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기생충 열풍’의 숨은 주역, CJ] -CJ 문화 사업 : 영화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52%. 현재 국내에서 상영되고 있는 국내 영화의 관객 점유율이다. 영화진흥위원회(KOFIC)의 ‘2019 상반기 한국 영화 산업 결산’에 따른 내용이다. 바로 이 숫자에 한국이 글로벌 ‘영화 강국’이 된 비밀이 숨어 있다. 대부분의 국가들에서 관객 점유율의 70~80%는 할리우드 영화가 차지한다. ‘자국 영화 점유율 50%’를 넘어서는 곳은 미국을 제외하면 인도와 중국 등 손에 꼽을 정도다. 국내에서 그만큼 ‘탄탄한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덕분에 한국 영화는 해외 시장에서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된 것이다.

100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 영화가 이처럼 눈부신 성장을 이루기까지는 수많은 이들의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문화 강국’을 앞세우며 국내 영화 산업의 성장을 이끌어 온 CJ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숨은 공로자다.
CJ, 2009년부터 해외 직배·현지 제작…할리우드에서도 주도권

◆ ‘K필름’, 할리우드에서도 먹히게 만들다

“자막의 장벽을 1인치만 넘으면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다.”

‘기생충’으로 골든 글로브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봉준호 감독의 수상 소감이다. 짧지만 강렬했던 이 수상 소감은 할리우드에서 외국 영화가 ‘보이지 않은 장벽’을 넘어서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를 보여준다.

재미있는 스토리뿐만 아니라 배급과 홍보 등의 ‘시스템’이 갖춰져야 K필름의 매력이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될 수 있다. 중국과 동남아를 넘어 할리우드까지 ‘K필름’의 글로벌 진출에 교두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CJ의 해외 직배(직접 배급) 사업이 관심을 모으고 있는 이유다.
CJ는 국내 투자 배급사 중 유일하게 해외 직배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영화 제작에 투자하고 판권 확보 등의 역할을 맡고 있는 투자 배급사의 역할은 더 많은 한국 영화를 해외에 소개하는 데 결정적일 수밖에 없다.

CJ는 2009년 이후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안정적인 판로 개척에 힘을 기울여 왔다. 현재는 하나둘씩 성과가 나타나고 있는 단계다. CJ는 2009년 8월 국내 최초로 미국과 중국에서 직배 사업을 시작했다. 2011년 10월에는 베트남, 2012년 10월에는 인도네시아에서 직배 사업을 이어 갔다. 지금까지 미국에서 누적 130여 편, 베트남에서 누적 50여 편의 한국 영화를 배급했다. 인도네시아에서도 연간 5편 정도의 한국 영화를 현지 관객에게 꾸준히 소개해 오고 있다.

그중에서도 CJ가 최근 공을 들이는 지역은 세계 영화 시장의 본거지인 ‘할리우드’다. 기존 영화 콘텐츠의 할리우드 진출은 대부분 리메이크 판권 판매, 단순 자본 투자, 일부 인력 참여 수준에 그쳤다. 하지만 CJ는 기획부터 제작까지 전 과정에서의 주도권을 CJ ENM이 쥐고 사업을 추진한다. CJ ENM의 영화사업부문인 CJ 엔터테인먼트는 이미 미국 영화업계에서도 ‘아시아에서도 가장 역동적인 스튜디오이자 제작사’로 평가받고 있다. 무엇보다 CJ는 충분한 자금 동원이 가능한 대기업으로서 이 같은 사업을 주도할 수 있는 ‘인력’에 대한 과감한 투자가 가능하다는 것도 장점이다.

특히 CJ가 기획 단계에서부터 주도권을 갖고 할리우드 시장에 진출할 수 있었던 데는 그동안 쌓아 온 콘텐츠 경쟁력을 바탕으로 오리지널 지식재산권(IP)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는 것도 큰 강점이 됐다. CJ 측에 따르면 현재 CJ ENM이 자체 보유하고 있는 IP만 500여 개에 이른다.

CJ ENM이 할리우드 시장을 겨냥해 자체 제작한 미국판 ‘숨바꼭질(국내 상영 2013년)’인 ‘하이드 앤 식(Hide & Seek)’과 또 다른 자체 제작 영화인 드레이크 도리머스 감독의 ‘노 노 노 예스(No No No Yes)’가 대표적인 예다. 이 두 영화는 이미 촬영을 마친 상태다.

자체 제작 외에 협업도 활발하다. 미국판 ‘써니(2011년)’는 유니버설스튜디오와 손잡았다. 미국판 ‘극한직업(2018년)’은 유니버설스튜디오와 배우 케빈 하트가 수장으로 있는 제작사 하트비트와 손잡았다.

최근에는 히스패닉 등 보다 다양한 관객을 사로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국의 영화 제작사인 MGM과 협업 중인 ‘수상한 그녀(2014년)’는 히스패닉과 남미 시장을 타깃으로 스페인어 버전을 만들고 있다. 또 흑인 사회를 타깃으로 영어 버전도 기획 중이다.
CJ, 2009년부터 해외 직배·현지 제작…할리우드에서도 주도권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시장은 현지 감독과 현지 배우를 기용해 현지 언어로 영화를 만드는 ‘해외 로컬 영화’ 제작에 집중하고 있다. 영화는 음악과 다른 내러티브 콘텐츠의 특성상 한국어 영화 수출만으로는 부가가치 창출이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CJ가 미국·일본·중국·베트남·인도네시아·태국·터키 등 7개 국가에서 제작한 해외 로컬 영화는 40편 이상이다. 중국어로 제작된 ‘20세여 다시 한번(2015년)’은 3억6500만 위안(약 619억원)의 박스오피스 매출을 올리며 역대 한·중 합작 영화 1위를 기록했다. 베트남어로 제작된 ‘내가 니 할매다(2015년)’는 480만 달러(약 57억원)의 박스오피스 매출을 올리며 역대 베트남 자국 영화 흥행 순위 3위에 랭크돼 있다.

인도네시아 현지 합작 영화들도 큰 성과를 내고 있다. 2017년 6월 말 현지 합작을 통해 제작 개봉한 수상한 그녀의 인도네시아판 ‘스위트20’은 104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으며 인도네시아 제작사 라피 필름과 공동 제작해 개봉한 ‘사탄 슬레이브’는 420만 관객을 넘어서며 2017년 개봉한 인도네시아 영화 중 흥행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작년에는 ‘드레드 아웃’, ‘여고괴담’을 리메이크 한 ‘수니’ ‘써니’를 리메이크 한 ‘베바스’ 등도 흥행에 성공했다.
◆ CES에서 주목 받은 ‘미래의 극장’, CJ 4D플렉스

CGV의 글로벌 확산에 큰 밑거름이 된 것은 오랫동안 국내에서 쌓아 온 선진화된 극장 운영 노하우와 서비스였다.

해마다 1월이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다. 세계 최대의 ‘세계 가전 전시회(CES)’ 때문이다. 지난 1월 7일부터 10일까지 나흘간 개최된 CES 2020에서는 ‘미래의 극장’이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CJ CGV의 자회사인 CJ 4D플렉스가 ‘미래 영화관(Future Cinema)’이라는 주제로 이번 행사에서 선보인 4DX 스크린이다. 4D 스크린은 3D 입체 영상에 물리적인 움직임 등을 가미해 관객에게 몰입 효과를 증대하는 기술이다. 4일 동안 이 부스에 방문한 관람객만 5200명을 넘어섰다.
CJ, 2009년부터 해외 직배·현지 제작…할리우드에서도 주도권
CJ 4D플렉스는 4DX, 스크린X, 4DX 스크린 등 영화 상영 기술을 개발해 운영하는 플랫폼 사업자다. 이번에 CES에서 선보인 4DX 스크린은 최첨단 컴퓨터 비전 기술을 탑재한 ‘인도어(Indoor) AR 플랫폼’을 모바일 다중역할수행게임(RPG)으로 선보인 기술이다.

CJ 4D플렉스의 상영 기술들이 총망라된 통합관 4DX 스크린은 행사 내내 화제의 중심이었다. 하루 평균 1300명 정도의 관객들이 미래의 극장을 체험하기 위해 CJ 4D플렉스 부스에 몰리며 30분 이상 대기하고 줄이 40m 이상 이어지는 등 진풍경이 연출됐다.

발밑의 잔디가 천장까지 펼쳐지는 거대한 풀숲이 되고 숲의 향기가 나기도 한다. 향기, 바람, 좌석의 움직임 등이 마치 관객이 ‘영화 속에 들어가 있는 듯’하게 몰입감을 높였다. 4면 스크린X와 5각 사다리꼴 스크린, 모션 범위가 최대 10배 정도 확대된 4DX 신규 좌석을 직접 체험한 고객들은 연신 감탄사를 쏟아냈다. 미국의 유명 테크 유튜브 채널 ‘라이너스 테크 팁’의 인기 유튜버 제임스 스트립 씨는 “어릴 적부터 꿈꿔 왔던 기술”이라고 극찬했다.

글로벌 기업들의 관심도도 높았다. CJ 4D 플렉스는 여러 글로벌 정보기술(IT) 사업자들과 구체적인 사업에 대해 논의하며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

김종열 CJ 4D플렉스 대표는 “K스크린의 수출은 관련 기술은 물론 한국 영화와 드라마 등 K콘텐츠와 그 속에 녹아든 라이프스타일까지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며 “CJ 4D플렉스의 기술 특별관들이 전 세계 영화 관람 문화를 선도하는 ‘K스크린’으로 제대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더욱 큰 사명감을 갖고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vivajh@hankyung.com
[커버스토리='기생충 열풍'의 숨은 주역 C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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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2호(2020.02.03 ~ 2020.02.0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