팡은 작년 투자 유치로 장기적인 영업 적자에서 비롯된 자본잠식 위기를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쿠팡은 작년 한해동안 1조1190억원(개별 재무제표 기준)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로써 최근 4년간 누적적자는 2조8640억원으로 늘었다.
쿠팡은 유통 대기업 따돌리고 ‘원톱’이 될 수 있을까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적자에도 불구하고 쿠팡은 늘 “미래에 투자한다”며 자신감을 내비쳐 왔다. 쿠팡의 자신감은 아마존에서 비롯됐다.

아마존은 1994년 설립 이후 물류센터와 직접 배송에 줄기차게 거액을 쏟아부었다. 8년 만인 2002년에야 처음 흑자를 기록했다. 지금도 크게 변한 것은 아니다. 아마존의 영업이익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가격을 낮추고 고객 경험을 높이는 것이 창업 초기부터 이어져 온 아마존의 전략이다.

2018년 아마존의 매출은 2329억 달러로 1년 전보다 31% 늘었다. 순이익은 3배 증가했지만 101억 달러에 불과하다. 천문학적인 매출에도 불구하고 순이익이 상대적으로 적은 이유는 간단하다. 그만큼 혁신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존 물류 혁명의 핵심은 데이터다. 아마존은 ‘빅데이터’라는 용어가 일반화되기 훨씬 전부터 전자 상거래 사이트에서 구매 이력을 분석해 상품을 추천하고 사이트 내 행동 이력과 클릭률을 분석하는 등 데이터를 철저하게 활용해 왔다.

아마존은 상품을 직접 매입하고 미국 내 최대 규모의 물류 시스템을 직접 구축했다. 2일 안에 배송할 수 있는 전국망도 직접 만들었다. 아마존은 판매자들의 물건을 자사 물류센터에 보관해 뒀다가 재고관리·포장·배송·고객관리(CS)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대행하는 ‘풀필먼트(Fullfillments)’ 서비스를 2006년 시작했다.

풀필먼트는 이제 전자 상거래 시장과 물류 시장에서 핵심 서비스로 거듭났다. 2012년에는 키바 시스템(Kiva system)을 인수, 로봇을 활용해 물류를 자동화했다.

쿠팡이 가고자 하는 길은 바로 아마존이다. 아마존처럼 적자를 감수하면서 미래를 위한 투자를 통해 시장 장악력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실제로 쿠팡은 대규모 투자를 여러 차례 유치해 물류 시스템과 배송 서비스 등에 적극 투자했다.

쿠팡이 보유한 거대한 물류센터는 데이터와 인공지능(AI) 알고리즘 ‘랜덤스토(Random Stow)’로 돌아간다. 랜덤스토는 데이터 기반의 AI를 통해 상품별 입출고와 주문 빈도, 운반 동선 등을 파악한다.

쿠팡은 그동안 투자받은 돈으로 전국에 510만 종 이상의 상품을 구비한 물류 기지를 세웠다. 대형마트가 약 7만 종의 상품을 구비한 것과 비교하면 72배 많은 상품군을 갖춘 셈이다. 그중 170만 개 상품이 매일 로켓배송으로 고객에게 배달된다. 전국의 물류센터 면적을 합치면 축구장 150개 규모에 달하는데 내년까지 이를 두 배로 늘리는 것이 목표다.

매출 성장세도 무섭다. 쿠팡은 2018년 매출 4조4227억원을 달성했다고 15일 밝혔다. 매출 성장률은 2017년 40%에서 지난해 65%로 뛰어올랐다.

쿠팡의 매출이 폭발적으로 성장한 이유는 직매입 비율을 90%까지 늘렸기 때문이다. 상품 중개 수수료 매출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제조업체로부터 직접 사들인 물건을 물류센터에 쌓아 뒀다가 주문이 들어오면 직원들을 통해 고객의 집까지 배달해 주는 직매입을 택한 것이다.

직매입은 상품 판매액이 모두 매출로 잡힌다. 쿠팡은 이후 물류 시스템을 구축하고 로켓배송이라는 혁신을 내놓았지만 증가한 물류비를 자체적으로 해결하다 보니 팔면 팔수록 적자가 늘어나는 구조다.

전문가들은 물동량이 늘면 적자가 어느 정도 해소될 것으로 내다본다. 김명주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쿠팡이 물류센터와 쿠팡맨을 운영하는 데 드는 고정비 부담을 줄이려면 결국 물동량이 확대돼야 한다”며 “규모의 경제를 이루게 되면 물동량 확대로 영업 개선이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쿠팡이 적자에도 투자를 지속하는 이유는 또 있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의 성장 가능성이다. 민정웅 인하대 아태물류학부 교수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내수시장이 작은 나라에서 이커머스 업체들이 치열한 물류경쟁을 펼치는데 의문을 품을 수 있지만 한국은 소비지출에서 전자 상거래가 차지하는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며 “글로벌 투자자들에게도 매력적인 시장이고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전자 상거래 규모가 11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별로 보면 미국·중국·일본·독일에 이어 5위 수준이다.

미래에셋대우에 따르면 2018년 기준 한국의 ‘전자 상거래 침투율’은 24.1%를 기록해 주요 글로벌 12개국 중 1위를 기록했다. 소비지출에서 전자 상거래의 비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하다. 일각에서는 2023년쯤 소매시장 내 이커머스 점유율이 절반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는다. 쿠팡이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며 시장 장악에 나서는 이유다.

◆아무도 ‘계획’ 모르는 ‘계획된 적자’

하지만 여전히 우려의 시선이 존재한다. 공격적인 투자가 이어지고 있지만 쿠팡은 여전히 캐시카우가 없다.

아마존은 쿠팡과 달리 강력한 캐시카우가 있다. 바로 클라우드 컴퓨팅이다. 아마존은 트래픽 증가에 대비해 확충한 서버와 저장 공간을 다른 기업에 빌려줘 활용하자는 생각에서 2006년 아마존웹서비스(AWS)를 시작했다.

AWS의 2018년 4분기 영업이익은 21억8000만 달러로 아마존 전체 영업이익의 58%를 책임졌다. 클라우드 사업은 아마존의 전체 사업 중 수익성이 가장 높다. AWS는 현재 글로벌 클라우드 시장에서 점유율 44%를 기록하며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아마존이 지속적인 투자를 이어 갈 수 있는 동력이다.

쿠팡 역시 기존에 구축한 물류 시스템을 기반으로 새로운 서비스에 뛰어들고 있다. 월 2900원을 내면 무제한 무료 배송을 해주는 멤버십 서비스 ‘로켓와우클럽’에 이어 신선식품을 새벽에 배송해 주는 ‘로켓프레시’, 우버이츠처럼 음식과 음료를 주문하면 집까지 배달을 대신해 주는 ‘쿠팡이츠’ 등을 시작했다.

지난해 8월에는 폭증하는 물량에 대응하기 위해 자신의 차량을 활용하는 택배 아르바이트인 ‘쿠팡플렉스’도 도입했다. 하지만 이 사업들은 재무제표 상 손실을 더 늘리는 요인이다. 초기 투자와 비용이 더 들어갈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한 회계 전문가는 “쿠팡의 신사업은 손익을 더 악화시킬 것 보인다”며 “캐시카우는 최소 비용으로 이익을 창출해야 하는데 쿠팡의 신사업은 이미 내수 시장에 메인 플레이어들이 자리 잡고 있는 상황이어서 뚜렷한 성장은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쿠팡의 지난해 운반 및 임차료 비용은 약 2363억원으로 전년(1483억원)보다 1000억원 가량 늘었다.

인건비도 1조145억원으로 전년(6455억원)보다 4000억원 가량 증가했다. 사업을 다각화하면서 인력을 크게 늘린 탓이다.

하지만 쿠팡은 당장의 손익 개선보다 물류·페이·멤버십을 묶어 소비자들이 ‘쿠팡 없이는 못 사는 삶’을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쿠팡 관계자에게 적자를 채울 수 있는 동력이 무엇인지 묻자 "쿠팡은 앞으로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를 이어나갈 계획"이라며 "지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딱히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하지만 민 교수는 “쿠팡이 말하는 ‘계획된 적자’의 가장 큰 문제는 어떤 목표를 위해 어떤 계획을 세웠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쿠팡의 계획이 과연 어느 정도의 장기 계획이고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고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전혀 알 수 없다. 수익 모델을 갖출 수 있을 때까지 계속 투자하겠다는 생각인데 현 상황에서는 추가 투자를 유치하지 않는 한 수익성 개선은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kye0218@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20호(2019.04.15 ~ 2019.04.2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