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 핀테크 CEO 3인의 혁신 성장 스토리]
-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 인터뷰
“조직은 작게 실험은 빠르게…실패의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야”


[추가영·허란 한국경제 기자]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는 오늘날 기업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기민성(agility)이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서울 역삼동 본사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굉장히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핀테크 시장에서 무엇이 통할지 예측이나 직감으로 알아내는 것은 어렵다”며 “시장에서 어떤 제품이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을지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선 잘 기획해 사업화하는 것보다 빠른 결단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빠르게 실험하고 안 되는 것은 빠르게 접어 실패의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기업 문화를) 진화해 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비바리퍼블리카는 빠른 실험과 결단을 위해 △작은 팀의 규모를 유지하고 △각 팀원들에게 의사결정권을 위임하고 △사일로 효과를 막고 무임 승차자를 걸러낼 수 있는 인사 평가 제도를 구축했다.

-팀에서 매우 빠르게 결정을 내리는 만큼 서비스도 빈번하게 개선되는 것 같습니다.
“원칙은 간단합니다. ‘업무는 각자, 목표는 하나(Loosely coupled, highly aligned)’, 즉 애자일(agile) 조직의 원칙이죠. 20~30개로 쪼개져 있는 팀들이 같은 서버와 애플리케이션(앱)에서 움직입니다. 하지만 개별 팀이 다른 팀의 활동과 관계없이 마음대로 서비스를 변경하고 마음껏 제품을 배포할 수 있는 구조로 기술적인 기반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제품과 사용자 인터페이스(UI)도 다 분리돼 있죠.”

-조직의 기민성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우선 조직의 크기가 작아야 합니다. 송금·조회·보험 등 각 서비스를 운영하는 토스의 ‘사일로’는 팀원이 10명을 넘지 않습니다. 10명 미만의 조직이 각 사업의 의사결정을 다 내리죠. 각 사일로가 해당 서비스의 최종 의사결정권자이기 때문에 대표인 제게 공유하는 등의 통상적인 절차 없이 스스로 알아서 결정할 수 있습니다.
인원이 적기 때문에 합의 비용이 적게 들고 의사결정을 하는 속도도 빠릅니다. 아이디어를 실제로 제품에 반영해 시장에 출시하는 속도가 굉장히 빠르죠. ‘이거 괜찮지 않을까’란 생각이 들면 논의해 공감대를 이루고 바로 기술적으로 구현하고 앱에 변화를 일으키는 데까지 몇 시간이면 되기 때문에 하루에도 두세 번씩 서비스를 개선할 수 있습니다.”

-기민성을 발휘한 사례가 있나요.
“예를 들어 인슈어런스(보험) 사일로에서 ‘보험금 간편 청구’란 서비스를 출시하는 데 2주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이 정도의 기민성이 있으면 굉장히 많은 것들이 가능해집니다. 작년에만 40여 개의 서비스를 새롭게 론칭했고 그중 절반은 망했습니다. 나머지 절반은 계속 운영되고 있고요. 어떤 서비스들은 일반 대중에게 배포되기도 전에 사라지기도 합니다. 2만~3만 명에게만 배포됐다가 반응이 좋지 않아 팀에서 스스로 서비스를 중단하기도 하고 반대로 반응이 좋으면 빠르게 모든 이용자들에게 배포하기도 합니다.”

-규모가 커지면서 사일로 효과가 나타나는 기업이 많습니다. ‘각 팀에서 이기주의가 생기고 이 때문에 회사 전체의 이익을 갉아먹는 정치가 생긴다’는 의미의 사일로 효과가 발생하는 것은 어떻게 막고 있습니까.
“사일로 효과가 발생하는 이유는 간단해요.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서로 비협조적이 되거나 불필요한 내부 경쟁이 일어나는 이유는 동일한 핵심성과지표(KPI)를 놓고 사내에서 경쟁시키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지표에 대해 두 개 이상의 팀이 싸우게 만드는 거죠. 더 잘한 팀에 상을 주고 더 못한 팀에 벌을 주기 때문에 회사 안에서 팀끼리 불필요한 경쟁이 일어나고 팀장끼리 알력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다 평가 보상 시스템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봅니다. 그래서 비바리퍼블리카는 개인의 성과를 평가하지 않습니다. 개별 팀의 성과도 평가하지 않습니다. 오직 회사 전체의 목표만 있고 그걸 잘했느냐 못했느냐에 따라 모든 구성원의 인센티브와 인사고과가 결정되기 때문에 개인이나 팀끼리 굳이 싸울 이유가 없습니다. 개별 팀은 오히려 협조해 ‘어떻게 하면 저 팀을 더 잘하게 하고 나도 잘해서 회사 전체의 목표를 달성하고 인센티브를 키울 수 있을지’를 고민합니다.
모두가 자신의 연봉을 기준으로 동일한 비율의 인센티브를 받습니다. 이런 인센티브만 있고 개인 혹은 개별 팀에는 인센티브를 부여하지 않기 때문에 사내에서 싸우는 게 아니라 시장과 경쟁하게 하는 구도가 훨씬 더 잘 만들어집니다.”

-인센티브 비율이 동일하면 성과에 더 많이 기여한 사람이 불만을 가질 수도 있지 않나요.
“실제로 그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단기 성과에 많이 기여한 팀에서 ‘이번에 엄청나게 기여했는데 다른 사람들과 성과급을 똑같이 받기 싫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럼 다음 보상 때 당신 팀이 못하고 다른 팀이 잘하면 저 팀에만 성과급을 몰아줘도 되나요’라고 물어보죠. 그러면 아무 말도 못 합니다.
토스팀은 6개월에 한 번씩 보상을 제공합니다. 어떤 조직이 잘하면 그에 따른 보상을 회사 전체가 나눌 수 있는 구조입니다. 균등하게 배분된다는 것이 조직적으로 학습돼 있습니다.
기본 전제는 압도적인 보상입니다. 사람이 경제적인 욕구가 충족되면 인정받고 싶은 욕구, 성장하고 싶은 욕구가 중요해집니다. 시장 가치의 1.5배라는 연봉을 받기 때문에 남보다 돈을 더 받는 것보다 동료들의 인정을 바라게 됩니다. ‘이번에 내가 잘해서, 팀에 기여할 수 있어서 좋다’, ‘네가 이번에 진짜 하드캐리했다, 대박이다’가 가능해지는 거죠.”

-팀워크를 해치는 개인별·팀별 평가 제도를 없앤 것 외에 팀워크를 유지하기 위한 제도가 있나요.
“토스에서는 동료들이 직접 함께하고 싶지 않은 동료와 상사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함께 일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 빠지게 하는 동료가 있을 때 스트라이크를 줄 수 있습니다. 3번의 스트라이크를 받는 동안 개선되지 않는다면 회사는 함께 일할 수 없다고 통보합니다.
다만 스트라이크는 동료 한 사람의 신청만으로 바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닙니다. 스트라이크 신청이 접수되면 피플앤컬처팀에서 많은 동료들의 피드백을 수렴하고 여러 차례 리뷰 세션을 통해 면밀히 검토해 실제로 스트라이크를 줄지 결정합니다.”

-소송을 당할 수 있다는 리스크 때문에 해고를 극도로 꺼리는 회사들이 많습니다. 소송 걱정은 안 하나요.
“채용 단계에서부터 과하다 싶을 정도로 알립니다. ‘입사하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헷갈릴 정도로요. ‘3개월 수습 과정에서 회사의 문화와 맞지 않는 점이 드러나면 채용이 안 될 수 있다’, ‘그 기간을 지나더라도 스트라이크를 받으면 회사를 나가게 될 수도 있다’ 등 회사를 나가게 될 가능성을 입사 전부터 충분히 알려 공감대를 형성합니다. 이를 통해 실제로 회사를 떠나게 되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거죠.” gychu@hankyung.com

[이 글은 '일하는 사람들의 콘텐츠 플랫폼' 퍼블리(publy.co)에서 발행한 '파워풀한 팀은 무엇이 다른가: 기업문화 파헤치기'를 바탕으로 합니다.]

[용어설명] 애자일 조직
애자일(agile) 조직은 부서 간 경계를 허물고 필요에 맞게 소규모 팀을 구성해 업무를 수행하도록 한다. 애자일은 ‘민첩한’, ‘기민한’이란 뜻이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는 ‘애자일 조직의 다섯 가지 특징(The five trademarks of agile organizations)’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조직 전체에 공유된 비전, 권한을 위임 받은 팀 네트워크, 빠른 의사결정과 학습, 열정적인 구성원, 차세대 기술 활용 등을 애자일 조직의 특징으로 꼽고 있다. 최근엔 기업들이 업종과 관계없이 빠르게 변하는 사업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애자일 조직 문화를 도입하고 있다.

[커버스토리 = 핀테크 CEO 3인의 혁신 성장 스토리 기사 인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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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52호(2019.11.25 ~ 2019.12.01)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