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핀테크 CEO 3인의 혁신 성장 스토리] - 금융시장 판 바꾸는 비바리퍼블리카·와디즈·렌딧의 고속성장 비결
유니콘 기업의 길...해답은 '기업 문화 혁신'
[한경비즈니스= 허란·추가영 한국경제 기자] 최근 핀테크(금융 기술)업계의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송금·결제·대출·증권 등 모든 금융 서비스가 모바일 플랫폼으로 확장되면서 새로운 신생 핀테크 기업들이 등장했다. 시장의 투자금은 핀테크 산업에 지속적으로 유입되고 있다. 12월 예정된 오픈 뱅킹 전면 시행, 온라인 투자 연계(P2P) 금융업 법제화 등 규제 개혁도 핀테크업계의 성장세를 뒷받침할 것으로 전망된다.
핀테크 스타트업 중 국내 유일의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가 1조원 이상인 스타트업)인 비바리퍼블리카가 운영하는 간편 송금 서비스인 ‘토스’ 애플리케이션(앱)은 지난 10월 실제 월 이용자 수 1000만 명을 돌파했다. 누적 송금액은 64조원을 넘어섰다. 2015년 토스 서비스 출시 이후 약 4년 6개월 만의 성과다.
국내 최대 크라우딩 펀딩 플랫폼인 와디즈는 펀딩 규모가 매년 두 배 이상 늘고 있다. 2015년 26억원이었던 펀딩 규모는 올해 2241억원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실적 상승세에 힘입어 내년 하반기 기업공개(IPO)를 준비하고 있다.
2015년 설립된 렌딧은 포트폴리오 분산 투자와 자체 신용 평가 모델을 국내 P2P에 처음 도입해 개인 신용 대출 부문의 약 40%를 점유하고 있다. 지난 11월 9일 기준 누적 대출액은 1937억원에 이른다.
이들 스타트업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핀테크 3사의 이승건(비바리퍼블리카)·신혜성(와디즈)·김성준(렌딧) 최고경영자(CEO)는 한목소리로 ‘기업 문화’를 꼽았다. 빅데이터·인공지능(AI) 등 디지털 혁신 기술을 활용하는 ‘플랫폼 경제’에서 승기를 잡기 위해 기업 문화, 즉 조직원들이 어떤 원칙과 행동에 따라 일하고 행동하느냐가 중요하다. 이들은 창의적인 인재가 들어와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고 협력해 문제를 해결하며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기민하고 혁신적인 기업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데 깊이 공감했다.
◆‘변화’가 생명인 핀테크 산업
최근 금융 산업에서 기술 변화가 빠르게 일어나면서 기업 문화가 더욱 중요해졌다. 새로운 기술로 전환하려면 조직 전체의 문화적인 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혁신 기술을 구축하며 시작한 핀테크 기업에 비해 은행 등 전통 금융회사는 방대한 고객 데이터를 갖고 있음에도 이를 활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규모 정보기술(IT) 팀과 오래된 플랫폼이 기술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는 셈이다.
홍콩에서 지난 4월 열린 아시아증권산업금융시장협회(ASIFMA) 콘퍼런스에서도 “프로젝트가 실패하면 기술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문화 때문인 경우가 많다. 민첩한 IT 프랙티스를 구축하고 개방적으로 사고하고 협업할 수 있는 인재풀을 육성하는 문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앞으로 API(Application Program Interface·운영체제와 응용프로그램 사이의 통신에 사용되는 언어나 메시지 형식), 분산 원장 기술(DLT), 인공지능(AI) 등 혁신 기술이 금융 산업의 지각변동을 더욱 부추길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 서비스의 성패는 누가 보다 나은 고객 경험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달렸다. 이때 조직원들이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고 고객에 초점을 맞출 수 있는 문화를 구축했느냐가 관건이다. 고객들만 편리한 금융 서비스를 원하는 게 아니라 직원들도 기민하고 혁신적인 문화에서 일하고 싶어 한다. 전통 금융회사들이 핀테크의 기술 발전만 들여다볼 게 아니라 일하는 방식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위계적인 조직 문화에 기반한 전통 금융회사와 달리 핀테크 스타트업들은 ‘무리 문화(clan culture)’를 공유한다. 이들의 목표는 단순하다. 잠재적인 고객이 불만족할 만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모든 대형 금융회사들이 기업 문화 혁신에 손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메리츠화재는 김용범 부회장 주도로 올해 ‘기업 문화 실천 사항 11’을 전격 도입했다. 중간 관리자를 없애고 직원의 자기 결정권을 강화하는 등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기 위한 차원이다. 2020년에는 고객 경험의 관점에서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실천 사항을 추가할 예정이다.
문화를 만들어 가는 과정은 어려운 과제다. 문화를 배양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부과되는 지침들은 조직원들의 저항에 부닥치기 일쑤다. 조직의 핵심 가치를 만들고 이를 문화적으로 일치시키는 것은 경영진이 그 방향과 지침을 전달한다고 해서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조직에서 문화는 일반적으로 리더십 스타일을 반영한다. 이런 측면에서 리더가 의사소통하는 방식은 기업 문화를 유지시키는 방편이 된다. 리더가 언급한 것과 현실 사이에 불일치가 있으면 조직원들은 회의론자가 되고 만다.
유니콘 기업의 길...해답은 '기업 문화 혁신'
◆비효율을 없애는 ‘실천 사항’ 도입
전통 금융권의 사일로 효과 역시 조직의 변화를 더디게 만들고 있다. 사일로 효과는 다른 부서와 담을 쌓고 자기 부서의 실적과 이익에만 몰두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신 대표는 “대기업은 사일로 효과가 대단히 강하다”며 “부서가 너무 커 회사 전체를 볼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이 속한 부서나 본부를 챙기는 정도가 최선이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사일로 효과는 스타트업이 성장하면서 넘어야 할 산이기도 하다. 이 대표는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서로 비협조적이 되거나 불필요한 내부 경쟁이 일어나는 이유는 동일한 핵심성과지표(KPI)를 놓고 사내에서 경쟁시키기 때문”이라고 사일로 효과의 원인을 분석했다. 매출과 고객 유치 등 하나의 지표를 놓고 여러 팀이 싸우게 만드는 구조란 설명이다.
비바리퍼블리카는 이 같은 사일로 효과가 평가 보상 시스템의 문제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하고 개인과 개별 팀의 성과를 평가하지 않고 있다. 이 대표는 “오직 회사 전체의 목표를 기준으로 성과를 평가하고 모든 구성원의 인센티브를 결정하기 때문에 개인이나 팀끼리 굳이 싸울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모두가 자신의 연봉을 기준으로 동일한 비율의 금전적 인센티브를 받는다. 기본 전제는 압도적인 성장과 보상이다. 비바리퍼블리카는 경력 입사자에게 직전 직장 연봉의 1.5배를 지급한다.
각 팀의 우선순위가 충돌할 때도 사일로 효과가 일어날 수 있다. 김 대표는 “서비스 론칭 후 최대한 이른 시간 안에 5만 명의 고객을 확보하는 것을 공통의 목표로 세운다고 해도 마케팅과 개발팀의 우선순위가 다를 수 있다”며 “팀들이 합의해 우선순위를 잘 정리하는 커뮤니케이션을 거치지 않으면 목표를 제때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렌딧은 일을 시작하기 전에 ‘업무의 목적과 소요 기간, 목표 결과’에 대해 공유하도록 하고 있다.
리더십 교육도 사일로 효과를 줄이는 방향으로 한다. 신 대표는 “팀원들에게도 좋은 사람으로 평가 받고 싶은 ‘굿맨 콤플랙스’가 강한 팀장이 다른 팀의 업무를 튕겨내기도 한다”며 “관리자의 역할을 교육해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커뮤니케이션에서 불필요한 승인 절차를 생략하는 것이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는 핵심이다. 예를 들어 300만 명에게 광고 푸시를 보내려고 한다고 하자. 일반 조직에선 ‘300만 명? 엄청 많네’라고 하며 기안서부터 쓴다. “팀장·부장·임원 보고를 거치면서 수정 사항을 반영하고 다시 보고하는 과정을 반복하거나 승인이 나더라도 관련 부서 협의 등에 또 시간을 써야 하는 경우가 많다”고 이 대표는 설명했다.
하지만 비바리퍼블리카에선 이런 절차가 필요 없다. 송금·조회 등 서비스별로 팀 사일로를 구성하고 각 팀이 해당 서비스의 최종 의사결정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대표에게 공유하는 등의 통상적인 절차 없이 스스로 알아서 결정할 수 있다”며 “CEO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조직에선 이 일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자율적으로 일하도록 하는 방식이 작동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신 대표는 “사람을 키우려면 권한을 위임하고 후배가 뚫고 나갈 수 있도록 리더가 봐줘야 한다”며 “후배들이 ‘마지막 순간에 내가 했다’는 경험을 하도록 만들어 주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중요한 것은 다 자기가 하고 후배한테는 허드렛일만 시키는 것은 운동장에서만 죽어라 뛰게 하고 경기장에선 공을 차지 못하는 것과 같다는 설명이다.
렌딧은 수직과 수평의 문화가 공존하는 방식을 추구한다. 김 대표는 “다른 P2P 금융 서비스가 부동산 등 여러 자산을 취급하지만 렌딧은 신용 대출에만 집중하겠다는 회사의 아주 큰 방향성을 경영진이 결정해 전사에 전달한다”며 “반면 어떤 고객을 대상으로 어떤 상품을 제공할지 등 구체적인 사항은 최대한 수평적으로 논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한다”고 말했다. why@hankyung.com
[커버스토리 = 핀테크 CEO 3인의 혁신 성장 스토리 기사 인덱스]
- 핀테크 플랫폼 경쟁의 승부처는 기업 문화 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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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준 렌딧 대표 “축구 감독처럼 적재적소에 사람을 잘 배치하는 게 리더의 역할”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1호(2019.11.18 ~ 2019.11.24)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