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 새로운 감각·가치관 지닌 ‘밀레니얼 CEO’가 온다]
-윤수영 트레바리 대표 “균일한 이전 세대와 달라…‘투명한 커뮤니케이션’이 제 1 원칙”
[한경비즈니스=이현주 기자] 강남역 12번 출입구 인근, 오로지 독서 모임을 위해 마련된 12층 규모의 빌딩이 있다. 이곳 독서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4개월에 21만~31만원의 회비를 내야 한다. 돈을 내도 정해진 시간 내에 독후감을 쓰지 않으면 모임에 참여할 수 없다. 모임에선 대화와 토론을 해야 한다. 윤수영(32) 대표가 창업한 유료 독서 클럽, 트레바리다.
“‘나의 핏’ 중시하는 밀레니얼 세대… 관심·취향 공동체에 더 소속감 느끼죠”
책을 읽지 않는 시대다. 돈을 내면서 책을 읽는 모임이 가능할 것이라고 보는 이는 없었다. 2015년 9월 4개 클럽, 80명의 멤버로 시즌제를 처음 시작한 이 모임은 현재 6000명의 멤버, 누적 회원 수 4만 명을 자랑하는 독서 모임 기반 커뮤니티 서비스로 성장했다. 지난해 2월 50억원 규모의 투자를 이끌며 강남역 일대의 빌딩을 빌렸다. 현재 안국·성수·압구정·강남을 포함해 네 곳에서 클럽을 운영 중이다.

윤 대표는 “커뮤니티는 만드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며 “500여 개의 각 클럽 안에서 최대한 많은 일들이 창발(創發)될 수 있도록 우리는 판을 깔아줄 뿐”이라고 말했다. 그의 명함에는 ‘논어’의 한 구절이 새겨져 있다. “군자는 천하에서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는 것도 없고, 절대로 안 된다는 것도 없으며, 오직 의로움만을 따를 뿐이다”는 구절이다. 그의 좌우명이기도 하다.

강남 오피스를 마련하면서 사무실에서 1분 거리에 집도 얻었다. 인터뷰 전 주에는 새벽 3시 전 퇴근을 한 번도 못했다고 했다. “일을 못하면 많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1988년생, 고려대를 졸업하고 2014년 포털 ‘다음’의 마지막 공채 신입 사원으로 1년간 일한 뒤 곧바로 창업 전선에 뛰어들어 어렵지만 도전적인 일을 하고 있다.

가장 만족하는 순간은 ‘세상을 더 지적으로, 사람들을 더 친하게’라는 기업 미션에 한 발짝 다가갔다고 느낄 때다.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계속 성장하는 삶이 좋은데, 그런 면에서 저는 꿈을 이뤘다”고 말하는 대목은 ‘가치’와 ‘성장’을 중시하는 밀레니얼 세대를 대표하는 듯했다. 무경계 읽기를 통해 지평을 넓힌다.

윤 대표는 대표이면서 트레바리의 한 클럽의 ‘파트장’으로 독서 모임에 참여한다. ‘무경계’ 클럽으로 주제와 장르 상관없이 그 어떤 책도 읽을 수 있는 클럽이다. 평소라면 읽지 않을 책, 만나지 못할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생각과 가능성을 발견해 보자는 취지다. 윤 대표는 평소 책을 고를 때 좋아할 만한 책도 읽지만 관심이 없는 분야도 포함시킨다. 편협해지지 않기 위해서다. 그가 독서 모임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가 독서 모임으로 창업한 이유는 “야성을 키우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조직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정글에서 생존력을 키우고 싶다는 포부가 있었다. 다음에서 모바일 콘텐츠 기획자로 1년간 일하면서 실리콘밸리를 비롯해 전 세계가 급변하는 것을 목격했다. 정보기술(IT)의 트렌드가 PC에서 모바일로 넘어가는 상황에서 몸담고 있던 회사도 합병 이슈로 몸살을 앓았다. 위기감을 느끼는 동시에 보다 재밌고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대학 때 중학교 동창들과 꾸려 5년간 운영해 온 독서 모임이 창업의 씨앗이 됐다.

윤 대표는 경영의 최고 가치를 ‘지속 가능한 회사를 넘어 사회 전반적인 지속 가능성에 기여하는 것’으로 꼽았다. 그는 “시장에서의 생존이 중요하다면 ‘어떤 방식으로 생존하느냐’에서 도덕적 취향이 드러날 수 있다”며 “시장에서의 지속 가능성만 챙기는 회사는 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내가 만드는 서비스가 얼마짜리인지보다 몇 명의 삶에 영향을 주고 있는지가 일하는 사람에겐 더 피부로 와닿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일을 통해 영향력을 끼칠 때 나 자신의 ‘쓸모있음’에 대한 자각이 일어난다.

그는 또한 “한국인이라는 정체성보다 세계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한 편”이라고 말했다. 소속감을 느끼는 곳이 ‘국가’가 아닌 같은 관심사와 취향을 공유하는 ‘집단’에 가깝다는 설명이었다. 그래서 또한 국적에 상관없이 전 세계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고 글로벌 비즈니스 기회도 가질 수 있다.

윤 대표는 시장의 양극화가 점점 더 심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으로도 큰 기업은 많이 나올 수 있고 작은 스타트업이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가 1조원 이상인 스타트업)으로 성장하는 속도도 빠르지만 그 수가 적을 것으로 보고 있다. 개별 성공 단위는 커지는 반면 성공 개수는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 사업가 윤수영으로서는 그러한 꿈을 꾼다. 그러나 트레바리라는 회사의 무한 성장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했다. 트레바리가 지향하는 취향과 가치를 고수하는 것과 무한 성장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설명이었다. “가치를 지켜 나가는 선에서 최대한 성장하고 싶다”고 윤 대표는 밝혔다.

‘회사를 위해 희생하지 말자’
트레바리에서 일하는 40여 명의 직원들은 25~35세 사이의 밀레니얼 세대로 구성돼 있다. 윤 대표는 ‘투명한 커뮤니케이션’을 조직 운영의 1원칙으로 꼽았다.

“‘세상을 더 지적으로, 사람들을 더 친하게’ 만드는 독서 모임 기반 커뮤니티 서비스에 애정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절대 회사를 위해 희생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강조합니다. 자기 스스로를 위해 일하자고 해요. 좋은 인재를 잃지 않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회사가 계속 성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회사가 커지면서 최고경영자(CEO)로서의 어깨도 무거워진다. 대규모 투자를 받고 ‘생존’ 화두가 무겁게 다가온다.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계속 걸어 올라가는 느낌이라고 한다. 지금 단계에서는 최대한 열심히 일하는 것으로 답을 찾고 있다.

고객과 동료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유연함’, ‘진정성’, ‘실행력’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표현은 따로 강조하지 않는다. 다만 직원들이 대표에게 직접 부정적인 이야기를 전할 때 조직이 건강하다고 느낀다.

“아직까지는 자주 있는 일이어서 좋아요. 생각을 내보이지 않을 때 더 슬플 것 같아요. 그건 외로운 거잖아요. 외로운 리더보다는 같이 부대끼는 게 좋죠.”

윤 대표는 ‘다양성’이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한다.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도 섣불리 일반화할 수 없고 하나로 정의 내릴 수 없는 다양성이라고 말했다. 호모지니어스(균일한 상태)가 이전 세대의 특징이었다면 밀레니얼 세대부터는 다양한 정체성을 갖고 살아간다고 윤 대표는 생각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핏(fit)’이다. 자신에게 맞는 회사, 우리 회사와 맞는 직원을 찾는 고민이 더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시장은 점차 세분화되고 점점 더 다수를 만족시키기 어려워진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들을 어떻게 얼마나 만족시킬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예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트레바리가 직원을 채용할 때도 최대한 명확한 정보를 제공하고자 한다. 윤 대표는 “‘세상을 더 지적으로, 사람들을 더 친하게’라는 미션에 동의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재미없을 수도 있다”며 “우리가 풀고자 하는 문제와 가치에 설레고 빠져 있을 때 열심히 일할 수 있는 회사”라고 말했다.

“‘지금보다 내 삶이 더 나아질 수 있다’, ‘더 나은 사회가 가능하다’고 믿는 경우에는 트레바리에서 얻어갈 수 있는 것이 많지만 굳이 돈을 내고 책을 사 독후감을 쓰고 모임에 참석하는 것이 누구에게나 재밌는 일은 확실히 아니죠. 트레바리의 한 시즌이 끝나면 뿔뿔이 흩어지는 가운데 그중 몇 명은 삶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나 연인을 만날 수도 있어요. 트레바리가 의미 있는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저도 꿈을 이뤘다고 생각해요.”
“‘나의 핏’ 중시하는 밀레니얼 세대… 관심·취향 공동체에 더 소속감 느끼죠”
char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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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3호(2020.02.10 ~ 2020.02.16)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