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화장품·명품·의료용품…판커진 '남성 소비시장']- 콤플렉스 떨치고 자신감 얻어…생각보다 아픈 눈썹 문신에 눈물도 ‘찔끔’
42세 중년의 도전, “남자도 눈썹 문신합니다”
[한경비즈니스=차완용 기자] 2019년 8월 6일 오후 4시. 42년 인생에서 손에 꼽을 만한 날짜와 시간이 다가온다. 스마트폰에 표시된 시간은 3시 48분.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한 건물 앞에서 제자리를 맴돌며 서성이기를 15분째. 행정안전부로부터 섭씨 영상 35도 이상 폭염 경보 문자가 온 것이 실감나게 얼굴과 몸 전체에 땀이 흘러내린다.

그래도 에어컨이 틀어져 있을 건물 안으로 쉽게 발걸음이 옮겨지지 않는다.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스스로 “까짓것 한 번 해보자”고 다짐한 뒤에야 겨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이날은 어느덧 중년에 들어선 기자가 콤플렉스였던 숱이 없어 흐릿하고 밋밋한 눈썹에 변화를 주기로 한 날이다. 약 한 달 전부터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눈썹 문신에 대해 물어보며 조언을 구했고 틈이 나는 대로 ‘남자 눈썹 문신’이란 키워드로 각종 검색을 한 끝에 가장 마음이 가는 곳인 B성형외과를 찾아 상담 예약을 했다.

◆ 내가 모르던 세상…‘남자들이 꽤 많다’

2층 성형외과에 들어서자 당황스러움이 몰려온다. “왜 나는 밖에서 땀을 흘려가며 서성였을까”, “왜 뻘쭘한 기분이 들었을까”라며 자책감이 들었다. 한국에서 실제로 남자들이 눈썹 문신을 받는 이가 소수일 것이라는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다. 신세계다. 남자들의 눈썹이 일반화돼 있다는 스페인에 와 있는 기분이다.

눈썹에 하얀 약을 바르고 태연하게 앉아 있는 남자들만 수십여 명, 약 70~80명이 들어선 병원에는 남성만 어림잡아 30여 명은 돼 보였다. 20대 초반에서 30대 초반이 주를 이뤘고 머리가 희끗한 어르신도 2명 눈에 띄었다.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접수창구로 갔다. “예약했는데요”라는 말을 건네자마자 신원을 확인한 뒤 “자리에 앉아 있으면 호명할 게요”라고 말한다.

이렇게 자리에 앉아 있기를 40분째. ‘잊어먹었나’라는 생각이 한창 들 무렵 차트를 가지고 계속 사람 이름을 부르고 다니던 직원이 드디어 기자의 이름을 호명한다. “저요”라고 손을 들자 “따라오라”며 안내한다.

자리에 앉자마자 코디네이터가 기자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이윽고 “눈썹 시술에는 3가지가 있는데 8만9000원짜리는 이렇고 15만9000원짜리는 저렇고 25만원짜리는 이러이러한데 고객님은 워낙 숱이 없어 25만원짜리를 하셔야 해요. 다른 것은 해도 소용이 없어요”라며 웃으며 뼈있는 말을 던진다.

‘아 또 호갱이 되는 건가’라는 의심을 품으면서도 기왕 왔으니 하자고 마음먹고 결제했다. 이후 다시 30분간 내 이름이 불리기를 또다시 기다렸다. 드디어 불린 이름. 안내원을 따라 조그만 방에 들어가자 얼굴 사진을 왼쪽·오른쪽·정면에서 차례로 찍고 눈썹에 하얀색 마취약을 발라준다.

병원에 들어섰을 때 대부분의 남자들이 바르고 있던 그 우수꽝스러운 모습이 내게도 입혀지는 순간이다.

다음은 대기실로 이동해 또 기다리는 시간을 보냈다. 20여 명이 기다리고 있는 대기실에는 바깥 풍경과 비슷하게 여성 60%, 남성 40% 정도가 앉아 있었다. 약 1시간쯤 지났을까. 방송으로 기자의 이름이 호명되자 안내원이 시술실로 안내한다.

시술실에는 2개의 시술대와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간호사인지 알 수 없는 여성 관리사로 보이는 이가 시술 준비에 한창이다. 옆 시술대에는 먼저 들어와 시술 받고 있는 여성이 연신 아픔의 비명을 내뱉는다.

‘아 망했다. 아픈가 보다’라는 생각에 한창 빠져 있을 무렵 관리사가 똑바로 자신을 쳐다보라고 이야기한다. 시술대 위에 누웠다. 몸을 일으켜 관리사를 쳐다보기를 3~4번. 이제 본격적인 시술 시작이다.

‘위잉~’ 소리가 나는 펜 같은 기구가 눈썹에 닿는다. ‘어. 생각보다 안 아픈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렇다 할 고통이 없다. 가끔 따끔거리긴 했지만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렇게 왼쪽 눈썹과 오른쪽 눈썹을 번갈아 가며 시술받기를 10분여…. 갑자기 관리사가 펜처럼 생긴 기구를 놓더니 얇은 칼 같은 날카로운 물체를 집어 든다. 공포다.

날카로운 물체가 눈썹에서 ‘사각~사각~’ 소리를 낸다. 이때부터가 아픔의 시작이다. 옆 시술대에서 나오던 아픔의 소리가 이해되는 순간이다. 그래도 ‘남잔데 이 정돈 참아야지’라는 생각에 이를 악물었지만 감고 있는 눈까풀 속의 안구는 그러지 못했나 보다.

아픔에 연신 안구가 돌아다녔는지 관리사가 “눈 굴리시면 안 돼요. 조금만 참으세요”라고 다그친다. 눈에 눈물이 맺힐 정도로 아팠다.

순간 어머니를 비롯해 내 주변의 눈썹 문신을 했던 여성들이 얼마나 참을성이 좋은지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또 10분여의 시간이 흘렀다. 이후 의사 가운을 입은 사람이 들어와 내게 아픔을 줬던 칼을 들더니 사정없이 눈썹을 긁어댄다. 다행히 1분도 안 걸린 시간. 의사는 “잘 됐네요”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떠났다.

이렇게 기자의 일생일대 사건(?)은 마무리됐다. 나오기 전 관리사는 거울을 주며 잘 됐는지 체크하라고 했다. 주의 사항을 전달하며 지금은 찐하지만 점차 색깔이 흐려지고 자연스러워질 것이라고 했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눈썹은 무성해 보이다 못해 만화 속 ‘짱구’처럼 보였다. “아 망했다!” 이꼴로 어떻게 출근하고 집에 가고 출입처 사람들과 취재원을 만날지, 또 부모님한테는 뭐라고 이야기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하기만 했다.

◆ ‘짱구 눈썹’ 사라지자 생긴 자신감

‘난 가꾸는 남자야’라는 자기 위로를 하며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왔다. 가족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방에 들어가 일찍 잠을 청했다. 시술 받은 다음 날 오전부터 잡혀 있는 취재원과의 미팅 때문에 일어나자마자 분주히 움직였다. 최대한 앞머리를 내려 눈썹을 가리는 정신없는 단장이었다.

취재원과의 미팅 자리에서는 딱히 별말이 나오지 않았다. 속으로 ‘머리카락으로 잘 가려 티가 안 났나 보다’고 안심하며 회사로 들어갔다.

하지만 회사에서 처음으로 마주친 선배가 얼굴을 보자마자 한마디 한다. “너 눈썹 문신했냐?” 순간 멍해지는 머리. “선배 티 나요? 머리카락으로 가렸는데요”라고 소심하게 물었다. 선배는 “딱 봐도 티 나는데”라며 신기한 듯 웃었다.

회사에 들어가 후배들과 마주했다. 여자 후배 중 한 명이 눈을 가리며 “악~”하며 비명을 질렀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선배 눈썹이 완전 짱구네요. 남자가 눈썹 문신한 거 처음 봐요”라고 놀려댄다.

그래도 다른 후배는 “어? 선배 눈썹 잘된 것 같아요. 인상이 전보다 확실히 또렷해 보여요”라며 격려(?)의 말을 건네기도 했다.

한동안 회사에서 기자의 눈썹은 이슈였다. 회사 내에 눈썹 문신을 한 남성이 처음이기도 했고 시술한 이후 한동안 얼굴에 자리했던 짱구 눈썹이 꽤나 인상 깊었는지 많은 동료와 친구들에게 눈썹 문신에 대한 소식을 일일이 알려야만 했다.

시술을 받은 1주일 뒤인 8월 13일. 색깔도 많이 빠지고 자연스러워진 기분이다. 상당히 만족스럽다. 후배가 이야기한 것처럼 인상이 눈썹 문신을 받기 전보다 또렷해진 듯싶다.

이날 부모님과 함께 식사를 했다. 옆에서 식사를 하시던 어머니가 갑자기 “어머, 너 눈썹 문신했니? 세상에나”라고 말한다. 워낙 주변에서 놀림과 질문을 많이 받은 덕분인지 당당하게 대답이 나온다. “응. 어때? 잘됐지. 사람들이 인상이 또렷해졌다고 잘했다고 하는데.”

어머니는 그래도 웃긴지 화가 난 것인지 “그래도 남자 놈이 무슨 눈썹 문신이야. 이놈아”라고 한마디 하신다. 그런데 의외로 칠순이 넘으신 아버지가 힘을 보태주신다. “잘 됐는데. 요즘 눈썹 문신 많이들 해. 요즘은 남자도 가꿔야 하는 시대야.”

이날 부모님과의 식사를 마친 이후부터 자신감이 생겼다. 일생일대의 결정.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 몸과 머리카락과 피부는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므로 감히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 효의 시작)’라는 말이 있는데, 이를 지키지 못해 부모님께 죄송하긴 하지만 그래도 42년간 가지고 있던 콤플렉스는 사라졌다.

cw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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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39호(2019.08.26 ~ 2019.09.0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