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특별한 여름휴가 '명상', 나에게로의 여행]
- MBSR 마음챙김 명상 체험기…명상은 회피나 저항 아닌 ‘제3의 길’ 찾는 훈련

‘건포도 한 알 들고 10분’… 오감을 깨워 ‘지금, 여기’ 나를 느껴라
[한경비즈니스=이현주 기자] “지금 이 방의 소리·온도·공기의 흐름을 알아차려 봅니다. 주의를 모아 느껴지는 냄새가 있다면 무엇인지 관찰해 봅니다. 방 전체도 알아차림의 자각 속에 바라보고 방 안에서 숨 쉬고 있는 몸 전체를 느껴봅니다.”

종소리가 두 번 울렸다. 30분간 눈을 감고 있던 명상에 잠긴 사람들이 하나둘 깨어나기 시작했다. 숨소리조차 고요하던 방에 서서히 온기가 감돌았다. 눈을 떴다고 해서 명상이 끝난 것은 아니다. 안내자의 멘트는 계속됐다.

“눈을 부드럽게 뜨고 노려보는 게 아니라 전체를 바라봅니다. 옆쪽으로 들어오는 모든 것을 허용하듯이 봅니다. 고개를 돌려 보이는 것들을 생각으로 판단하지 말고 그대로 바라봅니다. 눈에 담기는 대상이 변하면서 우리의 마음도 변하고 있는 그 사실을 알아차립니다.”

마음 챙김은 앉아서도 누워서도 또 서서도 계속된다. 핵심은 ‘자각’, 알아차림이다. 지금 이 순간 자신에게 또 자신이 있는 공간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는 것이다. 명상의 세계에선 앎이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

7월 27일 토요일 오전 10시, 서울 방배동 한국MBSR연구소에서 ‘MBSR 일반 과정’ 강좌가 열리고 있었다. 7월 한 달 동안 주말을 이용해 총 8회기 진행되는 이 과정의 일곱째 수업이 진행되는 날이었다. 참석자들은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으로 구성돼 있는데 기자·한의사·스님과 상담·명상 지도자 등이 눈에 띄었다.
‘건포도 한 알 들고 10분’… 오감을 깨워 ‘지금, 여기’ 나를 느껴라
몸의 감각에 주목하는 게 첫 단추
수업을 이끄는 안희영 한국MBSR연구소장은 미국MBSR본부에서 국내 유일의 인증 지도자 자격을 받은 명상 지도자다. 그는 “우리의 오감을 활용해 지금 이 순간 몸과 맘의 현상을 알아차리는 게 마음 챙김”이라며 “지금도 또 삶 속에서도 계속해 이어 나가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MBSR(Mindfulness-Based Stress Reduction : 마음 챙김에 근거한 스트레스 완화)은 미국에서 흥행해 한국에 들어온 명상 프로그램이다. 존 카밧진 매사추세츠대 의학부 명예교수가 1979년 개발한 스트레스 감소 프로그램으로, 줄여서 마음 챙김 명상으로도 불린다.

마음 챙김, 곧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는 초기 불교의 마음 수행 전통에서 유래한 명상법으로 전해진다. 카밧진 교수가 대중적으로 체계화해 영미권에서 큰 인기를 얻었다. 2014년 2월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은 ‘마음 챙김 혁명(Mindful Revolution)’이란 커버스토리에서 의료·심리 분야뿐만 아니라 직장·학교·가정으로까지 확대된 명상 열풍을 다뤘다.

병원에서 시작된 명상법인 만큼 환자들의 고통과 스트레스를 덜어주는 방향으로 프로그램이 개발된 게 특징이다. 수업 과정 중에는 스트레스의 원리와 명상의 효과에 대해 강조하는 시간이 있다. 특정 대상에 고도의 주의를 기울이는 집중 명상과 달리 “의도적으로 현재 이 순간 비판단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는(존 카밧진)” 통찰 명상이라는 특징도 있다.

이러한 방식의 명상이 스트레스 감소에 어떤 도움을 주는 것일까. 안 소장은 “우리는 평소 자동적으로 생각에 끌려가고 감정에 휩쓸리면서 온통 바깥으로 주위를 향하게 되고 자기라는 중심을 잃어버리고 만다”며 “이러한 자동 조종 상태를 멈추는 방법으로 가장 좋은 것은 ‘지금, 여기’로 주의를 가져와 몸의 상태, 생각과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때 왜 그렇게 말했을까’ 하고 후회할 때가 적지 않을 것이다. 명상에서 바라본 현대 문명에 대한 진단은 ‘머릿속에 빠져 길을 잃어버린 상태’다. 정치·경제·연예 등 세상사에 대한 관심은 많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중심이 약하고 스트레스에도 쉽게 무너진다. 특히 욕구에 빠질 때 다양한 문제가 발생한다.

안 소장은 “욕구(desire)의 어원은 라틴어로 ‘별로부터 멀어진다’는 뜻”이라며 “욕구 자체는 좋은 것이지만 너무 지나쳐 욕망에 빠지고 그렇게 자기중심에서 멀어지곤 한다”고 설명했다. 몸과 마음과 전 존재의 연결성이 끊어진 상태라고도 표현했다.

별로부터 멀어진 중심을 다시 불러오는 데 ‘어웨이크(awake)’의 통찰이 필요하다.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의 자기를 느낀다는 것인데 이때 첫 단추는 ‘몸의 감각’을 깨우는 것이다. 몸을 느끼는 데서 치유가 시작된다고 믿어서다. 냄새를 맡고 눈을 떠 바라보고 만져보는 등 오감을 깨우는 훈련을 반복적으로 하면서 마치 근육을 만들 듯이 ‘마음 챙김 근육’을 키우는 과정이라는 것. 이때 너무 애쓰지 않는 것도 포인트다. 완벽하게 날카롭게가 아니라 ‘부드럽고 친절하게’ 주의를 기울이는 게 마음 챙김이라고 한다.
‘건포도 한 알 들고 10분’… 오감을 깨워 ‘지금, 여기’ 나를 느껴라
‘제3의 길’ 찾는 마음 챙김 대화하기
이날 지난 7주 동안 훈련한 다양한 명상법을 복습해 보는 시간도 가졌다. 호흡과 감각을 알아차리는 정좌 명상뿐만 아니라 누워서 하는 보디 스캔도 실습했다. 점심을 먹고 나른해진 오후에 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다. 약 45분 동안 누운 자세에서 몸을 스캔하듯이 부분과 전체를 느껴보는 과정이다. 바닥과 접촉된 느낌부터 몸 곳곳 들숨과 날숨에 느껴지는 감각 등을 안내자 멘트에 따라 자각해 본다. 잠자는 시간은 아닌데 안내자의 멘트가 진행되면서 하나둘 잠에 빠지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또 걷기 명상, 건포도 명상도 있다. 누워서 하는 명상이 보디 스캔이라면 걸으면서 감각을 알아차리는 게 걷기 명상이다. 건포도 명상은 MBSR 프로그램의 첫 시간에 진행된다. 몸을 연다는 것은 오감에서 시작하는 것. 오감이 막혀 있으면 음식을 먹을 때도 냄새를 느끼지 못하고 허겁지겁 먹고 만다. 첫 시간 건포도 하나를 손에 쥐고 10분을 느껴본다. 2개는 20분이 소요된다. 냄새를 맡아 보고 소리도 들어 보고 촉감을 느끼고 천천히 씹으면서 하나씩 오감을 경험해 보기 위해서다. “아, 이런 게 있군요.” 참가자들이 가장 큰 리액션을 보이는 시간이 이 건포도 명상이라고 한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마음 챙김 대화하기’ 실습이었다. 두 명이 서로 마주보고 선다. 한 명이 두 손을 뻗어 진지한 표정으로 빠르게 다른 한 명을 향해 전진한다. 이때 다른 한 명은 두 번에 걸쳐 다른 액션을 취했다. 처음엔 피했다. 이후엔 손을 뻗어 상대방을 밀어냈다. 안 소장은 의사소통의 일반적인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다가오는 사람이 스트레스(사람·상황)라고 할 때 우리는 보통 두 가지 방법을 취합니다. 수동적으로 피하거나 힘으로 공격하거나 둘 중 하나죠. 그러면 상대방 기분이 어떨까요. 무시당했다고 느끼거나 억울하고 화가 나겠죠. 첫째 방식은 커뮤니케이션을 피하는 사람입니다. 회사에서 잘못하지도 않았는데 무조건 ‘내 탓’이라고 하죠. 그게 습관이 되면 문제가 됩니다. 둘째 방식은 ‘네 탓’을 하는 커뮤니케이션이죠.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윽박지르거나 공격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하죠.”

셋째 동작은 ‘제3의 길’을 안내하는 방법이다. 상대가 앞으로 다가올 때 잠시 옆으로 몸을 돌려 상대방을 감싸 안고 춤을 추듯 한 바퀴 돌았다. 안 소장은 “마음 챙김의 길이 ‘제3의 길’로, 다가오는 사람의 힘을 상쇄하고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안내하는 제3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라며 “현실이 다 그렇지는 않지만 자기 자신이 중심이 서 있으면 상대방의 화를 상쇄시키면서 화해의 길로 안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고 강조했다.
‘건포도 한 알 들고 10분’… 오감을 깨워 ‘지금, 여기’ 나를 느껴라
마음 챙김 명상에서 중요한 것은 회피하지 않는 것 혹은 저항하지 않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힘을 기르는 게 중요하다. 마음 챙김 강좌에서는 스트레스=삶의 고통을 설명할 때 “저항하면 지속된다”고 말한다. 스트레스는 “상황 그 자체가 아닌 상황에 대한 나 자신의 반응”이다. 고통은 아픔에 저항을 곱한 값으로, 저항이 많을수록 고통이 커지지만 저항이 제로가 되면 고통도 수용된다는 설명이 이어진다. 마음 챙김의 반대말은 저항이고 동의어는 수용이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내 뜻’을 강조한다. 우리는 내 식으로 되지 않을 때 불만스럽고 잘되는 것 같으면 우쭐해지기 쉽다. 좋은 것은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고 싫은 것은 쳐내고 싶다. 수용할 줄 모르기에 끝없이 하고 싶은 대로 하고 그 때문에 혼란스럽고 어지럽고 산만하다. 안 소장은 “불안하고 산만하고 부정적인 느낌이 잔뜩 끼어 있으면 우리는 위협받는 느낌이 들고 불행하지만 상황에 상관없이 자기 안의 가장 안전한 공간, ‘자신만의 케렌시아(스트레스와 피로를 풀며 안정을 취할 수 있는 공간)’를 확보한다면 자극과 내 반응 사이의 거리가 늘어나면서 스트레스도 줄어든다”고 강조했다.

하루에도 수없이 떠오르는 생각, 그중에서도 반복되고 반추하고 산만하고 비난하고 긴장되는 생각들이 제멋대로 나를 할퀴지 못하도록 중심을 단단히 잡는 것은 더 건강하고 단단한 오늘의 자신이 되는 지름길이다. 명상은 테크닉이라기보다 자신을 잘 돌보는 것이다. 자기 자신도 어찌하지 못하는 생각과 감정에 끌려 다니기보다 멈추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끌어안고 제3의 길로 나아가는 문을 여는 것. 그것이 ‘알아차림=자각한다=깨어 있음=마음 챙김’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선물이 아닐까.


[인터뷰]안희영 한국MBSR연구소장
“있는 그대로를 보면 새로운 세상이 보인다”
‘건포도 한 알 들고 10분’… 오감을 깨워 ‘지금, 여기’ 나를 느껴라



안희영 한국MBSR연구소장은 “마음 챙김 명상은 다양한 명상 프로그램 중 한곳에 집중하기보다 전체를 바라보는 명상”이라며 “현대 명상을 대표하는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동양에서 시작된 명상이 서양에서 꽃피워 다시 동양으로 건너온 게 재밌는 부분이다.
“명상이 과학적 성과를 만나면서 종교와 관계없이 현대인들에게 소개될 수 있는 대중적인 프로그램이 됐다. 스트레스를 비롯해 여러 육체적·정신적 실익이 있기 때문에 서양에서도 인기를 누렸다. 또 문화적으로는 종교가 현대에 와서 힘을 잃고 있기 때문에 그 빈구석을 명상이 차지하고 있는 측면도 있다. 고통과 스트레스를 줄이는 데 좋다는 입소문을 타면서다.”

리더에게도 마음 챙김이 필요할까.
“고통을 피하거나 없애거나 갈아 엎어버리는 게 머리의 방식이라면 마음 챙김의 방식은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이다. 자기 식대로 판단하고 행동하면 자기 스토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자기 스토리에 갇혀 있다는 것은 객관적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고 결국 자기 자신이 피해를 보게 된다. 만약 리더라면 자기 정보에 갇혀 객관적인 판단을 못하게 될 때 리더십에 손상을 입게 된다. 있는 그대로를 본다는 것은 지혜를 본다는 것이다. 스트레스가 왔을 때 부수고 같이 싸워 피를 흘리는 게 아니라 공격을 완충하면서 상쇄시키고 상생의 길을 찾는 것이다. 삶의 어려움을 만날 때 중심을 잡고 인간성을 잃지 않고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게 중요하다.”

마음 챙김을 삶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나.
“매 순간 주의를 따뜻하게 기울여 지금 자기 삶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차리는 것이다. 자기 몸에서 일어나는 감각들을 알아차려야 현재 상황을 알 수 있다. 정신이 딴 데 가 있으면 대화를 하고 있어도 대화를 하는 게 아니다. 지금 여기 온전히 있는 것이 중요한데 몰두하는 것 혹은 멍하니 있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다. 현재의 삶에 현존한다는 것은 오토 파일럿이라고 부르는 자동 조절 상태의 마음을 훈련해 다른 데 가 있는 마음을 현재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다.”

마음 챙김 명상에서는 아는 것을 중요시하는데, 자각하는 것만으로 고통이 해소될까.
“있는 그대로를 보면 새로운 세상이 보인다. 자신의 생각에 갇혀 있으면 시야가 좁아진다. 그런데 시야가 넓어지면 그때 같은 일을 하더라도 더 힘 있게 집중해 할 수 있다. 명상은 자기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힘을 키운다는 점에서 전인격적인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생각이 명료하면 몸의 상태도 명료해진다. 오감을 통해 현재로 돌아오는 연습을 하는 것은 몸의 감각이라는 닻을 내리는 작업이다. 결국 세상을 넓게 보는 전체성을 깨닫는 것, 자기라는 중심성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머리의 세계는 일부에 불과하다. 명상은 깊은 곳에 들어가 또 다른 세계의 가능성에 대해 일깨워 주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char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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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36호(2019.08.05 ~ 2019.08.1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