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화장품·명품·의료용품…판 커진 ‘남성 소비시장’]
- 자동차 시장 ‘75%’ 장악하는 남성, 여성 마케팅 중심에서 지난해부터 남성으로 ‘U턴’
이어지는 대형차 출시…‘남자 마음 잡아라’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자동차는 전통적인 ‘남성 경제(male economy)’가 주도하는 소비 시장이다.

국토교통부 자동차 등록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개인 차량으로 등록된 차 2000만1496대(법인차 제외) 중 75%인 1496만4396대가 남성 소유, 나머지 25%인 503만7100대가 여성 소유다.

물론 2000년대 이후 여성들의 활발한 사회활동과 자동차가 대중화되면서 여성의 자동차 소유 비율이 2000년대 이후 10%포인트 가까이 증가하긴 했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정체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자동차업계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자동차 소유 비율 마지노선을 7 대 3으로 분석한다. 지난 10년간 자동차업계는 여성 구매자들을 잡기 위해 노력해 왔다. 여성이 운전하기 편한 중소형화 자동차를 잇달아 선보였다.

눈을 사로잡을 수 있는 감각적인 디자인을 입히고 운전석 선바이저(차광판)에 조명과 함께 대형 화장 거울을 달았고 하이힐 등을 보관할 수 있는 별도 공간을 마련한 차도 만들었다.

반면 상대적으로 남성을 위한 차를 만드는 데는 소홀했다. 차종도 디자인도 남성의 눈길을 끌 만한 차량은 지난 수년간 출시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부터 분위기가 바뀌었다. 여성을 타깃으로 하던 자동차 시장이 다시 남성에게 집중하기 시작한 것이다.

◆ ‘팰리세이드’ 인기에 대형 SUV 봇물

포문은 지난해 출시된 현대자동차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팰리세이드가 열었다. 팰리세이드는 현대차가 오랜 기간 준비해 온 남성을 위한 전략 차종이다.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는 그동안 찾아볼 수 없었던 대형 SUV이면서도 존재감이 느껴지는 디자인에 강력한 성능을 탑재해 국내 남성들을 단번에 열광시켰다. 현대차에 따르면 초기 계약자 2만500여 명 가운데 85.2%가 남성이었고 현재 구매하더라도 차를 인도 받기 위해선 6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릴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팰리세이드에 대한 남성들의 지지는 다른 차종과 비교할 때 더욱 두드러진다. 팰리세이드보다 한 급 아래인 싼타페(TM)는 남성 고객 비율이 80.5%, 베라크루즈는 남성 고객의 비율이 79.1%다. 두 차량 모두 남성에게 인기 있는 차종이지만 팰리세이드의 인기에는 비교가 안 된다.

팰리세이드는 단순히 남성만 목표로 한 것은 아니다. 3열까지 넉넉한 공간을 제공하는 실내, 후석 대화·취침 모드, 후석 승객 알림 등 풍부한 편의 장치를 제공함으로써 가족과 함께하는 아빠들도 품었다.

팰리세이드를 구매한 남성 고객의 연령대를 살펴보면 40대 이상이 유독 많다. 팰리세이드 남성 계약 고객 중 40대의 비율이 37%로 가장 높고 50대가 26.9%로 그 뒤를 잇는다. 30대와 20대의 비율은 각각 21.2%, 2.0%다.

9월부터는 팰리세이드와 같은 남성을 위한 대형 SUV와 픽업트럭 등이 잇달아 시장에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기아자동차·제네시스·쉐보레·포드·폭스바겐·벤츠·BMW 등이 모두 대형차들을 각각 출시하며 남성들을 유혹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기아차는 플래그십 대형 SUV ‘모하비 더 마스터’를 9월 공식 출시한다. 지난해 말 출시 이후 인기를 끌고 있는 현대차의 대형 SUV 팰리세이드와 함께 대형 SUV 시장을 선도해 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제네시스도 브랜드 최초 SUV 모델 ‘GV80’를 올 연말 선보인다.

쉐보레는 9월 3일부터 대형 SUV ‘트래버스’와 정통 픽업트럭 ‘콜로라도’를 출시, 판매한다. 이 밖에 포드는 ‘익스플로러’, 폭스바겐은 ‘투아렉’, 벤츠는 ‘GLE’, BMW는 ‘뉴 X6’ 등 대형 SUV 완전 변경 모델을 하반기 출시할 예정이다.

세단 시장도 지난해 대형차와 프리미엄 차량들이 대거 선보이며 남성 잡기에 나서고 있다. 현대차의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는 지난해 대형 세단 EQ900의 부분 변경 모델을 내놓았다. 폭스바겐은 플래그십 모델 ‘아테온’을 출시했다.

최상위 세그먼트인 만큼 전장(4860mm)과 적재 공간(1557리터) 등 넉넉한 공간을 자랑한다. 이 밖에 메르세데스-벤츠(CLS·C350e)·BMW(i8 로드스터)·도요타(ES300h·아발론 하이브리드)·푸조(푸조508) 등이 지난해 모두 신차를 선보이며 남성들을 공략하고 있다.

한국GM은 간판 중형 세단 올 뉴 말리부 부분 변경 모델로 남성들을 공략하면서 한동안 하지 않았던 남성 모델을 앞세워 마케팅을 하고 있다. 현재 말리부 광고 모델은 주지훈(2019년~현재) 씨로, 정우(2014~2015년)와 이상윤(2015~2016년) 씨 이후 2년간 공백이었던 남자 모델의 계보를 잇고 있다.

◆ 트렌드·시장 수요 반영해 남성 공략

이처럼 완성차업계가 줄줄이 대형 SUV와 픽업트럭 그리고 대형 세단 등 대형차 모델들을 앞세워 남성을 공략하는 이유는 자동차 시장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 때문이다.

자동차는 한국 사회에서 개인의 부와 사회적 계급을 나타내는 상징이기도 하다. 아무리 실용성이 강조되고 개인의 개성이 중요시된다고 하더라도 아직은 자동차의 브랜드와 크기에 따라 개인 특히 남성에겐 사회적 지위나 위치를 평가하는 인식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변호사나 의사들이 개업하자마자 맨 처음 무리해서라도 대형 럭셔리 세단을 구입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주위 사람들에게 럭셔리 세단을 타는 모습을 보여줘야 체면도 서고 그 지위에 맞는 연봉을 벌고 있다는 인식을 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올 들어 유독 세단이 아닌 대형 SUV와 픽업트럭이 출시되는 이유는 시장 수요에 맞춘 완성차 업체들의 대응이라는 분석이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의 올해 상반기 차종별 신규 등록 현황 분석을 보면 SUV는 차급의 다양화에 따른 선택 폭 확대로 4.3% 증가했고 다목적차 가운데 비율도 44.2%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통상 완성차 업체들은 공격적으로 시장을 공략하거나 실적 저하 등을 극복하기 위해 글로벌 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모델과 비슷한 형태의 신차를 내세우는 경우가 많은데 대형 SUV가 국내시장에도 딱 맞아떨어진 것이다.

SUV의 성장세는 세계적 현상이다. 웰빙 트렌드와 주52시간 근무제 확산 등으로 국내 소비도 증가 일로에 있다.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저성장 기조로 내수 경기 침체가 심각한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고가의 대형차 시장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고급 제품에는 불황이 없다’는 속설을 증명이라도 하듯 오히려 최상위 제품일수록 여전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내수용 대형 모델의 부활과 프리미엄 모델의 득세 또한 세계적 경향이다.

이에 따라 완성차업계는 특히 SUV의 인기에 따른 라인업 확장 필요성이 높아졌다. 대형 SUV를 넘어 프리미엄 대형 SUV 모델을 내놓으며 시장 수요를 견인한다는 전략이다.

cw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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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39호(2019.08.26 ~ 2019.09.0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