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2020 한경비즈니스 기업 지배구조 랭킹 : 트랜드]-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기관투자가 116곳 달해-5% 룰 완화로 목소리 더 커질 듯
‘깐깐해진’ 국민연금…지난해 주총 안건 20%에 반대표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이 운영하는 ‘한국 스튜어드십 코드’ 홈페이지에서는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 지침)에 참여하는 기관투자가로 등록된 곳을 집계해 발표하고 있다. 1월 16일 기준 홈페이지에 공시된 ‘참여 기관투자가’는 116곳, 참여 예정인 기관투자가는 26곳이다. 2018년 1분기까지만 해도 국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기관투자가는 33곳에 머물렀다. 하지만 2018년 7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계기로 그 수가 눈에 띄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2018년 2분기 51개였던 참여 기관의 수는 2년이 채 안 돼 2배 이상 증가했다.

최근 스튜어드십 코드가 빠르게 정착되고 있다. 2016년 12월 금융 당국과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주도로 ‘기관투자가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스튜어드십 코드)’을 공표한 지 4년 만이다. 특히 금융위원회가 ‘5% 룰’ 등을 완화한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을 곧 시행할 계획이어서 기업 지배 구조 개선 등을 요구하는 기관투자가들의 입김이 더욱 강력해질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 ‘적극적 주주 활동 가이드라인’ 제정

우선 ‘주총 거수기’라는 반갑지 않은 꼬리표를 달고 있던 국민연금이 달라졌다. 2019년 9월 국민연금이 발표한 ‘2015~2019년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9년 1월부터 4월까지 국민연금이 주식을 보유한 기업의 주주 총회에 참석해 의결권을 행사한 안건 가운데 20.4%의 안건에 반대 의견을 낸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연금의 반대 의결권 행사 비율은 2015년 10.1%에 머물렀지만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2018년 이후 18.8%로 크게 올랐고 2019년 처음으로 20%를 넘어섰다.
지배 구조 개선을 비롯한 투자 기업의 경영 활동에 대한 국민연금의 목소리는 올해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연금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 대한 후속 조치로 지난해 12월 ‘적극적 주주 활동 가이드라인’을 의결했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주주 활동에 나설 수 있는 사안을 크게 ‘중점 관리 사안’과 ‘예상하지 못한 우려 사안’으로 나눠 대응 절차를 구분하고 있다.

중점 관리 사안은 기업의 배당 정책 수립, 임원 보수 한도 적정성, 횡령이나 배임 등 법령상 위반 우려와 관련한 기업 가치 훼손이나 주주권 침해 사안 등이 포함된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정기 평가 결과가 하락해도 중점 관리 사안에 포함된다. ‘예상하지 못한 우려 사안’은 ‘땅콩 회항’ 등 오너 리스크가 불거진 대한항공과 같은 사례들의 경우 일종의 ‘패스트 트랙’ 방식으로 주주 활동을 전개할 수 있다.

국민연금은 국내 기업들의 가장 큰 투자자다. 금융 정보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1월 14일 기준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기업은 총 313곳에 달한다. 이 중 10% 이상 지분율을 보유한 곳은 101개다. 포스코·KT·KT&G·신한지주·네이버 등 9개 기업은 국민연금이 최대 주주다. 국내 증시 시가총액 상위 30개 기업 가운데는 삼성바이오로직스를 제외한 29개 기업에서 5% 이상 지분을 보유 중이다. 국민연금이 국내 기업들의 지배 구조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기대와 이에 따라 기업들의 경영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부딪치는 이유다.

투자 기업들의 기업 가치 향상과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를 밝히고 있는 국민연금의 이와 같은 행보는 다른 기관투자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미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한 기관들이 100여 곳을 넘어섰다. 도입 이후 기관투자가들의 의결권 행사도 확대되는 추세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따르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직전인 2016년 정기 주주 총회 당시 전체 기관투자가들의 안건 반대율은 2.4%에 불과했지만 2017년 이후 지속적으로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2017년 2.9%, 2018년 4.6%으로 높아졌고 2019년 정기 주총에서는 5.5%로 높아졌다.
‘깐깐해진’ 국민연금…지난해 주총 안건 20%에 반대표

◆투자자의 지나친 경영권 간섭 우려도

특히 올해를 기점으로 기관투자가들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가 더욱 활발해질 가능성이 높다. 대량 보유 공시 의무인 ‘5% 룰’ 등이 완화되기 때문이다. 정부는 5% 룰 관련 자본시장법(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을 법제처 심사, 차관회의·국무회의를 거쳐 2월 1일부터 시행할 방침이다.

5% 룰은 투자자가 ‘경영 참여 목적’으로 상장사 주식을 5% 이상 보유하게 되거나 보유 이후 1% 이상 지분 변동이 있을 때 5일 이내 보고·공시하도록 하는 제도다. 1992년 과도한 경영 참여나 인수·합병(M&A) 등 투기 자본을 방어하려는 목적으로 도입됐다. 하지만 이와 같은 공시 의무가 기관투자가의 적극적 주주 활동을 제약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개정안에서는 배당과 보편적인 지배 구조 개선을 위한 주주 활동을 ‘경영 참여 목적’에서 제외해 보고 기한이 연장되고 약식 보고가 가능해졌다.

스튜어드십 코드와 5% 룰 완화 등이 보여주는 변화의 큰 흐름은 분명하다. ESG를 고려하는 책임 투자의 저변 확대다. 글로벌 지속가능투자협회(GSI)에 따르면 미국·유럽·일본·캐나다·호주(뉴질랜드 포함) 등 5개 지역에서 ESG 원칙을 접목한 투자 자금의 규모는 2018년 기준으로 30조7000억 달러(약 3경5642조원)로 추정된다. 세계적으로 ESG 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는 분명하다. 환경·사회책임·지배구조 등을 기준으로 꼼꼼하게 따져본 ‘착한 기업’들일수록 실제 실적과 수익률 면에서 좋은 성과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은 10여 개에 달하는 ESG지수를 개발했는데 벤치마크지수를 보면 ‘MSCI 전세계지수(MSCI World Index)’보다 ‘MSCI 사회책임투자 선진국지수(MSCI ACWI SRI)’가 더 높다.

ESG 투자의 확대는 필연적으로 적극적인 주주 활동을 수반한다. 투자 기업이 ESG 요소를 개선하도록 주주권 행사에 개입하는 전략을 활용하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들도 이미 ESG 투자 확대의 영향권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가 적지 않다. 특히 국내 기업들은 3세 혹은 4세 경영권 승계와 관련해 ‘지배 구조’ 이슈와 맞물려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꾸준히 한진칼의 지분을 매입해 현재 17.29%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는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가 대표적이다. KCGI는 한진그룹의 높은 부채비율, 시장 변화에 대한 대응과 위험 관리 미흡, 낙후된 지배 구조 등을 기업 가치 저평가의 원인으로 지적하며 2019년 초 ‘한진그룹 신뢰 회복을 위한 5개년 계획’을 공개적으로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관투자가들이 적극적인 주주 활동을 앞세우며 기업 경영 활동에 개입할 여지가 높아지면서 이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커지고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의 기준이 아직 불명확한 상황에서 기업의 경영권 방어 수단인 5% 룰이 완화된다면 국민연금뿐만 아니라 행동주의 펀드 등 대형 투자자의 경영권 간섭이 현재보다 잦아질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현재 국민연금 외에 상장사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국내 기관투자가는 KB자산운용·미래에셋자산운용·KDB산업은행 등이 있다.
vivajh@hankyung.com
[2020 한경비즈니스 기업 지배구조 랭킹 커버스토리 기사 인덱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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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지배구조 랭킹 순위표

[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1호(2020.01.27 ~ 2020.02.02)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