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기생충 열풍’의 숨은 주역, CJ] - CJ 문화사업 : 방송

[한경비즈니스=이정흔 기자] CJ ENM은 지난해 11월 글로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선두 주자인 넷플릭스가 자회사인 스튜디오드래곤에 지분 투자를 통해 2대 주주에 올랐다고 발표했다. 디즈니와 애플 등 미국의 정보기술(IT) 공룡 업체들이 잇달아 OTT 시장 진출에 나선 가운데 추진된 이 거래에 이목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했다. 거래의 의미는 확실하다. 넷플릭스가 후발 주자들의 거센 도전에 ‘확실한 승기’를 잡기 위해 선택한 전략적 파트너가 CJ ENM이란 뜻이다.

OTT 시장에서 플랫폼 사업자들이 가질 수 있는 확실한 무기는 ‘콘텐츠’다. 아시아 시장은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 CJ ENM이 갖고 있는 콘텐츠 경쟁력을 인정한 셈이다.
넷플릭스도 탐내는 CJ ‘콘텐츠 경쟁력’…프랑스판 ‘꽃할배’, 태국판 ‘너목보’ 인기몰이

◆올 매출 20~25% 늘어날 스튜디오드래곤

지난해 12월부터 tvN에서 방영을 시작한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은 아직 국내에서도 종영이 안 된 드라마이지만 벌써부터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서 글로벌 팬들의 뜨거운 인기를 확인할 수 있다. 국내에서 드라마가 먼저 방영된 후 해외에 수출되는 과정을 거쳐야 했던 기존의 드라마들과는 확연히 다른 패턴이다. 드라마가 방영됨과 동시에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시청자들이 동시에 콘텐츠를 소비하며 인기가 높아지는 모습은 사실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다. 2018년 ‘미스터 션샤인’, 2019년 ‘아스달 연대기’ 등 수많은 TV 드라마가 방영과 동시에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으며 주목을 받은 사례는 이미 많다.

‘사랑의 불시착’에서부터 ‘도깨비’, ‘미스터 선샤인’ 등의 드라마를 제작한 곳은 콘텐츠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이다. CJ ENM이 지분 71%를 보유한 자회사로, CJ가 방송부문 ‘K콘텐츠’를 확산하는 데 가장 강력한 무기인 셈이다. 연간 40편 정도의 드라마 제작 능력을 갖추고 있는 데다 ‘도깨비’의 김은숙 작가, ‘별에서 온 그대’의 박지은 작가 등 뛰어난 창작자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는 점 또한 강점으로 꼽힌다.
CJ ENM은 자회사인 스튜디오드래곤 외에 자사 채널인 tvN과 OCN에서 꾸준히 독창적이면서도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선보이며 한국 드라마의 지평을 넓혀 가고 있다. 초기 한류 열풍을 이끌었던 일본과 중국 등 아시아 지역을 넘어 최근에는 북미·유럽 등으로의 수출도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대표적 한류 스타인 송혜교와 박보검 주연의 tvN ‘남자친구(2018년)’, ‘백일의 낭군님(2018년)’, ‘김비서가 왜 그럴까(2018년)’는 미주·유럽·아시아 전역에 걸쳐 100개국 이상에 판매되는 성과를 이뤘다. 영화 ‘광해’를 원작으로 한 tvN ‘왕이 된 남자(2019년)’는 미주·유럽·홍콩·미얀마·동남아 지역의 OTT 등에 판매돼 큰 인기를 얻기도 했다.

이에 더해 넷플릭스와 같은 글로벌 OTT의 등장도 K콘텐츠의 확산에 큰 힘이 됐다. 2017년 ‘비밀의 숲’을 시작으로 ‘미스터 선샤인’, ‘알함브라궁전의 추억’, ‘모두의 거짓말’ 등 스튜디오드래곤에서 제작한 작품들 중 상당수가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190여 개국에 방영 중이다.
특히 지난해 넷플릭스와 스튜디오드래곤의 협업 확대 결정은 앞으로 K콘텐츠 확산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기에 충분하다.

두 회사는 2020년부터 3년간 콘텐츠 제작과 글로벌 유통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이와 함께 CJ ENM이 보유한 스튜디오드래곤의 지분 중 최대 4.99%를 넷플릭스에 매각했다.

넷플릭스는 전 세계 190여 개국에 1억5000만 명의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는 세계 최대 글로벌 OTT다. 스튜디오드래곤은 2020년부터 3년간 최소 21편의 자체제작 콘텐츠를 넷플릭스에 공급하게 된다. 이와 함께 CJ ENM이 유통권을 보유한 스튜디오드래곤의 제작 콘텐츠 일부 작품을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에 선보일 예정이다.

이러한 영향력을 증명하듯 스튜디오드래곤의 해외 판매 매출 현황 역시 지속적인 성장 곡선을 그리고 있다. 2016년 CJ ENM에서 독립한 후 매년 실적 최대 기록을 경신 중이다. 2017년 연매출 2868억원 중 672억원을, 2018년에는 3796억원 중 1102억원을 해외 매출로 달성했다. 2019년 역시 3분기까지의 매출 3712억원 중 1291억원을 해외 매출로 채웠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예측한 2019년 스튜디오드래곤의 연매출은 약 6000억원 안팎이다. 지난해 매출(약 4700억원)과 비교하면 20~25% 정도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스튜디오드래곤은 지난해 6월 글로벌 사업팀을 신설하고 미국 시장 진출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올해 한국 제작사 최초로 미국 지사 설립을 앞두고 있다. 이를 통해 미국 내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의 공동 기획이나 제작 외에도 프로그램 포맷 판매 등을 통해 미국 콘텐츠 시장에 보다 본격적으로 파고들 계획이다.

◆프로그램 포맷 판매 상승세 이어 가는 중
실제로 미국 등에서는 콘텐츠의 방영권을 판매하는 것 외에 드라마나 예능의 ‘포맷 판매’ 성과가 해를 거듭할수록 상승세를 이어 가는 중이다. 미국의 FOX 방송사는 지난해 9월 2018년 tvN에 방영된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라이브’를 미국판으로 제작한다고 발표했다. 제작사 스튜디오드래곤은 ‘블랙 팬서’로 잘 알려진 배우 겸 제작자인 스텔링 K. 브라운과 초기부터 공동 기획을 결정했다.

‘라이브’에 이어 ‘기억(2016년)’도 최근 미국의 TV 프로그램 제작사인 캐피털 엔터테인먼트, 미국의 방송사 쇼타임과 드라마의 리메이크 기획 개발을 하기로 했다. 아론 캐플란 캐피털 엔터테인먼트 대표는 ABC에서 방송된 ‘우리동네 외계인’ 등 미국 내 큰 인기를 얻은 드라마의 제작자다. 여기에 아마존 프라임에서 방영되며 큰 인기를 얻은 ‘스니키 피트’의 마이클 설트먼 작가가 합류해 힘을 보탠다. ‘기억’의 미국 버전은 포맷 계약 체결 이후 대본 작업을 거쳐 올 하반기쯤 방송된다.

CJ는 이 밖에 ‘알함브라궁전의 추억’, ‘호텔 델루나’ 등의 리메이크를 추진하고 있다. ‘알함브라궁전의 추억’은 미국 드라마 ‘24’시리즈의 총괄 프로듀서였던 존 카스가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뿐만 아니라 태국과 인도 등 아시아 지역에서도 한국 드라마의 리메이크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오 나의 귀신님(2015년)’은 태국에서 리메이크돼 방영됐고 인도에서는 콘텐츠 제작사 어플라우즈에 판매됐다. ‘시그널’은 간사이 지역의 민영 방송사인 일본KTV에서 리메이크 버전이 방송됐고 ‘감자별 2013QR3’는 지상파 외에도 동남아 지역에서 위성으로 시청이 가능한 베트남 HTV3에서 방영돼 인기를 끌었다.

스릴러물인 ‘보이스(2017년)’는 일본과 태국에서 리메이크됐다. 일본 리메이크 작품의 최종화 시청률은 12.9%를 기록하며 2019년 닛폰TV 동시간대 시청률 1위에 올랐다. 태국에서는 지난해 11월 지상파 채널 트루4U에서 리메이크돼 현지 OTT 서비스인 트루ID에서 1260만 뷰로 해당 플랫폼 내 조회 수 역대 1위를 기록했다. 이 밖에 ‘보이스’는 미국·캐나다·프랑스·스위스·홍콩·싱가포르 등 미주와 유럽을 포함한 총 56개국에 판매됐다.

드라마뿐만 아니라 예능에서도 포맷 판매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스테디셀러는 tvN의 ‘꽃보다 할배’다. 미국 지상파 채널 NBC에서 ‘베터 레이트 댄 네버(Better Late Than Never)’란 제목으로 리메이크돼 화제를 모았다.

이 밖에 터키·이탈리아·프랑스·네덜란드·폴란드·러시아·이스라엘·태국 등 9개국에서 방영됐다. 특히 2019년 7월 프랑스TV 채널 ‘프랑스3’에서 방송된 리메이크 작은 7.4%의 높은 가구 시청률을 기록하며 시즌2 방영까지 확정지었다. ‘꽃할배’는 네덜란드·이탈리아·터키 등 기존에 포맷 판매가 어려웠던 미주·유럽 지역까지 판로를 확장했다는 데 더 큰 의미가 있다.
엠넷의 ‘너의 목소리가 보여(이하 너목보)’는 2015년 첫 방송 이후 시즌7을 맞는 엠넷의 대표 간판 프로다. 태국·인도네시아·불가리아·말레이시아·필리핀·루마니아·슬로바키아 등 전 세계 10개국에 포맷을 수출했다. 여기에 지난해 말 미국 지상파 채널 폭스에서 파일럿 제작이 완료된 것으로 알려지며 ‘너목보’의 글로벌 흥행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vivaj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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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2호(2020.02.03 ~ 2020.02.09)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