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PEF의 제왕들]
-올해 주요 M&A 딜 휩쓸어…‘9조7078억원’ MBK파트너스가 ‘국내 최대’


[한경비즈니스 = 이홍표 기자] 국내 경영 참여형 사모펀드(PEF) 운용사가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 출자 약정액은 80조원을 돌파했고 그 수도 600개를 넘어섰다. 2009년 말 20조원 수준이던 PEF 출자 약정액은 약 10년 새 4배나 불어났다. 출자 약정액은 투자자가 해당 펀드에 투자하기로 약속한 돈이다.

최근 국내 인수·합병(M&A) 시장은 PEF들이 휩쓸고 있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금들이 PEF로 몰리는 반면 대기업 등 전략적 투자자(SI)들은 대내외 경영의 불확실성 때문에 대형 투자를 망설이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대기업들은 경영 여건이 불확실할 뿐만 아니라 국내의 반(反)기업 정서도 강해 대형 투자에 선뜻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다. 올해 최대어로 꼽힌 아시아나항공 매각에도 주요 후보자로 꼽힌 SK·한화·GS 등이 모두 불참을 선언한 게 대표적인 예다.

저금리 등에 따라 PEF에 자금이 몰리는 것도 또 다른 이유다. 연기금·공제회 등 출자자(LP)들이 수익률이 검증된 대형 PEF를 중심으로 투자하면서 충분한 실탄을 바탕으로 공격적인 M&A에 나설 수 있게 된 것이다.

실제로 올해 딜이 마무리된 M&A 중 절반 이상이 PEF 품에 안겼다. 롯데그룹이 금융 계열사를 정리하기 위해 내놓은 롯데카드와 롯데손해보험이 각각 MBK파트너스와 JKL파트너스에 넘어갔고 밀크티 프랜차이즈인 공차도 미국계 PEF 운용사에 팔렸다. 공차는 PEF끼리 경영권을 사고판 사례다.

현재 거래되고 있는 딜들도 비슷하다. 예비 입찰을 실시한 SKC코오롱PI 매각 건은 MBK파트너스·한앤컴퍼니·글랜우드프라이빗에쿼티·칼라일그룹 등이 입찰해 사실상 PEF 간 대결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LG그룹의 시스템 통합(SI) 계열사인 LG CNS 소수 지분 매각 거래도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와 맥쿼리 PE의 경쟁입찰로 최종 주인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태림포장의 유력한 SI 인수 후보로 거론되던 한솔제지도 막판에 인수를 포기해 중국 기업인 샤닝페이퍼와 미국계 PEF 텍사스퍼시픽그룹(TPG)의 대결로 압축됐다.

국내 대기업이 해외가 아닌 국내 기업에 투자하기 위해 PEF에 조력을 구하는 것 역시 잦아지고 있다. SK브로드밴드와 티브로드 합병 법인 출범 과정에서 미래에셋그룹PE는 4000억원을 투자했다. 합병 과정에서 투자금 회수를 원했던 태광그룹 오너 등의 자금 소요를 대신 부담한 것이다.
약정액 80조원 돌파…질주하는 ‘경영 참여형 사모펀드’
약정액 80조원 돌파…질주하는 ‘경영 참여형 사모펀드’
10년 새 4배 커진 PEF

신세계그룹의 통합 온라인 플랫폼 쓱닷컴 출범에도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와 BRV벤처스는 물론 토종 PEF 루터프라이빗에쿼티가 1조원을 투자해 쓱닷컴의 물류 투자 자금 등을 공급했다. SK그룹의 11번가 분사 과정에서도 H&Q코리아가 5000억원을 공급해 투자 재원을 마련하기도 했다.

PEF는 사모펀드의 종류 중 하나다. 사모펀드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공모펀드와 달리 49인 이하의 투자자들의 돈을 모아 투자하는 펀드다. 사모펀드는 공모펀드와 비교할 때 제약이 적어 운용이 자유롭다. 공모펀드는 펀드 규모의 10% 이상을 한 주식에 투자할 수 없고 주식 외 채권 등 유가증권에도 한 종목에 10% 이상 투자할 수 없는 등 제한이 있다.

사모펀드는 PEF와 헤지펀드(전문 투자형 사모펀드)로 구분된다. 핵심은 기업 지분의 10% 보유 여부다. PEF는 경영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투자 기업의 지분을 10% 이상 보유할 의무를 가진다. 또 주식을 6개월 이상 보유해야 하며 출자금의 50% 이상을 2년 내 주식에 투자해야 한다. 대출 금지 등의 운용 규제를 적용받는다. 반면 헤지펀드는 10% 이상 보유 지분에 대해 의결권을 제한받는다. 그 대신 순재산 400% 내 금전 차입을 할 수 있고 대여·채무보증·파생상품 투자 등이 가능하다. 대출 업무도 할 수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PEF 수는 지난해 말(583개)보다 53개 늘어난 636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PEF 수는 2015년 말 316개에서 2016년 말 383개, 2017년 말 444개 등으로 늘다가 2018년 말 583개로 급증했다.

특히 투자자들의 PEF 출자 약정액은 올해 6월 말 현재 80조9000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6조40000억원 증가했다. 출자 약정액은 2009년 말 20조원 수준에서 2015년 말 58조5000억원으로 빠르게 늘다가 2016년 말 62조2000억원, 2017년 말 62조6000억원 등 잠시 증가 속도가 둔화됐다. 그러다 지난해 말 74조5000억원으로 급증하기 시작해 올해도 증가세가 이어졌다.

국내에 사모펀드가 알려진 계기는 ‘론스타 사건’이었다.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는 외환은행을 인수·매각하면서 한국 정부와 소송전을 벌였다. 론스타는 2003년 외환은행 지분 51%를 사들여 최대 주주가 됐다. 당시 “해외 사모펀드가 헐값에 국내 대형 은행을 삼켰다”는 논란이 거세게 일었다.

론스타 사건으로 사모펀드가 알려진 후 국내에선 외국계 사모펀드에 대항하는 ‘토종’ 사모펀드를 키워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었다. 정부는 국내 자본에 의한 기업 인수와 구조조정을 촉진하기 위해 2004년 10월 법률을 개정, PEF 제도를 도입했고 외국 자본의 국내 M&A 시장 잠식 등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정책적으로 PEF를 육성해 왔다. 또 헤지펀드 제도는 2009년 도입했다.

현재 사모펀드 정책 방향은 ‘사모펀드 규제 완화를 통한 혁신 성장 지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편으론 ‘토종’ 사모펀드를 키워야 한다는 측면과 국내 혁신 성장을 지원하기 위한 금융 지원이라는 측면에서 사모펀드를 장려해 왔다.
약정액 80조원 돌파…질주하는 ‘경영 참여형 사모펀드’
정부 규제 완화해 관련 산업 육성 중

금융 당국은 2015년 10월 자산 운용사의 자기자본 요건을 낮추고 회사 설립 요건을 인가제에서 등록제로 바꾸는 등 규제를 꾸준히 완화해 왔다. 최근에는 사모펀드를 활성화하기 위해 소득액 1억원 이상이거나 거주 주택을 제외한 순자산이 5억원 이상이면 전문 투자자로 인정하는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는 등 사모펀드 활성화를 위해 진입 장벽을 낮추고 있다.

국내 최대 PEF 운용사로는 ‘MBK파트너스’가 꼽힌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PEF 운용을 담당하는 회사인 업무집행사원(GP) 가운데 투자자들이 투자를 약속한 출자 약정액이 가장 많운 곳은 MBK파트너스(9조7000억원)로 나타났다. MBK파트너스는 17개의 PEF를 운용하고 있다.

MBK파트너스는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이 글로벌 사모펀드인 칼라일그룹에서 2005년 독립해 설립한 회사다. 그동안 컨소시엄을 구성해 코웨이·ING생명·홈플러스·두산공작기계 등을 인수한 바 있다.

MBK파트너스는 2015년 홈플러스를 7조6000억원에 사들이며 아시아 1위 PEF로 도약했다. MBK파트너스는 투자 자산 규모가 17조원에 달해 올해 재계 순위로 따지면 LS·대림그룹(20조원)에 이어 19위에 해당한다.

특히 김병주 회장은 ‘한국의 30대 부호’에 올해 처음 이름을 올렸다. PEF 운용사 대표가 30대 부자에 오른 것은 처음이다. 포브스가 조사해 발표한 ‘2019 한국 50대 부자’에 따르면 김 회장은 총 1조7661억원의 재산을 보유해 한국에서 스물셋째 부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재현 CJ그룹 회장과 이명희 신세계 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보다 순위가 높았다.

출자 약정액 기준으로 MBK파트너스의 뒤를 잇는 곳은 한앤컴퍼니(7조700억원), IMM프라이빗에쿼티(4조8800억원), IMM인베스트먼트(2조6500억원), 큐캐피탈파트너스(2조4700억원), 스틱인베스트먼트(1조9400억원) 등이다.
약정액 80조원 돌파…질주하는 ‘경영 참여형 사모펀드’
‘좋은 매물’ 줄어드는 게 위험 요소

국내 대형 PEF 운용사들은 펀드 수익성이 높기로 유명하다. 글로벌 유명 PEF 운용사들도 내부 수익률(IRR)이 15%를 넘기 어렵지만 국내 대형 PEF 운용사들은 IRR이 20%를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MBK파트너스의 4호 펀드는 지난해 말 기준 20.4%의 IRR을 기록한 바 있다.

물론 PEF도 최근 고민이 생겼다. 조성한 펀드로 투자할 곳을 찾기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국내 M&A 시장에서 수익성을 노리고 살 만한 매물 자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국내 산업들의 성장이 정체되면서 PEF 운용사들이 투자처를 발굴하는 게 숙제가 됐다.

한 PEF 운용사 관계자는 “과거에는 엑시트(투자금 회수)로 얼마나 수익을 올릴지를 기준으로 매물을 평가했다면 최근에는 건강한 매물이 거의 없어 기업 구조조정 가능 여부를 보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아예 매물 자체가 줄어들면서 대형 PEF 운용사들은 펀드 소진을 위해 매물이 나오기만 하면 인수에 나서는 상황까지 온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PEF 관계자는 “국내 M&A 시장 성장 둔화로 빠른 엑시트가 쉽지 않다 보니 운용 보수와 성과 보수 등의 보수 체계를 적절히 유지하기 위해 나오는 매물마다 인수를 검토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간 PEF들은 비상장 중견기업이나 성장성 있는 정보기술(IT) 기업들에 투자해 왔지만 최근엔 지방에 있는 중소 제조·운수 기업에 대한 투자에도 나서고 있는 상태다.

M&A 시장이 PEF 중심으로 재편되는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상당수 PEF들이 기업 인수 이후 대규모 투자 대신 경영 효율화를 통해 실적을 내는 경우가 많아 산업 자체가 성장 한계에 부닥치면 엑시트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국내 대기업들이 계속해 투자에 소극적인 기조를 이어 가면 결과적으로 M&A 시장 자체가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된다.

MBK파트너스는 국내 PEF 시장에선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글로벌 시장에선 입지가 작아졌다. 글로벌 PEF업계 전문지인 프라이빗에쿼티인터내셔널(PEI)이 선정한 ‘세계 300대 사모펀드(PEI 300)’를 보면 2017년 26위까지 올랐던 MBK는 올해 99위로 떨어졌다. hawlling@hankyung.com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43호(2019.09.23 ~ 2019.09.2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