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한국의 AI 프런티어들에게 듣는다]
-이성환 고려대 인공지능학과 주임교수 인터뷰
“AI 시대에 한발 늦은 한국…제조업 기술에 특화한 ‘선택과 집중’ 필요”
[한경비즈니스=안옥희 기자] 인공지능(AI)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가장 뜨거운 화두다. 스마트폰부터 각종 로봇과 자율주행에 이르기까지 보이지 않는 AI 기술이 일상에 깊숙이 침투하면서 AI는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산업계에서는 미래 기술의 핵심인 AI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관련 인재 영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과 중국 등 AI 선진 국가와의 패권 경쟁의 승부수가 곧 AI 분야 인재 확보에 달렸기 때문이다.

정부는 최근 AI를 기반으로 한 국가 전략을 수립하고 AI 일등 국가를 향해 범정부 차원의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정보기술(IT) 강국을 넘어 AI 강국으로’라는 비전을 바탕으로 2030년까지 디지털 경쟁력 세계 3위 달성, AI를 통한 지능화 경제 효과 최대 455조원 창출 등을 목표로 제시하고 있다.

이 일환으로 2019년 고려대·카이스트 등 5개 대학에 인공지능(AI)대학원 설립을 시작으로 AI 인력 양성에 이제 막 첫발을 뗀 상태다. 올해는 AI대학원을 총 12개로 확대할 방침이다. 고려대는 지난해 AI대학원을 설립해 인재 양성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글로벌 기업들과의 산학 협력으로 성과도 내고 있다. 3월 11일 이성환 고려대 인공지능학과 주임교수를 만나 AI 분야에서 후발 국가인 한국이 AI 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조건을 물었다.

◆ 핵심은 ‘AI 인재 키우기’

이 교수는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AI 분야에서 한발 늦은 한국이 기술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AI 인력 양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AI 기술 잠재력의 핵심은 세계적인 수준의 연구 역량을 갖춘 고급 인재들을 양성하고 관리하는 데 있다”며 “미래가 달린 고급 인력 양성 사업인 만큼 긴 호흡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 “한국도 이제 인재 양성의 중요성을 깨닫고 투자를 시작한 만큼 AI 고급 인재들을 성공적으로 양성해 세계적 수준의 AI 기술 개발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교수는 한국의 AI 연구 1세대로 꼽히는 인물이다. 척박한 국내 AI 연구 환경 속에서도 그는 2009년 9월 고려대 일반대학원에 뇌공학과를 처음 개설함으로써 미래 유망 연구 분야인 뇌공학 연구에서 굵직한 성과를 도출해 왔다.

특히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선보인 AI 로봇 ‘컬리’는 한국 AI 역사에서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다. 사람과 동일한 조건에서 스스로 경기 전략을 수립하고 수행할 수 있는 ‘AI 컬리’는 AI와 로봇공학 등 다양한 학문이 융합된 최첨단 기술의 결정체다.

한국은 AI를 국가 전략으로 선포했지만 아직 체계화된 교육과 준비는 부족한 상황이다. 국가별 AI 준비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하나의 지표인 옥스퍼드 인사이트와 국제개발연구소(IDRC)의 ‘2019 정부 AI 준비도 지수’에서 한국의 AI 준비도 수준은 전 세계 26위에 그쳤다. 정부의 AI 도입 환경이 세계 주요 국가보다 뒤처졌다는 의미다.

이 교수의 지적처럼 AI 관련 인력에 대한 수요는 높지만 공급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는 2023년까지 약 1만8000명의 AI 인력이 부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전 세계 AI 핵심 인재 500명 가운데 한국 출신 비율은 1.4%에 불과해 미국(14.6%)과 중국(13.0%)의 10분의 1 수준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AI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국가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부상하면서 관련 인재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점이다. 최근 국내에서는 초·중학교에서도 소프트웨어(SW) 교육을 의무화하고 초·중·고교에 단계적으로 AI 교육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AI 교육의 대중화는 이미 세계적 추세다.

미국과 일본 역시 초등학교부터 프로그래밍 교육을 통해 AI 교육을 하고 있다. 이 교수는 한국의 AI 붐 현상을 AI 원천 기술 확보와 미래 시장 선점을 위한 긍정적인 신호로 보고 있다. 그는 “산업체에서 필요로 하는 AI 인재들을 키워내기 위해서는 초·중·고교의 기초 교육뿐만 아니라 사회인들의 평생 교육까지 포함해 AI 수용성 향상을 위한 AI 교육이 대중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 장기 투자·실용적 기술 개발이 AI 강국 만든다

최고급 AI 인재를 키워내는 산파 역할을 하는 곳은 단연 대학이다. 2019년 9월 출범한 고려대 인공지능대학원은 AI 분야에 특화된 인재를 키워내는 산실로 범국가적인 AI 인재 양성 프로젝트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주목받고 있다.

고려대 인공지능대학원은 핵심 연구 분야로 딥러닝, 컴퓨터 비전, 자연어 처리, 음성 인식, 빅데이터, 신경망을 선정했다. 이에 기반한 6대 AI 응용 특화 분야(AI+X)로 헬스케어, 금융, 지능형 에이전트, 게임, 보안, 자율주행을 지정해 AI에 특화된 교육과 연구, 다양한 산학 협력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특히 고려대는 AI 기업과의 산학 협력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다. 산업체 현장 수요를 적극적으로 반영한 AI 연구를 진행하면서 산학 협력 중 우수한 AI 인재는 산업체로의 스카우트도 가능하다.

이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현재 아마존·페이스북·구글·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글로벌 기업과 넷마블·삼성전자·엔씨소프트 등 국내외 30여 곳의 AI 기업과 협약을 맺고 다양한 산학 협력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이들 기업과는 ‘카메라 시점 변화에 대응한 얼굴 합성 및 정합 기술 개발 프로젝트(삼성전자)’, ‘스타일 조절 및 감정 표현이 가능한 음성 합성 AI 기술 개발 프로젝트(넷마블)’, ‘마커프리 3차원 휴먼 포즈 자동 추정 기술 개발 프로젝트(엔씨소프트)’ 등을 함께하고 있다.

AI 후발 국가인 한국은 전략적으로 ‘선택과 집중’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이 교수의 분석이다. 이 교수는 “한국이 강점을 가진 제조업, 즉 반도체 분야에 특화해 수월성을 유지해야 한다”면서 “앞으로 AI 연구를 위해 기술 역량의 조기 확보와 정책의 일관성, 시장 선점에 주력할 수 있는 지속적인 투자 전략 수립의 중요성이 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최근 정부가 AI 연구·개발(R&D)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 대비 투자 규모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따라서 일부 성과 창출에도 불구하고 시장을 주도하는 기술력 확보로 연결되기에는 여러모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인재 양성과 함께 장기적 관점에서의 투자 연속성을 확보하는 것도 시급하다. 이 교수는 “한국은 단기적으로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기 원하지만 AI 기술 자체가 단기적 관점에서 원천 기술을 개발하고 확보하는 것이 어렵다”며 “긴 호흡으로 장기적 투자를 통해 미래 시장을 주도하는 기술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AI 연구의 선발 주자들에게 뒤지지 않으려면 더 실용적인 기술 개발에도 속도를 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 교수는 “한국은 전통 학문적 사고와 구현의 틀에서 벗어나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사고력을 갖추고 신기술 개발에 기여할 수 있는 핵심 인력을 키워 내는 데 주력해야 한다”면서 “연구소와 기업에서도 대학과의 적극적인 산학 협력 체계를 바탕으로 연구실 환경을 넘어 산업 현장에서 활용될 수 있는 실용적인 AI 기술 개발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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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경비즈니스 제 1268호(2020.03.16 ~ 2020.03.22) 기사입니다.]