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달 착륙 50년’…우주전쟁 2라운드 ]-‘395조’ 우주산업을 잡아라...뉴 스페이스 시대의 주역 '우주 스타트업' -스페이스X·블루 오리진 등 민간기업이 주도, 우주 스타트업도 창업 붐
[편집자 주]추석이면 동그랗게 떠오르는 보름달 속의 ‘옥토끼’는 오랫동안 우주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을 북돋아 왔다. 그 상상력을 동력 삼아 인류는 지금으로부터 꼭 50년 전 달 표면에 첫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지금, 인류는 우주를 향해 또 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다. 명절이면 가족과 함께 ‘우주’로 여행을 떠나는 게 더 이상 허무맹랑한 상상이 아니다. 일상 속에서도 우주와 교신하고 우주로부터 전달받은 정보를 활용하는 게 자연스러워질 날이 머지않았다. 민간 기업들이 우주를 탐사하고 상업화하는 ‘뉴 스페이스 시대’의 도래다. 국내에도 이처럼 우주를 향한 꿈을 멈추지 않고 도전하는 이들이 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국내 우주 스타트업의 주역들을 소개한다.
로켓 재활용하고 초소형 위성 인기…패러다임 바뀐 우주산업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인류의 역사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도전을 통해 발전해 왔다.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게 ‘우주’다. 올해는 인류가 달에 발을 딛게 된 지 꼭 50년째 되는 해다. 1969년 미국 우주 비행사 닐 암스트롱은 인류 최초로 달 표면에 발을 내디디며 “한 사람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라고 말했다. 이 ‘위대한 도약’의 시작은 밤하늘에 떠 있는 달에 대한 동경이었다.

지금 우주산업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뉴 스페이스’ 시대의 개막이다.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같은 국가 주도의 우주개발에서 스페이스X·블루 오리진과 같은 민간 기업 중심의 우주개발 시대로의 전환을 뜻한다. 이 새로운 시대를 이끄는 주역은 50년 전 닐 암스트롱이 달에 남긴 첫 발자국을 보고 자란 이들이다.

인류 최초로 달 착륙에 성공한 닐 암스트롱 이후 현재까지 달에 다녀온 사람은 모두 12명이다. 이 중 마지막으로 달에 발자국을 남긴 이들은 1972년 유진 서난과 해리슨 슈미트다. 그 이후 인류는 반세기 가까이 달에 유인우주선을 보내지 않았다.

사실 ‘올드 스페이스’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여겨지는 ‘인류의 달 착륙’은 미국과 소련의 패권 전쟁이 가장 큰 동력이었다. 1957년 구소련이 쏘아 올린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는 미국에 큰 충격을 줬고 미국은 그다음 해인 1958년 NASA를 설립하고 본격적인 우주개발에 뛰어들었다. 미 정부의 강력한 정치적·경제적 지원을 등에 업은 NASA는 거대한 우주 사업들을 추진해 왔다.

문제는 우주개발에 들어가는 비용이었다. 우주 발사체 1회를 쏘아 올리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적어도 9000만 달러(약 1100억원)에서 1억7000만 달러(약 2000억원)가 소요됐고 우주개발 사업이 거대화될수록 NASA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우주개발 비용에 골머리를 앓았다. 1991년 소련의 붕괴로 냉전이 종식되면서 NASA를 중심으로 한 우주개발 사업은 큰 폭의 예산 삭감과 함께 급속도로 추진력을 잃어 갔다.

◆미국 vs 중국 ‘우주 전쟁 2라운드’ 돌입

오랫동안 정체돼 있던 우주탐사 경쟁이 다시 불붙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지난 1월 중국이 무인 달 탐사선 창어 4호를 쏘아 올려 인류 최초로 달 뒷면 착륙에 성공했다. 항공우주 기술력에서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미국도 못한 일을 중국이 먼저 해낸 것이다. 달의 앞면엔 미국의 성조기가, 달의 뒷면엔 중국의 오성홍기가 나부끼게 된 것이다.

미국은 ‘스푸트니크 쇼크’만큼이나 큰 충격을 받았다. 당초 NASA는 2028년까지 유인우주선을 계획 중이었는데 이를 4년 앞당겨 2024년으로 목표를 재설정했다. 첫 여성 우주 비행사를 배출하게 될 이번 프로젝트의 이름은 ‘아르테미스’다. 단순히 달 탐사뿐만 아니라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우주 식민지’ 건설 가능성까지 타진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이제 막 촉발된 ‘우주 전쟁 2라운드’에 뛰어든 것은 미국과 중국뿐만이 아니다. 유럽은 유럽우주국(ESA)을 중심으로 2025년까지 유인우주선을 달에 보낼 계획이다. 러시아 또한 2030년 우주 비행사를 달에 보내기 위해 준비 중이다. 인도는 오는 9월 달 착륙을 목표로 한 찬드라얀 2호 발사를 추진 중이고 일본도 달 탐사선 셀레네 1·2호 발사를 준비 중이다.

‘뉴 스페이스’ 시대의 가장 큰 특징은 민간 기업들이 우주개발을 주도한다는 데 있다. 지금까지 우주개발은 천문학적인 비용은 물론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사업이었다. 한마디로 민간 기업이 뛰어들기에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우주산업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로켓 재활용하고 초소형 위성 인기…패러다임 바뀐 우주산업

◆베이조스 vs 머스크 “우주 관광 시대 연다”

물론 이와 같이 드라마틱한 인식의 전환이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은 아니다. 그 시작은 아이로니컬하게도 냉전 후 NASA를 중심으로 한 우주개발 사업이 힘을 잃게 되면서부터였다. 막대한 우주개발 비용으로 골머리를 앓던 NASA는 당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주개발 사업에 ‘민간 기업의 참여’를 확대하기 시작했다. 2000년 이후 민간이 추진하는 우주 프로그램과 우주 수송 서비스에 적극적으로 투자를 시작했다. 이에 힘입어 우주개발에 도전하는 민간 기업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이와 같은 열기는 민간 로켓 제작을 주제로 한 ‘안사리 엑스 프라이즈(Ansari X Prize)’ 등으로 이어졌다. 총상금 1000만 달러(약 121억7000만원)를 내걸고 1995년부터 시작된 ‘안사리 엑스 프라이즈’는 우주개발 사업에 관심 있는 민간 기업들의 참여를 독려하며 민간 우주개발 시대를 본격적으로 꽃피우는 계기가 됐다.

민간 기업이 우주개발에 성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깬 데는 특히 실리콘밸리의 두 거물의 역할이 컸다. 2000년 설립된 제프 베이조스의 ‘블루 오리진’과 2002년 설립된 엘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다. 유통 공룡 아마존의 베이조스 CEO의 목표는 ‘우주 식민지’ 건설이다. 베이조스 CEO는 다섯 살 때부터 우주에 대한 열정을 품고 대학 시절엔 우주탐사 개발 동아리의 회장을 지냈다. 그는 인류의 미래를 위해 달과 같은 우주 공간에 대형 인공위성이나 우주정거장 등을 건설하기 위한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CEO로 큰 성공을 거머쥔 머스크 CEO는 스페이스X를 통해 우주 접근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집단따돌림을 당했던 그는 SF소설을 읽으며 우주에서 위로 받았고 ‘우주여행의 상품화’라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불가능해 보이는’ 꿈에서 출발한 두 사람의 도전은 우주산업에 많은 변화를 낳고 있다. 특히 2009년 스페이스X의 첫 상용 탑재체 발사 성공은 민간 우주개발에 큰 전환점이 됐다. 발사체 상용화에 성공한 것은 물론 그 비용을 기존과 비교해 10분의 1 이하로 크게 낮추면서 우주산업의 ‘상업화’ 가능성을 증명한 것이다. ‘우주여행의 상품화’에도 부쩍 가까워졌다. 스페이스X는 지난 7월 민간인을 달과 화성으로 실어 보낼 유인우주선 ‘스타십’의 프로토타입 스타호퍼의 발사 테스트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머스크 CEO는 스타십을 통해 민간인 100명을 달과 화성에 보내겠다는 원대한 구상이다.

블루 오리진도 ‘뉴셰퍼드 로켓 시스템’이라고 불리는 민간 관광객 우주 방문 프로그램을 추진 중이다. 현재까지 총 6명을 수용하는 것이 가능한 캡슐을 갖춘 뉴셰퍼드의 11차례 시험비행을 마쳤다. 지난 5월에는 달착륙선 ‘블루문’도 공개했다. 블루문은 달 표면까지 최대 3600kg의 장비·화물을 운반할 수 있다. 또 자율주행 탐사 차량 4대 등 장비를 실을 수 있고 보완을 거쳐 사람도 태울 것으로 보인다. 2024년까지 달의 남쪽 극점인 얼음층에 착륙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실리콘밸리 두 거물의 ‘우주 경쟁’을 통해 본격화되기 시작한 민간 우주산업 시장은 지금 ‘최고의 호황기’를 맞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의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최근 민간 기업 중심의 우주산업 시장 규모가 2017년 3240억 달러(약 395조원)에서 2040년 1조1000억 달러(1330조원)까지 성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주산업의 급격한 성장과 함께 우주 스타트업과 그에 대한 투자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2007년 설립된 민간 우주산업 벤처캐피털 회사인 스페이스엔젤스에서 발간한 산업 생태계 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 항공우주 분야에 투자한 벤처캐피털은 총 50여 개에 불과했지만 현재는 664개의 벤처캐피털이 우주항공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 이 중에는 올해 설립된 기업만 66개에 달하고 세계 100대 벤처캐피털 상위 10개사 모두가 항공우주산업에 투자를 진행 중이다. 특히 최근 3~4년 내 지금까지 총투자의 75%가 집중될 만큼 시장이 급격히 팽창했는데 올 상반기에 민간 우주항공 분야에 투자된 금액만 29억 달러(3조5284억원)에 달한다. 이는 전년 대비 88% 늘어난 것이다. 우주산업에 대한 ‘경제성’이 입증됐다는 의미다.
로켓 재활용하고 초소형 위성 인기…패러다임 바뀐 우주산업

◆항공우주산업, 2040년 1조1000억 달러 시장

지난 7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한 ‘코리아스페이스포럼 2019’를 찾은 채드 앤더슨 스페이스엔젤스 대표는 “향후 10년간 우주산업은 급격히 확대되며 수많은 인재들이 필요하게 될 것”이라며 “우주산업의 부가가치 창출 면에서 지금이 역사상 최고의 시기”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스페이스X와 블루 오리진 외에도 점점 더 많은 기업들이 우주산업에서 가능성을 증명하고 있다. 기존과 비교해 인공위성을 개발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이 크게 축소되며 ‘대량생산’의 가능성이 높아진 덕분이다. 우주산업의 관점에서 더욱 눈여겨볼 것은 이들의 활동 범위가 우주탐사와 인공위성 발사체 개발 등과 같은 전통적인 개념의 우주산업을 뛰어넘어 점점 더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인공지능(AI)·빅데이터와 같은 4차 산업혁명과의 결합은 인공위성 등을 통해 얻은 정보를 일상생활에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 전에 없던 ‘새로운 시장’의 탄생이다.

이스라엘의 비영리 민간 기업인 스페이스IL은 지난 4월 민간 기업으로는 최초로 자체 개발한 달착륙선 ‘베레시트’를 달 표면에 연착륙시키는 시도를 했다. 결과적으로 달 궤도에 진입시키는 데는 성공했고 정상적으로 착륙시키는 데는 실패했지만 2년 내 재시도할 예정이다. 최근에는 우주개발이 본업이 아닌 자동차 등의 회사들도 속속 뛰어들고 있다. 독일 자동차 업체 아우디는 구글과 손잡고 개발한 달 탐사 로버 ‘아우디 루타 콰트로’를 올해 말까지 달에 보낼 예정이다. 일본의 자동차 업체 도요타도 지난 4월 초 자율주행 로버를 개발해 일본항공우주개발기구의 2030년대 달 착륙 프로젝트에 참여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룩셈부르크에 본사를 둔 SES는 1988년 첫째 인공위성을 쏘아올린 뒤 현재 73개의 인공위성을 운용 중인 세계 최대 위성 운용 회사로 성장했다. 통신·방송·데이터 중계 등 다양한 위성 서비스를 전 세계에 제공하며 2017년 기준 약 20억 유로(약 2조원)에 달하는 매출액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4년 설립된 미국의 우주개발 업체 ‘플래닛랩스’는 100대 이상의 초소형 위성을 쏘아 올려 이를 통해 24시간 쉼 없이 지구 전역을 촬영하며 하루 120만 개가 넘는 이미지를 생성한다. 사진과 영상으로 얻어진 이와 같은 정보들을 분석해 농업·국방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할 수 있다. 2012년 설립된 영국의 스타트업 원웹은 2021년까지 소형 위성 648개를 1200km 상공에 올려 전 세계에 무선 네트워크를 공급하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일종의 ‘우주 인터넷’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국내에서는 우주산업에서 민간 기업의 활약이 아직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인공위성 개발 기업인 쎄트렉아이 등이 설립 20년을 넘어서며 우주산업에서 자리 잡고 있고 우주개발에 열정을 품은 젊은 인재들이 다양한 사업 모델을 통해 우주 스타트업에 뛰어들고 있지만 국내에서 민간 우주산업은 이제 걸음마도 떼지 못한 초기 단계라고 볼 수 있다.

안형준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달은 우주 식민지 건설, 우주 자원 채굴, 우주 공장 등 민간 기업들에는 무궁무진한 기회의 장이 될 것”이라며 “한국 또한 민간 기업이 역량을 충분히 발휘할 환경을 갖춰 갈 수 있도록 정부에서 더욱 큰 관심을 갖고 지원해 주는 역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vivajh@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41호(2019.09.09 ~ 2019.09.15)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